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5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58화(158/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58화
차연호의 헛발질은 내 입장에선 내게 더는 귀찮게 굴지 않게 된 탓에 매우 감사할 일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찝찝하기도 했다.
레브에 회귀자가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가? 왜 그렇게 남의 팀 회귀자를 찾아내려 혈안이 되어 있지?
나는 또 회귀 전 일로 내게 복수라도 하려는지 알았지.
악의로 가득 차 나를 노려보던 회귀 전 차연호의 눈을 떠올리며 실소했다.
‘분명 자기 기억을 모두 믿지 말라고 했지.’
타투 하나 없이 깨끗한 손등을 쫙 펼쳐 보며 차연호의 말을 떠올렸다.
내 마지막 기억은 청담동 집에 막 입주했던 첫날. 앞으로 프로듀서로서의 꿈을 펼칠 생각에 들떴던, 아이돌로서의 마지막 밤.
그리고 내가 보았던 환각에서 나온, 새집이라고는 할 수 없던 청담동 집.
그리고 그 환각이 나오기 전에 보였던 상태창의 글자.
[과거의 파⑇⑆▚⑉]잔뜩 깨져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앞 글자는 읽을 수 있었다. 상태창은 그 환각을 과거라고 칭했다.
청담동 집은 지금 시점에서는 미래이지만 내가 거쳐 온 과거이기도 했다. 그럼 그 말인즉슨…….
‘그 막장 인생 미친놈이 나라고……?’
나는 그렇게 산 적이 없는데.
재떨이에 거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든 담배 꽁초, 바닥을 굴러다니던 수많은 맥주 캔, 그 꼴불견 타투는 둘째치고.
아무리 회귀 전의 견하준이 나를 손절한 게 원망스러웠더라도 견하준이 나오는 드라마 동영상을 보다가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질 정도로 증오하고 원망한 적은 없었다.
동영상에 나온 게 서예현이면 몰라도.
휙휙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그때 본 장면, 다시 재생해 줄 수 있냐? 아무래도 덜 본 거 같아서.”
류재희가 나를 현실로 끌어당기며 끊겨 버린 그 장면을 다시 봐야지, 그래서 자기 인생을 셀프로 망치고 있는 그 미친놈의 면상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지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에러로 인한 이상 현상이니 프로젝트 대상자께서는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기꺼이 해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스템의 답변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에러면 보상을 해 주던가. 나는 내가 스트레스로 인한 환각을 본 줄 알고 진짜 진지하게 정신과 상담 잡으려고 했다고.”
[에러 보상으로 랜덤 티켓이 발급되었습니다!]겨우 이거 던져 주고 퉁 치려고? 그리고 내가 말 안 했으면 보상은 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서예현의 랩 실력을 건다, 시발.
“볼 방법이 진짜 없어?”
[히든 조건을 충족시키면 가능합니다.]“히든 조건이 뭔데? 알아야지 충족을 하든 말든 하지.”
투덜거리자 상태창이 다시 글자를 띄웠다. 진지하게 읽다가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욕설을 겨우 삼켰다.
[‘hidden’이라는 영단어 뜻을 찾아보시길 권장드립니다.]존나 띠껍네.
* * *
나는 오늘도 지원이 형에게 불려 가 비트 뽑기 기계가 되었다.
지원이 형은 올해도 어김없이 DTB 심사위원 및 프로듀서를 맡았다.
“나 지금 DTB 촬영 들어갔잖아. 네가 하도 용철이 용철이 해서 처음에는 못 알아봤는데 D.I 걔가 용철이라며? 걔 잘하던데?”
지원이 형의 말에 마치 내 칭찬이라도 들은 마냥 뿌듯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잘한다니까요, 그 형.”
“친하면 피처링으로라도 무대 한 번 서. 거 너희 곡에서 1분도 안 되는 랩 깔짝이면서 충족이 되냐?”
저희 팬 중에 일부는 40초간의 제 분량이 존나게 길어서 듣기 빡친다는데요. 내 개인파트만 치면 30초 좀 넘긴 하지만.
DTB 촬영은 5월에 시작했지만 첫 방송일은 7월 예정이었다. 용철이 형이 나한테 피처링을 부탁했던 세미 파이널 무대 촬영 날짜는 아마 8월 말일 거다.
회귀 전과 똑같이 용철이 형이 세미 파이널 무대 피처링을 맡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고민 중이긴 했다.
“아이돌 래퍼가 피처링 무대 서도 돼요? 괜히 아이돌로 어그로 끈다고 용철이 형 욕 먹일까 봐, 걱정인데.”
“뭔 상관이야. 랩만 잘하면 되지. 아이돌 인기가 힙합판에서 먹힌다고 생각하냐? 음원 차트 순위는 몰라도 당장 무대 평가는 니 인기 좆도 신경 안 쓸 텐데.”
지원이 형이 타박 같은 위안을 던져 주었다.
하긴, 아직까진 힙합 팬의 비율은 여성보다는 남성이 압도적이었다. 출근길에 우리를 부르는 데이드림의 목소리에 남자 목소리도 좀 섞이긴 했지만 DTB랑은 풀이 다르겠지, 뭐.
“막말로 힙합이 얼굴 보면 리제리, 걔 명성이 제일 높아야지, 안 그러냐?”
“제가 언더 나간 이후로 제리 형님이 언·오버 래퍼들 통틀어서 제일 멀끔하게 생기시긴 했죠.”
“그거, 네가 언더에 있을 때는 네가 제일 잘생겼다는 소리냐? 이거 진짜 은근히 웃기는 놈이라니까?”
빵 터진 지원이 형이 내 등짝을 퍽퍽 두드려 댔다.
솔직히 맞는 말 아닌가? 그러니까 언더에 있던 시절에 망할 놈들이 내 얼굴만 보면 아이돌이나 하라고 그렇게 염불 외우면서 염병 떨었지.
“일단 DTB 피처링은 고민 좀 해 보고요. 제 무대면 모르겠는데 남의 무대라서. 혹시라도 망치면 좀…….”
“짜식아, 그러니까 너도 DTB 나와. 시즌 4는 무조건 나와라.”
내게 헤드록을 걸며 지원이 형이 키득거렸다.
“아, 고민 좀 해 본다니까요.”
“새끼가, 튕기기는.”
헤드록을 풀어 주며 지원이 형이 내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너도 무대가 그립잖아.”
“무대야 맨날 서는데 그리울 게 뭐 있어요.”
“아니, 그 무대 말고. 래퍼로서 온전히 너 혼자 서는 무대.”
지원이 형이 손가락 하나를 올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짬밥이 안 돼서 그런 무대를 한 번도 서 본 적이 없는데요. 크루 형들 사이에 끼어서 벌스 몇 구절 찌그리기만 했지. 제가 괜히 아이돌로 진로를 튼 게 아니거든요.”
시큰둥하게 대답하다가 멈칫했다.
그러네, 회귀 전에도 온전히 나 혼자 무대를 서본 적이 없었네. 솔로 곡이랄 것도 수록곡밖에 없었고.
생각보다 내가 회귀 전에 경험한 것과 이뤄 낸 것은 많지 않았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미련을 두고 있었던 건 회귀 전의 삶이 아니라 남기고 왔던, 내 엉망으로 꼬였던 삶의 보상들이었음을.
지금도, 아니 몇 년만 별다른 이슈 없이 무사히 지난다면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는.
그리고…… 아니다, 이건 생각하지 말자. 회귀한 지금은 영원히 불가능해져 버린 일이니까.
쓰게 웃으며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 냈다.
“아, 말하고 나니까 나도 그립다. 무대. 무대만 서면 그 호응들이 그렇게 짜릿했는데.”
깍지 낀 손으로 뒷머리를 받치고 한껏 상체를 기울인 지원이 형이 추억에 젖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회귀 전에는 DTB에 참가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언더 형들과 그렇게 틀어지고 그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기 싫었고, 이간질로 인한 오해인 걸 알게 된 후로는 돌릴 수 없었으니. 사이든, 고개든.
하지만 지금은 회귀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계가 욕심이 났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하며 묻어 둘 수밖에 없었던 나의 원래 꿈이.
‘그런데, 내가 그래도 되나?’
래퍼와 아이돌, 이 두 가지를 모두 잡으려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한쪽에 소홀해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소홀해지는 쪽’은 내 성격상 아이돌 쪽일 확률이 높다는 걸 알고 있다.
아이돌은 차선으로 선택한 꿈이었고, 오버그라운드 래퍼는 이루지 못한 꿈이었으니까.
그럼 백 퍼센트 다시 회귀할 거 같은데 그럴 바에는 그냥 지금에 만족하고, 솔로 앨범을 내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그렇게 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아직은 더 고민해 봐야 할 문제였다. 빌어먹을 무한회귀가 걸린 이상은 말이다.
* * *
[1위- ‘Reve – Reverse’ ♥154,025]가 드디어 차트 1위에 안착하고, 미니 3집 [이면]은 손익분기점을 무사히 넘겼다.
이 발매 두 달 후에 차트 역주행을 했음을 상기했을 때, 이 역주행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이런 걸로라도 을 이겨서 뿌듯했다.
“저 이거 망해서, 크흥, 대표님이 또 내우주 같은 괴랄한 음악 강요하실까 봐, 킁,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김도빈이 훌쩍였다. 그놈의 <내 우주로 와>는 실질적인 활동은 2주뿐이었음에도 마치 망령처럼 지금까지 언급되는 중이었다.
“너는 무슨 수도꼭지냐?”
혀를 차며 김도빈에게 곽티슈를 휙 던졌다. 견하준이 사람한테 물건 던지지 말고 직접 건네라고 한소리 했다.
“아니에여, 하준이 형. 이든이 형이 그만 좀 울라고 윽박지르지 않고 휴지를 건네준 것만으로도 전 매우 감격스러워요.”
눈물을 줄줄 흘리던 김도빈이 코를 훌쩍이며 휴지를 뽑아 눈가를 벅벅 닦았다.
내가 언제 윽박질렀냐. 사내새끼가 툭하면 질질 짜지 말라고 한소리 한 거 가지고.
“유출 때문에 초반 화력이 죽어서 그렇지 노래가 워낙 좋아서 망할 일은 없었을걸. 언젠가는 떴을 거야.”
김도빈에게 휴지를 몇 장 더 뽑아서 건네며 류재희가 말했다. 샐러드를 우물거리던 서예현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 음원 유출범은? 잡았대?”
“잡으려고 덫 놓는 중. 그런데 미끼가 있어야 해서 좀 걸릴 듯?”
서예현이 입을 틀어막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와, 업체에서 플래카드 아직도 안 뽑아줬어?”
“플래카드 안 건다고.”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그냥 해 본 소리 가지고 몇 번을 우려먹네.
물론 내가 말하다 보니 좀 솔깃했긴 했지만, 아무튼 진지하게 냈던 의견이 아니라고.
아직 활동은 한 주 남은 시점이었고, 가장 큰 경쟁자였던 알테어의 활동이 끝난 이상, 별문제만 없으면 레브는 무사히 1위로 활동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럼 오늘 자 위클리 서치 퀘스트나 해 볼까. 오늘도 어김없이 FROM 게시판에 기체후일향만강하셨어요로 시작되는 글을 남기고 익숙하게 내 이름을 검색했다.
평소였으면 심드렁하게 쓱쓱 넘겼을 테지만 제일 위에 뜨는 건 넘길 수가 없는 류였다.
‘시발, 이게 뭐지…….’
어이없는 단어의 조합에 잠시간 뇌가 사고를 거부했다.
“이든이 형! 지금 뜨는 거 봤어요? 모니터링하셨어요? 웬만하면 댓글은 보지 마시고, 반박문 올려야 하니까 글만 일단 읽어 보세요. 아니, 제가 전문 캡쳐해서 보내드릴까요?”
류재희가 휴대폰을 꼭 쥔 채로 황급히 달려왔다. 얼굴은 창백하게 질린 채였다.
“나도 지금 보고 있다.”
애써 침착한 척 대꾸하며 다시 시선을 내렸다. 휴대폰 화면에 띄워진 글자가 선명히 보였다.
[윤이든 학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