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6화(16/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6화
솔직히 말하자면 음원은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수정한 적이 없었다.
변명해 보자면 우리 노래가 뜨며 자동으로 스케줄 역시 늘어났고, 숙소로 돌아오면 피곤해서 곧바로 곯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도저히 작업실로 갈 만한 몸 상태가 아니었거든.
물론 음원 재현하겠다고 난리를 치던 데뷔곡 활동 당시라면 어떻게든 무거운 몸뚱어리를 이끌고 작업실로 갔겠지만.
완성된 음원 파일이 손에 들어왔기에 조금 여유를 부렸던 것도 있다.
다음 활동 회의까지 시간이 남았다는 빌어먹을 안일함도 한몫했고 말이다.
‘망할, 대표님은 이런 데에서만 쓸데없이 부지런해서.’
사람 좋게 웃으면서 사람 복장 뒤집어 놓는 그 면상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 엿 같은 작곡가랑 컨택할 에너지와 정성과 돈으로 스케줄러나 만들지!
하지만 후회하고 한탄해 봤자 이미 곡은 만들어지는 중일 테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음원을 최대한 완벽하게 수정하여 대표님이 가지고 올, 처참하게 망할 미니 2집의 타이틀곡을 완전히 발라 버리는 것뿐이다.
‘……그거 진짜 <내 우주로 와>보다 구렸지.’
덕분에 데뷔 앨범과 미니 2집은 우리가 뜨고 나서도 없는 앨범으로 취급받았다.
<내 우주로 와>야 데뷔곡이라는 특성 때문에 한 번씩 부를 일이 있었다지만, 그다음 곡은 언급조차 금지됐다.
로 겨우 망돌 루트를 벗어났는데, 그런 곡으로 다시 나락으로 내리꽂힐 수는 없었다.
“얘들아, 잠깐만 모여 봐라. 회의 좀 하자.”
멤버들을 불러 모으고서 공책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크게 끄적였다.
[제1회 레브 회의] [부제 : 다음 앨범 타이틀곡]지난번, <내 우주로 와> 활동 연장을 두고 의견이 갈린 걸 고려했을 때, 또 의견이 갈리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기에 이번에는 회의를 개최했다.
아무리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이긴 하지만 내 의견대로 밀고 간다면 또 멤버들과의 불화를 조장한답시고 초심도를 깎을 게 분명했다.
세상엔 상식을 벗어난 사람이 있다는 걸 몰랐던 내 패착이지.
“무슨 회의예요? 다음 앨범 타이틀곡?”
제일 먼저 쪼르르 거실로 달려와 공책에 선명하게 쓰인 글자를 읽은 류재희가 눈을 깜빡였다.
“여러 곡 중에서 타이틀곡 정하자고 부른 거예요? 그런데 곡이 벌써 나왔대요? 형은 들어 봤어요? 어때요? 괜찮은 곡들 좀 있어요?”
“나도 대표님이 작곡가랑 컨택했다고만 들었는데.”
따발총 같은 류재희의 질문을 잇는 견하준의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직 곡이 나오지는 않았는데 그 컨택한 작곡가가 무려 우리 데뷔 앨범인 곡들 작곡하신 분이란다.”
그 말에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진 류재희가 더듬더듬 물었다.
“데, 데뷔 앨범이면…… 설마 <내 우주로 와>요? 그 사람이 또 우리 앨범 곡을 맡는다고요?”
“엉.”
내 고개가 끄덕여지자마자 김도빈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나라가 망한 것처럼 통곡했다.
“우린 망했어…… 망했다고……! 원찬스 뜨고 나서 망돌은 안 되겠구나- 하고 희망을 가졌는데……!”
“아니에요, 형! 갑자기 그분이 신내림이라도 받아서 걸작을 뽑아낼 수도 있잖아요!”
숫제 넋을 놓은 김도빈을 잡아 흔들며 류재희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김도빈을 진정시키려는 건지, 아니면 현실 도피를 하고 싶은 건지.
어디서 희망 회로 타는 냄새 안 나냐?
“이든이 형, 이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죠?”
제발 그렇다고 말해 달라는 듯 나를 돌아보며 묻는 막내의 간절한 눈빛에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가능하긴 하지.”
정말이었다.
레브가 직캠으로 역주행한 곡인 의 작곡가 역시 <내 우주로 와>를 작곡한 그 인간이었으니까.
열심히 행복 회로를 돌리느라 표정이 환해진 류재희와 김도빈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그게 이번 앨범 곡일 확률이 0에 수렴해서 문제지.”
수렴도 아니고 0이다, 0. 확실하게 망한다니까. 내가 과거에 겪어 봐서 안다.
<내 우주로 와> 탈출했다고 들떠 있던 우리에게 들이밀어진, 그것보다 더한 곡에 분위기가 처참해진 건 내 기준 7년 전 일임에도 똑똑히 기억한다.
데뷔 앨범이 하도 망해서 다음 활동은 좀 더 신경 쓸 줄 알았지. 아, 들인 돈에는 더 신경 썼더라.
350만 원, 시발.
“아마 그 인간이 음악적 영감을 얻어 걸작을 작곡하려면 3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뭐, 그 후로도 계속 명곡 뽑는다는 확신은 없지만.”
역주행 당시, 서예현의 얼굴이 공로의 8할을 차지하긴 했지만, 당시의 활동곡인 역시 2할 정도는 차지했다.
난해한 벌스와 중독성 있는 후렴구로 말이다.
비극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딱 한 번, 극악의 가챠 뽑기에 성공한 대표님은 그 작곡가에게서 우리를 정상에 올려다 줄 만한 곡이 나올 것이라며 계속 곡을 맡겼다.
로또 1등도 아니다. 2등에 한 번 당첨되자, 이번에는 1등에 당첨될 거라면서 돈을 버리는 인간군상을 보는 것 같달까.
그리고 은 그 작곡가의 인생 최고이자 마지막 걸작품이었다.
이후에 그만한 곡을 못 뽑아냈다는 소리다.
내 곡으로 활동한 아이돌 그룹들이 차트 1위를 달성하고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들을 때.
우리는 구린 곡들로 활동하면서 팬빨로 겨우 음방 1위 찍고.
차트는 새벽에 반짝 10위와 눈빛 교환을 한 뒤 내려가고.
평론가들에겐 혹평만 듣는 등, 아무튼 고난이 많았다.
다시 이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대표님이 그 작곡가에게 곡을 사 올 생각을 더는 못하도록 내 곡으로 대박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 우주로 와>보다 더 구린 건 아니겠지……?”
더 구리다.
차마 미래 스포는 못 하고 근질거리는 입을 다물자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서예현이 한탄했다.
“차라리 7080 유행가를 사 와서 리메이크하는 게 훨씬 낫겠다.”
그 작곡가 곡으로 컴백했다가 80년대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걸그룹에게 처참하게 발린 적도 있었다.
자신들도 모르게 미래를 맞춰 대는 멤버들을 보며, 혹시 이 자식들도 회귀한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아니겠지. 회귀했다면, 나만 이렇게 속 터지면서 그룹 살리겠다고 열심히 뛰어다닐 리가 없지.’
어느새 초상집이 된 분위기에 당황한 것도 잠시.
막내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이거 막을 방도를 회의하자는 거죠? 의견 내면 돼요?”
“아니.”
“그러면 대체 왜 불러 모은 건데? 마음의 준비라도 하라고?”
삐딱한 서예현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냥 너희들에게 선택지 주려고 모은 건데? 둘 중 하나 골라라.”
회의는 그저 ‘이 리더는 너희의 선택이 뭔지 한 번 봐 줄 마음은 있어요’라는 보여 주기일 뿐.
답은 정해져 있고 너희는 고르기만 하면 된단다.
검지를 들며 선택지를 제시했다.
“1번, 다음 앨범 타이틀곡은 나한테 맡긴다. 2번, 대표님에게 맡-”
“1번이요, 무조건 1번!”
“11111!”
“그걸 물어보고 말고가 어디 있어! 당연히 1이지!”
“나도 1번 할게.”
검지에 이어 중지까지 치켜들기도 전에 내 말을 끊고 와다다 쏟아지는 격렬한 대답에 당황했다.
혹여 있을 2번 의견에 대비하여 준비한, 길고 긴 설득의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전에 대신 <내 우주로 와>로 계속 활동하자고 주장하며 내 속을 터지게 만들었던 김도빈과 서예현을 번갈아 보다가 진지하게 질문했다.
“왜 갑자기 상식인이 됐어? 전에는 안 그랬잖아.”
“그거랑 이거는 다르죠, 형. 전에는 활동 준비 기간이 일주일밖에 없어서 그랬고, 지금은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요.”
비상식인 취급이 충격이었던지 김도빈은 눈썹을 팔(八)자로 구부린 채 억울함을 잔뜩 담아 우겨댔다.
“차라리 굴려 줘…… 데뷔곡보다 더한 곡으로 활동하느니 너한테 막말 들으련다.”
세상에, 살다 살다 서예현이 나한테 굴려 달라고 말하는 날도 다 오다니. 내 직설적인 말보다 데뷔곡이 더 싫었던 거냐고.
그런데 왜 전에는 <내 우주로 와>로 계속 활동하자고 했어, 이 인간아.
* * *
“와, 죽겠네…….”
작업실 의자에 등을 기대며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잘못 건드려 쓰러진 에너지 드링크 캔 하나가 책상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책상 위에는 이미 빈 캔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이틀간 철야를 한 터라 시선이 절로 멍해졌지만 이 빌어먹을 시스템은 동태눈깔이라고 초심도를 깎아 댔기에 1분에 한 번씩 셀프로 뺨을 후려치면서 초점을 맞췄다.
덕분에 뜨끈하게 달아오른 뺨이 얼얼했다. 육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빨갛게 부어 있겠지.
뻑뻑한 눈을 비비며 저장 버튼을 클릭했다.
회귀 전과 지금을 통틀어 이 정도로 빡세게 작업했던 적이 있었던가?
스페이스 바를 눌러 재생시키자, 헤드셋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흠잡을 곳 하나 없이 완벽했다.
나를 그렇게 성가시게 했던 벌스 부분도 전에 작업했던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하, 무섭다. 내 재능.”
자화자찬하며 스페이스 바를 한 번 더 눌러 노래를 정지시키고는 헤드셋을 벗었다.
이제 가이드 녹음만 하면 데모는 완성이었다.
평소였으면 망설임 없이 견하준에게 가이드 녹음을 맡겼겠지만, 데모곡으로 최대한 대표님을 설득해야 했기에 류재희에게도 녹음본을 따기로 했다.
아늑한 크기의 작업실이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류재희가 오니까 김도빈도 구경한답시고 따라오고, 서예현도 숙소에 혼자 남아 있기 싫다며 작업실로 따라온 덕분이었다.
“와, 여기 형 작업실이에요?”
“아니, 아는 형 거. 그러니까 함부로 만지고 다니지 마라. 망가뜨리면 네가 다 보상해야 하는 건 둘째 치고 나까지 욕먹으니까.”
휙휙 작업실을 둘러보는 막내에게 심드렁하게 주의를 주고는 곧바로 가이드 녹음에 들어갔다.
가이드 녹음은 본 녹음처럼 빡세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가사 전달만 잘 되고 멜로디만 잘 드러나면 됐다.
“준아, 랩 부분은 대충 얼버무려도 되고, 벌스 1 마지막 부분에 ‘전화기 끄고 오늘 밤은 집에 가지 마, all right?’ 이 부분만 한 톤 낮춰서 불러봐.”
“훅 부분 다시. 박자가 미묘하게 빠르다.”
“딴 따단, 딴 따단, 여기에 맞추라고. 다시.”
“재희야, 다 좋은데 right night 발음 좀 똑띠해 봐라. 왜 all right만 두 번을 해 대냐. 다시.”
“라이트 나이트 이 지ㄹ…… 아니, 너무 정직하게 발음하지 말고 라잇 나잇이라고 하라고. 어렸을 때 영어 학원 안 다녔냐? 영어 학원부터 끊어 주리? 다시.”
[멤버들과의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아야, 돌겠네. 겨우 가이드 녹음부터 이러면 어떡하냐.
본 녹음 들어가면 초심도 얼마나 깎이려고 이러는 건데.
나 빼고 멘탈 약한 놈들만 모은 대표님도 참 재능이다. 재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