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6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63화(16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63화
“물어보자고?”
“네, 사옥까지 오는 길에 너튜브로 실제 무당이 찍은 퇴마 프로그램을 좀 찾아봤는데 이렇게 빙의되면 사연 물어보고 한풀이해서 보내 주더라고요.”
너튜브로 [#엑소시스트 빙의 편] 영상을 띄워서 보여 주며 류재희가 설명했다.
김도빈은 썸네일만 봐도 무섭다며 이미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비전문가인 우리가 괜히 어설프게 물어서 자극하느니 전문가인 무당한테 맡기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견하준은 당장이라도 윤이든을 끌고 무당집으로 향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게 사람이 무슨 낌새도 사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저렇게 180도 변했는데, 저게 어떻게 정신적인 문제겠나.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너튜브에도 저렇게 빙의된 이들의 사연이 100% 실제 상황이라는 딱지가 붙어서 뜨지 않는가. 비록 실제인지 주작인지 진위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당집 갔다가 괜히 귀신 들린 아이돌이라는 이야기가 새어 나가는 위험 부담을 무릅쓰느니 최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는 게 좋죠.”
류재희의 설득에 견하준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예현이 형, 혹시 오늘 방에 불 켜고 자도 돼요? 이거 계속 봤더니 좀 무서워서…….”
류재희가 눈을 까뒤집은 남자가 나온 너튜브 영상을 가리키며 묻자 서예현이 진저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도 벌써 무서워지려 한다.”
서예현의 옆에서 한 손으로 삐딱하게 턱을 괴고 앉아 있던 김도빈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보통 소설에서 보면 빙의되면 안 나가고 그 몸으로 계속 쭉 살던데.”
“나가라 해. 자기가 뭔데 남의 몸 차지하고 눌러앉아서 남의 인생을 뺏고 있어.”
견하준이 인상을 구기며 짓씹듯이 내뱉었다.
흔치 않은 견하준의 성깔 어린 모습에 다들 움찔하거나 감탄하던 와중.
제일 먼저 빙의설을 주장했던 김도빈이 고개를 기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이든이 형이 큰 결심을 했던 거면 어떡해요? 제 소원을 듣고 감화되셔서 새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면? 그래서 저게 빙의 이런 게 아니라 진짜 이든이 형이라면요?”
“윤이든이 퍽이나.”
코웃음 친 서예현이 잠시 멈칫하더니 회의실 탁자에 엎드리며 한탄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귀신 빙의보다는 낫잖아. 이게 말이 되냐고. 만약 진짜 빙의라면 나는 지금 남의 몸을 뺏은 귀신한테 격려를 받은 거잖아.”
“그렇죠.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귀신한테 격려받은 것보다는 새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이든이 형한테 격려받는 게 낫죠.”
류재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일단 윤이든에게 대체 무슨 결심을 했기에 이러는 건지 물어보고.
우리는 네 그대로의 모습을 딱히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예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적당히 섞어서 절충안을 내놓아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 보자.
이게 레브의 넷이 최대한 빙의라는 가설에서 눈을 돌리고 회피해 가며 회의실에서 내놓은 결론이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자 티비에서는 동물이 나오는 예능인 애니멀팜이 한창 방영 중이었다.
반려견을 키우는 애견인이라서 그런지, 누군가가 버린 정황이 분명한 유기견만 나오면 윤이든은 개 버린 놈들은 똑같이 어디 오지에 버려 버려야 한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분통을 터트리곤 했다.
옆에서 보고 있는 이가 다 혈압이 걱정되어 채널을 돌리려고 하면, 저 유기견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며 돌리지도 못하게 했다.
그 유기견이 구출되어 동물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깨끗하게 미용 단장 하고선 입양처를 찾을 때까지 리모컨으로 화면을 삿대질해 가며 욕설 하나 없는 저주를 쏟아 내는 게 평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애니멀팜에 나오는 유기견을 보고 있는 윤이든은 티비 화면을 응시하며 가만히 앉아 눈물만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심지어 우르르 숙소로 들어오는 그들을 발견하고도 별다른 리액션을 보이지 않았다. 몰래 울다가 들켜서 머쓱해하는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연습실에서보다 더한 공포의 분위기가 그들을 휘감았다.
저건 절대로 새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윤이든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원본이 남아 있어야 할 거 아닌가.
주먹을 꾹 말아쥐고 윤이든의 앞에 선 견하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대체 누구신데 이든이의 몸을 차지하고 이러고 계시는 건대요?”
* * *
누구긴 누구겠냐. 나다, 인마.
이젠 하다 하다 준이 너마저도 김도빈에게 물들었냐. 하여간 김도빈 저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휴대폰 압수해야 한다니까.
한숨을 내쉬며 견하준 좀 말려 보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그 뒤에 있던 서예현과 류재희를 향해 시선을 옮기자…….
‘저 인간들은 또 왜 저래?’
그 둘은 견하준과 마찬가지로 잔뜩 경계 어리고 겁먹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도빈은 어디 있나 했더니 서예현 등 뒤에 딱 붙어서 벌벌 떨고 있더라.
불쌍하게 버려진 강아지를 보며 평소와 같은 분통을 터트리려니까 또 그 지랄 맞은 필터링에 걸렸는지 생뚱맞게 나오던 눈물을 쓱 닦으며 멀뚱하게 눈을 깜빡였다.
나는 아침부터 이 페널티의 끔찍함을 아낌없이 맛봤다.
분명 나는 오전 스케줄이 없다는 이유로 오전 9시 반까지 퍼질러 자는 김도빈을 침대 위에서 내팽개쳐 식탁까지 굴러가도록 만들어 줄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모로 누워 자는 김도빈의 목덜미를 향해 손을 뻗자마자 내 몸은 내 의지를 배반하고 김도빈을 부드럽게 흔들어 대더니, 김도빈을 안아 올려 식탁 의자에 곱게 내려놓기까지 했다.
시발, 이게 말이 되냐? 뒈지게 굴려야 할 놈을 내가 친절하게 안아 들어 식탁까지 모셔다드렸다니까? 이게 말이 되냐고!
심지어 이 빌어먹을 페널티는 행동만 필터링하는 게 아니라 말도 제멋대로 필터링했다.
아니, 어떻게 ‘야, 김도빈, 그만 퍼질러 자고 빨리 안 일어나냐?’가 ‘도빈아, 김도빈. 일어나야지.’가 될 수 있지?
‘뭐 하냐? 사람 그만 쳐다보고 밥이나 먹지?’가 어떻게 ‘왜 형을 보고 있어. 빨리 밥 먹지 않고.’가 될 수가 있고?
식사 도중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내 이상행동의 원인을 맞힌 김도빈의 말에 저게 정답이라고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이며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도 못 알아봤다.
이 망할 페널티의 정수는 연습실에서 아주 피크를 찍었다.
아니, 몇백 번을 연습한 곡인데 지금 와서 또 안무를 틀리는 건지.
욕설과 윽박이 자동 필터링된 격려를 내뱉으면서도 속이 터져 서예현의 등이라도 격려하는 척 후드려 치며 울분을 푸려고 했지만, 일정 파워 이상으로 손에 힘이 안 들어갔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아니, 답답해서 내가 내 가슴 좀 치겠다는데 왜 가슴 위에 얌전히 손 얹기로 행동 필터링을 하고 지랄이야?
“준아, 이상한 소리를 하네. 내가 윤이든이 아니면 누구겠어.”
그리고 ‘준아, 하다 하다 그놈의 김도빈, 아니 씹덕 같은 빙의론에 너까지 감화됐어? 사람 영혼이 바뀌는 게 말이 돼?’가 어떻게 저렇게 필터링이 되는 거고!
가슴에 손을 얹고 나긋하게 대답하자 서예현의 옆에 있던 류재희가 발작하듯 외쳤다.
“아니에요! 이든이 형은 안 그런다고요!”
나도 알아! 내가 제일 잘 알아!
“대체 뭘 원하고 이 몸에 들어오신 거예요? 힙합 하고 싶었어요? 아니면 키 크고 남들이 알아서 겁먹는 인상 더러운 얼굴로 한번 살아 보고 싶었어요? 춤은 모르겠는데 만약 노래하고 싶었으면 번지수 잘못 찾으셨어요. 이 형 노래 못해요. 그렇다고 제 몸에 들어오진 마시고요.”
이 페널티의 좋은 점은 딱 하나였다.
내가 욕설을 내뱉어도 어차피 자체 필터링되어 나가기 때문에 마음껏 욕설을 내뱉을 수 있었다.
물론 필터링을 거쳐 육성으로 들리는 소리는 영 딴판이었지만.
“재희야, 너까지 이러면 형 속상한데.”
(시발, 재희야. 너까지 이러기냐? 명석한 너까지 시발 내 속을 터트리기로 작정했냐?)
“이든이 형 코스프레하지 말라고요! 대체 원하는 게 뭔데요? 들어줄 테니까 빨리 말해요! 그거 이루고 성불하시라고요!”
“내가 이든이잖아. 원하는 건 우리 레브 멤버들이 나를 믿고 따라 주는 것밖에 없지.”
(씨발, 내가 윤이든이라고! 내가 원하는 거? 니들이 나를 페널티 끝날 때까지 좀 가만히 냅두는 거! 그거 하나다, 시발!)
“이런 말을 하는 게 이든이 형일 리가 없잖아!”
아니, 무슨 성경도 아니고. 나를 세 번이나 부정하고 자빠졌어. 내가 시발 효륜디스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선보여야 나를 믿겠느냐.
“일단 우리 라디오 스케쥴 가야 해.”
서예현이 시간을 확인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류재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이 귀신…… 님은 어떡하죠……?”
멀쩡한 사람을 시발 왜 귀신으로 만들고 자빠졌냐고!
“어쩌긴. 일단 껍데기는 윤이든이니까 데려가야지. 그리고 우리 이름 다 아는 거 보니까 정보도 대충 있는 거 같은데 문제는 없지 않을까?”
“저기, 귀신…… 님.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돌아오면 눈을 세 번 깜빡여 주세요. 그럼 저희가 대신 대답할게요.”
환장하겠네.
스케줄을 위해 라디오 방송국으로 가는 길.
“다들 분위기 왜 이래? 너희 싸웠냐?”
우리를 둘러싼 서먹한 분위기에 매니저 형이 우리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차라리 싸운 거였으면 좋겠다. 지금은 멤버들이 일방적으로 나를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귀신 들렸다는 말도 안 되는 오해로.
그래도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걸었기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어서 그거 하나는 편했다.
“그럼 이든 씨는 뭐, 리더의 고충, 이런 거 있어요? 이 자리를 빌어 솔직 고백!”
“멤버들이 고맙게도 잘 따라와 주는 덕분에 힘든 건 딱히 없어요.”
라디오에서 DJ의 질문에 적당히 필터링 섞인 답을 하며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을 눈으로 훑었다.
망할 페널티는 기본 표정을 아예 자애로운 미소로 고정시켜 놨다.
한껏 당기고 있는 입꼬리와 볼이 다 아파서 경련이라도 올 지경이었다.
[미안하다더니 어지간히 미안했는가 보다] [이든아 그만 미안해해도 돼] [일진설에 충격 먹고 이미지 변신 꾀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저렇게 부처 미소 지어 봤자 지금 박힌 이미지는 일진 때려잡는 다크나이트인데] [아니 그런데 왜 진짜로 저렇게 웃으면서 나긋하게 말하니까 인상이 선해 보이냐? 저 외모로도 인상이 선해 보일 수 있는 거임?]왜 하필 오늘은 또 보이는 라디오라서, 하하.
이 빌어먹을 페널티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2시간 1분 25초.
페널티가 끝나는 게 먼저일지, 내가 화병으로 뒈져서 데뷔 초로 시간이 돌아가는 게 먼저일지 매애애우 궁금했다.
* * *
거칠게 몸을 흔들어 대는 배려 없는 손길.
“야, 도빈아. 해가 중천에 떴다. 셋 셀 때까지 안 일어나면 오리걸음으로 식탁까지 유격 훈련 실시다.”
익숙한 삐딱함을 담은 중저음의 목소리.
“돌아왔어…….”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김도빈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뱉은 말을 곱씹던 그가 번쩍 눈을 떴다.
어제의 자애로운 부처 미소가 아닌 벌레 씹은 표정을 한 윤이든의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
“이든이 형이 돌아왔어!”
마치 종장에서 세계를 위해 희생했던 주인공이 무사히 귀환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인사하는 모습을 마주한 주인공의 동료 1처럼 김도빈이 감격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