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6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64화(16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64화
무슨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이산가족과 상봉한 것처럼 나를 반기는 김도빈을 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와, 우리 바둑이도 나를 이 정도로 반긴 적이 없었는데.
“어디 간 적도 없는데 뭘 돌아와, 인마.”
두 팔을 활짝 벌려 나를 껴안으려 하는 김도빈의 얼굴에 손을 덮고 그대로 밀어냈다.
“형, 진짜 기억 안 나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정신이었는데 기억이 안 날 리가 있냐.
본래 내가 페널티가 끝나고 멤버들에게 둘러대려 했던 변명은 ‘진지하게 새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가 사랑하는 우리 멤버들이 보이는 반응에 마음의 상처를 입어 때려치웠다.’였다.
하지만 내가 눈물 흘리는 꼴을 보이게 된 이후로는 그 계획을 집어치웠다. 제정신으로 눈물 보인 건 가오 떨어지잖아.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단 하나였다.
내가 진짜로 귀신 들린 것이라 멤버들이 굳게 믿도록 만드는 것.
“뭐가?”
“어제 형 몸에 생전 아이돌을 꿈꾸던 영혼이 들어왔잖아요!”
알아서 귀신 사연 스토리텔링까지 해 주니 내가 할 게 없었다.
여기에서 저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무섭다고 호들갑을 떨면 안 된다. 그런 건 서예현 같은 연기 하수나 하는 짓이다.
“너는 아침부터 헛소리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내가 받아 주든지 하지. 내가 분명 그놈의 웹툰인가 웹소설인가 좀 줄이라고 했지 않냐? 왜, 또 빙의당했다고 해 보지그래?”
표정을 구기며 평소처럼 정수리를 꾹꾹 눌러 주자, 김도빈이 제 가슴을 치며 외쳤다.
“아니, 형이 진짜 빙의를 당하셨다니까요!”
“도빈아, 꿈꿨냐?”
머리를 거칠게 헤집어 주고 비웃음 한 번 날려 주고선 방에서 나가 식탁에 앉았다. 여느 때처럼 내가 수저를 들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오늘 라디오 스케줄 몇 시였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질문하자 류재희가 멀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오늘 라디오 스케줄 없는데요?”
“왜 없어. 달편지 있잖아.”
그 말에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류재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 달편지는 어제 스케줄이었어요.”
“뭐? 오늘 월요일 아니야?”
눈썹을 치키며 묻자 견하준이 무겁게 답했다.
“이든아, 오늘 화요일이야.”
“준아, 너까지 장난치지 마. 다들 짰어? 이거 뭐 깜짝카메라야?”
이러고 카메라를 찾겠다며 고개까지 휙휙 돌려 주면 완벽하지.
이 빌어먹을 시스템이 강제로 눈물만 안 흘리게 했어도 내가 이런 열연을 펼칠 이유가 없는데……!
“윤이든 너 진짜 기억 없어? 와, 진짜로 귀신 들린 거 맞았는가 보다.”
“거봐요, 형! 제가 형 빙의되셨다고 했잖아요! 제 구매목록의 모든 웹소와 만화를 걸고 맹세코, 장난치는 거 절대 아니었다니까여!”
“저는 음방 무대 한 번 서고 나서 한 풀고 성불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스케줄 한 번 뛰고 알아서 성불하네요.”
내 연기가 기가 막혀서 다들 의심 하나 없이 귀신 들린 윤이든 설을 믿는 건지, 아니면 어제의 내 모습이 차마 의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었던 건지.
한바탕 난리를 쳐준 후, 진정한 척을 하고 멤버들이 알아서 부여해 준 서사를 정리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월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이고, 어제 나한테 귀신이 들렸다? 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러면 형의 잘려 나간 하루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저희가 형 노트북의 날짜와 형 휴대폰의 날짜까지는 조작을 못 해요.”
“아니, 씨, 뭔 귀신…….”
그렇게 스스로를 부정하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귀신에게 덮어씌운 대가는…….
“뭐냐? 아니, 뿌린다고 말이라도 하고 뿌리던가! 준아, 콩을 왜 던지는지는 모르겠는데 좀 살살 던져 주지 않을래?”
“소금이요. 혹시 몰라서.”
“콩이 아니라 팥. 팥이 귀신 쫓잖아.”
소금과 팥 세례로 돌아왔다. 들킬까 봐 지랄도 못하고 겸허히 소금과 팥을 맞았다.
“형, 이거 벽이랑 문에 붙여도 되죠? 창문에도 붙일까요?”
“재희야…… 상식적으로 인터넷에서 한 장에 오천 원 주고 산 부적에 효능이 있을 것 같냐?”
“없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이래 봐도 퀵배송으로 받은 거예요.”
그리고 나랑 김도빈이 함께 쓰는 방은 귀신 나올 것 같은 부적을 방 인테리어 장식품으로 가지게 되었다.
차마 귀신이 아니라 나라는 소리도 못하고 답답한 속을 삭였다.
“저 부적이 오히려 귀신 불러낼 거 같은데. 안 그래요, 형? 꼭 소설에서 보면 저렇게 귀신 쫓는다고 해서 산 부적이 오히려 귀신 불러오더라고여.”
“야이씨, 말이 씨가 된다는 소리도 못 들어 봤냐? 재수 없게 그런 말 좀 하지 마라. 그런데 김도빈 너는 의외로 덤덤하다? 귀신 무섭다고 제일 난리 칠 줄 알았는데.”
“그야 대부분의 빙의물은 귀신이 아니라 영혼…… 잠깐, 그러고 보니 도입부에 환생 트럭에 치이거나 어떻게든 죽는 장면이 공통적으로 나오는데, 그럼 귀신 맞는 거 아닌가……? 내가 주인공 시점이라서 눈치를 못 챈 건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벌떡 일어난 김도빈이 부적 몇 장 더 사자고 류재희를 쩌렁쩌렁 불러 재꼈다.
내가 저럴 줄 알았다.
하지만 때아닌 숙소에서의 귀신 퇴치 소동 말고 또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어제의 스케줄에서 보였던 모습이었다.
라방이나 할까 하고 OA앱에 접속했다가 류재희가 제 룸메이트인 서예현과 함께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걸 보고 내일로 미루며 깔끔하게 단념했다.
뒤로 가기를 누르기 직전, 채팅에 언뜻 보이는 내 이름에 휙휙 올라가는 채팅을 쭉 훑어보니 유독 나를 찾는 내용들이 많았다.
아쉽게도 이건 내 인기의 척도를 말해 주는 게 아니라 어제 이상 행동을 보인 나를 다시 확인하고 싶은 팬들의 마음이었다.
갑자기 류재희가 사라지고 서예현만이 화면에 나와 생긋생긋 웃으며 토크를 이어 나갔다.
데뷔 초 때는 더럽게 쭈뼛거리더니 저 인간도 많이 발전했다- 싶었다.
그리고 화면에서 사라진 류재희는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노크 안 하냐.”
“형! 팬분들이 형 찾아요! 자, 형은 어제 이미지 변신을 한 번 꾀해 본 거예요. 그러다가 너무 힘들어서 때려치운 거예요. 알겠죠? 절대 귀신의 ‘귀’ 자도 꺼내시면 안 돼요!”
류재희가 내 어깨를 붙들고 신신당부했다. 류재희가 지어 낸 서사는 원래 내가 하려고 했던 핑계와 똑같았으므로 문제 될 건 없었다.
한참 휴대폰 카메라에 대고 떠들던 서예현은 방 안으로 들어오는 나와 류재희를 발견하고 한결 안도한 얼굴로 우리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안녕, 데이드림. 저를 애타게 찾으신다고 해서 달려왔습니다.”
-하루 만에 익숙한 모습으로 컴백했네
-이든아 평소처럼 웃지 말고 어제처럼 인자하게 웃어 봐
-맞아 말도 어제처럼 좀 나긋하게 해 보고
-강요하지 마세요;;; 저는 어제 달편지 이든이보다 지금의 이든이가 훨씬 좋은데요;;;
-아니 저도 딱히 좋은 건 아닌데 우리애가 정말로 천의 얼굴인지 확인해 보게요 연기 시켜야죠
애써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최대한 나긋한 어조로 말해 보았다.
“나긋하게라…… 이렇게요?”
-아니야 어제의 그 너무 인자해서 묘하게 껄끄럽던 그 미소가 아니야
-말 나긋하게 하는 거 맞지……? 어금니 깨문 거 아니지……?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벌칙이라도 받았어?
페널티도 해석하면 벌칙이지.
하루도 아닌 이틀간 엿 먹여 줘서 아주 고오맙다, 빌어먹을 시스템!
* * *
“야야, 형, 빨리 돌려.”
리모컨을 쥐고 있는 서예현의 팔뚝을 툭툭 쳤다.
“너는 야라고 하든지 형이라고 하든지 하나만 해라.”
서예현이 투덜거리며 리모컨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런데 저거 이번에 TK에서 하는 서바이벌 아니야? 와, 티비에서 방영해 줘? 역시 대형은 다르긴 다르다.”
류재희의 표정을 못 보고 화면 속 연습생들의 모습을 보며 감탄하는 서예현의 손에서 리모컨을 강제로 빼앗아 들어 바로 채널을 넘겼다.
류재희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우리가 역주행으로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 거의 활동 마무리 무렵에 로 데뷔한 놈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하필 이 그놈들의 신곡에 밀려 차트 1위에서 내려왔던 날, 류재희는 그놈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 막 방영 시작한 시기고, 레브는 이번 주 일요일, 인기뮤직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마무리한다.
‘그럼 이번에는 음방에서 TK 신인 그룹 놈들을 마주칠 일은 없으려나?’
가해자 새끼들에게 면전에서 비웃음을 들으며 자존감이 꺾인 팀 막내의 모습을 보는 건 한 번으로 충분했다.
아니, 음방뿐만 아니더라도 시상식이나 가요대전에서 한 번은 마주칠 테지.
그럼 방법은 간단하다. 서바이벌에서 떨어져서 데뷔를 못하도록 손쓰면 되는 거다. 그럼 그 신인 그룹 놈들이랑 마주쳐도 가해자 새끼들이랑은 안 마주치겠지.
‘문제 되는 게 대체 몇 화에 나왔더라?’
과거에는 그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3년 반이나 걸렸고, 이미 데뷔한 상태라 욕은 먹었을지언정 퇴출까지는 안 갔지만.
이번에는 분명 다를 거다.
너튜브에 을 검색해 지금까지의 방영분을 쭉 시청하기 시작했다.
‘파이널 곡인가? 아니, 파이널 곡은 확실히 아니었어. 분명 파이널 이전 편에 있다는 소린데.’
처음에는 그걸 찾기 위해 봤지만, 점점 볼수록 서바이벌에 몰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대기업 자본은 다르긴 다르군.
와, 나는 서바이벌로 데뷔 안 해서 다행이다. 좆소에서 서바 없이 데뷔해서 남의 대기업 서바이벌을 보며 이렇게 웃을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놈인가!
심사위원에 빙의해서 쓸만한 놈들을 고르고 있던 내 어깨너머로 쓰윽, 고개가 뻗어 나왔다. 음산한 목소리가 내 귀에 속삭여졌다.
“형, 재미있어요?”
“어엉, 완전 꿀잼…… 헉, 막내야? 아니, 이건 이 형이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
“왜 저한테 해명을 하고 그러세요. 형이 재미있으면 보는 거죠.”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던지며 필사적으로 해명하자 류재희가 미소 지으며 내 손에 휴대폰을 꼭 쥐여 주었다. 여전히 화면에는 이 떠 있었다.
그리고 류재희는 그날 하루 간 내게 유독 틱틱거렸다. 그래도 말 안건답시고 입 다물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야, 막내. 아직도 삐졌냐?”
“안 삐졌거든요? 저는 형의 문화생활까지 신경 쓰는 그런 속 좁은 사람 아니거든요?”
“에이, 삐졌구먼, 뭘.”
낄낄거리며 류재희의 어깨에 팔을 턱 얹자 구시렁거리면서도 류재희는 굳이 내 팔을 떨쳐 내지 않았다.
이제는 류재희의 어깨가 내 어깨보다 위였다. 시간 참 빨라. 요만했던 꼬맹이가 벌써 내 키도 따라잡고.
“뭔 복도에 타 방송국 카메라가 돌아다녀? 누구 리얼리티 찍는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쭉 빨며 방송국 복도를 걷다가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아이돌 선배에게 꾸벅 인사했다.
저 선배는 TK 소속 보이그룹 멤버인데 이번에 솔로 활동으로 컴백했다. 우리를 발견한 그 역시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는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뒤를 우르르 따라 들어가는 놈들은 분명 어제 흥미진진하게 보았던 서바이벌 에 나온 놈들이었다.
아마 방송 분량 뽑는다고 솔로 활동 음방 백댄서로 세운 모양이었다. 몇몇은 류재희와 안면이 있는 사이인 듯 류재희에게도 슬쩍 손 인사를 건넸다.
괜찮나 싶어 고개를 돌리자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류재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류재희는 누군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시선이 닿았는지 그 누군가가 류재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슬쩍 인상을 찌푸린 이가 옆에 있던 이의 옆구리를 툭 쳤다.
마찬가지로 류재희를 돌아본 놈의 눈이 커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갈무리한 놈이 손을 들어 올렸다.
“이야, 재희야, 오랜만이다?”
류재희에게 반가운 척 인사를 건넨 놈의 얼굴은 회귀 전에도 마주한 그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