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6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65화(16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65화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시간 있을까? 알다시피 우리는 좀 뒤쪽 순서라.”
은근 TK 부심을 부리는 빨간 머리 놈을 향해 류재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보기 좋게 한 방 먹여 주었다.
“우리는 맨 뒷순서니까 시간 충분해요.”
1위 후보가 껌으로 보이냐?
카메라를 포함해서 다들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고, 복도에는 나랑 류재희, 그리고 빨간 머리와 갈색 머리 연습생만 남았다.
인적 드문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빨간 머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때는 미안했다, 재희야. 우리가 어려서 철이 없었어.”
하나도 미안해 보이지 않는 사과이긴 했지만 사과는커녕 면전에서 류재희를 비웃던 회귀 전을 기억하던 내게 있어선 놀라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니 지금으로선 놈들이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놈들은 데뷔한 상태가 아니라 서바이벌에서 탈락하면 데뷔가 엎어지는 연습생이었으며, 현재의 류재희는 망돌에서 라이징으로 겨우 올라온 상태가 아니라 애초에 망돌이었던 적은 데뷔 초 2주일밖에 없던 2군 아이돌이었다.
회귀 전과 정반대로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류재희가 과거의 일로 입만 벙긋해도 이 두 놈에게는 데뷔에 큰 타격일 게 분명함으로.
사실상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없었다.
“언제는 형들은 꼰대라 예의 없는 놈들 안 봐준다 하시지 않았어요? 꼰대랑 철이 없는 거랑 공존할 수가 있는 거였나?”
그 성의 없는 사과를 받고 잠깐 멈칫하더니 비소한 류재희가 빈정거렸다.
“기준 확실한 진짜 꼰대 겪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형들은 꼰대가 아니라 그냥 텃세 부리면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애들 괴롭히는 거 즐기던 찌질한 새끼들이었다는 걸.”
그래, 그런데 왜 진짜 꼰대 겪어 봤다는 말을 하면서 나를 돌아보냐, 막내야. 서예현이 있는 대기실은 저어기 저쪽인데?
“많이 컸다, 류재희?”
애써 웃는 얼굴을 하면서도 미간을 꿈틀거리며 이를 악물고 말하는 빨간 머리 놈을 내려다보며 류재희가 픽 웃었다.
“많이 컸지. 보다시피.”
여기 있는 넷 중에서 류재희가 제일 컸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 지경까지 여전히 자존심 세우는 빨간 머리와 달리 상황 파악 좀 할 줄 아는 갈발이 고개를 푹 숙이며 무거운 목소리로 사죄의 말을 건넸다.
“그때 일, 너한테 덮어씌운 거, 정말 미안하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 몰랐어.”
“아니요, 형들도 알았잖아요. 연습생 간 폭행은 무조건 퇴출인 거. 그러니까 형들이 그렇게 월말 평가 전날에 피 터지게 싸워 놓고 말리던 저한테 뒤집어씌운 거 아니에요? 아니, 지운 형이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정정해 드릴까요?”
이를 악물며 류재희가 하나하나 반박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 깊숙이 담아두었을 한을.
“그래 놓고 다른 연습생들 협박해서 제가 폭행한 거 봤다는 식으로 말 맞추고. 그 장소에는 우리 셋밖에 없었는데도. 솔직히 형들 영향력 큰 거 형들이 제일 잘 알았잖아요.”
“미안하다, 정말로.”
“그래. 미안해, 재희야. 그래도 내가 너 선처해 달라고 그렇게 실장님께 말씀드렸는데 너무 강경하시더라고.”
앵무새처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두 연습생을 향해 류재희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하나만 물을게요. 만약 형들이 서바이벌 도중이 아니라 데뷔한 상태였다면, 내가 지금처럼 이렇게 자리 잡은 상태가 아니라 망돌이었던 상황이었다면, 그때도 제게 사과를 했을까요?”
갈발이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대답했다.
“당연하지.”
빨머 역시 절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는 류재희의 옆에서 다 들리도록 속삭였다.
“저거 다 개구라다, 막내야. 저것들 백퍼센트 사과 안 했어. 오히려 비웃고 있을 거라니까.”
내가 회귀 전에 가감 없이 다 보고 와서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빨간 머리가 눈초리를 한껏 올리며 따져 물었다.
“그쪽은 뭔데 알지도 못하면서 끼어들어요?”
“오, 우리 친구. 어차피 데뷔 못 할 거 알아서 선배님 호칭도 어디에다가 뚝 팔아먹고 온 거야? 하긴, 앞으로 방송계에서 마주할 일도 없을 텐데, 나도 일반인에게 선배님 소리 듣는 건 좀 그렇긴 하다.”
무대의상 주머니에 손을 꽂고 삐딱하게 서서 빈정거림이 섞인 감탄사를 날리자, 빨간 머리가 알아서 수그러들었다.
“형들 사과, 받아 줄 마음 없어요. 형들은 제가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을 때, 제 잘못 아닌 거로 한 번만 봐 달라고 빌었을 때. 제 말 들어 주셨어요? 아니잖아요.”
류재희는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모두 쏟아붓듯이 그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마음 가벼워지려고 하는 사과면 최악이고, 서바이벌 끝나기 전에 이슈 터질 게 무서워서 억지로 한 사과면 형들은 정말로 사람도 아닌 거고.”
그리고 저것들은 사람도 아닌 새끼들이지.
“이만 들어가 볼게요. 서바이벌 잘 마쳐요, 형들. 응원은 못 해 주겠지만.”
끝까지 제 사과를 받아 주지 않고 우리 대기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류재희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빨간 머리와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 갈발을 보며 혀를 찼다. 거봐, 이 새끼들은 교화가 안 된다니까.
류재희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빨간 머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친구야, 남들은 창작의 고통을 즐기는 이상 취향이고 머저리라 그렇게 대가리 터지게 굴려 가면서 창작하는 거 아니야.”
내 다정한 충고에 빨간 머리의 눈초리가 다시 올라갔다.
“뭔 소린데요? 제가 지금 표절이라도 했다는 소리예요?”
“아, 그래. 그러고 보니 우리 친구도 이 친구랑 같은 팀이었지.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 줄 테니까 이리 와 봐.”
주춤거리며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갈발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어깨에 팔을 턱 걸치고 빨간 머리 옆으로 질질 끌고 왔다.
그리고 너튜브 기록 목록을 열어 동영상 하나를 터치했다. 그리고 바로 후렴구로 동영상 시간을 옮겼다.
제게 매우 익숙할 멜로디가 울리자 갈발의 눈이 커졌다.
“너네 자작곡 배틀 곡이랑 후렴구가 너무 똑같지 않냐? 그런데 이거 80년대 독일 곡이다? 어때, 재미있지?”
갈발이 빨간 머리를 휙 돌아보았다. 빨간 머리가 다급히 변명하듯 외쳤다.
“표절이 아니라 샘플링……!”
“샘플링이 무슨 표절을 피하는 만능 주문인 줄 아냐? 표기도 안 한 무단 샘플링 욱여 박은 곡을 네 자작곡이랍시고 올린 순간부터 너는 게임 끝이야.”
새하얗게 질리는 빨간 머리와 갈발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삐딱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내가 또 이런 거 전문이거든. 음악에 진심이 아닌 새끼 나락 보내기 전문.”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응, 아직 비속어 6개는 더 쓸 수 있죠? 이 정도 고통이야 이제는 충분히 안 움찔거리고 참을 수 있죠?
“탈락 미리 축하한다. 하는 꼬라지 보면 작곡가로도 이 바닥 못 밟을 거 같은데 미리미리 컴활이나 따 놔라. 아직 젊으니까 괜찮겠네.”
따스한 충고를 건네자 빨간 머리가 절박하게 나를 붙들고 늘어졌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한 번만……!”
“죄송해? 나한테 죄송할 게 뭐 있어? 양심 버린 채로 살다가 나가리 된 니 인생에 죄송해야지.”
팔을 털어 내 놈을 떼어 내고는 똑바로 놈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너희가 망쳐 놓을 뻔한 류재희 인생에 미안해해야 하고, 씹새끼들아. 그딴 걸 사과라고 쳐 하고 자빠졌냐?”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그럼 재희한테 진심을 다해서 다시 사과할 테니까 재희 한 번만 불러 주시면…….”
“우리 막내가. 너희 사과. 안 받겠다잖아.”
한 자 한 자 힘주며 비웃음을 남기고 휙 몸을 돌렸다. 얼음이 다 녹은 아메리카노는 밍밍하기 그지없었지만 속은 시원했기에 괜찮았다.
레브 대기실로 돌아와 류재희 옆 소파에 털썩 앉자 류재희가 중얼거렸다.
“저 인간들이랑 마주치면 한마디도 못 할 줄 알았어요. TK에 있을 때는 진짜 커 보였고, 무서운 형들이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마주치니까…… 진짜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렇지. 사람이 자라면 그토록 크고 무서웠던 것도 작아 보이고 별것 아닌 걸 알아채기 마련이지.
막내의 성장에 뿌듯해하고 있던 것도 잠시.
“레브에 비하면.”
류재희가 덧붙인 말에 눈썹을 치키며 물었다.
“갑자기 레브가 왜 나와?”
“전 레브의 막내로 살면서 확실히 강해진 거 같아요. 저 인간들도 이든이 형 테라피랑 이든이 형이랑 예현이 형이 허구한 날 살벌하게 싸우는 꼴이랑 이든이 형이 도빈이 형 잡는 걸 옆에서 보고 들으며 겪었어야 했는데.”
류재희가 쓸데없이 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아니, 우리가 뭘 했다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 그룹만큼 막내 우쭈쭈 해 주는 그룹 없다니까?”
“우쭈쭈는 무슨. 제가 막내들 프로젝트 하면서 보고 들은 게 있는데.”
“그리고 우리가 언제 그렇게 싸웠다고 그러냐? 평화롭기만 하구먼.”
“데뷔 전부터 데뷔 초까지는 예현이 형이랑 이든이 형, 엄청 싸우셨잖아요. 지금은 제가 뭔 말을 해도 형이 봐줄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는 건데 이든이 형은 데뷔 전에는 그냥 막말의 신이셨고요. 그저 제가 그 타깃이 아닐 뿐이었지.”
그 말에 멀뚱히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어쨌길래 막말의 신이라고 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옆에서 서예현은 맞는 말이라고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건데. 용서 안 해 준다, 이러고 끝?”
마음씨 여린 우리 막내는 그걸로 끝낼지 몰라도 나는 그걸로 못 끝낸다. 나락을 보여주지.
“입장문 쓸 거예요. 제게 그런 짓 해 놓고 순순히 데뷔하게는 못 두죠.”
류재희가 단단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문득 회귀 전, 류재희의 TK에서의 과거를 알고, 왜 서바이벌 때, 아니면 지금이라도 밝히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류재희가 했던 대답이 떠올랐다.
‘그때는 제가, 레브가 망돌이었잖아요. 증거도 없고, 이미 제가 폭행으로 TK 퇴출당했다는 건 제법 퍼져 있는 소문이고. 아마 서바이벌 탈락은커녕 이슈도 안 되고 묻혔을걸요. 오히려 뜨고 싶어서 물고 늘어지는 거 아니냐고 역공이 들어오면 모를까. 그리고 지금 와서 해 봤자…… 굳이 저 때문에 팀 이름에 먹물을 묻히고 싶진 않아요.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TK 소속사 자체 팬층이 두꺼워서 오히려 우리가 공격당할 가능성도 크고…….’
하지만 지금의 류재희는 제 과거를 밝히기를, 그래서 제게 상처를 주었던 이들이 대가를 치르게 하기를 택했다.
회귀 전의 묵직한 마음의 짐 하나를 덜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녹음해 놨어요. 제가 입장문 내고, 그쪽에서 증거 없다고 묻으려고 하면 녹음본 풀려고요.”
류재희가 녹음본이 띄워진 휴대폰을 흔들며 비죽 웃었다.
“그래, 막내야. 형이 든든하게 서포트해 주마.”
거기에 자작곡 표절 논란까지 터트리면 빨간 머리 놈은 완벽하게 날릴 수 있겠네.
어째 내가 해결하는 게 아니라 류재희의 해결책에 숟가락만 얹는 것 같지만 어쨌건 음악을 쉽게 생각한 머저리 하나 날릴 수 있으니 좋은 일로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