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6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66화(16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66화
“3500원입니다.”
숙소 근처 카페에서 청포도에이드를 테이크아웃하고 다시 숙소로 향하며 슬쩍 한 모금을 마셔 보았다.
인공 과일 향과 탄산수가 입안에서 섞였다. 더럽게 달아서 딱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점점 더워지는 낮과 달리 밤공기가 선선했다.
현관에 신발을 대충 벗어 두고 숙소로 들어오자 불이 꺼져 어두운 거실에 휴대폰 불빛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 빛 위로 흐릿하게 비치는 얼굴에 순간 내 방 벽에 붙어 있는 부적을 떠올린 나 자신이 미워졌다.
“네가 무슨 어둠의 자식이냐? 불 다 끄고 있게? 불 끄고 휴대폰 하면 눈 나빠진다니까. 안 그래도 하루 종일 휴대폰 붙들고 사는 놈이.”
혀를 차며 거실 불을 켜자 휴대폰 자판 두드리기에 열중하던 류재희가 고개를 쓱 들었다.
“그런데 왜 이 밤중에 거실로 나와 있냐?”
“입장문 쓰는 중이거든요.”
류재희가 메모장이 켜진 휴대폰을 흔들었다.
“방에서 안 쓰고, 왜. 서예현…… 예현 형이 시끄럽게라도 해?”
“아무래도 혼자 천천히 생각이랑 기억을 정리해 가면서 쓰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나왔어요. 예현이 형이야 항상 조용하시죠. 형도 룸메 두 번이나 같이하셔서 알잖아요.”
서예현 두둔까지 잊지 않으며 류재희가 씩 웃었다.
남들은 다 자기만의 공간인 자기 방을 선호할 때 류재희는 꼭 늦은 저녁 시간의 텅텅 빈 거실을 선호하곤 했다.
한 번은 이유가 궁금해 슬쩍 물어봤더니 그저 본가에서부터 든 습관이라고만 대답했다.
동생들과 항상 방 하나를 셋이 함께 쓰던 터라 개인의 시간을, 개인의 공간을 가지고 싶을 때의 유일한 선택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 질문을 던진 날로부터 조금 시간이 지난 뒤였다.
류재희에게 청포도에이드를 건네고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마시면서 해. 쉬엄쉬엄. 급한 거 아니잖아? 파이널 직전에 터드린다며.”
“아니요, 생각이 바뀌어서요.”
류재희가 음료를 받아 들며 고개를 저었다.
“서치하면서 쭉 찾아보니까 이제영은 몰라도 김지운 그 인간이 프로듀싱 때문에 꽤 팬층이 탄탄해서 순위가 높더라고요. 원래는 비참해지라고 파이널 직전에 터트려서 탈락시키려고 했는데 단 1%의 가능성도 남기고 싶지 않아서 지금 터트리려고요.”
프로듀싱이라는 말 덕분에 김지운이라는 놈이 그 빨간 머리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 서바이벌도 꽤 이슈몰이하고 있고, TK 소속사 자체가 팬층 두껍고, 시간이 갈수록 팬들 붙으면 웬만한 이슈로는 떨어뜨리기 어려우니까요.”
빨대로 청포도에이드를 쭉 빨아들인 류재희가 내게 이유를 설명했다.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지. 내가 뭐라고 말을 얹겠냐.”
“그래도 불안해요…… 지금 터트려도 묻히면 어떡하죠……? 아예 서바이벌 시작할 때 터트렸어야 했나? 그랬으면 초창기 탈락자로 보내 버릴 수 있었을까요?”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는 류재희의 현재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진짜로 별거 아니었는데 괜히 지금까지 겁나고 두려워서 외면했나 봐요. 진작 마주할걸. 그랬으면…….”
제가 쓴 글을 내려다보는 류재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괜찮아. 확실하게 골로 보낼 수 있는 카드가 있거든. 걱정하지 마라, 막내야.”
나를 보는 류재희의 눈동자가 떨렸다.
“설마 형…… 저 하나 때문에, 외면하고 있던 집안의 힘을 빌려서 여론 조작을……?”
“뭐라는 거야, 막내야. 너도 김도빈한테 물들었냐? 우리 친가에 그 정도 힘은 없거든?”
김도빈이랑 하도 붙어 다니면서 물들었는지 헛소리를 해 대는 류재희의 정수리를 두어 번 꾹꾹 눌러 주고는 자작곡 배틀 편과 빨간 머리 놈이 표절한 곡을 차례로 보여 주었다.
“형…….”
류재희가 감격한 얼굴로 입을 틀어막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 류재희를 향해 따스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막내야. 이 빌어 처먹을 놈을 확실하게 날려 보자꾸나. 감히 우리 막내를 건드린 대가는 치러야지.”
“뭐, 제가 레브 막내 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아무튼 뭐가 됐던 감사요.”
그렇게 의기투합 한 번 단단히 하고.
“그러고 보니까 이거 들키면 예현이 형이 엄청 뭐라고 할 텐데. 이 카페, 에이드에 탄산수 말고 사이다 써서 예현이 형이 에이드 절대 저녁에 먹지 말라고 했거든요.”
여전히 탄산 거품이 올라오는 청포도에이드를 가볍게 흔들며 류재희가 키득거렸다.
“괜찮아, 내가 이겨.”
“아니, 저는 더 이상 두 분의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니까요. 그건 정말로 데뷔 전이랑 데뷔 초 때로 충분해요.”
“아니, 내가 진짜 어쨌길래.”
“예현이 형이 안무 실수 다섯 번 했다고 앞에서 모자 집어 던지고 욕 중얼거리고 간 거 정말 기억 안 나요? 그날 예현이 형 연습실에서 밤새려고 한 거 제가 겨우 숙소까지 데리고 왔잖아요.”
“내가?”
“그때 곡이랑 안무가 진짜 구려서 다들 날카롭긴 했는데 형은 유독 날카로웠거든요. 지금이야 형이 관대해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는 정말 저 형은 그냥 뉴본에서 데뷔하시지 왜 제 발로 이런 좆소 들어와서 저러시나 했어요. 혹시 따라 나왔다는 하준이 형한테 시위하는 건가 싶기도 했고.”
“……내가?”
잊은 지 오래인 예전의 일이 류재희의 입에서 나오자 내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내가 그 정도까지 막장이었다고?
“네, 형이요.”
류재희가 음료를 한 입 더 마시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내가 쓴소리까지 해 가며 훌륭히 리더 역할을 하였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이것도 설마 시스템에 의한 기억의 조작인가……? 차연호가 말했던 바로 그거?
[아닙니다. 그냥 프로젝트 대상자 본인이 잊은 겁니다.]시스템은 단호했다.
“나 진짜 궁금한 거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네, 뭔데요?”
“왜 TK 나오고 LnL 들어왔냐? 나야 뭐…… 깊고 깊은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네 정도 실력이면 다른 곳들 충분히 들어가잖아.”
내 물음에 류재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저도 깊고 깊은 사정이 있었던 거로 치죠. 데뷔조 걷어차고 하준이 형 따라온 형만큼은 아니지만.”
“인마, 나 궁금한 거 있으면 잠 못 잔다고.”
투덜거리자 류재희가 순순히 털어놓았다.
“신월은 알테어가 있어서 보이그룹 내려면 그 당시 기준으로도 5년은 더 있어야 했고, 디그린이랑 뉴본은 데뷔조 이미 짜여 있었다는 건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 있었고, 웬만히 짱짱한 곳들은 조건이 잘 안 맞았죠. 저는 딱 하나만 원했거든요.”
“뭔데?”
“숙소요. 집에 다시 들어가고 싶진 않았어요. 그런데 서울 거주하면서 숙소 들어가려면 데뷔조밖에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데뷔조 들어갈 수 있는 곳 찾다가 LnL까지 오게 됐죠.”
“집이 그렇게 싫었냐……?”
“예전에도 한 번 말했잖아요. 집이 꼭 편안한 공간이 아닌 사람도 있다고요. 그냥, 좀 지긋지긋할 뿐이에요. 저라도 나와 있어야, 동생들이 조금이라도 방을 크게 쓸 테니까요.”
평범한 부모 밑에서 큰 외동인 나로서는 평생 류재희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
“그래서 여기서는 막내인 게 좋았어요. 의지할 사람들이 있어서.”
류재희가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내가 류재희에게 있어서 못난 형이 아니라 의지할 만한 형이라는 게 참 다행이었다.
나를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회귀 전의 류재희에게 이렇게라도 보답할 수 있어서.
가끔 우리 레브 전체가 류재희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입장문 적당히 쓰다가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서 자라고 류재희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어 주고, 하품하면서 몸을 일으키자 류재희가 다급히 나를 붙잡았다.
“형, 또 수면제 필요한 건 아니시죠?”
류재희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속 시원해서 굳이 수면제 안 먹어도 잠 엄청 잘 와, 인마.”
* * *
한창 샐러드로 저녁 식사를 때우던 도중, 김도빈이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모레가 막방인데 뭐 특별한 거 없어요?”
“역조공은 다 준비해 놨잖아.”
우리가 선택한 이번 역조공은 베이커리와 손편지였다. 워낙 글씨를 날려 쓰던 습관이 있었던 터라 류재희의 엄격한 심사 아래 몇 번이고 글씨체를 고치며 편지를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나 혼자가 아닌 김도빈도 함께라 외롭지는 않았다.
“아니, 그런 거 말고요. 무대요, 무대. 막방이니까 좀 스페셜한 무대로다가.”
“제복 입어.”
“한 번 입었잖아요.”
“그럼 두 명 제복 입히고 세 명 해방단 복장 입히든가. 와, 스페셜하다. 됐지?”
내 솔로몬급의 해답에 견하준이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가 다인원 그룹도 아니고 딸랑 다섯인데 너무 의상에 통일감이 없어도 조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까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거기에 꽂힌 김도빈은 다른 의견을 낼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의견에 어떻게든 끼워 맞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안무를 리뉴얼 수준으로 다시 짜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찬성인데 예현이 형은요?”
무슨 물 만난 리트리버처럼 반짝거리는 김도빈의 눈빛과 마주한 서예현의 표정에 난감이 서렸다.
서예현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나를 휙 돌아보았다.
“뭐, 형 대신 김도빈 갈궈 주라고? 야, 도빈아. 리더가 예현 형이냐, 나냐? 왜 예현 형한테만 물어보냐? 리더 섭섭하게?”
“야, 내가 언제 대신 갈궈 주랬어?”
저를 원망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김도빈을 애써 외면하며 서예현이 김도빈을 갈구던 나를 뜯어말렸다.
“안무 뜯어고쳐서 다시 익히는 거 제일 어려워할 사람은 예현이 형밖에 없잖아여. 때는 일주일이었지, 지금은 이틀…… 이틀이 뭐야. 하루인데.”
제 생일선물로 받은 강아지 모양 쿠션을 껴안으며 김도빈이 입을 비죽 내밀었다.
“마지막 음악방송 짱 멋있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형. 형이 일주일만 빨리 말했어도 가능했을 것 같긴 한데, 늦게 말한 형 자신을 탓해야지, 어쩌겠어.”
그런 김도빈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는 류재희의 말을 듣고 있던 서예현이 무언가 각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할 수 있어.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