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6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69화(169/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69화
그러고 보니 예능이 아닌, 우리끼리 여행을 간 적이 한 번도 없긴 했다.
우리끼리 있으면서도 여행의 ‘여’자도 안 나왔던 회귀 전과 비교하면 정말로 장족의 발전이긴 했다.
“그래, 어디 가고 싶은데?”
턱을 까딱하며 묻자 김도빈이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하와이!”
“도빈아, 돌았니?”
서예현이 내가 하고 싶던 말을 대신 해 줬기에 내 초심도가 깎일 일이 없었다.
“왜요? 우리 그때 <2만 원으로 살아남기>에서 우승 상품으로 받았던 하와이 여행권 있잖아요.”
“도빈아, 혹시 그걸로 당장 내일 하와이로 떠나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친절한 견하준의 맞춤형 설명에 김도빈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쩐지 여행 이야기를 꺼내나 싶더니 목적이 하와이었다니. 내 감동 돌려내라.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그게 있었지. 그거 유효기간 언제까지야?”
“5년.”
“아직 좀 남았네.”
5년 지나기 전에 한 번 다녀오면 되겠지. 태평하게 남은 날짜를 계산하는 내 옆에서 서예현이 질린 얼굴로 고개를 마구 저었다.
“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네. 양상추랑 오이만으로 버텼던 그 끔찍했던 나날들이.”
“그나마 형이라서 성공했지, 넷 중 누가 했어도 식비로 다 나갔어.”
“헐, 예현이 형은 기억 나여? 저는 피자 배부르게 먹은 기억밖에 없는데.”
“그래, 이 웬수들아. 방송 보니까 알테어는 멤버들이 먼저 봉지 과자로 퉁 치자고 하더라. 누구누구들은 치킨, 피자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지 서예현이 이를 갈았다.
“그럼 여행은 어디로 갈 건데? 일단 해외는 제외하고.”
견하준의 말에 김도빈을 바닥으로 떨쳐 내고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대고 누우며 투덜거렸다.
“계획도 없는데 여행은 무슨 여행이야. 그냥 숙소에 있어. 무계획 여행은 딱 질색이거든?”
“그럼 계곡 가요! 저희 이모가 홍천 계곡 쪽에서 펜션 하나 운영하고 계시거든요? 이모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게요!”
그리고 김도빈은 우리가 말릴 새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와 무어라 대화를 나누던 김도빈이 휴대폰을 살짝 귀에서 떼고 우리에게 물었다.
“형들, 몇 박 며칠 있을 거예요?”
“2박 3일? 3박 4일?”
“몰라, 재미있으면 3박 하고, 재미없으면 2박 하고 돌아오고.”
다시 제 이모와 한창 통화를 이어 나간 김도빈이 밝은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7월 2일 오후 3시에 방송국에서 촬영 온다고 했대요. 그전까지만 비워 주면 된대요. 돈 안 받고, 그냥 청소만 깨끗이 하고 나오래요.”
“뭐야, 유명한 펜션이야? 방송국에서 촬영도 오고?”
“아니요? 딱히 안 유명한데? 성수기에도 사람 없어서 이모가 그 펜션 내놓을까 말까 고민한다고 엄마한테 전해 들었는데? 갑자기 웬 방송…… 펜션 있는 그쪽 계곡은 완전 외져서 사람들도 많이 없는데.”
김도빈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람이 없는 곳이면 오히려 환영이었다. 계곡에서까지 마스크랑 모자를 쓰고 있기에는 좀 그렇지 않은가.
내일 바로 출발하기로 결정 난 이상, 일단 장을 봐야 했기에 마스크와 모자로 중무장하고 마트에서 바비큐용 숯과 고기, 수박, 술과 안줏거리, 라면, 과일, 음료수, 생수, 국거리용, 튜브, 공기 펌프 등을 카트에 쓸어 담았다.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김도빈을 툭 치며 목소리 낮춰 속삭였다.
“야야, 괜히 의식하지 마. 더 수상해 보이잖아. 여기에 이목이 끌리게 하지 말라고.”
“솔직히 수상해 보일 수밖에 없잖아요. 남자 다섯이 이렇게 꽁꽁 싸매고 있으면 연예인 아님 범죄집단이에여.”
“다들 시커멓게 입어서 범죄집단인 줄 알 거니까 걱정하지 마.”
마트 목격담도 뜨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쇼핑을 마치고 미리 캐리어 두 개에 짐을 싸 놨다.
이 녀석들을 실어나를 수 있는 건 오직 자차가 있고 운전면허증이 있으며 운전도 가능한 나뿐이었다.
아직 페라리를 뽑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아 차는 적당한 국산 SUV로 하나 뽑았다.
“이든이 형, 완전 멋있어요!”
“오오, 으른이다!”
“안전벨트나 매라.”
김도빈이 알려 준 주소로 내비게이션을 찍고 아침 일찍 강원도 홍천 계곡으로 출발했다. 일찍 출발해서인지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아담한 크기의 독채 펜션은 방 두 개에 거실, 화장실 두 개 구성이었다.
약간 낡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깔끔하니 괜찮았다. 심지어 노래방 기기도 있었다.
두리번거린 김도빈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생각보다 괜찮네?”
“너희 이모님이 하시는 데라며? 한 번도 안 와 봤냐?”
“저희 가족은 계곡보다는 바다파라서요. 이모도 딱히 우리 안 부르긴 했고.”
저와 류재희의 짐이 든 캐리어를 한쪽으로 내려놓으며 김도빈이 대꾸했다.
일단 식료품들부터 냉장고에 넣어 놓기 위해 냉장고로 다가가니 냉장고 문에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었다.
-노래방 기기 고장 났으니까 작동시키지 말 것
-밤에 계곡가로 가지 말 것
-안방 화장실 사용 X
-작은방 조명 안 들어오면 창문 구석에 소금 뿌려두기
펜으로 휘갈긴 메모를 훑었다. 별 내용은 아니었다.
“에이, 뭐야. 노래방 기기 고장 났어?”
“혹시 지금 고쳐졌을지도 모르니까 이따 저녁에 한 번 틀어 봐요.”
“안방 화장실은 왜지? 물놀이하고 화장실 하나면 씻기 불편한데.”
“변기 고장 난 거 아니에요? 씻는 건 괜찮을 수도 있잖아요.”
장 봐 온 것들을 냉장고에 마저 정리하며 류재희랑 시시덕댔다.
사 온 튜브에 열심히 펌프로 바람을 집어넣어 부풀리고는 방도 정하지 않고 곧바로 펜션 앞의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아직은 7월 초라 계곡물은 살짝 차가웠지만 그래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와, 물 완전 맑아!”
“이든이 형, 거기 물 깊어요?”
“어어, 발은 닿는데 김도빈 너는 튜브 없이 오지 마라. 넌 빠지겠다.”
“아, 형이랑 저랑 4cm밖에 차이 안 나잖아요!”
레브 멤버 중 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던 터라 다들 계곡 안으로 입수해서 물놀이하며 놀기에 바빴다.
사람도 없고 카메라도 없는 터라 서로에게 물을 튀기거나 강제 입수시키며 다들 고삐 풀고 신나게 놀았다.
“물고기 있다!”
“류재 너한테는 절대 안 잡힐걸?”
“잡았다!”
“와, 뭐야? 미쳤다! 순발력 미쳤다!”
막내라인 녀석들은 손으로 물고기 잡기에 열중하고 있었고, 우리 셋은 튜브에 몸을 맡긴 채 평화롭게 계곡물 위에서 둥둥 떠 있었다.
바다가 아니라 파도에 휩쓸려 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야, 평화롭다.”
내 중얼거림에 견하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진짜 평화롭네.”
“동감.”
튜브 위에 늘어진 서예현이 모자로 얼굴을 덮으며 한마디 얹었다.
“꼭 저런 플래그 발언하면 무슨 사건이 생기던데.”
다섯 번째 물고기 잡기도 실패한 김도빈이 진지한 목소리로 류재희에게 수군거렸다.
“저거 저거, 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내 타박에 김도빈이 입을 다물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하던 우리는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아쉬움을 담고 계곡에서 나왔다.
미리 챙겨 왔던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고, 격렬한 가위바위보 끝에 씻는 순서가 정해졌다.
다행히 씻는 시간이 더럽게 긴 서예현이 맨 마지막이라 아무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장보고 운전하느라 피곤하기도 했고, 다들 격렬한 물놀이 덕분에 손 하나 까딱할 힘이 없던 터라 바비큐는 내일로 미뤄졌다.
대신 조리하기 쉬운 안주와 함께 술판이 벌어졌다. 물론 김도빈과 류재희는 술을 입에도 대지 못했다.
김도빈은 저도 스물인데 왜 술을 못 먹게 하느냐고 징징거렸지만, 막내만 소외시킬 거냐는 내 윽박에 조용히 음료수를 잔에 따랐다.
“그런데 형은 왜 동생이랑 싸운 거야?”
“싸워서 하루도 안 돼서 다시 서울로 올라올 정도면 대체 어느 정도로 싸우셨길래…….”
우리의 질문에 서예현이 마시던 소맥 잔을 탁, 소리 나게 바닥에 내려놓으며 씩씩거렸다.
“아니! 서나현 걔가 자꾸 우리 카이사르 보고 윤이든 닮았다잖아!”
그랬군. 내가 남매 싸움의 원인이었군. 진짜 별걸로 다 싸우네.
내가 한심하다는 의미를 담은 한숨을 쉬든 말든 서예현은 계속해서 울분을 토해 내고 있었다.
“우리 카이사르한테 그게 무슨 망발이냐고!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우리 카이사르가 훠월씬 더 귀여운데!”
굳이 남의 집 고양이랑 귀여움 대결을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 고양이가 암컷이라면 더더욱.
“그래그래. 형네 고양이가 훨씬 더 귀여워. 됐지?”
“너는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니?”
술기운으로 약간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서예현이 내게 물었다.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에 열이 뻗쳐 내 앞의 소맥잔을 원샷했다.
시스템의 제한 주량인 소주 한 병을 넘겼는데도 초심도가 깎였다는 알림이 울리지 않았다.
‘드디어 술집 아닌 곳에서는 음주 기준을 완화해 줬구나!’
시스템의 성장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여기에 노래방까지 있음 딱인데! 저희 노래방 기기 틀어 봐요!”
“나참, 너희는 술도 안 마셨으면서. 그리고 노래방 기기 고장 났다고 저기-”
“어? 노래방 기기 켜지는데?”
천장에 붙은 미러볼이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래 부르는 게 일인 놈들이 휴가까지 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게 좀 웃기긴 했지만, 다들 카메라도 없겠다, 자기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들을 양껏 불렀다.
초심도 때문에 자체 F 워드 묵음 처리를 해 가며 열심히 Taker 형님의 랩을 열창하고 있는데 갑자기 노래가 뚝 끊겼다.
“누가 취소했냐?”
노래방 리모컨을 가지고 있던 김도빈이 매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양손으로 X자를 만들어 마구 흔들었다.
미간을 찡그리고 다시 한국 힙합곡 하나를 선곡했다. 김도빈은 이번에는 리모컨을 멀찍이 떼어 놨다.
또 한창 열창하던 중 노래가 뚝 끊겼다.
“아, 왜 내가 랩만 하면 끊기는데!”
“노래방 기기가 랩 싫어하나 봐요. 장르 바꿔서 해 봐요, 형.”
투덜거리면서도 발라드로 바꾸어 부르자 이번에는 노래가 끊기지 않았다.
“오, 98점.”
“점수 기준 왜 이래? 왜 윤이든이 하준이보다 높은 거야?”
“준아, 100점 가자.”
견하준에게 마이크를 넘긴 나는 소맥잔을 홀짝이며 견하준의 노래를 흐뭇하게 감상했다.
역시 나쁘진 않은 휴가였다.
가사가 뜨는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자 하필 남자가 차에 치여 죽는 타이밍이었다. 눈을 질끈 감은 김도빈이 울먹였다.
“왜 자꾸 사람 죽는 뮤비만 나와?”
“야, 저 시절 옛날 뮤비는 다 저랬어.”
“끊긴 이든이 형 노래는 제외하고 연속 여섯 번 사람이 사망하는 뮤직비디오는 좀 이상하지 않아요?”
“옛날 뮤비가 다 저러는데 어쩌겠냐. 다 차에 치여서 죽거나 화재 나서 죽거나 불치병에 걸리거나 하는 거지.”
류재희가 겁 많은 김도빈을 위해 배경을 자연으로 바꿔 주려 시도했지만 계속 뮤직비디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섭다고 난리를 치는 김도빈 때문에 일단 노래방 기기를 끄자고 손짓했다. 전원 버튼을 꾹 누른 서예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 왜 안 꺼지지?”
“내버려 둬. 알아서 꺼지겠지.”
그리고 다들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방으로 향했다. 침대는 작은방에 하나가 놓여 있었기에 서예현과 견하준이 한방을 쓰고, 나와 막내 라인이 큰 방을 썼다.
한참 잠들어 있던 나를 누군가가 급히 흔들어 깨웠다. 귓가에 흐릿하게 멜로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