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7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70화(17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70화
“뭔데?”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눈을 뜨자, 잔뜩 울상이 된 김도빈의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
“형……! 노래방 기기가 자기 혼자 작동됐어요……!”
“엉, 그거 고장 나서 그래. 끄고 와.”
설마 김도빈이 아무리 겁이 많아도 여기에서 저기까지의 거리를 혼자 못 다녀올까.
“저도 멜로디가 너무 음산해서 끄고 오려고 했는데 뮤비가, 뮤비가……!”
“뮤비가 뭐?”
“자꾸 사람 죽는 뮤비만 나온다니까요!”
“그 시절 뮤비는 다 사람 죽는다고. 그 사람들 진짜 안 죽었어. 다 연기야, 연기.”
이불을 뒤집어쓰며 얼른 다녀오라고 손을 휘적거리자, 혼자서는 다시 못 가겠다며 김도빈이 성가시게 나를 계속 흔들어 댔다.
“아, 무서우면 막내랑 다녀오든가!”
“쟤 분명 일어났는데, 계속 못 들은 척해요!”
“하여간 망할 놈들…… 7개월 늦게 태어난 게 죄지, 하.”
생일이 늦다는 이유만으로 막내 라인 녀석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된 나로서는 매애애우 빡칠 만한 일이었다.
잘 자던 중에 강제 기상하는 일이 첫날부터 일어나다니. 내일은 어떻게든 그 좁은 침대 사이에 끼어서 자기로 다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뻑뻑한 눈을 비비며 방 밖으로 나오자 돌아가는 미러볼과 가사가 띄워진 노래방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느릿한 멜로디의 노래는 나도 처음 들어 보는 노래였다.
위쪽에 띄워진 노래 제목을 훑고 투덜거렸다.
“뭐야, 이건? 진짜 아무거나 트네. 고장 제대로 났구먼.”
꾹꾹꾹, 전원을 몇 번이고 눌러도 노래방 기기는 꿋꿋이 작동 중이었다. 역시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없나.
화면과 본체를 주먹으로 몇 번 퍽퍽 치자 뮤비가 나오던 화면과 노래 MR이 지지직거리더니 드디어 픽- 하는 소리와 함께 꺼졌다. 머리 위에서 돌아가던 미러볼도 멈추더니 툭 꺼졌다.
“거봐, 기계는 때리면 고쳐진다니까.”
뿌듯하게 웃으며 말하자 김도빈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고장 난 게 아니고요……?”
“왜, 다시 켜서 확인시켜줄까?”
“아니요!”
내가 전원으로 다시 손을 뻗자 김도빈이 필사적으로 나를 말렸다.
“목소리 안 낮춰? 이 밤중에 애들 다 깨울 일 있냐.”
잠귀가 어둡다 못해 둔한 서예현은 상관없지만 견하준은 잠귀 밝다고, 인마.
인상을 찌푸리며 경고하자 김도빈이 헙,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슬그머니 입에서 손을 뗀 김도빈이 물었다.
“그런데 이거 고장 났다고 어디에 적혀 있었어요?”
“냉장고 문에 붙은 포스트잇에.”
나를 끌고 후다닥 달려가서 부엌 불을 환하게 켠 채로 포스트잇 앞에 선 김도빈이 항목을 하나씩 훑었다.
시선이 밑으로 내려갈 때마다 점점 묘해지던 그의 얼굴은 마지막 항목을 보자 완전히 창백하게 질렸다.
“소금?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요. 누가 봐도 귀신 쫓는 거잖아요.”
내 경고 때문에 차마 큰 소리로 난리는 치지 못하고, 속삭이듯 빠르게 하는 말에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조명 고장 나는 거랑 귀신이랑 뭔 상관이야. 다 미신이지, 미신.”
“그럼 소금을 왜 두라고 하겠냐고요.”
“나트륨에서 전구 고치는 이온이라도 나오나 보지.”
화학 시간에 졸다가 주워들었던 단어 조합을 대충 끼워 맞춰 그럴싸하게 포장해 말해 줬는데도 여전히 김도빈의 찝찝하다는 표정은 그대로였다.
“그러면 왜 굳이 창문 구석에 뿌리라고 하는데요?”
“그럼 전구 위에 뿌리리?”
내 말에 드디어 설득당한 듯 김도빈이 반쯤은 넘어온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가……?”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도빈은 몸을 덜덜 떨며 노래방 기기를 가리켰다.
“귀신 맞을 수도 있어요. 원래 노래방에 귀신 많이 나온대요.”
“도빈아, 여기가 노래방이냐, 펜션이냐?”
“펜션이요.”
“그래, 노래방이 아니라 펜션이잖아, 인마. 그리고 귀신도 할 짓이 어지간히 없어서 노래방 기기로 노래나 부르고 있겠냐.”
여전히 껌딱지처럼 내 옆에 착 붙은 김도빈을 달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닌 밤중의 노래방 소동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왔다. 김도빈이 중간에 깨웠을 때를 제외하고는 제법 푹 잤다.
“예현이 형, 혹시 나트륨에서 이온 나와요?”
김도빈은 여전히 나를 불신하는지 아침부터 우리 중 최고학력자인 서예현을 붙잡고 내가 어제 아무렇게나 내뱉었던 개소리가 진실인지 묻고 있었다.
서예현이 김도빈의 간절한 시선을 쓰윽 피하며 대답했다.
“나 문과야.”
옆에서 휴대폰으로 열심히 검색하던 류재희가 김도빈에게 말해 주었다.
“형, 나트륨 이온 진짜 있다는데?”
“헐, 진짜?”
김도빈의 표정이 한결 환해졌다.
에휴, 저 불신증 환자 자식. 리더 말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를 못할 망정. 그런데 나트륨 이온이 진짜 있었다니, 대박.
나 사실 할아버지 소망대로 진짜 공부 머리는 있었던 거 아니야?
아침은 막내가 끓인 라면이었다. 취할 정도로 마시지는 않아 딱히 숙취는 없었지만, 뜨겁고 얼큰한 라면 국물이 들어가니 속이 좀 풀렸다.
술을 마시면 얼마나 마셨다고 숙취로 죽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던 서예현은 평소에는 입에 대지도 않던 라면 국물을 들이켰다. 이 와중에도 면은 안 먹고 꿋꿋이 밥만 말아 먹었다.
오늘 일정은 물놀이와 바비큐였다.
“이 수박, 계곡물에 담가 놓을까? 예전에 친구들이랑 계곡 갔을 때도 그렇게 해서 시원하게 먹었는데.”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아 냉장고 옆에 둔 수박을 툭툭 치며 묻자 다들 찬성했다.
건조대에 걸어놔 대충 마른 물놀이용 옷으로 갈아입고 수박을 들고 어제처럼 계곡으로 향했다.
“누가 내 튜브 좀 챙겨라!”
물가에 수박을 조심히 담그고 굴러 가지 않도록 돌로 잘 고정해 놓았다. 견하준이 던져 주는 튜브를 받아 어제처럼 물놀이를 개시했다.
“물총 챙겨 올걸. 그러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열심히 김도빈을 향해 물을 튀기던 류재희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자 김도빈이 씩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꼭 챙겨 오자. 물총 대전!”
“너희 나이가 몇인데 물총 가지고 노냐. 애도 아니고.”
혀를 차자 류재희가 깝죽거렸다.
“저렇게 말해 놓고 막상 가져오면 제일 재미있게 가지고 놀 것 같은 사람 1위, 이든이 형.”
“시꺼, 인마.”
중간에 수박을 먹으려다가 칼도 도마도 없다는 걸 깨닫고, 아무도 펜션 안으로 가서 칼과 도마를 가져올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수박은 우리가 물놀이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계속 계곡물 안에 담겨 있었다.
“수박 가져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냉장고에도 안 들어가는데 그냥 계속 담가 놔. 시원해지라고.”
다시 펜션에 들어온 우리는 어제와 같이 격렬한 가위바위보로 씻기 순서를 정했다.
“아, 진짜. 씻기도 전에 젖은 거 다 마르겠네.”
나는 맨 마지막 순서 당첨이었다. 그것도 서예현이 바로 앞인.
저 인간이 빨리 씻을 확률은 저 인간이 류재희급 보컬을 선보일 확률과 동일했으므로, 그냥 기다리지 않고 안방 화장실에서 씻기로 결정했다.
“엥, 형 거기 화장실 고장 났다고 안 했어요?”
“변기만 고장 났다지 않았냐?”
“그건 그냥 제가 한 소리 아니었어요?”
류재희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냥 옷을 챙겨 화장실로 직행했다.
샤워기 틀어 보고 물 안 나오면 다시 나오면 되지, 뭐.
안방 화장실은 바깥에 있는 화장실보다는 작았지만 욕조가 있었다. 특이한 건 욕조 안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단수 대비인가?’
바다에 온 것 같은 짠내가 코를 스쳤다. 코를 찡긋하며 샤워기를 트니 물이 잘 나왔다. 혹시 몰라 변기도 한 번 내려다봤지만 멀쩡히 잘 내려갔다.
왜 멀쩡한 화장실을 쓰지 말라고 한 거야? 씻는 시간만 늘어나게.
투덜거리며 문을 닫고 씻기 시작한 지 5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화장실의 불이 꺼졌다.
“야! 누구냐, 장난친 놈! 빨리 다시 불 안 켜냐!”
버럭, 소리쳤지만 조명은 다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분히 생각해 보니 이런 장난을 내게 칠 만한 놈은 레브에 없었다.
김도빈은 겁이 많아서, 류재희는 뒤탈이 있는 짓은 하지 않는 똑똑한 놈이라서, 견하준은 원래 성정이 굳이 이런 짓을 하지 않는 성격이고, 서예현은…… 그 인간이 내게 장난칠 리가.
마저 샴푸를 헹구고 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문고리가 뻑뻑해서 그런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래서 쓰지 말라고 했던 거군. 조명부터 문짝까지 정상이 아니니까.
힘으로 확 잡아당기니 문이 열렸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면서 안방에서 나오자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류재희가 내게 물었다.
“형, 안방 화장실 괜찮아요? 멀쩡해요?”
“어어, 조명 나가고 문이 잘 안 열리는 거 빼고는 괜찮더라. 지금은 조명 나가서 못 쓸 거 같은데, 조명 들어와도 웬만하면 문 닫고 쓰지 마.”
그리고 우리는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배경으로 펜션 마당에서 바비큐를 구워 먹었다.
흡연자 시절의 습관 때문에 불 있냐는 물음에 습관적으로 라이터를 찾아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모두에게 혹시 담배 피우냐는 매서운 취조를 받은 것과.
숯에 불이 안 붙어 한참을 고생한 것만 제외하면 제주도에서 촬영할 때 먹었던 바비큐와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맥주캔을 까서 견하준과 가볍게 캔을 부딪쳤다.
“그런데 이든아, 정말 담배 안 피우지?”
“진짜라니까. 내가 서예현 랩 실력 걸고 아니라고 했잖아.”
“안 그래도 없는 내 랩 실력은 왜 자꾸 걸어!”
고기를 굽던 서예현이 버럭했다.
“그렇다고 내 랩 실력을 걸 수는 없잖아. 레브 음원에서 내 랩까지 형 랩처럼 된다고 생각해 봐.”
“그 말인즉슨, 담배를 피우신다는 뜻?”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냐? 담배는 입에 대 본 적도 없거든?”
이 시간대에서는 정말로 그랬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사 온 고기와 소시지까지 싹 먹어 치우자 후식 생각이 간절해졌다. 예를 들어 계곡물에 시원하게 담가 놓은 수박이라던가.
“수박 가지고 올까?”
내 권유에 김도빈이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왜, 먹기 싫어?”
“아니요, 그건 아닌데…… 밤에 계곡가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
“어두워서 발 헛디디거나 미끄러질까 봐 그러겠지. 정 불안하면 옆에서 휴대폰으로 조명 켜 주던가.”
“아니, 형. 그거 안 지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요. 꼭 그런 거 무시하면서 안 지키는 사람이 제일 먼저 리타이어된다니까요?”
“누가? 만화에서? 영화에서? 그건 창작물이고, 이건 현실이고.”
픽 비웃자 김도빈이 흔치 않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괜히 밤에 계곡가 갔다가 후회하지 마세요,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