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7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77화(177/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77화
“용철이 형이 너무 인기가 많아졌어.”
허벅지 위에 얹은 팔로 턱을 괴고 DTB 시즌 3 6화 재방송을 시청하다가 허리가 저려 와 소파 등받이에 등을 편히 기대며 혼잣말처럼 투덜거렸다.
용철이 형은 회귀 전처럼 순탄히 DTB 이번 시즌 MVP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인별 팔로우도 DTB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늘어났다. 거의 준 셀럽이었다.
팔로우 수가 회귀 전보다 더욱 훌쩍 뛴 건 역시 머리를 깔끔하게 자르라는 내 충고가 크게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까놓고 말하면 너저분한 대걸레 같은 그 머리는 용철이 형 외모를 한 60% 정도 깎아 먹긴 했다. 역시 남자는 머리빨이지.
배틀 전에 신경전을 벌이는 인터뷰가 TV 화면에 한창 나오고 있었다.
[D.I: 플로디크랑 비교하면? 글쎄요, 제가 더 낫지 않을까 싶은데.] [플로디크: 자기가 더 낫다 했다고? 이야, 용철이 많-이 컸네.]저 장면은 실력을 재는 것으로 편집되었지만 실제로 용철 형이 내뱉은 대사는 외모 이야기였다고 장본인한테 직접 전해 들었다.
용철이 형이 배려와 존중 차원에서 상대의 실력과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말하는 걸 하도 기피하다 보니 Wnet에서도 둔 강수인 모양이다.
플로디크랑 외모를 비교하면 용철 형이 압승이긴 했다만 플로디크의 반응은 아마 외모 이야기인 걸 알아도 똑같았을 거란 쪽에 서예현의…… 망할, 이제 걸 게 없네. 그럼 김도빈의 랩 실력을 건다.
저 형은 허구한 날 악편 당한다고 한탄을 늘어놓았지만 진짜 Wnet 악편의 희생자들이 들으면 바로 죽빵 날아갈 소리였다.
저 정도면 악마의 편집까진 아니고, 악마 따까리의 편집 정도?
용철 형의 무대를 보며 뻑뻑한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가사 익히랴, 역대 DTB 레전드 무대 복습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 돌리랴, 거의 며칠을 밤을 새운 탓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잠이 안 오기도 했다. 내 고질병이기도 한 불면증이 또 도진 것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만 받으면 잠이 안 오니, 원. 그렇다고 잠들기 위해 수면제를 먹을 수도 없었다.
그 이전에도 껄끄러워서 잘 먹지는 않았지만, 수면제를 먹고 토한 걸로도 모자라 환영까지 본 이후로는 아예 입에도 대지 못할 수준의 트라우마로 각인 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예현이 룸메이트였을 때는 곤히 잠든 숨소리 들으며 잠들어 보려는 시도라도 했지, 현재 룸메이트인 김도빈은 새벽까지 깨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야 불면증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거라고 하지만 김도빈은 뭔 그렇게 잠이 없는지 새벽까지 휴대폰질이었다.
그래서 그냥 눈 보호 차원으로 우리 방은 요즘 새벽까지 불을 켜 놓고 있었다.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털썩, 내 옆에 앉는 기척이 느껴졌다.
레브에서 DTB에 관심 있는 건 나랑 막내 라인뿐이었기에 류재희나 김도빈이겠거니 싶어 티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손을 까딱였다.
“나 비타민이랑 물 좀 갖다 주라.”
잠시 후, 내게 내밀어지는 물잔과 비타민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들다가 멈칫했다.
“준이 너였어?”
내 물음에 대꾸 대신 픽 웃은 견하준이 다시 내 옆에 앉았다. 비타민을 물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고 머쓱하게 한마디 했다.
“말을 하지.”
“됐어. 비타민이랑 물 가져다주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너였으면 이런 심부름 안 시켰지. 아무튼, 땡큐.”
남은 물도 시원하게 원샷하고 물컵을 내려놓았다. 그 상태로 용철 형의 무대가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둘이서 나란히 앉아 무대만 감상하고 있었다.
견하준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DTB에 관심이 생겼을 리가 없는데 왜 나랑 같이 이걸 보고 있는 거지……?
갑자기 드는 의문점에 무대도 끝났겠다, 쓱 고개를 돌리자 마찬가지로 고개 돌려 나를 돌아본 견하준이 물었다.
“저 스케줄은 내일이지?”
“어어, 오후 4시엔가 사녹.”
“내일 컨디션 조절하려면 오늘만큼은 일찍 자는 게 낫지 않겠어? 좀 전에 도빈이한테 들었는데 너 요새 며칠간 계속 새벽 4시 넘어서 잤다며.”
이거 말하려고 그랬구먼? 눈가를 문지르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잠이 안 온다, 준아.”
“왜, 긴장돼서?”
“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를 빤히 보는 견하준과 시선이 마주쳤다.
“왜, 왜 그렇게 보냐……?”
“아니, 네가 무대 앞두고 긴장한다니까 신기해서. 우리 데뷔 무대도 유일하게 너 혼자 긴장 안 했잖아.”
그거야 나는 그 데뷔 무대가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진짜 첫 데뷔 무대 때는 내가 긴장을 했던가? 곡이고 무대의상이고 싹 짜증 나서 개빡쳐 있던 기억은 흐릿하게 나는데.
“글쎄, 우리 무대가 아니고 남의 무대라 그런가.”
말하면서도 자조했다.
-세미파이널 무대 피처링으로 아이돌 래퍼ㅋㅋㅋ 시즌 쌓여도 역대급 병신짓으로 박제 각이다
-용철이가 너무 순탄하게 인기 쌓고 부결승까지 진출해서 심심했나 봄 하지만 이번 셀프 페널티는 회생 불가 급인데 우짜누
-실력 좋은 래퍼들 널렸는데 왜 하필 아이돌을 들고나오냐고 ㅅㅂ 힙합 ㅈ도 모르는 빠순이들 표가 그리 탐나드냐?
-음원 나오면 피처링 제거 버전으로 들어 주는 게 내 마지막 의리다
다른 악플들은 좆까라고 무시하면 그만이었는데 유독 DTB 관련 악플들은 눈에 밟혀 왔다.
정말로 그 악플들의 말처럼 내가 용철이 형의 무대를 망칠까 봐, 그래서 이번 무대가 형한테 회귀 전과 다른 의미로 평생의 후회로 남을까 봐.
미간을 문지르며 눈을 꾹 감고 있는데, 다시 견하준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었던 무대 아니야?”
허를 찌르는 듯한 말에 눈을 번쩍 뜨며 반사적으로 견하준을 돌아보았다.
“DTB 시즌 1부터 꼬박꼬박 챙겨 봤잖아.”
“누가 무대 서고 싶어서 봤나. 힙합 좋고 서바 재미있어서 봤지. 겸사겸사 아는 얼굴들 나오나 볼 겸.”
내가 들어도 변명같이 느껴지는 터라 견하준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딴청을 부리고 있자, 견하준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내가 너를 몰라? 방송 보는 표정에서부터 훤히 다 보이더만.”
훤히 읽혀 버린 속내에 멋쩍게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자, 견하준이 이어 말했다.
“비록 피처링이긴 해도, 부담감 다 내려놓고 네 무대라고 생각하면서 네가 보여 주고 싶었던 거 싹 다 보여 주고 와. 원래 저런 무대에 서는 게 네 꿈이었잖아.”
어깨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손길에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넌 어째 변한 게 없냐.”
과거 연습생 시절, 이정표를 던져 주며 내게 이 길을 걸어도 되는지 확신을 줬던 그때와 참 똑같아서.
“고맙다, 준아.”
씩 웃으며 건넨 감사 인사에 견하준이 TV를 끄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 얼른 들어가서 자. 정 잠 안 오면 방 바꿔 줄 테니까 내 방에서 혼자 자든가 하고.”
“됐어. 휴대폰 끄라고 김도빈 잡으면 돼.”
무대에 대한 긴장을 무대를 향한 기대로 바꾸며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왠지 눈을 좀 붙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 *
“아예 무대의상 빌려서 입고 가면 안 돼요? 기왕 아이돌이라고 까이고 있는 거, 확실하게 아이돌미를 보여 주는 거예요, 형!”
개운하게 하룻밤 자고 일어난 DTB 스케쥴 당일. 입을 옷을 고심하여 고르는 내 옆에서 막내 라인이 시끄럽게 떠들었다.
“맞아여, 모자도 스냅백 말고 베레모 쓰고 가요!”
“베레모 같은 소리 한다. 모자 안 쓸 거야, 인마.”
블랙 슈x림 반팔 티와 검은색 줄이 세 줄 그어진 흰색 스포츠 져지를 옷장에서 휙휙 꺼내 침대에 던지며 대꾸했다. 이 브랜드 협찬 방송이니까 괜찮겠지.
“앞머리를 까, 말아?”
옷을 다 고르고, 심각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서서 앞머리를 이마 위로 쓸어 넘겼다가 다시 덮기를 반복했다.
마찬가지로 진지한 표정으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류재희가 훈수를 뒀다.
“까는 편이 인상 더 세 보이긴 하는데 덮는 게 더 잘생겨 보이긴 함요.”
“그럼 까야지. 기선 제압 되게.”
그 말을 듣자마자 앞머리를 쓱 넘기자 류재희가 곧바로 꾹꾹 눌러 덮었다.
“아이돌스럽게 하고 가라니까요.”
“야이씨, 삭발을 하고 가도 내가 거기에서 제일 잘생겼겠다.”
숍에 들려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치고 DTB 촬영이 이루어지는 Wnet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벌써 사전 녹화 방청 대기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줄을 보며 DTB 시즌 3의 인기를 새삼 실감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대기실 복도를 설렁설렁 돌아다니고 있던 지원이 형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들어 인사했다.
“여어, 윤이든이. 아이돌이 너무 안 꾸미고 온 거 아니야?”
“그러게요, 제복이라도 입고 올 걸 그랬나.”
장난식으로 맞받아쳤다. 오늘 무대 기대한다며 내민 지원 형의 손에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어디 동네 공원 마실 가냐?”
반팔에 져지 조합인 나를 훑으며 용철이 형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내가 너무 꾸미고 오면 형이 묻힐까 봐 배려해 준거잖아.”
“고오맙다.”
용철 형과 시덥잖은 대화를 주고받고 있자 스텝이 우리를 호출했다.
“BQ9 리허설 갈게요!”
무대 뒤에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BQ9의 리허설 무대를 감상했다.
“와우, 잘하긴 잘한다.”
생수를 한 모금 들이켜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말했잖아. 존나 잘한다니까. 세미에서 매치 붙을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
“어차피 형이랑 비큐나인이랑 둘 다 결승 올라가면 붙을 거 아니야.”
“일주일 유예기간이 생기잖아.”
“누가 들으면 벌써 결승 확정된 줄?”
킬킬거리며 용철 형의 옆구리를 툭, 치자 용철이 형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네가 피처링하는데 당연히 이 무대로 결승 진출하지.”
회귀 전에는 BQ9가 우승자였다. 용철 형이 준우승이었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뜬 건 용철 형이 더 떴다.
그럼 만약 이번에 용철이 형이 우승하면 반대로 BQ9가 더 뜨는 거 아니야? 일단 현재 인별 팔로우 수는 우리 용철 형이 압승이긴 한데.
“D.I 리허설 갈게요!”
우리를 부르는 스텝의 목소리에 무대로 나가다가 무대 뒤로 걸어오는 BQ9와 잠시 마주쳤다. 나를 쓱 훑는 눈길에 눈살을 찌푸리자 BQ9가 시선을 거두고 스쳐 갔다.
“와우, 눈빛으로 무시를 시전하네.”
“그러니까 무대로 찢어 버려.”
용철 형이 위로하듯 내 등을 두드렸다.
일단 무대 위에 서서 동선부터 체크했다. 지하 클럽 같은 구조라 무대와 관객석은 꽤 가까웠다.
“곡 후반부니까 등장에 임펙트를 빡! 줘야 한다고. 이 곡의 매너리즘을 박살 내겠다는 각오로!”
형이 선택한 팀 프로듀서인 원백이 내 등을 힘차게 두드리며 강조했다.
처음에 용철이 형이 나를 피처링으로 세우겠다고 했을 때 제일 열렬히 반대했던 사람이지만, 곡 프로듀싱을 진행하며 열렬한 반대는 열렬한 찬성으로 바로 뒤집혔다.
“이 정도면 무대 뒤에서 걸어 나오는 것보다 충분히 임펙트 있다니까요.”
내 대꾸에 원백이 엄지를 치켜 올렸다. 무대에서 합을 얼추 맞추고 리허설을 끝냈다.
“DROP THE BEAT 시즌 3 SEMI FINAL! 지금 시작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본 무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