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7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78화(178/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78화
“이야, 어떻게 여기에서 유태근이 아니라 릴피가 붙지?”
“릴피가 이번 무대는 확실히 찢었잖아. 그런데 대진표는 의외긴 하다. 어떻게 디아이랑 릴피를 붙이냐. 이거 게임이 되긴 해?”
“될 듯? 디아이가 똥을 거하게 싸질렀는데 릴피도 희망이 좀 생기지 않았겠냐?”
이전 사전 녹화로 진행되었던 유태근 대 릴피의 무대, 그리고 출연진들에게만 공개되었던 세미 파이널 대진표가 사전 녹화 현장 평가단들 앞에서도 한 차례 발표되고.
무대 밑에서 세미 파이널 무대를 기다리며 현장 평가단으로 온 남자는 그의 친구와 함께 시시덕거렸다.
“씨발, 뭔 DTB 무대에 아이돌이야. 수준 떨어지게.”
“내 말이. 좆같으니까 디아이 무대 끝날 때까지 절대 버튼 안 누른다.”
그 피처링 아이돌의 팬인 듯 옆에 있던 여자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저들이 빠순이들에게서 리얼 힙합을 수호하고 있다 굳게 믿고 있는 두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가볍게 무시했다.
그들에게 깊게 박힌 아이돌 래퍼의 이미지는 노래 못하는 놈들이 어쩔 수 없이 맡는 포지션이요, 대충 가사 웅얼거리면서 그게 랩이라고 믿으며 힙합을 모독하는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LilP VS D.I] 세미 파이널 무대는 D.I의 선공이었다.곡 제목은 <낙서>.
[흰 순백의 도화지 그 위에 대충 그어지는 선]D.I가 첫 소절을 뱉자마자 전광판의 파이트 머니가 쭉쭉 올라갔다.
비록 제 발로 자살골을 넣었다고 한들, 강력한 후보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이야, 확실히 여기에서 떨어지긴 아깝긴 하다. 비트도 역대급으로 잘 뽑혔는데.”
“지금이라도 아이돌 손에서 마이크 뺏고 피처링 파트까지 자기가 하면 나는 디아이에게 파이트 머니 걸 의향 있다니까.”
남자는 한 손을 들어 리듬 따라 흔들면서 친구랑 킬킬거렸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현장 평가단이 제법 되었는지 노래가 후반부에 다다랐는데도 준결승전 치고 파이트 머니가 올라가는 속도는 영 시원찮았다.
[hey friend, 부담 가질 필요 뭐 있어아무렇게나 쥐고 아무렇게나 그어 봐
혹시 모르잖아 그 낙서에서 작품이 탄생할지도]
두 번째 훅이 끝나고 갑자기 음악이 뚝 멈췄다.
아주 잠깐의 그 침묵과 함께 계단 위의 2층 간이 무대에 조명이 팟- 켜졌다.
난간에 팔을 걸치고 있던 이의 얼굴이 스포트라이트 불빛 아래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친, 진짜 이든이야!”
“윤이든 오늘 착장 미쳤다!”
시끄럽게 귀를 울리던 비트가 멈춰서인지 함성 소리가 시끄러워도 옆의 여자들이 나누는 대화가 잘 들렸다. 그가 입은 블랙 슈X림 티와 아X다스 흰색 져지를 훑으며 남자는 속으로 비웃었다.
‘옷차림만 존나게 힙합이네.’
인상이 꽤 날카롭긴 했지만 아이돌은 아이돌인지 래퍼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잘생기긴 했다.
하지만 힙합은 얼굴로 하는 게 아니라는 지론을 가진 남자에게 있어서 윤이든의 외모는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없었다.
그저 저 아이돌 래퍼 놈이 얼마나 노래를 망쳐 놨을까 걱정이나 들 뿐.
윤이든이 느긋한 손길로 마이크를 입가까지 올림과 동시에 비트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How do you do?뻔한 자기소개는 생략할게
Let me introduce는
verse 열여섯 마디로 충분하거든]
‘오, 딕션 죽이는데……?’
그의 예상과 완전히 엇나간 실력에 남자는 눈을 깜빡이며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친구의 반응이 궁금하여 고개 돌린 남자는 그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D.I 무대에 절대로 버튼을 누르지 않겠다 다짐하던 그의 친구가 홀린 듯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야, 너 무대 끝날 때까지 버튼 절대 안 누른다며?”
남자가 목소리를 낮추어 어이없다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속삭이자, 친구가 엄지를 들어 올리며 대꾸했다.
“저 네 소절만으로도 무대가 안 망할 거란 직감이 와.”
그 말을 증명하듯 거의 정체 수준이었던 파이트 머니가 폭발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기대고 있던 난간에서 몸을 떼고 제게 뻗어지는 손에 하이파이브를 한 번씩 해 주며 계단까지 다다른 윤이든은 다음 소절을 내뱉으며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왔다.
[오우 쟤 랩 좀 치네? 플러스 100점웁스 쟤 아이돌이야? 마이너스 100점
얻을 게 없는 game 도합 0점의 점수
그런데 니들이 맨날 하는 말 있잖아 From the bottom]
밑을 향했던 손가락을 위로 치키는 여유로운 제스처와 상반된, 눈에 서린 독기.
이미 친구는 옆에서 윤이든 팬들과 동화되어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전광판에 뜬 파이트 머니는 이제까지 달성하지 못한 액수를 채워 나가겠다는 듯이 쉴 새 없이 액수를 키워 갔다.
완전히 계단을 내려와 무대 가운데에서 리듬을 타고 있던 D.I와 가볍게 허공에서 주먹을 부딪친 윤이든이 턱을 들고 마이크 끝을 치켜올렸다.
[어릴 적 발 앞에 그었던 선은 반듯한 직선정작 지금 내가 걷는 길은 구불구불한 곡선
인생은 낙서와 달라서 인생사 존나 마음대로 안 되더라
그래도 용케 꿈과 함께 원점을 찾아왔네]
눈앞에 크게 원을 그리는 손짓마저 허세가 아니라 까리했다.
플로우도, 딕션도, 목소리도, 뭐 하나 깎아내릴 만한 것이 없었다. 남자도 어느새 제 친구와 함께 함성을 내지르며 지금 제 앞에 펼쳐지는 무대에 열광하고 있었다.
[지금 걷는 길을 벗어날 생각은 없어 but갈 땐 가더라도 잠깐의 일탈 정도는 괜찮잖아?
여기에 낙서로 족적이나 하나 남기고 갈게
앞으로 모두에게 레전드라 불릴]
윤이든이 한쪽 팔을 들며 몸을 휙 돌리자 스포츠 져지가 마치 망토처럼 펄럭였다.
무대를 망치긴 개뿔. 힙합판 물 흐리는 미꾸라지인 줄로만 알았던 아이돌 래퍼께서 가사대로 전설을 남기고 가시게 생겼다.
“저 새끼 대체 왜 아이돌 한 거냐?”
헛웃음과 함께 남자 역시 버튼을 꾹 눌렀다. 파이트 머니의 숫자가 그의 표와 함께 또 한 번 크게 폭발했다.
* * *
좁은 공연장의 후끈거리는 열기.
온전히 나를 향한 환호성.
심장을 터트릴 것처럼 울려오는 비트.
“Hey DJ, drop that beat! Let’s go!”
피처링 파트의 마지막 가사를 내뱉으며 무대 앞을 바라보았다.
막 힙합 언더그라운드에 발을 디딘 청소년기에 언젠가 한 번 섰던 그 무대의 풍경이 겹쳐졌다.
크루 형들 뒤에서 겨우 벌스 네 소절 뱉고 마이크를 내린 열다섯 살 애송이가 DTB 세미파이널 무대에서 이렇게 단독으로 피처링을 맡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비속어 초심도는 존나를 좋나로 바꾸는 꼼수를 부린 덕에 깎이지 않고 무사히 넘어갔다. ‘좋나’나 ‘존나’나 발음은 같거든.
실수 역시 없었다. 나 스스로가 생각해도 오늘 무대는 내 실력의 120%를 보여 주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용철이 형이 훅을 부르며 나를 마주 보고 씩 웃었다.
마이크를 다시 들어 추임새를 맞춰 주며 가볍게 리듬을 탔다.
무대 위에서 안무가 아닌 그루브를 타고 있으니 상당히 기분이 묘했다.
용철 형이 원하던 무대가 바로 이런 무대였을까. 비록 듀엣보다는 피처링이었지만, 용철이 형이 언더 시절 그리 말하던 ED.I 조합이 참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 드디어 이루어졌다.
끝을 알리듯 점차 작아지는 멜로디와 비트에 맞추어 용철 형과 마지막 소절을 불렀다.
“hey friend, 부담 가질 필요 뭐 있어. 아무렇게나 쥐고 아무렇게나 그어 봐. 혹시 모르잖아. 그 낙서에서 작품이 탄생할지도.”
입가에 대고 있던 마이크를 내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피부에 닿는 텁텁한 공기와 고막에 꽂혀 오는 뜨거운 함성이 마치 꿈같이 느껴졌다.
무대를 내려오고 나서야 내가 땀에 흠뻑 절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땀에 젖어 이마에 축 늘어 붙은 앞머리를 소매로 대충 쓸어 넘기고 있자, 용철이 형이 DTB 로고가 박힌 수건으로 내 머리를 마구 헝클이듯 털며 말했다.
“거봐, 짜샤! 내가 뭐랬냐. 네가 이 무대에 제일 잘 어울릴 거라고 했지!”
우리가 내려온 방금의 무대를 향한 미련 한 점 느껴지지 않는 형의 목소리에 그제야 마음을 놓고 마주 웃을 수 있었다.
“아니, 리허설 때보다 더 잘하면 어떡해!”
다음 순서라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LilP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오열하는 시늉을 했다.
다음 무대 잘하시라고 격려를 가볍게 건네고 나란히 대기실로 돌아오자, 원백이 우리를 동시에 와락 부둥켜안으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야, 찢었어! 너희 진짜로 무대 찢었다고!”
다른 프로듀서인 스키트 또한 원백이 팔을 떼자마자 우리의 등을 마구 두드리며 수고했다며 몇 번을 반복해 말했다. 등짝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고맙다, 이든아.”
“뭘, 이런 무대에 서게 해 줘서 내가 더 고맙지.”
나와 용철이 형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볍게 서로를 껴안고 어깨를 맞부딪혔다.
겉옷을 벗고 반팔티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대기실 모니터에 나오는 LilP의 무대를 구경했다.
“이야, 팔뚝 근육 봐라. 아이돌 몸은 다 이러냐?”
“다르죠, 다들. 그런데 그만 주무르시면 안 될까요. 저 지금 무대 집중이 안 되는데요.”
옆에 앉아 내 팔뚝을 꾹꾹 누르는 원백의 손길을 떼어 내려 팔을 털며 투덜거리자 원백이 내 등을 짝, 쳤다.
“야야, 릴피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거 절대 못 넘어. 이든이 네가 첫 소절 뱉었을 때 대기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그 비명을 들었어야 했는데.”
“나 그거 녹화해 놨어.”
스키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동영상을 틀어 보여 주었다. 동영상으로 찍고 있는 모니터에 보이는, 힘을 빡 준 내 모습이 낯설었다.
숨넘어갈 듯한 원백의 웃음소리 때문에 정작 비명은 묻힌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반응은 확실해 보였다.
“D.I 결과 발표 준비하실게요!”
문을 두드리고 벌컥 연 스텝의 부름에 다들 용철이 형을 필두로 몸을 일으켰다.
“아, 왜 이렇게 떨리냐.”
“떨릴 게 뭐 있어. 결승 진출 소감이나 준비해.”
킬킬거리며 용철 형의 등을 떠밀다가 대기실 문 너머로 보이는 이의 얼굴에 잠시 멈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