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18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183화(18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183화
“우리 5형제들이 정말로 오랜만에 모였네. 이렇게 다 모인 게 얼마 만이지?”
“10분 만이지, 아마.”
“메타 발언 금지! 우리 이렇게 모두 모인 거 10년 만이잖아요! 이든이 형이 10년 전에 집을 나갔으니까.”
류재희가 다급히 내가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을 수습했다.
“이든이 형, 아니. 우리 셋째 형이 뼈아픈 실패의 고통으로 인해 10년간의 기억을 다 날린 모양인 거 같은데여. 10년을 10분으로 줄이신 걸 보니까.”
김도빈이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다.
“네가 10년 전에 나한테 돈 500만 원 빌린 건 기억한다.”
“이 형이 날린 기억이 10년 치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더 날리신 듯?”
“아니야. 날린 게 아니라 조작된 거잖아. 사실 이든이 형은 음악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정체 모를 실험실에 끌려가서-”
“야, 여기에서 설정 더 붙이지 마. 지금도 투머치해.”
“그런데 우리 다들 10년 만에 모였는데 오늘 뭐 해?”
“추석이니까 차례를 지내야죠.”
견하준이 대본에 적혀 있는 말을 읽었다. 대본이라고 해 봤자 촬영하면서 해야 할 것들 목록만 적혀 있는 게 다였지만.
“그런데 우리 조상 다 다르잖아.”
“그거 메타 발언이에요.”
서예현의 예리한 지적을 김도빈이 지적했다.
“아니, 그래도 차례 자체가 조상님을 위해 명절에 치르는 제사인데, 모시는 조상님 없이 제사상을 차리기도 좀 그렇지 않아?”
“그럼 우리 소속사 LnL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김노담 대표님을 위한 차례상을…….”
“살아 있는 대표님 제사상을 왜 차려?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김도빈의 헛소리를 적당한 선에서 잘랐다. 견하준이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일단 차려 놓고, 각자 조상님한테 절하자. 그럼 되지.”
“엌, 한 형제인데 각각 조상님들이 따로 있어.”
“오늘 만들어야 할 차례상 요리 목록이야.”
견하준이 음식 목록이 적힌 종이를 정중앙으로 쓱, 내밀었다.
-밥
-육전
-동그랑땡
-명태전
-산적꼬치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탕국
-병어찜
음식 목록을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보던 류재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 묻어 나오는 짙은 한숨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사 음식은 질색이라고 전에 한 번 그러지 않았던가?
옆에서 같이 음식 목록을 훑던 서예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튀김은 안 해? 차례상인데?”
그 말에 모두 서예현을 돌아보았다. 한 몸에 시선을 받게 된 서예현이 당황으로 눈을 깜빡였다.
“제사상에 튀김이 왜 올라가요? 전 올리잖아요.”
“제사상에 튀김이 안 올라간다고? 우리는 명절이랑 제삿날에 맨날 튀김 튀겼는데?”
“와, 저는 진짜로 금시초문.”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하던 류재희가 화면을 들어 올려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아, 경남에서는 튀김을 올린다네요? 맞다, 예현이 형 고향이 경남이었지.”
“또 메타 발언 나왔다.”
“그래, 튀김 올린다니까! 그런데 경남 쪽만 그러는 거야? 너희 진짜 튀김 안 올려?”
그렇게 한바탕 튀김 소동이 지나가고.
다시 연기 모드로 돌아가 콘셉트에 충실한 말을 내뱉으며 티키타가를 이어 나가는 막내 라인을 보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날백수 콘셉트라 좋-구나.
“도빈아, 시원한 물 좀 한 잔 따라 와라.”
“시? 시험? 으아악! 시험 낙방의 악몽이……!”
김도빈은 지금까지는 ‘시’ 자 들어도 잘만 넘기더니 내가 물 떠오라니까 ‘시’ 자만 들어도 발악하는 콘셉트를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 내가 쓴 설정이라 뭐라 말은 못하지만.
앞치마를 한 채로 한 손에는 뒤집개를 들고 내 앞에 선 류재희가 나를 잡아끌어 강제로 소파에서 일으켜 세웠다.
“형도 그만 누워 있고 빨리 와서 전 부쳐요.”
“싫어싫어. 음악도 실패한 날백수는 그런 거 할 줄 몰라.”
“형 컨셉은 날백수지 동네 바보가 아니거든요?”
도리질 쳐도 류재희는 자비 따윈 없었다. 강제로 앞치마를 맨 채로 뚱하니 앞에 놓인 전 재료를 응시했다.
손이 많이 가는 동그랑땡과 산적 꼬치는 서예현과 견하준의 몫이었고, 비교적 손이 덜 가는 육전과 명태전은 나랑 류재희의 몫이었다.
김도빈은 옆에서 열심히 나물을 무치고 있었다.
“그런데 막내 너 요리 못하잖아. 차라리 도빈이에게 전을 맡기고 네가 나물 무치는 게 낫지 않겠냐?”
“제가 전은 정말로 자신 있어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가 전 두 장을 부칠 동안 류재희는 다섯 장은 거뜬히 부치고 있었다.
부침가루를 고기 양면에 충분히 묻히고 계란물에 한 번 담가 적셨다가 팬 위에 올리는 손길은 가히 전문가의 그것이었다.
“와, 어떻게 요리는 못하는데 전은 잘 부치냐?”
“어렸을 때부터 질리도록 했거든요.”
계란물이 다 익었나 10초에 한 번씩 슬쩍슬쩍 뒤집어 보는 나를 본 류재희가 픽 웃었다.
“형은 한 번도 안 해 본 태가 딱 나네요.”
“어, 진짜 한 번도 안 해 봤어. 친할머니가 집에 기름 냄새 나는 거 싫어하셔서 친가는 제수용 음식 싹 다 사서 하고, 외가는 기독교라 제사 안 지내거든.”
“부럽다. 저는 옛날에 제사 지내는 게 하도 싫어서 교회 다니자고 부모님 졸라 본 적도 있어요.”
옆에서 간을 본답시고 고사리 한 줄기를 질겅질겅 씹고 있던 김도빈이 외쳤다.
“거기 두 사람! 메타 발언 금지!”
“편집해 주세요.”
심드렁하게 말하며 손으로 가위질하는 시늉을 했다.
순식간에 육전과 명태전 만들기를 끝낸 류재희는 동그랑땡과 산적꼬치를 도와주러 간다며 홀연히 내 앞에서 사라졌다.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전을 모두 부치자 그 뒤로는 수월했다.
“잠깐만, 차례상 과일이 위아래 다 깎는 거였더라, 위에만 깎는 거였더라?”
“윗부분만요. 놓을 때 홀수로 놓으시고요.”
“상에 음식 놓을 때 홍동백서 뭐 이런 거 있지 않냐?”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요.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조율이시는 밤이랑 대추랑 그런 거 지금 없으니까 패스하고 어동육서, 생선은 동쪽, 육류는 서쪽. 그리고 1열은 밥이랑 국, 2열에 전, 3열에 나물, 4열에 과일.”
“그냥 대충 놓으면 안 될까……?”
“류재, 그런데 동쪽이 어디야?”
“형이 지금 있는 그쪽.”
류재희는 거의 차례상 자동응답기나 다름없었다. 굳이 인터넷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한창 상을 차리고 있는데 치킨과 피자가 한옥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치킨이랑 피자 누가 시켰어?”
“제가 시켰어요. 막내 말 들어 보니까 조상님도 특식을 먹고 싶어 하실 거 같아서요.”
“이야, 도빈이 조상님 오늘 호강하시네.”
“이제 메타 발언 지적하기도 힘들당…….”
김도빈은 피자와 치킨을 차례상 위에 올려놓으려 시도하다가 자리가 없는 걸 보고 바로 포기했다.
어찌어찌 완성된 차례상 앞에서 꾸벅 절을 했다.
추석도 아닌 날에 차례상 차려 놓고 모여서 각자의 조상님에게 절을 올리고 있는 이 사태가 다들 어이없긴 한지 사방에서 웃음을 꾹 참는 소리가 들렸다.
대충 절까지 마치고 다들 차례상에 둘러앉았다.
“오늘은 추석 말고도 또 다른 의미를 가진 날이기도 해.”
유일하게 가족들을 책임지는 장남이라고 상석에 앉은 서예현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서예현이 쏘아 올린 그 신호탄에 견하준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김도빈은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소파로 향했다. 정확히는 소파 밑에 겉옷들로 가려놓은 상자로 향했다.
“바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돌인 레브의 막내 유제의 탄신일!”
그렇다, 오늘은 바로 류재희의 생일이기도 했다.
양옆에서 터지는 폭죽과 제 앞에 내밀어지는 케이크에 류재희가 입을 틀어막았다. 눈치 빠른 막내를 깜짝카메라로 속여 넘기기 성공이었다.
“그런데 유제 생일이 추석이라는 소린가요?”
“야야, 음력 생일 챙기는 거라고 설정 바꿔. 이거 추석 때 나갈 거잖아.”
“으아아, 메타 발언 자제 좀여!”
어쨌든 이곳에서의 우리는 아이돌이 아니라는 설정이었으므로 막내 류재희의 생일이 아닌 아이돌그룹 레브 유제의 생일을 챙기는 콘셉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유제의 생일 축하합니다!”
촛불을 훅 불어 끈 류재희가 눈물로 그렁그렁한 눈을 소매로 쓱 닦으며 말했다.
“와, 진짜 상상도 못했어요. 여기에서 제, 아니 유제의 생일파티를 할 거란 건. 한 야식 먹을 때 정도나 할 줄?”
“이야, 막내 너도 유제 팬인가 보다? 왜 유제 생일파티를 하는데 네가 감동 받아서 울고 있어?”
“그런데 사실 미역국 안 하고 탕국 한 터라 예측을 못한 것도 있었어요. 만약 국이 미역국이었으면 바로 눈치챘을 텐데.”
“그래서 혹시 서운할까 봐 준비했어. 미역국 대신 미역 들어간 오이냉국이야.”
견하준이 류재희의 앞으로 오이냉국 그릇을 쓱 밀어 주었다.
나물과 떡 등이 싹 치워지고 치킨과 피자가 상 위에 등장했다.
어느새 생일상으로 탈바꿈한 차례상을 보고 있던 류재희가 솔직한 감상평을 내뱉었다.
“차례상을 생일상으로 받다니, 이거 참 기분이 묘하네요.”
“메타 발언.”
다 같이 식사를 시작했다. 류재희는 그렇게 열심히 만든 전에는 손 하나 대지 않고 치킨과 피자만 주워 먹고 있었다.
제사 음식을 질색하는 걸 알고 있었기에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으라고 하기에도 뭐했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 타임이 돌아왔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서예현이 설거지를 독박 쓸 뻔했지만 설정을 이용하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왔다.
덕분에 나랑 김도빈이 설거지 당번으로 당첨되었다.
그다음 차례로 대본에 적힌 것은 바로 명절 놀이었다.
“명절 하면 윷놀이죠, 아무래도.”
“야, 누가 요즘 명절에 모여서 윷놀이하냐?”
삐딱하게 비웃어 주고는 벌떡 일어나 일명 화투 담요라고 불리는 녹색 모포를 깔았다. 서예현이 다급히 나를 불러 댔다.
“야, 잠깐만! 윤이든, 잠깐만! 컨셉에 너무 충실해도 도박은 좀.”
“아니, 잠깐만. 형, 이거 저희 방송 심의 걸려서 짤려요. Go와 Stop이 방송에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누가 고스톱 친댔냐.”
트럼프 카드를 꺼내서 촤악, 펼쳐 들었다.
“이것도 사행성 아니야?”
“물론 이 트럼프 카드로 할 수 있는 수많은 사행성 게임들이 있지. 하지만 원카드는 사행성이 아니야.”
트럼프 카드를 현란한 손길로 섞으며 카메라를 보고 미소 지었다.
“저희 <레브 Time>은 방송 심의를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