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화(2/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화
막내 놈의 입에서 나온 말도 안 되는 말에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흐릿했던 눈에 초점이 잡히며 막내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재희야, 회춘했냐?”
“이 형이 왜 이래? 진짜 정신 놨나 봐.”
풋풋하다 못해 앳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묻자, 막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다. 그러고는 견하준을 급하게 부르며 내 방에서 후다닥 달려 나갔다.
어제 내게 삐져서 말도 안 건 것치고는 꽤 내게 친근한 막내의 태도에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단 내 엉덩이에 닿는 딱딱한 매트리스는 내가 새집의 가구로 들인 더블 킹사이즈 침대의 푹신한 매트리스가 아니었다. 침대 크기도 3분의 1토막이 나 있었다.
그리고 방은 좁았으며 낡아 빠진 벽지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바닥 장판 역시 글자 그대로 노란 장판이었다.
드디어 이곳이 어디인지 깨달았다.
데뷔 초, 우리가 망돌이었을 때 지내던 그 엿 같은 반지하 숙소였다.
‘말도 안 돼.’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싶어 힘껏 뺨을 쳐 보았다. 더럽게 얼얼했다. 꿈이 아니란 소리였다.
다급한 걸음으로 거울 앞에 서자, 거울에는 많아 봤자 스물 초반이나 되어 보이는 내 모습이 비쳤다. 거울 속 나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반지하, 회춘, 데뷔 날.
아무래도 나는 회귀한 모양이다.
그것도 인생 최악의 암흑기였던, 망돌이었던 시기로. 아니, 아직 데뷔하지 않은 상태니 망돌 길을 걷게 될 시기라고 해야 하나?
일단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방금 그 시스템창의 정체부터 알아내야 했다. 대체 ‘초심도’가 무엇인지도. 그리고 내가 왜 돌아왔는지도.
“상…… 상태창.”
설마 나타나겠어, 반신반의하며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읊조리자, 방금 보았던 푸른색 반투명 창이 눈앞에 확 펼쳐졌다.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초심 되찾기 프로젝트!] [대상자: 윤이든] [정보] [나이: 20포지션: 메인래퍼, 리더
특성: 랩, 작사, 작곡, 프로듀싱] [초심도: 94] [※초심도는 아이돌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나 말을 하면 정도에 따라 수치가 깎입니다.] [※초심도가 0이 되면 다시 시작합니다!] [※프로젝트의 완결을 위해서는 필수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필수 조건- 3만 명의 팬들을 실망시킨 당신, 3천만 명의 팬들을 기쁘게 만들어라!(0/30,000,000)]
이게 뭔…… 지금 초심 찾으라고 진짜 데뷔 초로 나 회귀시킨 거?
그리고 3만 명을 실망시켰는데 왜 갑자기 3천 만 명이나 기쁘게 해 줘야 해? 대체 몇 배가 뻥튀기된 건데?
“시발, 내 청담동 집! 내 억대 저작권료! 내 적금통장! 내 페라리!”
곱슬곱슬한 머리를 움켜쥐며 몰려오는 억울함에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내 전 재산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사라지다니! 청담동 집은 입주한 지 하루도 안 됐는데! 30억짜리 집에서 하룻밤도 못 지냈는데!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이 와중에도 초심도는 착실히 깎이고 있었다. 찌릿찌릿한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좀 봐주면 안 되냐? 지금 욕이 안 나오게 생겼냐고!
“이야, 우리 리더가 끝내주는 예지몽을 꿨나 보다. 우리가 그렇게 대박이 났어? 이거 확 뜰 거라는 징조라고 봐도 되냐?”
아침부터 얼굴에 팩을 붙이고 있는 맏형이 방바닥에서 뒹굴며 몸부림치는 나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대박은 무슨, 우리 쪽박이야. 감 없는 회사 때문에 우리가 대박 치려면 3년은 더 있어야 한다니까. 그리고…….
“뭔데 갑자기 친한 척…… 할 수도 있지, 암.”
인상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빈정거리다가 볼을 긁적이며 말을 돌렸다.
아, 지금은 데뷔 전이라 그 술자리 사건이 없었겠구나.
“같은 멤버끼리 친한 척도 못하냐. 하여간, 인성 나가리 자식.”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서예현이 혀를 차며 방을 나갔다.
어이가 없군. 인성 나가리는 누가 인성 나가린데.
노래도 춤도 랩도 애매한 저 인간을 어떻게든 음원과 무대에서 거슬리지 않게 만드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애초에 저 인간이 멤버들이랑 다 같이 가졌던 술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해선 그딴 식으로 사람 자존감 깎지 말라고 내게 막말한 게 문제였다.
직설적으로 말을 해야지 충격받아서 뜯어고치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쯧. 내가 하다 하다 남의 여린 마음까지 고려해 줘야 해?
그나저나 하필 몇 시간 후에 데뷔 무대라니.
콘서트나 자컨에서 몇 번 데뷔곡을 부르긴 했던 터라 안무 대형이나 동선은 대충 기억났지만, 시간이 지나며 생략된 안무 동작들도 꽤 있었기에 이대로 방송 무대에 올라가긴 곤란했다.
막 연예계 사업에 발을 디딘 중소기업 신인이라 음방 사녹은 꿈도 꿀 수 없으므로, 실수하면 그대로 공중파에 박제되는 거다. 데뷔 무대부터 실수한 놈으로.
“야, 도비! 폰에 안무 영상 있냐?”
거실로 나와 메인댄서인 넷째 녀석을 부르자 녀석이 곧바로 달려와 동영상 화면이 뜬 휴대폰을 내밀며 투덜거렸다.
“아, 도비가 아니고 김도빈이라고요. 왜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어 주신 이름을 집 요정 이름으로 바꾸고 그러세요, 형.”
와, 진짜 적응 안 되네. 도비라고 불러도 입 꾹 다물고 고개 돌리는 게 아니라 맞받아치면서 투덜거리는 김도빈이라니.
나를 대하는 멤버들의 태도를 보니 확실히 과거로 돌아오긴 돌아왔는가 보다.
머리를 긁적이며 소리를 키워 동영상을 재생했다. 아무래도 짬밥이 있어서 그런지 영상을 몇 번 돌려 보는 것만으로 안무는 쉬이 익혀졌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한 번만 맞춰 보고 갈까?”
당장 음방이 몇 시간 후인데 연습실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했으므로, 거실에서 멤버들과 대충 동선을 맞추어 보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바닥에 털썩 앉았다.
“와, 데뷔 무대가 몇 시간도 안 남았다는 게 왜 이렇게 실감이 안 나지.”
“예현이 형 얼굴 덕분에 저희 음방 영상 너튜브 백만 뷰 뜨는 거 아니에요?”
데뷔를 향한 설렘과 긴장이 가득한 멤버들의 얼굴과 달리 유일하게 이 그룹의 미래를 알고 있는 나는 심드렁할 수밖에 없었다.
구린 노래와 구린 헤메코는 저 얼굴마저 묻히게 만들더라고.
저가 티 팍팍 나는 뮤비도 처참한 조회수를 기록했던 거로 기억한다.
어차피 노래도 똑같고 코디도 똑같은데 과거와 달리 떡상이라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 초심도가 0이 되면 다시 시작한다는 게 무슨 소리지? 다시 초심도가 100으로 찬다는 소리인가? 그러면 이 초심도 차감이 아무 의미가 없을 텐데.’
시큰둥한 시선을 하고는 허공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자 알림음과 함께 푸른색 상태창이 눈앞에 떴다.
[동태눈깔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정말 기가 막혀서 퀭한 눈으로 앞을 보고 있자 초심도가 계속해서 깎여 나갔다.
로딩 에러라도 뜬 것처럼 무한 생성되는 상태창에 당황했다. 바늘로 수십 번을 찌르는 고통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초심도라는 게 깎이면 고통도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눈물이 핑 맺힌 눈을 깜빡거려 겨우 초점을 맞추니 끊임없이 뜨던 상태창이 사라졌다.
한순간에 초심도 10점이 훅 깎여 나갔다.
해도 해도 너무하네. 멍 때리는 것도 동태눈깔이라고 초심도를 깎냐.
음방 스케줄 시간이 다가오자 데뷔 초에 우리를 맡았던 매니저의 지시에 따라 숙소에서 나와 좁은 차 안에 몸을 구겨 넣었다.
이 시기의 우리는 연예인 밴은커녕 카니발조차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연예인이라곤 배우도 키우지 않아 본, 막 엔터 사업에 뛰어든 좆소가 다 그럼 그렇지, 뭐.
“아, 진짜 좁아 뒈지겠네.”
아야,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아, 진짜요?’도 아니고 ‘아, 진짜’가 금지어면 뭐 어쩌자는 거냐. 나보고 말하지 말고 살라고?
* * *
데뷔 무대는 실수 없이 무사히 마쳤다. 물론 회귀 전과 똑같이 반응은 없었다. 우리는 다시 ‘망돌’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리고 초심도 100은 생각보다 더 금방금방 깎였다.
힘들어서 멍하니 허공을 보는 것도 동태눈깔이라고 깎고, ‘아, 진짜’라는 말만 감지되어도 깎고,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하는 ‘새끼’나 ‘뒈지겠다’ 같은 비속어만 뱉어도 깎는데 이걸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흘간 고작 세 곳의 음방에 출현하고 왔을 뿐인데도 나는 초심도 0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쟤는 신인다운 빠릿빠릿함이 없다는 선배들의 뒷말도 감점 요인이 되더라. 속에 든 건 데뷔 7년차 중견돌인 걸 어떡하라고.
초심도가 깎일 때마다 겪는 따끔거림은 영 적응이 안 된다.
‘오, 아무 일도 없네?’
이 망할 초심도는 무시해도 된다는 소리군.
현관에 신발을 툭 벗어 놓고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갑작스럽게 틀어 막히는 숨통에 목을 움켜쥐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숨을 도저히 쉴 수가 없었다. 벌린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침이 뚝뚝 떨어졌다.
견하준이 급히 나를 부축하며 내 뺨을 찰싹찰싹 쳐 댔다.
“이든아! 윤이든! 정신 차려!”
“얘 갑자기 왜 이래? 얼른 구급차 불러!”
서서히 의식이 사라져 갔다. 다급히 나를 흔드는 멤버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형. 이든이 형!”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슬며시 눈을 떴다. 쓰러지기 직전 보았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쓰러진 곳은 거실이었는데 지금 누워 있는 곳은 방이라는 것 정도?
쓰러진 나를 멤버들이 옮겼거니- 하며 안도하고 있는 내 귀에 해맑은 막내의 목소리가 꽂혔다.
“형은 어떻게 데뷔 날까지 늦잠이에요? 진짜 형 멘탈 하나는 인정임요.”
“……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왔다. 황급히 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8월 8일. 레브의 데뷔일.
설마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
“시발, 말도 안 돼!”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머리를 움켜쥐며 욕설을 내뱉자마자 시스템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고통과 함께 초심도를 깎았다.
다시 100으로 채워져 있는 초심도를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꺼져! 제발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형……? 왜 그래요? 혹시 오늘 데뷔하는 것 때문에 긴장해서 정신 놨어요?”
류재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지만 현재 나는 막내 놈까지 신경 써 줄 정신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간에 덩그러니 갇힌 기분에 지독한 공포심이 몰려왔다. 이대로 영원히 이 시간 속에 갇혀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억울해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뭐 다른 선후배 놈들처럼 마약을 했어, 도박을 했어, 음주운전을 했어, 룸을 갔어?
왜 내게만 이러는 건데! 왜, 왜! 대체 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음악 좀 하겠다는 게 그렇게 큰 죄야?
어떻게 데뷔 무대 위에 서 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계속 찔러 오는 고통 때문에 온몸이 욱신거렸다.
무대 의상을 입고 마이크를 들고 있는 내 눈앞에는 경고하듯 새빨개진 상태창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해 멍한 눈으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정신 놓고 끊임없이 욕설을 중얼거려서인지 현재 초심도는 10을 채 남기지 못했다.
견하준의 파트가 끝나고 내 차례가 다가왔지만 내 입에서는 랩 가사 대신 거친 숨소리만이 흘러나왔다.
상태가 심상치 않은 나를 곁눈질하는 멤버들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무대 위 실수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7] [⚠초심도가 0이 되었습니다!⚠]노래가 하이라이트를 향해 갈 무렵, 이전보다 더 심한 고통이 갑작스레 나를 덮쳤다. 마이크가 내 손에서 툭 떨어졌다.
쿠웅-
시끄러운 충돌음과 함께 날카로운 노이즈가 무대에 울렸다. 몸이 서서히 기울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서서히 시야가 흐려졌다. 귓가에 꽂혀 오는 MR과 노이즈, 나를 다급히 흔드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심장을 후벼 파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내 의식은 완전히 나락으로 추락했다.
두 번째 회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