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0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02화(20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02화
“이제 퇴근 준비해라, 막내야.”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자 시간이 어느덧 10시에 가까워졌다. 우리 팀의 유일한 미성년자인 막내가 퇴근할 시간이었다.
“아니, 이건 좀 불공평하지 않아요? 저도 이제 2시간 후면 성인인데!”
류재희가 뚱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다른 그룹에서도 미성년자 멤버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꼬우면 위에 항의해.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서 오늘까지는 법적 미성년자인 네가 퇴근 안 해도 되게 막아주겠냐.”
어깨를 으쓱하는 내 말에 김도빈이 그 옆에서 약 올리듯 류재희를 향해 혀를 비죽 내밀며 킬킬거렸다.
“아하하, 나는 올해부터 남아도 되지롱!”
“도빈아, 너도 막내랑 같이 갈래? 막내 혼자 보내기는 영…….”
고개를 돌려 김도빈을 보자, 김도빈이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걷어내고 한껏 억울한 얼굴로 반박했다.
“재희가 저보다 더 어른스러운데여.”
“알긴 아는구나. 그래도 가.”
“왜요?”
“막내 혼자 심심하잖아.”
류재희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요. 도빈이 형이랑 같이 퇴근했다가 옆에서 얼마나 찡찡거릴지 예상이 아주 잘 가서요. 그냥 저 혼자 갈게요. 이따 봐요, 형들.”
매니저랑 퇴근하는 막내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수석에 앉아 있는 KICKS랑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제작년인가에는 저 녀석들이랑 곡 체인지 무대를 했었지. 회귀 전에는 이맘때에서야 겨우 비슷한 위치에 설 수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훨씬 앞서가 버렸군.
최현민은 그때의 경고가 제대로 들어 먹힌 건지, 아니면 삐친 건지 고개 돌려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무시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 권유성의 무거운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견하준.”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와, 미친, 설마.
“……미안하다.”
옆에 있는 내가 더 동요할 정도였지만 오히려 사과를 받은 당사자는 덤덤했다.
“그래.”
견하준은 사과를 무시하지도 않겠지만, 딱히 받아주지도 않겠다는 의미가 함축된 짧은 대답을 내놓았다.
눈빛이 흔들림 하나 없이 무심한 걸 보아하니 정말로 권윤성은 견하준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뉴본에서의 과거는 내게만 의미가 있었던 건가 싶어 조금 씁쓸해지긴 했다.
“그리고 윤이든, 무대 잘 봤다. 멋있더라.”
저 십새끼, 사과 안 한다더니 나한테는 진짜로 끝까지 사과 안 하네, 시발. 픽 웃으며 대꾸해 줬다.
“당연하지. 누구 무대인데.”
낙하산이 벙찐 얼굴로 나랑 권윤성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스치고 가는 걸 보아하니 네가 내부고발자라는 건 말할 일 없다고 문자로 보내 주든가 해야 할 성싶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길, 김도빈이 목소리 낮추어 슬쩍 물었다.
“형, 저기랑 화해한 거예요?”
“아니, 인사만 하는 사이로 돌아간 거지. 화해하기에는 너무 늦었잖아.”
내 대답을 들은 김도빈이 직접 사과를 받았던 견하준을 돌아보자 견하준이 여상히 말했다.
“이참에 알아 둬, 도빈아. 사과를 받아주는 게 꼭 화해를 의미하는 게 아니란 걸.”
우리 자리는 KICKS와는 떨어져 있었지만, 알테어와는 아주 가까웠다.
아직 두 그룹 다 무대 반응을 모르는 상태라 저쪽에서 우리를 대하는 태도도 아직까진 호의적이었다.
“와, 저희 정말 으로 하실 줄은 예상도 못 했어요. 다들 를 예상했거든요. 연호 형 빼고.”
“뒤에서 들어 보니까 편곡하셨던데, 편곡도 이든 씨가 하신 거예요? 저희는 정준이 형이 키랑 도입부만 손봤거든요. 댄브 부분.”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했습니다.”
가늠하는 듯한 시선으로 우리를 보고 있던 차연호가 마치 지나가는 질문인 양 입을 열었다.
“도와준 사람은 없고요?”
내 작곡 보조로 쓰려고 한때 열심히 가르쳤던 김도빈을 힐긋 돌아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딱히 도움이 안 돼서…….”
미세하게 꿈틀하는 차연호의 입꼬리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그냥 열심히 살면 되지 왜 저렇게 회귀자를 적발해 내겠다고 피곤하게 사는 걸까?
***
1월 1일에는 가요빅매치 스케줄을 막 마치고 와서 피곤한 상태였기에 막내까지 성년이 된 기념으로 술을 마시는 건 1월 2일 저녁으로 미뤄졌다.
마침 이날은 스케줄도 없겠다, 숙소 앞 편의점에서 소주와 맥주를 한가득 사서 귀가했다.
“드디어 우리 막내가 성인이라니! 내가 이날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형이 왜 내가 성인 될 날을 기다려?”
“그야 네가 성인 되기 전까지는 나까지 금주령이었잖아. 드디어 나도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주량 반병인 놈이 저러는 꼴은 웃기지도 않았다.
견하준과 내가 회귀 전에 했던 생고생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려 이가 절로 갈렸다. 오늘 제 술버릇을 확인하면 밖에서 술을 주량 이상으로 마시고 다니지는 않겠지.
제 술버릇을 알고도 밖에서 처먹고 다니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암, 암.
“도빈아, 너는 저어기, 화장실이랑 가까운 곳으로 가라. 그래야지 내가 바로 너 끌고 화장실에 던져 놓지.”
“에이, 설마 제가 토할 때까지 술을 마시겠어요? 그 전에 딱 멈출 거거든요?”
하이고, 퍽이나. 버티고 있는 녀석을 질질 끌어 화장실과 최단 루트 자리에 딱 데려다 놓고 내 앞에 놓인 술잔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막내가 성년 된 기념으로 건배사 한번 해 봐.”
“형, 방금 엄청 회식 자리에서의 대표님 같았어요.”
진지한 류재희의 말에 울컥하며 곧바로 반박했다.
“야,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막내 시키지 말고 리더가 대표로 축사 한번 해.”
견하준의 등 떠밂에 술잔을 쥔 채로 몸을 일으켰다.
“그룹 모두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 다들 열심히 따라와 줘서 고맙고, 올해 한 해도 파이팅하자.”
“우우우, 너무 짧다!”
“너무 뻔하다!”
“시꺼, 짜식들아.”
날마다 얼굴 보는 사이에 할 말이 뭐가 더 있다고.
“건배!”
다섯 개의 잔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볍게 부딪혔다.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두 명은 음료수를 채운 잔이었는데 이제는 다섯 잔 모두 소주가 채워져 있는 게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도록 만들었다.
“캬, 이게 바로 으른의 맛이지!”
“웩, 맛없어…….”
한잔 비우고 으스대는 김도빈과 달리 잔 안의 소주를 원샷한 류재희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솔직한 후기를 내뱉었다.
“이걸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거예요? 완전 알코올램프 맛나.”
“술이 맛없다니 다행이네. 우리 막내가 술 먹고 사고 칠 일은 없겠다.”
회귀 전에도 술집에서 거하게 뻗은 누구누구와 달리 류재희가 술에 취해서 사고를 친 일은 없었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연속으로 넉 잔을 비운 김도빈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은 것을 곧바로 캐치했다.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우웁!”
헛구역질하는 김도빈을 질질 끌어 변기 앞에 던져 놓았다. 다행히 타이밍이 늦지 않았다.
“와, 소주 반병. 도빈이 형은 진짜 어디 가서 술 마시고 다니면 절대로 안 되겠다. 이든이 형이 도빈이 형 음주를 막은 게 신의 한 수였네.”
제일 먼저 기절하듯 잠들며 리타이어된 김도빈을 방 침대에 던져 놓고 류재희를 향해 물었다.
“막내 너도 그만 마실래?”
류재희가 고개를 저으며 빈 술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밖에서 도빈이 형 같은 저런 꼴을 보이느니 차라리 형들 앞에서 주량 정확히 체크하고 제 술버릇이 뭔지 아는 게 낫죠. 그런데 형들 술버릇은 뭐예요?”
서예현이 제일 먼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자.”
서예현이랑 취할 때까지 술잔을 기울여본 기억은 없어서 이건 나도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딱히 술을 취할 때까지 마셔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사람이 그래도 몸은 가눌 수 있을 정도로는 술을 마셔야 하는 게 아닐까?”
견하준은 회귀 전에도 함께 술을 마시면 저 자신은 물론이요, 내가 취하는 것까지 막았기에 나도 견하준의 술버릇이나 술 취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몰라, 친구들 말로는 나는 필름 끊기면 무조건 어떻게든 집으로 귀가한다던데 나도 준이처럼 필름 끊긴 적이 거의 없어서.”
나는 지독한 새끼라고 친구들이 혀를 찬 건 기억하는데, 필름 끊길 정도로 취해 본 적이 하도 드물어서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럼 이든이 형은 오늘 필름 끊겨도 걱정 없겠네요. 집에서 마시니까.”
“그렇겠지.”
시스템은 놀랍게도 내가 제한 주량을 넘겼음에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사고 칠 일이 없게 숙소에서만 마시면 얼마나 마시든 오케이라는 건가?
덕분에 슬슬 주량은 필름 한계치를 향해 아슬아슬하게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젓가락은 왜 두 개가 한 짝일까?”
술을 마시다 말고 갑자기 젓가락을 진지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고찰하는 서예현을 보며 혀를 찼다.
“저건 또 뭔 헛소리야?”
술버릇이 퍼질러 자는 거라더니, 개소리가 술버릇이잖아.
와중에 또 발음은 꼬이지 않고 또랑또랑해서 술에 취한 것이 맞나 싶기도 했다. 붉어진 얼굴을 보니 확실히 술기운은 오른 것 같고.
“있잖아, 너랑 우리 카이사르랑 정말 안 닮았거든? 그런데 왜 너를 보면 가끔 우리 카이사르가 생각날까?”
“형 무의식에서는 닮았나 보지.”
“고양이에게 욕하니까 좋아?”
“개, 아니 헛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
내 눈물점을 찌르려는 서예현의 손을 쳐 내며 서예현의 술잔에 가득 술을 따라주었다.
맛없다, 쓰다, 온갖 투정을 부리면서도 소주 세 병째를 비우는 류재희의 모습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너 주량 꽤 되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류재희가 주르륵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돌겠네, 얘는 술버릇이 우는 거야? 그래도 김도빈처럼 토하는 것보다는 낫다.
술잔을 손에 꼭 쥔 채로 소리 없이 우는 류재희의 모습을 본 서예현이 젓가락으로 국물 떠먹는 걸 포기하고 그 젓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외쳤다.
“야, 윤이든이 막내 울렸다!”
역시 저 인간은 개소리하는 게 술버릇 맞잖아. 내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잔 더 비운 서예현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더니 스르륵 옆으로 쓰러졌다.
저 인간이 비운 술병은 소주 두 병이었다.
“…… 줘요…….”
“뭐라고, 막내야?”
“주량이랑 술버릇…… 기억했다가 내일 말해 줘요…….”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던 류재희도 그 말을 끝으로 픽, 쓰러졌다.
회귀 전에도 7년을 함께했는데도 멤버들의 주량도, 술버릇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술맛만큼이나 쓰게 다가왔다.
쓴 입맛을 술로 덮기 위해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내가 지금 몇 병을 마셨더라……? 세 병? 네 병? 지금 네 병은 확실히 넘은 것 같은데?
일단 제 옆의 류재희부터 부축해 일으켜 세운 견하준이 내게 무어라 말을 건넸지만 목소리가 하도 흐릿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필름이 툭, 끊겼다.
***
꿈을 꿨다.
오랜만에 꿈에 나온 바둑이가 살아 있었던 때처럼 내게 달려들어 내 얼굴을 마구 핥아대는 꿈을.
얼굴에 닿는 축축함과 혀의 감촉이 너무나도 생경해 느릿하게 눈을 떴다. 점점 초점이 맞춰지는 시야에 낯설면서도 무언가 눈에 익은 듯한 천장이 들어왔다.
“뭐야, 여기 숙소 아닌데……?”
당황하여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다시 한번 얼굴에 축축한 감촉에 와닿았다.
귓가에 들리는 헥헥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휙 돌리자 복슬복슬한 흰 털뭉치와 눈이 마주했다.
“……포도?”
그렇다면 여긴…….
생각났다, 회귀 전에도 내가 필름 끊길 때까지 술을 들이붓지 않고 어떻게든 가물가물한 정신줄을 붙들고 있었던 이유.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