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0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04화(20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04화
견하준과의 통화를 마치고 기억을 쥐어짜 내 봤지만, 내 머릿속의 마지막 장면은 류재희를 부축한 견하준이 내게 무어라 말하던 것. 그게 전부였다.
왜 친구들이 필름이 끊긴 내게 독한 놈이라고 혀를 찼는지 깨달았다.
견하준도 나를 못 말리고 본가로 보낼 정도였으면 대체 내 귀소 본능이 얼마나 끈질겼다는 거야.
회귀 전후를 통틀어 오랜만에 보는 내 방을 쭉 둘러보았다.
방은 내가 지냈던 학창 시절과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내가 꽤 오랫동안 본가로 오지 않아, 주인 없는 빈방으로 오랜 새월을 보냈을 텐데도 방은 사람이 머무른 온기는 없을지언정 먼지 하나 쌓이지 않고 깔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취미로 모으던, 이제는 구형 모델이 되어 버린 헤드셋들도, 수집욕으로 한창 사 모았던 메이커 한정판 운동화가 든 신발 상자도 여전했다.
이 신발 상자는 숙소로 짐을 옮기며 같이 가져갔던 적이 한 번 있었지만, 좁디좁은 반지하 숙소에서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통에 다시 본가로 가져다 놨었지.
이제는 그래도 숙소가 제법 커진 덕분에 가져다 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져가, 말아?
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니 새록새록 살아나는 기억에 픽 웃으며 혹여 기억이 되살아날 만한 것들이 있나 다시금 시선을 옮겼다.
액자에 소중하게 넣어 놓은 바둑이의 사진을 지나자, 책장 한구석에 한가득 모아 놓은 외국·한국 힙합 CD와 LP가 눈에 들어왔다. 용돈을 아껴 가며 꼬박꼬박 사 모았던 것들이었다.
외국 힙합은 웨스트코스트 힙합이 대부분이었다.
비트를 중요시하던 내게 있어 스무스한 느낌이 강한 이스트코스트 힙합은 내 스타일이 딱히 아니었다.
당시에 유행했던 소몰이창법 R&B 풍의 국내 음악만 듣다가 중학교 1학년, 친구 녀석의 mp3에 있던 투팍의 로 처음 미국 본토의 웨스트코스트 힙합을 접했을 때 받았던 충격과 전율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걸 시작으로 외힙까지 범위를 넓혀 가며 가볍게 듣다가 닥터 드레의 로 본격적으로 힙합에 빠져들었다.
주류를 따르지 않는 게 멋있어 보이는 사춘기 특유의 허세도 한몫했을 터지만, 그 당시의 내게 힙합은 내 인생 최초로 마주한 ‘몰입할 것’이자 내 꿈이었다.
그러면서 국내 힙합 쪽으로 자연스럽게 눈을 돌려 오버그라운드를 시작으로 언더그라운드까지 섭렵했다. 그렇게 래퍼의 꿈을 키워 나갔다.
CD와 LP 사이에 끼워진 낡은 공책을 발견하고 그걸 꺼내어 펼쳐 보았다.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끄적였던 가사 공책이었다.
가사를 쓰고 있으면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터라 선생님들도 별 터치를 안 해서 좋았다.
하지만 들켜서 공책으로 대가리를 몇 번 맞기도 했지.
쓸 만한 가사가 있나 싶어 촤르륵 공책을 넘기다가 시스템의 제약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의 흔적에 혀를 찼다.
“뭔 놈의 욕설로 도배를 해 뒀네. 욕으로 펀치 라인이랑 라임까지 다 짜 맞춰 놨어. 아주.”
이 가사대로 한 번만 불러도 초심도가 0이 되어서 다시 회귀하기가 가능해 보였다.
나이를 먹긴 먹어서 그런가, 그때 당시에는 멋있다고 생각하며 써 내려갔을 가사지만 지금은 욕설이 가득한 가사가 딱히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당시의 추억이 생경하게 떠올랐다. 오직 그 시절이라 가능했던 패기와 치기가.
중학교 2학년, 뮤직클라우드에 밤새 작업한 믹스 테이프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올리고.
그걸 들은 용철이 형이 연락해 와서 나를 크루로 스카우트하고.
처음으로 크루라는 것에 소속되어 크루 컴필레이션 믹스 테이프 작업도 해 보고, 형들을 따라 싸이퍼 무대에도 한 번 서 보고.
그렇게 나름 언더그라운드 래퍼 정석 루트를 밟아 갔던 터라, 내게 아이돌 래퍼 운운하면서 무시해도 솔직히 와닿는 게 없었다.
추억에 잠겨 있던 내 귓전에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을 연 엄마가 내게 말했다.
“혹시 집에서 챙겨 갈 거 있으면 다 챙겨 가. 아빠가 숙소까지 데려다준다니까.”
“아, 싫어. 그냥 택시 타고 갈래.”
내가 챙길 건 이 작사 노트 하나뿐이었다.
한정판 신발 상자야 나중에 독방 하나씩 쓸 정도의 숙소로 이사 가면 그때 가져가서 방에 쌓아 두면 되지.
방을 정기적으로 계속 바꾸는 지금 가져가 봤자 애물단지만 될 뿐이다.
노트를 챙기고 거실로 나가 내 발치를 빙글빙글 도는 포도를 안아 들었다.
“포도, 또 올 테니까 형 얼굴 까먹으면 안 돼.”
사실 아직도 포도가 3년간 보지 못했던 내 얼굴을 까먹지 않은 천재견이라 이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사람이라면 다 좋아서 이러는 건지 모른다.
그냥 전자인 편이 내 정신 건강에도 좋아 보이길래 그렇게 믿고 있는 것뿐이지.
포도와의 작별 인사를 마치고 이제는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하루 정도는 더 머물고 싶었으나 할 일이 태산인 탓에 어쩔 수 없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겠다며 강력히 내 의견을 피력해 봤지만, 결국은 엄마를 이기지 못하고 순순히 아버지의 차에 탔다.
“요새는 어때? 지낼 만해?”
“바쁘긴 하지만 데뷔 초보다는 낫지. 그때는 진짜…….”
“그래, 나도 너희 할아버지한테 대체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힘들었다, 그때는.”
평범한 부자지간 수준의 가벼운 대화가 오갔다.
데뷔할 때까지 부모님의 도움을 아예 받지 않았냐 한다면, 그건 전혀 아니다.
뉴본에서 데뷔조 자리를 걷어차고 나왔을 때 지저분한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던 계약과 금전 문제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깔끔히 정리되었고.
LnL에서 연습생 시절 주던 식비로는 숙소 근처 백반집만 겨우 갈 수준이라 집에서 받던 용돈까지 더하여 식사 메뉴를 바꾸어 가면서 연명했으니.
내가 아이돌이 될 거라고 통보했을 때, 할아버지가 딴따라 짓한다고 격노한 것과 달리 부모님은 흔쾌히 그러라고 허락해 주셨다.
아마 래퍼 된다고 고등학교 자퇴한답시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거실에 드러누워 지랄했던 기억이 커서 그런 게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중졸 래퍼보다는 고졸 아이돌이 더 낫다고 판단하신 거지.
그리고 그건 내게도 뼈아픈 기억이었다.
엄마 아빠가 인생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면서 내 인생에 무슨 상관이냐고 지랄하다가 아버지한테 골프채 그립으로 비 오는 날 먼지 날 수준으로 두들겨 맞은 터라 말 그대로 뼈가 다 아팠다.
그리고 그 매타작 사건은 내 언더그라운드 시절 믹스테이프 중 하나에 힙합을 위해 이겨내야만 했던 고난과 역경으로 잘 포장되어 있기도 했다.
“팀원들끼리도 서로 배려하면서 살고. 사회생활 하면서 어떻게 잘 맞는 사람들이랑만 부대끼고 살겠어. 다 서로서로 양보하고 조심하면서 사는 거지.”
“그러고 있어.”
불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버지가 그런 말 굳이 안 하셔도 시스템이 무슨 말만 하면 불화 조장한다고 초심도를 아주 팍팍 깎아대는 통에 강제로 그러고 살고 있습니다.
한숨을 푹 내쉰 아버지가 한탄했다.
“나는 참 걱정이다. 나랑 네 엄마가 너를 너무 오냐오냐 곱게만 키웠어. 실패도 경험해 보게 하고, 성격 죽이는 법도 좀 가르치고 그랬어야 했는데.”
“골프채 그립으로 두들겨 패고, 효자손으로 두들겨 패고, 엎드려뻗쳐 시키는 건 전혀 ‘오냐오냐 곱게’가 아닌뎁쇼.”
누가 들으면 외동아들이라고 매 한 번 안 들고 어화둥둥 키운 줄 알겠군. 사랑의 매가 아직까지도 내 기억에 선명한데.
“하여간, 누가 제 엄마 안 닮았달까 봐 말 한마디를 안 지지.”
“엄마는 맨날 나보고 아빠 닮았다고 하던데?”
어깨를 으쓱하며 조수석에 등을 편히 기댔다. 성격은 모르겠지만 내 외모는 일단 한쪽만 닮지 않은 건 확실했다.
아버지는 묵직한 인상이고 어머니는 도도한 인상이었지만 막상 자식인 나는 인상 사나운 양아치상이었다.
하나하나 뜯어 보면 엄마 얼굴도, 아버지 얼굴도 있긴 한데, 그게 조합이 묘하게 된 탓에 탄생한 인상이라고.
어느새 숙소 앞으로 차가 도착했다. 차 문을 열고 내리기 직전,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설에는 꼭 와라. 그래도 손주가 얼굴 한 번 비춰야지.”
“엥, 팔순 잔치 때 비췄으면 됐지.”
혀를 비죽 내밀자 그놈의 그 효륜디스랩인지 뭔지 좀 당장 지우라고 아버지가 역정을 냈다.
“내가 올린 거 아니야! 내가 미쳤다고 올렸겠냐고!”
다급히 해명을 남기고 후다닥 숙소로 올라갔다.
“오, 귀소 본능 이든이 형 오셨어요?”
숙소 문을 열자마자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류재희가 키득거리며 나를 반겼다. 삐뚜름한 미소를 입가에 걸치고 맞받아쳤다.
“그래, 술버릇이 우는 거인 수도꼭지 막내야. 그렇게 울더니만 눈은 용케 안 부었다?”
“그래도 전 집 밖으로 나가진 않았으니까 형보다는 더 나은 술버릇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게 형을 놀리고 있어.”
류재희한테 가볍게 헤드록, 아니 목 마사지를 선사해 주었다. 이제는 높이가 높아져서 예전처럼 수월하지가 않은 게 한이었다.
누구는 할 일이 많아서 오랜만에 간 본가에서 얼마 머무르지도 못하고 바로 왔건만, 류재희 빼고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멤버들을 찾아 고개를 휙휙 돌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너 빼곤 다들 아직까지 안 일어난 거냐? 지금 시간이 오전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
“하준이 형은 일어났죠. 하준이 형이 해장국 끓여 줘서 둘이 먹었고요, 도빈이 형이랑 예현이 형은 아직도 자는 중이에요. 도빈이 형은 그냥 안 일어난 건데, 예현이 형은 아침에 깨우자마자 한바탕 토하고 숙취 때문에 앓는 소리 내면서 바닥 구르다가 숙취해소제 먹고 겨우 또 잠들었어요.”
“이야, 저 인간은 필름 끊길 때까지 술 마시면 절대 안 되겠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방 밖으로 나온 견하준이 왜인지 모르게 삐딱해 보이는 얼굴로 내게 한 소리 했다.
“무슨 남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러고 있어. 너도 마찬가지야, 이든아. 절대 취할 때까지 술 마시지 마.”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개집 옆에서 눈 뜨면서 아주 뼈저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