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0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08화(208/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08화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린 윤이든이 깨끗한 제 손등을 발견하고 비소를 터트렸다.
“하, 또냐? 씨발, 이 시절 하나도 안 그립다고.”
짓씹듯이 내뱉은 그가 다시 제 맞은편 침대에 누운 이를 힐긋 돌아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애초에 김도빈 저 새끼랑 한 방을 쓴 기억이 없는데 누가 개꿈 아니랄까 봐 이젠 기억까지 조작하고 지랄이야.”
꿈이라 판단하고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윤이든은 눈을 꾹 감았다.
그렇게 5분이 지나고, 김도빈은 왜인지 모르게 드는 오한에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눈을 떴다.
기지개를 켠 김도빈은 평소처럼 반듯이 개어진 이불이 아닌, 무언가가 안에 있는 듯 볼록 튀어나와 있는 이불을 발견하고 의기양양하게 다가갔다.
“형, 제가 형보다 먼저 일어났어요!”
원래의 윤이든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반복 학습 끝에 드디어 스스로 기상하는 능력이 생겼다며 감격의 박수를 보내 주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김도빈을 기다리고 있는 건 감격의 박수가 아닌,
“야, 너 뭐냐.”
멱살잡이였다.
거칠게 당겨진 멱살 탓에 김도빈이 캑캑거리는 기침을 내뱉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살벌하게 번뜩이는 눈동자로 김도빈을 노려보며 윤이든이 으르렁거렸다.
“같은 방에 있는 걸로도 모자라서 왜 역겹게 친한 척이냐고. 재현하고 싶으면 똑바로 해.”
“뭐, 뭘 재현해요……?”
아침부터 거하게 맞은 날벼락에 벌벌 떨면서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묻는 김도빈의 멱살을 신경질적으로 내팽개친 윤이든이 실소했다.
“겁 집어먹은 개 닮은 눈깔만 똑같이 재현했네, 아주.”
이든이 형이 아무리 지랄 같은 면이 있긴 했지만 사람 면전에서 역겹다는 말을 내뱉는 이런 성격 파탄자는 아니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되어 버린 이 상황.
하지만 이제까지 해 왔던 대로 빙의라고 판단하기엔 눈앞의 이는 왜인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지랄이든, 악귀이든이라는 별명까지 남몰래 붙었던 그 시절의 윤이든이 절로 떠오르는 말본새.
그리고 사람을 개로 지칭할 때 절대 개새끼라는 욕설을 쓰지 않고 꼬박꼬박 개라고 부르는 저 습관까지.
‘말투나 말하는 게 완전 데뷔 전 이든이 형인데……?’
지금까지 봐 왔던 웹소설과 웹툰, 애니메이션을 통해 쌓은 빅데이터를 뒤져 김도빈은 지금 상황과 최대한 비슷한 설정을 찾아냈다.
‘그럼 설마 그 시절 이든이 형이 지금의 미래를 체험하고 돌아가서 유해진 건가? 그러고 보니 데뷔 초에 이든이 형이 갑자기 정말로 급격하게 유해지긴 했지. 이게 바로 타임리프의 우로보로스?’
김칫국 거하게 들이켜며 김도빈은 결연한 얼굴로 눈을 빛냈다.
이 윤이든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 주어 유한 이든이 형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차올랐다.
아직 비몽사몽 한 아침이기도 하고, 지금의 윤이든이 아직 이 상황을 꿈으로 믿고 있어 비교적 순한 모드이기에 가능한 착각이었다.
“형,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믿든 말든, 이곳으로 데뷔 전 이든이 형이 시간을 뛰어넘어 건너온 이상 이판사판이다.
진지한 얼굴로 윤이든의 어깨를 부여잡은 김도빈이 심호흡하고 무겁게 말을 꺼냈다.
“형은 지금 데뷔한 상태예요.”
경악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놀라기는 할 줄 알았건만, 윤이든의 표정은 조금의 변화조차 없었다.
“뭔 소리를 하려고 그렇게 무게를 쳐 잡는가 했더니. 그럼 씨발, 우리가 데뷔를 했지, 당선을 했냐?”
윤이든의 눈빛이 한층 더 험악해지자 김도빈은 다시 벌벌 떨며 빠른 속도로 바닥을 향해 고개를 처박았다.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데뷔 전 이든이 형이 아니라고? 이번에도 진짜 빙의야……? 그런데 이든이 형은 맞는 거 같은데?’
현 상황이 빙의 쪽으로 기울다가, 그는 문득 웹소설 3대 스테디셀러 설정을 떠올렸다. 빙의, 환생, 그리고…….
“그럼 형, 실례지만 혹시 몇 년 차세요?”
지나치게 정중한 질문에 잠시 뜸 들이던 윤이든이 툭, 내뱉었다.
“……일단 나는 8년.”
역시 회귀가 맞았군!
윤이든의 대답에서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제가 정답을 맞혔다는 걸 기뻐하며 김도빈은 윤이든에게 현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레브는 4년 차예요. 지금 1월이니까 정확히는 3년 5개월 차.”
“그 시절 꿈인데 네가 나한테 지금 친한 척을 조지게 해? 너, 그때도 딱히 나한테 이렇게 살갑게 군 적은 없었잖아?”
제 머리를 짜증스레 헤집으며 윤이든이 김도빈을 위아래로 훑었다.
이게 살가운 거라고? 대체 저 인간의 기억 속 자신이 어떻게 굴었기에 이걸 살갑다고 말하는 건가 싶어 김도빈은 잠시 당황했다.
“이거 꿈 아니에요. 적어도 저한테는, 그리고 다른 방에 있는 나머지 멤버들에게는 꿈 아니고 현실이라고요.”
윤이든의 착각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김도빈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어쩌면 형한테도 현실일 수 있고요.”
덧붙인 말에 윤이든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손을 뻗어 김도빈의 멱살을 단단히 틀어쥔 윤이든이 그를 제 앞까지 휙 끌어당기더니 조소했다.
“야, 그렇게 잘 알면 말해 봐. 어떻게 하면 돌아갈-”
윤이든이 말하다가 멈칫했다.
가까이 마주한 눈동자에서 김도빈은 혼란과 떨림을 읽어 냈다. 저게 한 데 섞이면 미련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그래, 돌아가야지…… 씨발,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해.”
억눌린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읊조린 윤이든이 멱살을 놔주고는 말하라는 듯 턱을 까딱했다.
보통 회귀해서 다시 마지막 시간대로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던데. 그냥 눌러앉아서 과거를 바꾸는 게 클리셰지.
그리고 만약에 8년 차 레브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래서 윤이든이 회귀한 거라면 그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래서 일단은 환영이었다.
저 상태의 윤이든을 감당하는 게 그룹에 무슨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으니까.
회귀 상태의 윤이든을 다시 돌려놓기 위해 열심히 에러를 고치고 있는 시스템이 들으면 기겁할 생각을 하며 김도빈은 제일 중요한 걸 윤이든에게 알려 주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형, 문제가 있어요. 저야 다년간 다져진 웹툰과 웹소와 애니 경력으로 이런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다른 멤버들은 아니거든요. 형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면 바로 무당집으로 끌려갈 수 있어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멈칫한 윤이든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무당집?”
“네, 형이 얼마 전에 귀신한테 한 번 빙의 당한 전적이 있어서요.”
윤이든이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싶은 눈빛으로 김도빈을 보았지만, 김도빈은 꿋꿋했다. 왜냐, 진짜로 일어난 현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가지가지 하네. 단체로 머리가 회까닥 돌았냐? 그걸 또 믿어? 왜, 아예 노하신 조상신에게 단체로 제사도 지내지?”
도믿맨 사이비 18번 멘트를 차용하며 윤이든이 빈정거렸다.
“아니, 진짠데…….”
김도빈이 소심하게 반박했다. 조금만 언성을 높이면 저 이든이 형은 두피 마사지나 목 마사지는커녕 바로 멱살부터 잡을 것 같았다.
8년이면 겨우 4년 후인데 대체 그 4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 형이 다시 악귀이든으로 컴백한 건지 김도빈은 좀 알고 싶었다.
레브라는 그룹으로 10년, 20년은 더 함께해야 하는데 리더가 저런 상태라면 곤란했다.
“아무튼 그래서요, 일단 적응될 때까지 재희는 무조건 피하세요. 막내는 눈치 빨라서 형 상태 이상한 거 바로 알아차릴걸요.”
“류재희 눈치 빠른 건 내가 잘 알지.”
류재희를 언급하는 윤이든의 눈빛과 말투는 부드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하준이 형도 형이랑 워낙 친하니까 형이 평소랑 다른 거 바로 아실 테고.”
이번에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견하준의 이름을 듣자마자 가라앉은 눈빛과 표정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차게 내려앉은 눈으로 허공을 향해 시선을 던진 윤이든이 짧은 냉소를 내뱉었다.
비견하준 차별을 밥 먹듯이 하던 사람이 저런 반응을 보이니, 혹시 무슨 일이 있으셨냐 묻기도 무서웠다.
“참, 예현이 형은 괜찮을걸요. 평소에도 형이 예현이 형한테는 좀 틱틱거리는 면이 있으니까 지금 상태여도 딱히 수상하게 생각 안 할 거예요.”
“어쩌냐, 그건 내 쪽에서 붙기가 싫은데. 얼굴 볼 생각만 해도 벌써 짜증 나거든.”
언제 그리 가라앉았냐는 듯, 다시 삐딱한 미소를 걸치며 윤이든이 대꾸했다.
“예현이 형이랑 싸웠어요?”
“싸워? 내가 그 인간이랑?”
김도빈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윤이든이 코웃음 쳤다.
“그럴 가치가 있나?”
정말로 가치 없는 걸 언급하는 듯한 눈빛과 말투에 당사자도 아닌 김도빈의 심장이 다 철렁했다.
“아, 형. 곧 식사 시간인데 아침밥은 어떡하실 거예요?”
“난 원래 아침밥 걸러.”
평소에는 잘만 드시던데. 하지만 이 말도 저 윤이든 앞에서는 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기에 김도빈은 다시 속으로 말을 삼켰다.
“어제 새벽에 겨우 잤는데 더럽게 일찍 일어났네. 다른 놈들이 이 방으로 들어오려 하면 김도빈 네가 알아서 컷해라.”
경고 섞인 그 말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인 김도빈이 문을 열고 드디어 무거운 공기가 사방에서 그를 짓누르던 방으로부터 탈출했다.
“이든이는?”
“입맛 없어서 오늘 아침은 거르겠대요.”
식탁 빈자리를 보며 묻는 견하준의 물음에 김도빈이 머리를 굴려 지어 낸 핑계를 냉큼 내뱉었다.
“오늘 아침 운동도 안 나왔던데, 무슨 일 있대?”
서예현의 말에 견하준이 단번에 걱정 어린 얼굴이 되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픈 건 아니고, 이든이 형이 혼자만의 시간이 좀 필요하시다고 해서. 뭐가 좀 안 풀리시나 봐요, 하하…….”
김도빈이 그런 견하준을 다급하게 붙들어 말렸다.
겨우 견하준의 접근을 막고, 식사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는 윤이든에게로 쭈뼛쭈뼛 다가간 김도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저희 이제 콘서트 연습 가야 하는데.”
“콘서트? 콘서트를 이맘때 했던가?”
눈썹을 까딱하면서도 윤이든은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안무 다 기억하시죠?”
“대충은.”
윤이든이 고개를 까딱했다.
“이든아, 무슨 일 있어?”
“하준이 형! 오늘 이든이 형이 그냥 인간이라는 종이랑 대화하기가 싫대요!”
“이든이가 그런 너 같은 말을 했다고……?”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윤이든을 향해 다가오는 견하준을 필사적으로 막으며 김도빈은 일단 콘서트 준비에는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아 안심했다.
* * *
“이든이 형, 뭐 해요?”
류재희가 제자리에 우뚝 서 있는 윤이든을 향해 의문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윤이든이 김도빈을 돌아보았다.
“이, 이든이 형이 오늘 상태가 진짜 안 좋나 봐!”
그렇게 윤이든이 열외되고, 다시 안무 연습이 한창 이루어졌다. 연습이 끝나고 숙소의 제 방으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윤이든이 입을 열었다.
“세트 리스트 있지. 그거 내 폰으로 보내 봐.”
윤이든의 그 말에 김도빈이 즉시 콘서트 세트 리스트를 보냈다. 천천히 한 곡 한 곡 뜯어 보던 윤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야, 이 노래들 뭐야.”
세트 리스트가 띄워진 화면을 김도빈의 얼굴에 들이대며 윤이든이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색한 얼굴은 지금까지 본 윤이든의 얼굴 중, 제일 무서웠다.
“처음 보는 곡들은 둘째치고. 은 왜 없고, 가 여기 왜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