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0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09화(209/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09화
버럭 지르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움찔한 김도빈이 덜덜 떨면서 겨우 입을 열었다.
“이 여기서 왜 나와요……? 그거 알테어 곡이잖아요.”
미간을 구긴 윤이든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뭐?”
안무를 기억하고 있다고 해 놓고선 마치 처음 듣는 노래인 것처럼 멍하게 서 있었던 것도 그렇고, 갑자기 알테어의 곡인 을 찾는 것도 그렇고, 무언가 이상하다.
하지만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윤이든의 모습에 김도빈의 상념이 강제로 끊겼다.
전혀 웃긴 상황이 아닌 때에 생뚱맞게 터트리는 웃음이 위화감을 조성하는 건 둘째치고, 미친놈 같아서 무서웠다.
“내가 에 좋은 감정이 없거든.”
여전히 피식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윤이든이 운을 뗐다.
“그딴 곡으로 떴다는 것도 좆같고, 나한테는 기회 한 번 안 돌아갔는데 그깟 곡 하나 띄웠다고 내 기회가 영영 사라진 것도 좆같고, 그 곡 때문에 서예현 그 꼴도 보기 싫은 새끼가 실력은 안 늘면서 꼴에 자존감만 높아진 것도 좆같고, 씨발 다 좆같았다고.”
물론 김도빈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진 윤이든이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런데 막상 다른 놈들도 아닌 알테어에게 뺏겼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씨발, 기분이 제일 좆같네?”
안광이 비치지 않는 눈동자가 희번뜩하게 빛났다.
“좀도둑 같은 새끼들이 곡 짜깁기에 작곡가 이름 바꿔치기한 거까지 모자라서, 이젠 곡까지 스틸해?”
쾅!
분을 이기지 못한 윤이든의 발이 거세게 책상을 걷어찼다.
얼마나 세게 걷어찼는지 책상이 흔들거리며 위에 올려져 있던 물병과 향수, 펜 등의 잡동사니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김도빈이 지나친 공포에 얼어붙어 있는 사이, 밖에서 견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든아, 도빈아, 방에 무슨 일 있어? 방금 큰 소리 뭐야?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라 달려온 모양이었다.
김도빈은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윤이든은 그저 문을 빤히 노려보느라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문을 열려고 하는지 문고리가 들썩거렸다.
그래도 하준이 형이 어떻게든 해 주겠지, 하고 김도빈이 안도한 순간. 거세게 문고리를 잡은 윤이든이 방문을 잠갔다.
방 너머에는 들리지 않을 낮은 목소리가 김도빈의 귓전을 때렸다.
“야, 저거. 나한테 신경 끄게 해.”
“저거요……?”
지금 이든이 형이 하준이 형을 ‘저거’라고 지칭한 거야?
준이가 아닌 풀네임을 부른 것도 경악스러운데 바닥 밑에 심연이 있었을 줄이야.
“나랑 견하준이랑 얼굴 마주 볼일 없게 하라고.”
성가시다는 얼굴로 우악스럽게 방문 앞까지 김도빈을 끌고 온 윤이든이 여전히 목덜미를 붙든 채로 그의 뒤통수를 툭툭 두드리며 무료하게 말했다.
“뭐해. 빨리 입 열어. 저거 들어오면 네가 뒈진다?”
김도빈은 제 앞의 이가 컨트롤이 불가능한 악귀이든임을 새삼 자각했다.
문 너머에서는 견하준이 계속해서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있는 건지, 안쪽 문고리도 덜컥거렸다.
-무슨 일 있냐니까!
결국 목소리가 커진 견하준의 외침에 김도빈이 다급히 입을 열어 아무 소리 나 지껄였다.
“이, 이든이 형이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다고 책상 걷어찼어요!”
김도빈이 내뱉은 변명은 평소 윤이든의 성질머리 및 행적과 기묘하게 잘 맞물린 터라 견하준에게도 의심 없이 무사히 받아들여졌다.
-문은 왜 잠갔는데?
“방 치우는 중인데 하준이 형이 이거 보면 잔소리할 거 같대요. 그래서 잠갔어요.”
극한의 위기상황에 치달아서 그런가, 평소였으면 상상도 못했을 임기응변이 술술 나왔다.
-도빈아, 너 울어?
“아니요!”
저도 모르게 울먹거리는 소리가 묻어 나온 건지, 견하준이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따갑게 닿아오는 눈길에, 찔끔 나온 눈물을 닦으며 김도빈은 다급히 대답했다.
-이든아, 혹시 도빈이 괴롭히는 건 아니지?
저를 향한 물음에 잠시간 침묵한 윤이든이 픽 웃으며 짧게 대꾸했다.
“설마.”
문 앞의 기척이 사라지자마자 김도빈의 목덜미를 잡고 있던 손을 놓은 윤이든이 강제로 그의 고개를 돌려 자신과 다시 마주 보게 만들었다.
“그래, 은 알테어 그 씹새들에게 빼앗겼다고 쳐, 은 뭔데?”
“그건 형이 작곡한 곡이면서 왜, 왜 그래요.”
“그래, 씨발 내가 작곡했는데 그게 왜 레브 곡이 되어 있냐고.”
“원래부터 레브 곡인 걸 왜 레브 곡이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어떻게 답해요…….”
이해할 수 없는 물음에 울먹이면서도 착실하게 답하던 김도빈은 윤이든 말 속의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잠깐만요, 그러면 지금 형의 레브는 이 있고 가 없다고요?”
윤이든이 했던 말을 종합하여 차근차근 되짚어 본 김도빈은 결론을 내렸다.
이 형이 몸담았던 레브와 지금의 레브는 완전히 다르다.
“그럼, 회귀가 아니라 평행세계……?”
김도빈은 문득 평행우주 세계관을 그렇게 주장하던 김노담 대표를 떠올렸다.
대표님은 설마 이 사태를 예지하시고 평행우주론 세계관을 열심히 미셨던 걸까.
시스템 에러로 인하여 정말로 윤이든 정신의 회귀라는 걸 김도빈이 알 리가 없었다.
“개꿈이네, 시발.”
제 마지막 행적을 토대로 멋대로 개꿈이라는 결론을 내린 윤이든이 김샌 얼굴로 제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거 형 꿈 아니라니까요…… 정 못 믿겠으면 손가락 손등까지 꺾어 보세요. 루시드 드림 확인할 때 쓰는 방법인데, 손가락 다 꺾여서 손등에 닿으면 꿈이고.”
제 말대로 중지를 꺾고 있는 윤이든을 보며 김도빈이 이어 말했다.
“그 정도밖에 안 꺾이면 꿈 아니에요.”
윤이든의 중지는 딱 봐도 손등에 닿기엔 요원해 보였다.
“그럼 이 개꿈 같은 상황이 진짜 현실이라고?”
이 상황이 어지간히 착잡한지 연신 마른세수를 하던 윤이든이 김도빈을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하세요……?”
“네가 씹덕이라 다행이라는 생각.”
김도빈이 어이없어하든 말든 제 휴대폰 음악 앱에서 찾은 콘서트 세트 리스트를 연 윤이든이 휴대폰에 이어폰을 연결하며 중얼거렸다.
“유선 이어폰도 오랜만이네.”
“미래 이어폰은 무선이기라도 해요? 줄도 없는 걸 누가 쓰긴 써요? 줄 없이 귀에 덜렁 꽂고만 있으면 완전 웃길 거 같은데.”
그 모습을 상상하며 겨우 웃음을 참는 김도빈을 향해 윤이든이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어, 다 써.”
그걸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게 대중화된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이어폰 줄을 만지작거리며 윤이든이 나직하게 덧붙였다.
“이어폰 줄은 필수로 필요한지 알았는데, 없으면 안 될 줄 알았는데, 없어도 다들 잘 쓰더라고.”
이어폰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이어폰 이야기를 저렇게 냉소적으로 할 이유가 있나.
그는 윤이든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저 형, 눈이 죽어 있다.
항상 안광이 도는 생태 눈을 유지하던 우리 측 이든이 형과 다르게.
우리 측 이든이 형은 자기 뺨을 때려서라도 안광을 유지하는 사람이었는데, 저 이든이 형은 어쩌다가 저런 심연의 동태눈깔이 됐을까.
방의 불을 끄고 나서, 김도빈은 이어폰을 끼고 모로 누워 휴대폰 화면만을 빤히 바라보는 윤이든을 들키지 않게 힐끔 훔쳐 보았다.
휴대폰 불빛에 흐릿하게 비치는 얼굴에는 딱 봐도 복잡해 보이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
착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안광이 돌아온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보면 안 되는 걸 몰래 엿본 듯한 기분에 김도빈은 눈이라도 마주칠세라 후다닥 눈을 감았다.
1시간이나 지났을까, 윤이든이 몸을 일으키며 투덜거렸다.
“젠장, 이 몸뚱이로도 잠이 안 오네.”
눈가를 문지르며 김도빈의 침대로 다가간 윤이든이 김도빈을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숙소에 수면제 있냐?”
윤이든이 수면제를 꺼리는 건 레브 멤버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거 들키면 진짜 무당집 행이라고…….’
수면제를 찾아주면서도 김도빈은 혹여나 타 멤버들에게 들킬까 봐 덜덜 떨었다.
“형, 여기서 먹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먹어요. 그런데 꼭 다시 가져다 놓긴 해야 해요. 이거 형 방에 있는 거 들키면 큰일 나요.”
“그럼 귀찮게 뭐 하러. 여기서 먹고 들어가면 되지.”
재촉하다가 하필 화장실에서 나오던 류재희와 딱 마주쳤다. 이미 윤이든은 수면제 몇 알을 제 손 위에 올려놓은 채였다.
“형, 뭐 먹어요?”
“수면제.”
김도빈이 윤이든의 입을 막기도 전에 윤이든이 대꾸했다. 류재희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보란 듯이 수면제를 삼킨 윤이든이 류재희를 지그시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꼭 못 먹을 거 먹은 사람처럼 본다? 왜, 수면제 하나 목구멍으로 못 넘기는 등신도 있어?”
“네, 형이요.”
새벽 특유의 서늘함까지 더해져 긴장감이 감도는 공기에 윤이든의 옆에 있던 김도빈만 괜히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간 눈을 피하지 않고 류재희를 바라보던 윤이든이 그에게로 다가가더니 손을 들어 류재희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었다.
“우리 재희, 깡 여전하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류재희가 김도빈을 돌아보며 손짓하자 그걸 지켜보고 있던 윤이든이 팔짱 끼고 한마디 했다.
“김도빈, 이리 와.”
미안하다, 막내야. 하지만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니. 눈동자를 굴리던 김도빈은 순순히 윤이든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문자 수신을 알리는 짧은 진동이 울리자 윤이든이 짧게 명령했다.
“휴대폰 꺼.”
[뉴트리아류재- 이든이 형 왜 저래?] [뉴트리아류재- 설마 그거야?] 오전 2:41윤이든이 다시 눈을 감은 틈을 타 이불을 뒤집어쓰고 류재희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한 김도빈이 조심스럽게 답장을 보냈다.
[빙의 아님] [내가 이런 거 전문이잖아] [이든이 형 맞음] 오전 2:47 [뉴트리아류재- 내가 저 형 수면제 꺼리는 거랑 수면제만 먹으면 토하는 거 잘 알고 있는데] 오전 2:48 [뉴트리아류재- 왜 예전부터 잘 먹어 온 사람처럼 말하는데?] 오전 2:48“야, 김도빈. 내가 휴대폰 끄라고 했지.”
잔뜩 가라앉은 윤이든의 목소리에 김도빈은 잽싸게 전송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껐다.
[도빈이형- 이든이 형 가오 잡는 게 한두 번임?] 오전 2:50김도빈에게서 도착한 답장을 훑은 류재희가 눈을 깜빡였다.
그리 수면제를 싫어하고 꺼리던 사람이 그랬던 게 이상하긴 했지만, 약한 모습 보이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란 것 역시 잘 아는 터라, 저 변명은 의외로 먹혀들었다.
김도빈은 의도치 않게 2승을 챙겼다.
‘수면제까지 먹어야 할 정도로 스트레스받는 일이 그렇게 많았나……?’
하준이 형한테 언제 한 번 날 잡고 이든이 형이랑 이야기라도 해 보라고 슬쩍 찔러 봐야겠다 생각하며 류재희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막내인 제게 자기가 힘든 걸 털어놓지 않을 사람이란 걸 잘 알았으니까.
* * *
“야, 여기에도 내 작업실 있지?”
“넵.”
“안내해. 숙소에 계속 처박혀 있는 것보단 작업실에 처박혀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으니까.”
김도빈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냉큼 윤이든의 차에 타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 주었다. 숙소에는 무려 지뢰가 3개나 존재하지 않는가.
“장비 존나 구리네.”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작업실을 쭉 훑은 윤이든이 빈정거림 섞인 감상평을 내뱉었다.
나름 최신식 장비라는 걸 원래의 윤이든에게 한 200번 정도 들어서 알고 있는 김도빈은 괜히 제가 더 억울해져서 소심하게 변호했다.
“4년 전 장비니까 어쩔 수 없죠.”
“지금 내가 스물셋이라 했나?”
세월을 계산하는 듯 잠시간 허공을 바라보던 윤이든이 미간을 구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4년은 개뿔. 7년 전이잖아.”
7년 후면 레브가 11년 차인데? 전에 윤이든에게서 들었던 대답과 시기가 맞지 않았다.
“형, 데뷔 8년 차라고 하지 않았아요?”
“그랬지, 7주년에 탈퇴했으니까. 그 이후 레브랑 나는 아무 상관 없잖아?”
제가 뭘 들은 건가 싶어 김도빈은 제 귀를 의심했다.
“앞에 편의점 좀 다녀온다.”
윤이든은 그렇게 폭탄을 던져 놓고선 유유히 작업실을 나섰다.
대체 저 평행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김도빈이 고심하는 동안, 다시 돌아온 윤이든이 주머니에서 더 큰 폭탄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