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1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14화(21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14화
살벌한 견하준의 반응에 김도빈은 움찔하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내용은 별문제 없었는데, 역시 화자가 문제였을까? 조금 더 신뢰감이 드는 머글 막내한테 시킬 걸 그랬나?
“당연히 알죠.”
잽싸게 고개를 끄덕이며 최대한 진심이 담긴 눈동자로 견하준을 올려다보던 김도빈은 견하준과 시선이 정면에서 마주하자마자 눈을 소심하게 내리깔았다.
견하준과 윤이든이 친구인 이유가 다 있었다. 기존쎄의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버티려면 그 사람 역시 기존쎄여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왜 그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가.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헛웃음 지은 견하준의 물음에 김도빈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귀신도 한 번 들렸는데 못 믿을 건 없지 않을까요…….”
“하아…….”
빡친 기색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한숨에 김도빈이 다급히 해명했다.
“저 진짜로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솔직히 요즘 이든이 형 이상했잖아요! 제가 형한테 이 상황에서 장난을 왜 쳐요!”
필사적으로 외치다가 억울함과 무서움이 합쳐져서 김도빈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진실이 한낱 장난 취급을 받는 이 상황보다 더 무서운 건, 눈앞에서 사람이 이렇게 서럽게 울고 있는데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여전히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보고 있는 견하준이었다.
“무슨 일이야?”
김도빈이 소리치는 게 건넛방까지 들린 건지 서예현과 류재희가 다급히 달려왔다.
견하준의 굳은 표정을 발견한 류재희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김도빈을 제 뒤로 잡아끌었다. 이 형이 결국 선 넘었구먼.
훌쩍거림이 섞인 김도빈의 상황 설명을 들은 서예현이 견하준의 어깨를 다독이며 진정시켰다.
“도빈이가 아무리 눈치가 좀 없다지만 그래도 상황 파악 못 하고 계속 장난칠 만한 애는 아니잖아.”
예현이 형, 지금부터 레브의 빛과 소금은 하준이 형이 아니라 형이에요.
김도빈은 훌쩍이며 속으로 견하준에게 붙였던 별명을 서예현에게 양도했다.
“요즘 윤이든이 이상한 것도 맞고. 당장 저번 연습 때 다 까먹은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던 거 기억 안 나? 게다가 요즘 연습 참여도 안 하잖아.”
제 의견에 힘을 실어 주는 맏형의 말에 류재희의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김도빈이 질세라 덧붙였다.
“맞아요, 그리고 갑자기 담배도 피우잖아요. 그렇게 건강 생각하던 사람이!”
“담배는 딱히 안 놀랍다. 걘 뭔가 피울 것 같이 생겼어.”
서예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든이 형이 또 빙의됐다고요? 진짜 무당집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든이 형이 보기완 다르게 기가 약하신가? 자주 빙의되시네.”
일반인의 상식선에서 현 상황을 받아들인 류재희의 요약 정리에 김도빈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아니, 이게 귀신 들린 빙의랑은 좀 다른 게, 지금 상태는 평행세계의 이든이 형이…….”
“그게 또 뭐 씌었다는 소리 아니야?”
“아니, 그게 좀 다르다니까?”
“뭐가 다른데?”
막내 라인의 만담 같은 대화를 듣다가 견하준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문지르며 방을 나섰다.
그의 상식선에서 갑자기 다정해지고 애니멀팜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윤이든은 귀신 들린 게 확실했지만.
사람 피해 대다가 현장에서 담배 피우는 걸 들키자 갑자기 멱살까지 잡으면서 난리 치는 윤이든은 그저 담배 이슈 묻으려고 용쓰는 친구의 모습이었다.
저런 헛소리를 하는 김도빈도 윤이든에게 매수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들킨 걸로 그렇게까지 내게 반응할 필요가 있나?’
윤이든이 이미 끝난 이야기를 또 꺼낼 녀석은 아니다. 그것이 서로한테 상처를 줄 만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가 보기에도 지금의 윤이든은 이상했다. 다만, 그의 상식선으로는 평행세계니 뭐니 하는 이런 이야기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잠이 오지 않아 견하준은 늦은 밤까지 제 독방의 침대에서 몸을 뒤척였다.
제일 친한 친구에게 갑작스레 멱살잡이를 당하고 막말까지 들은 견하준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도빈이에게 사과해야겠네…….’
괜히 동생을 붙잡고 화풀이를 한 거나 다름없는 터라 멋쩍어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견하준의 방이 노크도 없이 벌컥 열렸다.
지금 시간은 새벽 세 시였다. 흐릿한 불빛에 보이는 김도빈의 얼굴에 사과할 생각이 싹 달아났다.
“하준이 형! 이든이 형이 지금까지 숙소도 안 들어오고, 연락도 안 돼요!”
“담배라도 피우고 있나 보지.”
“그게, 이든이 형이 합법화 안 된 일을 하러 간다고, 그러고 연락이 끊겼단 말이에요!”
울지도 못하고 울상인 얼굴로 손을 덜덜 떨고 있는 김도빈의 모습과 그가 꺼낸 말 내용에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견하준은 즉시 깨달았다.
“나는 이든이 작업실 갔다 올 테니까 도빈이 너도 다른 멤버들 깨워서 이든이 좀 찾아봐.”
겉옷을 곧바로 챙겨입은 견하준이 망설임 없이 숙소를 나섰다.
-이든이? 소속사 사옥에 출입 기록 찍혔던데? 연습실에 있는 거 아니야? 잠깐만, 확인해 볼게.
매니저에게 바로 전화를 건 서예현 덕분에 윤이든의 위치는 간단히 확보되었다.
-연습실에 있단다. 얘는 무슨 너희들에게 말도 안 하고 갔데? 너희 싸운 건 아니지?
“이 연차에 싸우긴 뭘 싸워요. 새벽에 죄송해요. 내일 형한테 사과시킬게요.”
-됐어, 인마. 클럽 안 가고 연습실 간 것만으로도 고마워 죽을 지경이다.
전화를 끊고 서예현이 고개를 기웃했다.
“도빈아, 새벽 연습실행이 언제부터 불법적인 일이었어?”
“아니, 새벽 말고 그 전부터…….”
한편, 윤이든의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윤이든이 연습실에 있다는 걸 전달받은 견하준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며 윤이든이 항상 앉아 있던 모니터 앞 의자에 털썩, 앉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그가 쥐고 있던 휴대폰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윤이든]그를 지금까지 고생하게 만든 장본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 * *
통화 연결음이 지속되는 동안 윤이든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시스템 안정화까지 89%]제 눈앞에 뜬 푸른색 상태창을 지그시 쳐다보며 윤이든은 이 시스템인지 뭔지 하는 놈과 나누었던 대화를 상기했다.
[정신의 회귀이니 안정화되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기억이 지워질망정 당신의 존재가 사라지진 않습니다.] [어찌 됐건 똑같은 윤이든이니까요.]어째서 스물셋의 과거가 미래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면…….
마침내 연결된 통화에 그는 상대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선수 쳐 운을 떼었다.
“그냥 한여름 밤의 꿈처럼 듣고 잊어버려도 돼. 너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서른 살 먹은 빌어 먹을 견하준에게 하는 말이니까.”
한숨 섞인 말을 내뱉은 윤이든이 연습실 거울에 등을 기대며 마음에 깊숙이 담고 있던 그 말을 꺼내 놓았다.
“딱 한 번만이라도 답장 좀 해 주지 그랬냐, 망할 자식아.”
앞머리를 쓸어 올린 윤이든이 물기 섞인 실소를 터트렸다.
“난 진짜로 그거 하나면 됐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한테 괜한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각하니 비교적 차분히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수가 있었다.
만약 서른 살의 견하준이 그의 앞에 있었다면, 글쎄…… 지금 같은 차분한 분위기는 기대하지 못하겠지.
-우리 사이에 빚이 어디 있다고 청산했으니 얼굴 볼일 없는 사이라고 그래. 너한테는 우리 우정이 그냥 채무 관계였던 거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윤이든의 질문에 견하준은 문득 LnL에서의 연습생 시절을 떠올렸다.
뉴본에서의 여유만만하던 모습과 달리 날카롭고 신경질적이기 그지없었던 윤이든.
그런 그를 보며 쌓아 올렸던 죄책감과 툭 하면 터질 것만 같은 멤버들 사이를 중재하며 느끼던 부담감.
독감에 걸려 앓아누웠던 날 밤, 윤이든이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고 제게 직설적으로 말하고 나서야 한결 가벼워지던 마음 역시.
그리고, 언제든지 제 쪽에서 저를 손절할 것처럼 굴던 윤이든의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그럴 일이 없는데 왜 저렇게 확신하는 것처럼 굴까 답답하기만 했는데, 그게 그저 지레 하는 걱정이 아니라 제 경험에 의한 확신이었다면.
만약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견하준이었다면, 그걸 정말로 부채감으로 차곡차곡 마음에 쌓아 놓고 있으리란 걸 스스로가 제일 잘 알아서.
“아마 그 머저리는 답장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답장하는 게 무서워서 못 하고 있었을걸. 자기가 먼저 놓은 사람을 다시 돌아보는 게 무서워서.”
윤이든이 코웃음 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웃기는 소리 한다. 야, 내가 너를 몰라? 네가 그런 거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
“다른 사람이면 그랬을 텐데, 넌 다른 사람이 아니잖아.”
-네가 어떻게 알아. 지금의 너는 나랑 손절도 안 했으면서.
퉁명스러운 물음에 견하준이 대답했다.
“네가 윤이든이듯 나도 견하준이니까.”
빙글, 의자를 돌리며 작업실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본 견하준이 헛웃음 서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맞아, 사실 지금도 당장 용한 무당집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
돌아오는 윤이든의 대답이 없자, 그가 덧붙였다.
“그런데 이게 네 말대로 한여름 밤의 꿈이라면, 이 정도 말쯤은 해 줄 수 있잖아.”
여전히 작업실에는 담배 냄새가 머물러 있었다. 차라리 담배까지 입에 댈 정도로 힘든 일이 있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그 머저리에 겁쟁이 자식 너무 원망하진 말라고. 대신 미안하다.”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게, 견하준이 담담하게 사과했다. 그냥, 이렇게 지나갈 한여름 밤의 꿈이라 생각하니 자신의 잘못이 아닌 걸로 사과하는 것도 딱히 억울하지는 않았다.
-……너 같으면 원망 안 하겠냐?
한결 감정을 내려놓은 것 같은 윤이든의 목소리를 들으며 견하준은 그제야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다시 연습실.
-숙소는 언제 들어올 거야?
견하준의 물음에 윤이든은 연습실 바닥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대꾸했다.
“오랜만에 연습으로 밤새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언제까지 대형 한 자리 비워 놓고 연습할 수는 없잖냐.”
-그래, 몸 안 상하게 컨디션 봐 가면서 적당히 하고.
끊긴 통화에 휴대폰을 옆에 두고 윤이든은 다시 음악을 틀었다.
귓전을 울리는 음악 스타일이 빌어먹게도 익숙해서 기분이 참 묘했다.
* * *
이튿날, 연습실.
밤을 새운 윤이든을 마주한 김도빈은 대체 무슨 불법을 저지르셔서 숙소에도 못 들어오셨냐고 쏟아 내고 싶은 물음을 겨우 삼켰다.
오늘도 익숙하게 윤이든의 대형을 비운 채 연습하려던 순간, 윤이든이 대형에 들어왔다.
동선만 살짝 엇갈릴 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안무를 해내는 윤이든을 보며 김도빈은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이게 가능……? 그것도 단 하루만에……?’
마치 크툴루 세계관에서 산치체크를 한 기분이었다.
내가 미친 건가, 이든이 형이 미친 건가, 아니면 이 세상이 미친 건가.
‘이러면 내가 진짜로 장난친 게 되어 버리잖아……!’
저를 돌아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류재희에게 다급히 억울하다는 사인을 보낸 김도빈이 윤이든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절대로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찰하는 거였다. 오해는 곤란했다.
‘우리 이든이 형으로 다시 돌아왔나?’
여전히 안광 없는 동태눈깔을 보니 아직은 악귀이든인 듯했다. 조금 안광이 생긴 것 같긴 해도.
연습이 아무 문제 없이 평탄하게 끝나고, 작업실로 가자마자 김도빈은 윤이든에게 나뭇가지 움켜쥔 원숭이처럼 대롱대롱 매달렸다.
“형, 대체 어제 뭐 하셨는지만 말해 주시면 안 돼요? 저 진짜로 너무 불안해서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잠을 못 자겠어요.”
“9시 뉴스 메인에 뜰 짓은 안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니까 그 짓이 뭔지 제발 좀…….”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애원하자 픽 웃은 윤이든이 김도빈을 떼어 내고 오른팔 소매를 걷었다.
드러난 팔뚝을 본 김도빈의 입이 자동으로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