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1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17화(217/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17화
“……세요. 아침이에요.”
누군가의 흐릿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불이 확 거두어 졌다.
지끈거리는 머리와 무거운 몸은 왜인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어어, 그래…….”
대충 대꾸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몸이 나른해서 그런지 일어나기가 싫었다.
마지막 기억이 뭐였더라.
오류가 떴답시고 글자가 잔뜩 깨진 채 새빨개진 상태창? 말도 안 되는 그 빌어먹을 회귀 페널티?
잠깐, 회귀?
나 또 스X지 실험맨 의상 입고 <내 우주로 와> 불러야 해? 이제까지 보내왔던 그 전쟁 같은 세월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고?
몸에 닿는 찬 공기에 퍼뜩 눈을 뜨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 끔찍한 반지하 첫 숙소가 아니라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익숙한 방 천장이 맞았다. 그제야 안심하고 몸에 힘을 쭉 뺐다.
내 눈앞에 김도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김도빈이 나보다 먼저 기상해서 나를 깨울 리가 없는데 저건 뭐지.
“내가 잠이 덜 깼나…… 입맛은 또 왜 이렇게 써?”
마치 알약을 물 없이 씹어먹은 듯한 엿 같은 텁텁한 쓴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김도빈이 공손히 내미는 물잔을 원샷하고 세수로 잠 좀 깰 겸 화장실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른쪽 소매를 걷는 순간, 뭔 놈의 영어 문장이 보였다.
“To freely…… bloom…….”
더듬더듬 문장을 읽어 나가던 나는 등골을 타고 오르는 소름에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이런 미친! 이게 뭐야! 젠장, 이거 왜 안 지워져!”
물로 벅벅 문지르고, 비누에, 바디 워시에, 폼 클렌징에, 치약까지 별걸 다 동원해 봤지만 팔 안쪽의 글자는 그대로였다.
피부가 아려 오며 글자가 적힌 부분이 붉게 부어오르는 꼴을 보고 나서야 나는 이게 타투임을 확신했다.
하루아침에 회귀 전과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의를 벗어 재꼈다. 조심스럽게 왼쪽 어깨를 돌리자 반팔 소매로 딱 가려질 만한 위치에 두 송이의 진달래 타투가 작게 박혀 있었다.
이것 또한 회귀 전, 스물네 살에 했던 타투와 똑같았다.
내가 정말로 그때로 회귀한 게 아니면 혹시 내 눈에만 보이는 건가 싶어 상의를 탈의한 채로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아침부터 웃통 까고 뭐 하는 거야?”
서예현이 내게 먼저 말을 거는 걸 봐서는 확실히 내가 돌아오기 전으로 회귀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형, 이거 형 눈에도 보여?”
다급히 왼쪽 어깨를 서예현의 눈앞에 들이대자 서예현이 질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진달래 보여. 그러니까 제발 옷 좀 입어. 나는 아침부터 남의 맨몸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싶지 않아.”
“남자끼리 내외하냐. 내가 무슨 바지를 깐 것도 아니고.”
저기에서 더 질색을 할 수가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 주는 서예현의 표정에 나는 순순히 몸을 돌려 지나가던 류재희를 붙들었다.
“너 이거 보이냐?”
“시력 테스트예요? 그런데 형,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4년 차에 타투를 박으셨어요?”
류재희의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이게 내 눈에만 보이는 게 아니라 남의 눈에도 보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회귀 페널티가 설마…… 신체의 회귀였던 거야?
“잘 가리면 안 들키지 않을까? 연분홍색이라 딱히 튀지도 않고, 레브 데뷔일 탄생화고. 아니면 나중에 멤버들 다 같이 우정 타투로 진달래 똑같이 새기던가.”
5년 차에 새겼을 때도 욕은 딱히 안 먹었던 것 같은데. 물론 그때는 반응을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묻자, 민소매는 이제 꿈도 못 꾸시겠다며 류재희가 혀를 쯧쯧 찼다.
“그나저나 돌아오셨네요, 형.”
뭘 돌아와? 도저히 맥락을 모르겠는 류재희의 말을 들으며 식탁에 앉았다.
냉큼 내 옆자리에 앉은 김도빈이 감격 어린 얼굴로 팔을 쫙 벌렸다.
“이든이 형, 보고 싶었어요!”
“얘 왜 이래? 뭐 잘못 먹었냐?”
시스템 오류로 내가 아니라 김도빈이 회귀했다가 돌아온 거 아니야?
질색하며 몸을 피하자 김도빈이 팔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나를 턱, 붙잡았다.
“이든이 형,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제 휴대폰 잠금화면의 날짜를 보여 주며 김도빈이 말을 이었다.
“오늘은 1월 18일이에요.”
“그게 왜 놀랄…… 뭐? 13일이 아니고?”
5일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통째로 삭제되었다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뇌에 이상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갑자기 생긴 이 빌어먹을 타투 때문에 c형 간염의 위험성도 생겼으니 아무래도 뇌 MRI까지 포함된 정밀 건강검진을 받아 봐야 할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오늘 연습 빼고 당장 병원부터-.”
“아, 그거 형이 뭐 들려서 그래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김도빈에게 눈을 부라리려다가 전에 한 번 귀신 들린 컨셉을 써먹었음을 겨우 기억해 내고 꾸역꾸역 속으로 삼켰다.
“뭐, 또 귀신 들렸어?”
말이 되냐. 식사 끝나자마자 병원 예약부터 잡는다.
“아니요, 평행세계의 형이요.”
오, 예상보다 더한 개소리군.
밥상머리에서 헛소리하는 김도빈에게 한 소리 좀 해 달라는 뜻으로 견하준을 향해 눈짓하자, 견하준이 고개를 저었다.
저 개소리가 진짜라고? 그러고 보니 류재희도 내게 돌아왔다고 했었지.
시발, 멤버들끼리 말 맞춰 놓고 단체로 깜짝 카메라라도 기획한 거 아니야?
“평행세계? 평-행-세-계에-? 대표님이 그렇게 평행 우주 세계관을 부르짖더니, 다들 세뇌라도 됐냐? 어?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
내 윽박에도 평소였다면 바로 꼬리를 말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전혀 쫄지 않은 기색으로 나를 마주하며 김도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쟤는 5일 동안 무슨 기 단련 혹한기 캠프라도 다녀왔대?
“못 믿겠으면 휴대폰 메모장 봐보라고 전해주래요.”
즉시 숟가락을 놓고 방에 있는 휴대폰을 향해 달려갔다. 메모장을 켜자 바로 그제 날짜로 저장되어 있는 낯선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떨리는 손으로 메모를 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존나 확실한 증명이긴 했다. 타투 위치와 도안은 과거의 내가 아니면 모를 만한 사실이니까.
하지만 회귀 전의 내 마지막 기억은 스물일곱 살, 레브로서의 마지막 스케줄을 앞두고 청담동 집에 막 입주했던 그날이었다.
정신이 회귀했는데, 어떻게 서른 살의 윤이든이 성립할 수 있는 거지?
지끈거리는 미간을 문지르다가 수면제를 토해 내며 보았던 환각을 기억해 냈다.
설마 차연호가 말했던 ‘기억의 왜곡’이 바로 이걸 뜻하는 거였나.
이번에는 시스템이 ㄴ자를 띄우지 않는 걸 보아하니 내 추측이 맞는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메모장의 글을 읽어 나갔다.
[그리고 타투 열 개를 박아도 c형 간염은 안 걸렸으니 걱정하지 마. 전에 했을 때도 딱히 안 걸렸잖아? 설마 겁쟁이처럼 그런 걸로 겁먹고 있진 않겠지?]시발놈아, 이번에는 타투한 날짜가 다르잖아. 미래가 얼마나 사소한 걸로도 휙휙 바뀌는 줄 아냐?
그래서 뇌 MRI는 일단 포기했지만 c형 간염 검사는 포기를 못 하겠다.
[곡 후반부 마무리 작업은 김도빈에게 맡겼으니, 마감 간을 늘리든 네가 알아서 마무리 지어라.]왜 프로듀서로 전향하신 자신이 직접 안 하시고? 내 시간을 뺏었으면 적어도 그건 해 주는 게 인간의 도리 아니냐?
[행복해라, 이번에는.]마지막 문장을 보며 나도 모르게 오른팔의 레터링 타투가 새겨진 곳을 문질렀다.
‘이번에는’ 이라니. 새집에서 페라리 끌고 다니면서 원하던 음악을 마음껏 하고 살아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거야, 뭐야.
일단 이 서른 살 윤이든이 초심도를 얼마나 깎아 먹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1회차에서 단 며칠 만에 초심도를 0으로 만든 전적이 있지 않은가.
[현재 초심도: 41]실화냐.
내가 고이고이 모아 놓았던 초심도를 단 며칠 만에 반 토막, 아니 반 토막보다 더 날려 먹은 거냐.
지금 이래 놓고 나보고 행복하라고? 이 꼴을 보고도 퍽이나 행복하겠다, 이 새끼야.
[위험도를 낮추세요.] [일정 수치 이하로 위험도를 낮춰야지만 위험도가 제거됩니다.]이런 시발, 초심도로도 벅찬데 위험도는 또 뭔데?
[초심도를 높여야지 위험도가 낮아집니다.]지금 오류에 대한 보상을 내놓지 못할망정 위험도인지 뭔지 하는 것까지 나한테 해결하라고?
지랄 말라고 침대 위에 드러누워서 시스템에게 시위하자, 시스템이 간단히 상황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니까, 내게 위험도인지 뭔지를 양도한 외부 공격으로 인해서 내 초심도가 이렇게 깎일 상황이 만들어진 거다?
[정확히는 무한 루프에 갇힐 위험을 만들어 냈죠.] [오류 상태일 때 초심도가 0이 되어 회귀했으면 그 결과가 도출될 확률이 높아지니까요.]의심 가는 회귀자라면 차연호 정도밖에 없었다. 확신을 가지려면 차연호 역시 나처럼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일단은 위클리 퀘스트라도 완수해서 초심도를 올리기 위해 팬카페부터 들어갔다. 압도적인 댓글이 달린 게시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라진 시간에 작성된 게시글이었다. 그것도 내 이름으로. 대체 무슨 짓을 해 놨길래 댓글이 이렇게 폭발했나 싶어 부랴부랴 게시글을 터치하자 너무나도 낯익은 형태의 From 글이 나타났다.
초심도 테라피를 받기 전의 내가 올리던 게시글과 똑같았다.
댓글도 해킹설부터 대리 작성설, 예술병 초입설로 난리가 나 있었다.
안 그래도 지금 타투 때문에 예술병 왔다고 팬들에게 의심받을 것 같은데 돌겠네, 진짜.
일단은 수습이 먼저였기에 다급하게 글 수정을 시작했다.
[From. 이든](거울셀카.jpg)
데이드림, 기체후일향만강하셨어요?
Age is no guarantee of maturity.
새해를 맞이하고 한 살 더 먹으니까 그냥 갑자기 이 문구가 생각나더라고요. 정신 상태는 딱히 철든 것 없이 그대로인데 나이만 올라간 것 같고, 스물세 살의 제가 데이드림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까 고민도 되고. 그래도 최선을 다해 작년보다는 성숙해진 윤이든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 9999
-내 기억이 잘못됐나 이런 글 아니었던 거 같은데
-뭐임 언제 글 수정한 거임
-그래 이든아 네가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지?
-은근슬쩍 넘어가려 해도 흑역사 캡쳐 본 다 있다ㅋㅋㅋㅋㅋ
-앞으로 그런 글 올리려면 적어도 지금처럼 기체후일향만강이라도 붙여 줘 해킹당한 줄 알고 놀랐자너
-엥 김노답 저격이 아니었어?
-네가 말하는 그 성숙이 예술의 성숙만 아니길 바라……
밤하늘 사진도 이전에 찍어 놓은 거울 셀카로 바꾸고 문장도 최대한 쥐어 짜내서 덧붙였다. 대체 왜 이딴 문장을 올려놨는지 감도 안 왔다.
뭘 말하고 싶었던 건데. 서른 살 윤이든의 대가리는 덜 여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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