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2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20화(22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20화
“오늘 회의를 또다시, 웁스, 내가 무슨 말을…… 또 한 번 하게 되겠군요.”
제 입을 틀어막았다가 고쳐 말하는 류재희를 기가 막히다는 눈으로 돌아보았다.
김도빈이 저러면 이해라도 하지, 류재희 너까지 물들면 어떡하냐.
“아니, 대체 ‘다시’가 뭐가 어쨌다고 너구리에 다시마 두 개 나왔다는 말도 못 하게 해?”
“repeat이라는 단어에 노이로제 걸렸어요.”
내가 아무리 이틀 전에 녹음할 때 ‘다시’를 평소의 배로 말했다고 해도 이건 너무 오버 아니냐?
하지만 견하준까지 그 금지어 행렬에 가담하는 꼴을 보자 내가 좀 심하긴 했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하긴, 견하준은 함께 레브로 곡 작업을 했던 4년 동안 내가 그렇게 날카롭게 구는 걸 몸소 체험하지 않은 유일한 1인이었으니 이번 작업이 좀 빡셌겠지.
내 곡이 김노답픽이라는 충격에 신경이 약간 날카로워져 있던 것도 한몫했다.
이번 곡이 대표님 픽이라는 충격이 너무 강렬했기에, 이번에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하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틀간의 편집 작업으로 완성본이나 다름없는 음원이 회의실에 울렸다.
이전 회의 때는 각각 데모곡의 가이드보컬이 달랐다면 이번에는 두 곡 다 똑같이 레브 멤버들의 목소리가 입혀졌기에 비교가 더 쉬웠다.
“그러면 거수하겠습니다.”
곡 이름을 말할 때마다 사방에서 손이 번쩍 올라갔다. 류재희는 이번에는 를 선택했다.
바뀐 류재희의 선택은 그렇다 쳐도, 이틀 전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에 눈을 깜빡이다가 옆에 앉아 있던 류재희를 향해 몸을 기울여 물었다.
“분명 이틀 전에는 투표수랑 <다시 시작해> 투표수가 엇비슷하지 않았냐?”
내 프로듀싱이 곡의 매력을 너무 잘 살려 낸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곡 수정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압도적으로 결과가 뒤바뀔 만한 일이 있나?
“그러게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들으니까 가 더 좋게 느껴지긴 해요. 아니, 진짜 사감 다 제외해도.”
평소였으면 뒷심이 좋은 노래라고 넘겼을 테지만, 여전히 에 표를 주고 계시는 대표님이 너무 찝찝했다.
“대표님, 혹시 <다시 시작해>가 더 마음에 드시는데 제 체면 세워 주시려고 이러시는 건 아니죠?”
희망을 가지고 묻자, 대표님이 굉장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마음에 든다니까? 오랜만에 내가 우리 직원들, 그리고 우리 아티스트랑 마음이 맞네. 나도 이제 안목이란 게 좀 길러진 건가? 하하하.”
뿌듯하게 웃는 대표님을 향해 대표님이 외면하시는 진실을 말씀드렸다.
“대표님 취향은 메인스트림에서 항상 벗어나시잖아요. sf 불모지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꿋꿋하게 우주 세계관을 미시는 것부터 영…….”
이번에도 제발 대표님이 그놈의 우주 콘셉트를 밀지 않기만 바랄 뿐이었다.
대부분 류재희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처음 들었을 때 귀를 잡아끌었던 건 <다시 시작해>지만 귀에 익은 상태에서 다시 들으니 더 괜찮게 느껴지는 건 라고.
다르게 말하면 두 번 이상은 들어야지 귀에 익는다는 소리였다.
‘진짜 괜찮은 거 맞나…….’
대표님 픽인 것부터 이 평가들까지, 찝찝하지 않은 게 없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성의 방향을 넓힌 곡이기도 했고, 곡을 다시 만들 시간도 없었기에 이번 미니 앨범의 타이틀곡은 그렇게 로 정해졌다.
이틀의 텀을 두고 바로 이어진 콘셉트 회의는 드디어 LnL이 조금이나마 좆소에서 벗어났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스크린 보드에 뜨는 정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감탄을 내뱉었다.
“와, 이틀 만에 저렇게 만드는 게 가능해?”
“제가 듣기로는 혹시 몰라서 <다시 시작해>랑 랑 두 버전 모두 미리 만들어 뒀대요.”
“타이틀곡 선정 전에?”
“네.”
우리도 가내수공업 아이돌 시절이 있었기에 나름 준비를 해 왔지만, 저 깔끔한 PPT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떻게 실장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기획팀이 저렇게 달라지지. 젠장, 그 낙하산 진작 쫓아낼걸.
“아시다시피 ride or die라는 말이 보니 앤 클라이드 영화에서 나온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영화를 오마쥬 형태로 뮤직비디오에서 차용을 해 보는 게 어떨까 싶거든요.”
“컨셉은 레트로 컨셉으로 가는 편이…….”
‘ride or die’를 ‘의리 빼면 시체’로 해석하고 무슨 마피아와 한국 느와르 짬뽕 콘셉트로 잡아 놨던 우리 아이디어를 조용히 치웠다.
그래, 이제 와서 생각하는 건데, 이 곡을 마피아처럼 정장 쫙 차려입고 부르기는 좀 그랬어.
“혹시 레브 분들은 다른 의견 있으세요?”
“저희는 마피, 읍!”
해맑게 입을 열려고 하는 김도빈을 발견하고 그 옆에 앉아 있던 견하준을 향해 빠르게 눈짓을 보내자, 견하준이 즉시 김도빈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요, 저희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레트로풍. 곡이 퓨쳐 하우스 장르기도 하고, 잘 어울리겠네요.”
그렇게 LnL은 본격적으로 레브 미니 4집 앨범 준비에 들어갔다.
* * *
스케줄로 인해 추석 연휴를 보내지 못했던 걸 이유로 소속사에서는 우리에게 설 연휴에 3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소속사가 얼마나 바쁜지 알고 있던 터라 사흘도 감지덕지했다.
오늘 팬분들께 보내는 설 인사 영상만 찍으면 그 후로는 사흘간 쭉 휴가였다.
물론 이번 휴가 때는 강제로 할아버지 집에 끌려가게 생겼기에 휴가가 전혀 즐겁지는 않았다.
또 친척들 다 모인 앞에서 딴따라 어쩌고 하며 내 직업을 비하하실 할아버지를 위해 미리 효륜디스랩 2탄 가사도 끄적이고 있는 중이었다.
1탄은 프리스타일이어서 아쉬움이 좀 남았기에 이번에는 제대로 해 보자는 의미로다가. 지금 시간 날 때 비트도 미리 찍을까 고민 중이었다.
내 딴에는 효륜디스랩 2탄을 선보이느니 그냥 휴가 안 보내고 일하는 게 더 나을지도?
하지만 내가 소속사에 그렇게 건의를 했다간 멤버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기에 그냥 내 한 몸 희생하기로 했다. 일단 류재희는 내 편일 것 같긴 한데.
콘서트 초대석 티켓도 소속사에서 전달받았겠다, 부모님이랑 윤정아에게 레브 첫 콘서트 티켓을 직접 전달은 해 줘야지.
“분명 얼마 전에도 한복 입고 영상 인사를 찍었던 것 같은데. 또 금방 다시 찍네.”
“형, 그건 신년 인사고, 이건 설날 인사.”
스튜디오에 들어가며 막내 라인이 시시덕거렸다.
우리 앞에 놓인 건 매번 맞춰 입던 평범한 남자 한복이 아니었다.
“이건 또 뭐야?”
겹치는 게 하나도 없는 한복을 보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려 미간을 문질렀다.
가족이 되라 했더니 화목한 유사 가족이 아니라 별걸로 다 싸우는 현실 가족이 되어 버린 우리는 명절 인사를 찍을 때마다 한복 색깔로도 치열한 접전을 벌여 댔기 때문이다.
선호하는 색깔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날 끌리는 색깔이 다들 겹치는지.
“아니, 형. 왜 이렇게 대여했어?”
매니저 형을 돌아보며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매니저 형이 대답했다.
“너희들이 맨날 그놈의 한복 색깔로 싸워 대는 게 지겨워서 그런다, 지겨워서.”
“그렇다고 우리가 안 싸울 건 아닐 텐데. 분명히 또 취향 겹치는 인간들 나온다니까? 그리고 싸우는 게 보기 싫으면 대체 저 두 개는 왜 대여한 건데?”
종류는 남색의 왕세자 곤룡포, 갓과 옥빛 두루마기 한 세트, 사극 드라마에서 무관들이 많이 입는 흑색 철릭, 고등학교 시절 한자 선생님을 떠올리게 만드는 개량 한복, 여성용 한복, 이렇게 다섯 가지였다.
일단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두 개는 수요가 없으리란 건 확실히 알겠다.
일단 수요조사부터 먼저 해 보기 위해 멤버들을 모았다.
“야, 일단 셋 세면 자기가 입고 싶은 거 손가락으로 짚어 봐. 하나, 둘, 셋.”
내가 셋을 세기가 무섭게 모두의 손가락이 왕세자 곤룡포를 가리켰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겉보기에 제일 까리한 건 철릭이었지만 다들 권력을 잡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 멤버들, 그렇게 안 봤는데 참으로 야망 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고개를 끄덕이며 비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옆에서 나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류재희가 입을 열었다.
“그렇죠. 역시 이럴 땐 레브 회의를-.”
“리더의 권한으로 리더인 내가 곤룡포를 입는 걸로.”
류재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덥석 곤룡포를 집어 들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사방에서 야유와 함께 반박이 날아들었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야, 이건 아니지!”
“맞아요, 형! 이건 권력 남용이에요!”
“그래, 이든아. 이건 아니지.”
“권력 남용인가, 악용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뭐라는 거야, 도빈이 형.”
쏟아지는 타박에도 곤룡포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로 일단 우기고 봤다.
“이럴 때라도 리더 감투 맛 좀 봐 보자! 평소에는 쓰지도 못하는데!”
“뭐라고? 네가 평소에 리더 권력을 안 휘두른다고? 무슨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를. 내가 맏형 권력을 못 휘두른다는 말이면 몰라.”
서예현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나도 맏형 권력이 없다는 말에 욱해서 대꾸했다.
“그거야말로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지. 형이 우리가 간식 먹을 때마다 칼로리 읽어 보라고 난리 칠 수 있는 이유가 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대체? 김도빈이나 류재희가 그래 봐라. 우리가 콧방귀나 뀌나.”
그런 우리의 대치를 강 건너 불구경처럼 보고 있던 매니저 형이 힘없이 말했다.
“아니, 얘들아. 싸우지 말라고 다양하게 구비해 왔더니 왜 또 싸우냐…….”
“엥, 이건 싸우라고 가져온 거 아니었어요? 우리를 안 싸우게 만들려면 똑같은 곤룡포 다섯 장을 가져왔어야죠.”
김도빈이 해맑게 팩폭을 날렸다.
“정정당당하게! 레브 제5백…… 몇 회였더라.”
잠깐 말을 멈춘 류재희가 제 휴대폰을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레브 제501회 회의로 결정하죠!”
“회의가 무슨 소용이 있어! 다들 곤룡포 입겠다고 우길 거잖아!”
필사적으로 곤룡포를 사수하며 외쳤다. 분명 영상 찍으면서 꽁트를 할 게 분명한데 내가 왕세자의 자리를 양보할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