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2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22화(22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22화
이미 우리 부모님께 허락은 맡아 놨고, 류재희가 오케이하기만 하면 됐다.
“형, 조부님 댁 가야 한다고 안 했어요? 가기 싫다고 하도 노래를 부르셔서 저도 형이 이번 설에 형 조부님 댁에 강제로 끌려가는 것쯤은 알고 있거든요.”
류재희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도 매정한 거절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아하니 류재희도 내심 숙소에 사흘 동안 혼자 남아 있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괜찮아, 어차피 거기에서 하룻밤 잘 것도 아니고. 그냥 차례 지내고 세배 드리고 식사만 하고 오는 건데, 뭐. 차례 지내는 거 보기 싫으면 어차피 내 차 끌고 갈 거라 우리만 좀 늦게 가도 돼.”
류재희가 제사를 지긋지긋해하는 걸 알았기에 선택지를 끼워 넣었다.
물론 할아버지가 조상 차례상에 절도 안 올린다고 난리 치실 게 뻔했지만, 어차피 먹금 정도야 익숙했다.
“사흘간 내 본가에서 같이 있어. 굳이 여기에서 혼자서 배달 음식 시켜 먹지 말고. 너 요리도 못 하잖아.”
류재희는 레브의 공식 요리 개노답이 아니던가. 김도빈은 뵈프 부르기뇽인지 갈비찜인지를 성공시키고 요리 개노답 형제에서 벗어났으니까 말이다.
나는 고난도 요리인 회오리오믈렛을 할 줄 아는데 왜 요리 개노답 삼 형제로 저 두 녀석과 싸잡아 묶인 건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그래, 막내야. 이든이 형 따라가. 그냥 휴가도 아니고 명절 연휴인데 혼자 숙소에 남아 있으면 쓸쓸하잖아.”
김도빈도 류재희 혼자 남게 된 게 마음에 걸렸던 듯, 류재희 회유에 동참했다.
“기왕이면 나도 너 데려가고 싶긴 한데 우리는 명절에 할머니 댁 가면 항상 하룻밤 자고 와서…… 아무래도 네가 부담스러울까 봐.”
김도빈이 볼을 긁적이며 말끝을 흐렸다.
“저 진짜 괜찮아요, 형들. 원래 명절은 가족들끼리 단란하게 보내는 거잖아요. 제가 무슨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제가 집에 가기 싫을 뿐이라 그렇게 배려 안 해 주셔도 돼요.”
류재희가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듯 씩 웃었지만 무려 회귀 전후를 합쳐 저 녀석을 10년을 넘게 봐 온 나한테는 씨알도 들어 먹히지 않았다.
“야, 이런 기회 흔치 않다. 준이도 내 본가만 와 봤자 친가까지는 못 와 봤어.”
“하준이 형도 딱히 형 친가까지 가고 싶지는 않으실 텐데요.”
내 옆에 있던 견하준이 류재희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한데, 나도 재희 네가 이번에는 이든이를 따라갔으면 해. 혼자 있을 때 만약 응급 상황이라도 생기면 혼자서는 대처가 힘들잖아.”
그 말에는 반박할 수가 없었는지 류재희가 입을 꾹 다물고선 눈만 깜빡였다.
“물론 무슨 일이 안 생기는 게 제일 베스트이긴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견하준이 덧붙인 말에 잠시 고민하던 류재희가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사흘 동안 신세 좀 질게요, 형. 잘 부탁드려요.”
단 세 마디로 류재희 설득에 성공한 견하준을 보며 감탄했다. 설득은 바로 저렇게 하는 거구나.
“그럼 예현 형도 없겠다, 다들 각자 본가로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마지막 만찬이나 즐기고 가자.”
“예현이 형이 명절 음식 조심하라고 한 지 아직 30분도 안 지나지 않았어요?”
“예현 형은 명절 음식을 조심하라고 했지, 배달 음식을 조심하라고는 안 했어.”
서예현 몰래 꽁쳐 놨던 치킨 쿠폰 뭉치를 꺼내어 거실 탁자에 촤악 펼치며 대꾸했다.
그렇지만 우리도 앨범 준비 겸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는 의식 정도는 있었기에 튀긴 치킨이 아닌 구운 치킨과 노 콜라, 노 맥주로 합의했다.
“그런데 류재 너는 아예 집 안 가려고?”
치킨을 먹으며 눈치 없이 묻는 김도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류재희가 지금까지 보인 모습을 보면 제 가정사를 드러내는 걸 꺼렸다. 굳이 거기에다가 대고 물어보는 것도 실례였다.
그런 나를 향해 괜찮다는 듯 짧게 고개를 저은 류재희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응, 맨날 전화랑 문자로도 돈 떨어졌으니까 돈 보내 달라고 독촉하는데 얼굴 보면 얼마나 더하겠어. 그래서 그 꼴 보기 싫어서 안 가려고. 이든이 형 충고대로 내가 끊어 내야 하는 것도 있고.”
제게서 뚝 멈춘 세 개의 시선을 하나하나 마주한 류재희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냥, 형들이라면 털어놔도 된다 싶어서요. 언제까지 이유 모를 걱정을 안겨드릴 순 없으니까.”
견하준은 류재희가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은 것에 한결 안도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회귀 전 류재희는 멤버들에게 끝까지 가정사를 털어놓지 않았다. 나야 그냥 어쩌다가 통화를 들어서 대충이나마 알게 된 거지.
그때는 그냥 저 녀석의 자존심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부긴 해도 이렇게 털어놓는 모습을 보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저 녀석도 기댈 곳이 필요했었나 보다. 회귀 전의 우리는 그 ‘기댈 곳’이 못 되어 줬을 뿐이고.
치킨을 씹고 있는데도 어쩐지 입맛이 썼다.
“여기도 나름 가족이잖아요. 유사 가부장 가족이긴 해도.”
“류재……!”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로 치킨을 입에 넣던 김도빈이 가족 선언에 벅차올랐는지 기름기가 고스란히 묻은 손으로 와락 류재희를 껴안았다.
“힘들면 언제든지 기대!”
“아니, 형은 좀 기대기가 그래…… 뭔가 동생에게 기대는 거 같아서 양심에 찔린달까…….”
“동생이라니! 내가 엄연히 형이거든?”
그런 김도빈을 향해 팬들이 부르는 네 별명이 레브 비공식 막내라는 건 아느냐고 말해 주려다가 징징거리는 거 듣기 귀찮아서 속으로 삼켰다.
* * *
“과일 세트 하나면 충분하다니까 무슨 홍삼에 한우 세트까지 사.”
“남의 집에 초대받아서 가는데 이 정도는 챙겨야죠.”
“빈손만 아니면 됐지, 뭘.”
선물 세트를 양손 가득 바리바리 챙기는 류재희를 보며 혀를 찼다.
트렁크에 선물 세트를 싣고 차 조수석에 탄 류재희가 휴대폰에 띄운 지도를 보여 주며 내게 물었다.
“아 참, 형. 죄송한데 형 본가 가기 전에 한 군데만 들렀다 가도 될까요?”
“어어, 내비에 주소 찍어.”
류재희가 찍은 주소에 도착해 근처에 차를 대자 두 명의 소년이 보였다.
“큰형!”
서 있던 소년들 중 키가 큰 쪽이 류재희를 보자마자 살갑게 손을 흔들었다. 낯익다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기는 한 얼굴들이었다.
회귀 전에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던 류재희의 두 동생은 다시 봐도 신기할 정도로 류재희와 닮은 구석이 없었다.
각각 두 살, 세 살 아래라고 했던가. 둘째 동생은 벌써 류재희와 엇비슷할 정도로 키가 훌쩍 컸지만, 첫째 동생은 과거의 류재희를 떠올리게 만드는 키였다.
“자, 부모님한테는 형 만났다고 하지 말고 몰래 써. 만약 이거 들켜도 형이 부모님한테 생활비 모자라지 않게 부쳐드리고 있으니까 돈 부족하다는 협박에 뺏기지 말고. 알았지?”
“응, 큰형. 고마워.”
숙소에서는 막내였던 녀석이 형이라 불리고, 형 역할을 하는 걸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봉투를 받자마자 열어서 안의 내용물을 확인해 본 첫째 동생이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뭐야, 겨우 50만 원밖에 안 줘?”
“류재경, 너는 저번에 100만 원 줬더니 70만 원을 게임에 다 썼잖아. 30만 원만 주려다가 50만 원 준 거야.”
류재희의 일갈에 미간을 잔뜩 구긴 첫째 동생이 짜증 어린 소리를 내질렀다.
“아, 50만 원으로 뭘 하라고!”
뒤에서 지켜만 보다가 저 싸가지를 도저히 두고만 볼 수가 없어서 성큼 나섰다.
“야, 인마.”
반항적인 눈빛으로 삐딱하게 고개를 돌리던 류재희 첫째 동생이 류재희 뒤에서 걸어 나온 나를 마주하자마자 빠르게 시선을 아래로 처박았다. 그런 녀석의 앞에 서서 훈계를 시작했다.
“형이 용돈을 줬으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지, 어디서 금액 가지고 투정이야?”
잔뜩 경직된 녀석의 몸이 내 타박에 간헐적으로 움찔거렸다.
“누가 받자마자 용돈 준 사람 앞에서 용돈 얼마 줬는지 세어 봐? 네가 얘한테 돈 빌려줬어? 재희가 너한테 돈 빌려준 거 갚은 거냐? 그래서 맞는지 금액 세어 보는 거야?”
“아니요…….”
남의 집 동생을 너무 잡는 건가 싶어 힐긋 류재희를 돌아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어 안도하고 마저 잡았다.
“어린놈이 태도가 기본이 안 되어 있어. 앞으로 돈 받을 때도 계속 그래라? 어?”
“죄송합니다…….”
“죄송해? 나한테 왜 죄송해? 느이 형이 용돈 줬지, 내가 줬어?”
다급하게 류재희를 향해 몸을 돌린 녀석이 순순히 류재희한테 사과와 감사의 말을 건넸다.
“미안해, 형. 용돈 줘서 고마워.”
“그래, 용돈 받을 때는 그렇게 받아야지.”
혀를 한 번 차고는 지갑에서 5만 원권 두 장을 꺼내 류재희의 두 동생에게 각각 한 장씩 건넸다.
“자, 너희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형형, 안 줘도 돼요. 얘네는 형한테 세배도 안 했는데 뭐 하러 세뱃돈을 줘요.”
“땅바닥에서 세배를 어떻게 시키냐?”
류재희가 만류했지만 류재희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어 주고 쭈뼛거리는 녀석들을 향해 손짓했다.
“감사합니다!”
이제 좀 학습이 됐는지 깍듯이 인사하며 돈을 받는 류재희 첫째 동생을 향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를 건네주었다.
“너 인마, 너는 게임에다가 그렇게 돈 막 쓰지 말고. 현질하는 그 게임 평생 할 거 같지? 나도 어렸을 때는 내가 스타랑 서든 평생 할 줄 알았다. 그거 나중에 게임 접으면 네가 과금한 그 돈 다 날리는 거야. 얼마나 아깝냐.”
첫째 동생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간절한 눈빛으로 류재희를 연신 힐긋거렸다.
내 팔을 살짝 잡아당겨 말을 잠시 멈추게 한 류재희가 동생들에게 콘서트 초대석 티켓을 건넸다.
“올 수 있으면 와. 꼭 안 와도 돼.”
어떤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이는, 첫째 놈의 콘서트 티켓을 보는 눈빛에 경고 겸 한 소리 했다.
“그거 팔지 마라. 팔았다가 들키면 우리 막내네 동생이고 뭐고 없다.”
“넵!”
녀석이 군기 바싹 들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형이 안 가도, 나라도 꼭 갈게, 형.”
류재희네 둘째 동생이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류재희가 피식 웃으며 제 막냇동생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었다.
저 손버릇이 참으로 익숙했다. 이래서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마시지 말라더니.
“류재경 그렇게 얌전한 거 처음 봐요. 형이 어지간히 무섭긴 했나 봐요.”
동생들을 먼저 보내고 다시 차에 타며 류재희가 키득거렸다.
“너는 동생이 그렇게 기어오르는데 그걸 내버려두냐.”
“그러게요. 제가 그래도 형이라 마냥 오냐오냐해 주다 보니까 그렇게 됐나 봐요.”
씁쓸하게 웃는 류재희의 머리를 거친 손길로 헝클여 주고 차 시동을 걸었다.
본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포도가 나를 맞이하듯이 제일 먼저 달려 나왔다.
“포도!”
껴안아 주기 위해 팔을 넓게 벌린 나를 쌩 지나쳐 간 포도가 류재희의 다리에 매달려 꼬리를 마구 흔들어 대며 헉헉거렸다.
“포도야……? 형 여기 있는데……?”
류재희에게 쓰다듬을 받는 포도의 뒷모습을 보며 처량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술 먹고 귀소본능을 발휘해서 본가로 온 그날 아침에 나를 반겼던 건, 나를 기억해서가 아니라 설마 내가 낯선 사람이라 그랬던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