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2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23화(22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23화
한창 포도를 쓰다듬고 있던 류재희가 허망해하는 나의 표정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슬쩍 포도를 떠밀었다.
“너는 가족한테 먼저 가야지. 낯선 사람을 먼저 반기면 어떡해.”
류재희의 말에도 나를 힐긋 보더니 홱 고개를 돌리는 포도를 덥석 잡아 올려 눈을 맞췄다.
“얌마, 포도. 너, 형 기억해서 그렇게 반긴 거 아니었어?”
포도가 콧방귀를 뀌었다.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귀를 의심하고 있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마자 포도가 당장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이를 드러내며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성깔이 그대로인 걸 보니 건강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놓였다.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포도가 꼬리를 흔들며 엄마한테 달려갔다. 맨날 보는 얼굴이 뭐가 좋다고 이 형을 찬밥 신세로 만들어 놓고 떠나니.
애교 섞인 미소를 한껏 장착하고 우리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류재희는 사흘간 잘 부탁드린다며 선물 세트를 건넸다.
그 와중에 류재희가 샀던 선물 세트 중 한 개는 내가 준비한 것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우리 아들, 철들었네. 명절에 알아서 선물도 사 들고 오고.”
다 알고 있다는 눈으로 엄마가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류재희의 성의를 생각해 차마 무어라 대꾸는 하지 못하고 머쓱하게 포도만 쓰다듬었다.
안내받은 손님방에 제 짐을 풀고 내 방으로 포도와 함께 따라온 류재희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방을 구경했다.
“우와, 형. 이거 다 한정판 신발이에요? 와, 형 진짜 힙합 좋아하셨구나. CD랑 LP가 장난 아니네요.”
방을 한 바퀴 구경한 류재희는 내 책상 위에 올려진 액자들로 시선을 옮겼다.
“오, 얘가 바둑이에요? 아, 그래서 예현이 형 백금발 그때…….”
내가 서예현의 백금발과 개 연기 때문에 보인 추태를 기억하고 있던 류재희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형 이때 몇 살이었어요? 바둑이랑 덩치 차이가 얼마 안 나시는 것 같은데.”
“몰라. 한 네 살? 다섯 살? 바둑이가 나 네 살 때 집에 갓 태어난 상태로 처음 왔으니까 저 크기면 바둑이가 1살 정도 됐겠네.”
바둑이를 한껏 끌어안고 있는 사진 속 내 모습을 보며 대충 시기를 짐작했다.
“세상에, 이든이 형한테도 이렇게 귀여웠던 시기가 있었다니.”
김도빈한테 보여 줘야겠다며 폰으로 액자 사진을 찍으며 류재희가 키득거렸다.
“야, 마침 잘됐다. 프롬에 올리게 우리 포도랑 커플 사진이나 찍어 주라.”
휴대폰을 넘기고 포도를 안아 들었다. 비록 모델견이 되긴 글렀는지 포도가 협조를 더럽게 안 해 주긴 했지만, 어찌어찌 사진 찍기에는 성공했다.
[From. 이든](이든_포도_소중히_끌어안은_투샷1.jpg)
(이든_포도_앞발_만세하는_투샷2.jpg)
(포도_앉은_개인샷.jpg)
(포도_앞발_내민_개인샷.jpg)
데이드림, 기체후 일향만강하셨어요? 설 연휴는 잘 보내고 계실까 해서 한번 들려 봤습니다. 가족 혹은 지인들과 함께 즐거운 설 연휴 보내시고 혹시 명절 잔소리에 지치시면 팔순디스랩으로 환기 한 번 시키세요. 저희 집안 디스랩이긴 한데 어느 순간 명절 BGM이 되어 있어서…… 다들 파이팅입니다.
그리고 우리 포도 귀엽죠?
댓글 8715
-마지막 말을 하고 싶어서 프롬 올린 건 아니지? ㅋㅋ
└사진 보니까 강아지 자랑하고 싶어서 올린듯ㅋㅋㅋ
-이든이도 개아범이었구나 저렇게 꿀떨어지는 눈빛 처음 봐
└ㄹㅇ 비견하준 밈 있는 하준이도 저렇게는 안 본 거 같은데
-비(非)포도 차별을 멈춰 주세요
-강아지 앞에서는 무장해제네ㅋㅋ 2짤에서 웃는 거 진짜 순해 보인다
└강아지가요 이든이가요?
└당연히 이든이죠,,, 지금 2짤 포도는 웃긴커녕 이빨 드러내고 있는데요,,,
-포도 ㄱㅇㅇ 이제까지 왜 안 올려 줬어ㅠ
-환기시키라는 게 혹시 디스랩 나 혼자만 들으라는 거야, 아니면 다 들리게 어른들 앞에서 틀라는 거야?
└당연히 이든이라면 후자지
└보통 멘탈로 그게 가능하냐고ㅋㅋㅋ
* * *
구정 아침이 밝았다. 아침에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떡국으로 식사를 마친 후, 친가로 향할 준비를 했다.
“막내야, 같이 가자.”
“아니, 가족분들끼리 모이는데 제가 따라가는 것도 좀…….”
머뭇거리는 류재희를 설득했다.
“혼자 심심하잖아. 오래 있으면 나도 체하니까 가서 밥이나 한 끼 가볍게 먹고 오게. 거기 밥은 잘 나와. 겸사겸사 세배하고 세뱃돈도 뜯, 아니 받고.”
결국은 설득당해 고개를 무겁게 끄덕인 류재희가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가 내 꼴을 보고 경악했다.
“아니, 형. 그렇게 가도 괜찮은 거예요……?”
귀에 주렁주렁 단 피어싱과 목 끝까지 올려 입은 스포츠 저지. 찢어진 블랙진. 일부러 챙겨 온 반지를 네 개째 손가락에 끼우며 대꾸했다.
“단정하게 하고 가면 할아버지가 좋아하거든.”
“지금 형의 패션은 ‘단정’이랑 거리가 멀지 않아요?”
“그리고 나는 굳이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패션으로 친가를 가고 싶지 않아.”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접은 종이를 돈과 함께 봉투에 넣고 주머니 안에 챙겼다. 일부러 늦장 부린 이유가 다 있었다.
“너! 빨리 옷 다시 안 갈아입어? 팔순 잔치 때도 세상 쪽팔렸는데 오늘도 그러고 갈 거야?”
“어이쿠, 엄마. 우리 늦겠다. 빨리 가자.”
내 꼴을 보자마자 류재희와 비슷한 리액션을 보여 주는 엄마의 등을 떠밀었다.
마침 아버지한테 전화까지 오고 있었기에 내 계획은 완벽히 성공했다.
“우리는 따로 내 차 타고 갈게.”
류재희가 다급히 한우 세트 하나와 과일 세트 하나를 챙겼다. 애초부터 우리 친가에도 드릴 생각으로 두 개씩 산 거였단다.
“그런데 굳이 형 부모님이랑 같이 안 가고 따로 가는 이유가 있어요?”
“그래야지 언제든지 우리끼리 뛰쳐나와서 튀는 게 가능하잖냐. 이게 다 이 형의 빅픽쳐다, 이 말이야.”
류재희의 표정이 이걸 따라가도 되는 건가 고민하는 얼굴로 바뀌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의 추억을 늘어놓았다.
“차 없을 때는 택시 타고 튈 수 있게 택시비 챙겨 갔는데. 추억이다, 추억. 이래서 빨리 나이 먹고 운전 면허 따고 싶었다니까.”
친가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는 역시나 내 옷차림부터 지적했다.
“너는 신년부터 꼴이 그게 뭐냐?”
“그렇죠. 이런 누추한 곳에 너무 귀한 옷을 입고 오긴 했죠. 이거 비싼 거예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며 대꾸했다. 뻣뻣하게 굳어 나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류재희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든이 형이랑 같이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는 류재희라고 합니다.”
조금이나마 표정이 누그러진 할아버지가 류재희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 빈손으로 오긴 그래서…… 이든이 형이랑 같이 준비한 거예요.”
류재희가 선물 세트를 내밀며 살갑게 웃자, 할아버지가 그걸 받아 들며 나를 휙 돌아보았다.
“고맙구나. 잘 먹으마. 그런데 저 녀석이랑 같이 준비했다고? 저 녀석이 퍽이나.”
“예예, 잘 아시네요. 갓 스물 된 우리 막내가 자기 돈 들여서 사 온 거니까 감동하세요.”
혹여 류재희가 민망해할까 봐 끼어들자, 할아버지가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혀를 찼다.
“빈손으로 온 놈이 말이 많다.”
“에엥, 제 얼굴이 그리 보고 싶다 하셔서 친히 시간 빼고 얼굴 비춘 걸로 됐지, 뭘 더 바라시는지? 전 시간이 다 돈이거든요? 이렇게 얼굴 가까이 마주하고 대화하는 거, 우리 팬분들은 돈 쓰시면서 하거든요?”
할아버지에게 내 시간의 가치를 일장 연설하고 있자, 류재희가 다급히 내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사촌들과 데면데면한 인사를 나누었다. 친사촌들과는 성격이나 취향의 결이 달라 딱히 친하지는 않았다.
“다들 반응이 미적지근하네요. 저는 막 사인 요청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다들 범생이라 연예인에 관심이 없어.”
류재희의 속닥거림에 대꾸하자 사촌 누나가 입을 열었다.
“아니야, 나도 요즘 아이돌 알아. 그…… 원세션?”
“누나, 그분들은 요즘 아이돌이라기엔 우리한테도 까마득한 선배님이셔.”
“아, 그래? 너희는 언제 데뷔했는데? 할아버지 팔순 잔치 그때 데뷔한 거야?”
“그때는 데뷔 2년 차인가 그랬어, 누나…….”
타이밍 좋게 도착한 고모네 가족에 의해 다행히 서로에게 상처뿐인 이 대화를 멈출 수 있었다.
오랜만이라고 할머니의 환대를 받는 윤현호(특: S대생, 키 171cm)를 보며 옆에 있던 사촌 형한테 물었다.
“쟤는 왜 한동안 안 왔었어? 쟤가 안 올 리가 없는데?”
친가만 오면 할아버지와 전쟁을 치르던 나와 달리 저 녀석은 조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기에 이곳에 오는 걸 좋아했다.
“이번에 제대했잖아.”
“아, 군대 갔었어?”
그러고 보니 저 녀석과 내가 동갑이니까 그럴 나이군. 하나둘 제대하고 복학한 내 친구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현호와 눈이 마주치자 입 모양으로 뻐끔거리며 말을 전달했다.
‘너지.’
어깨를 으쓱하는 놈을 향해 씩 웃으며 다시 입을 뻐끔거렸다.
‘팔순 잔치 디스랩 영상.’
영상 촬영 각도가 아무리 봐도 딱 저 자식이 있었던 자리더라고. 얼굴이 시퍼레진 놈이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좋아, 이걸로 여기 있는 동안 저 자식 주둥이는 다물게 만들 수 있겠군.
마지막으로 막내 작은아버지네 가족이 도착했다.
류재희를 보자마자 눈을 빛낸 윤정아가 휙휙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내게 물었다.
“예현 오빠는?”
“당연히 자기 집에 갔지. 예현 형이 여길 왜 와?”
내 타박에 눈썹을 축 늘어뜨린 윤정아는 금세 다시 회복해서 내게 공손히 손을 내밀었다.
“세 장 맞냐?”
“넵. 맞습니다, 오라버니. 소인, 이 감사한 마음을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얼씨구, 용돈 줄 때보다 미사여구가 더 화려해, 아주.”
윤정아 친구들 몫까지 챙긴 콘서트 초대석 티켓 봉투를 손 위에 턱 올려 주자 윤정아가 봉투를 소중하게 껴안았다. 그런 우리를 보고 있던 막내 작은어머니께서 한 소리 하셨다.
“윤정아, 너는 오랜만에 오빠 보면 인사부터 먼저 해야지. 어휴, 이든아. 얘가 이런다니까. 굳이 챙겨 주지 마.”
“에이, 별로 안 챙겨 줘요. 이런 거나 한 번씩 챙겨 주는 거죠.”
이어지는 차례상 준비 과정을 보며 류재희가 중얼거렸다.
“와, 진짜 제수용 음식 다 사서 하네요. 저희 집에서는 상상도 못 할 풍경인데.”
육전을 옮기던 할아버지가 그런 류재희를 잠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건 어디에다가 놓아야 하는지 아느냐?”
아니, 왜 남의 집 아들한테 우리 집안 차례상 테스트를 시키시고 그러신데? 누가 보면 무슨 손주며느리감 데려온 줄?
무엇을 물어보든 막힘없이 나오는 류재희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할아버지가 내게 타깃을 돌렸다.
“윤이든, 저건 어디에 놔야 하는지 짚어 봐라.”
“아무 데나?”
힐긋, 아버지가 들고 오는 떡국을 보고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너는 너보다 어린 동생도 척척 대답하는 걸 왜 몰라?”
“요즘 폰으로 검색하면 다 나와요.”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이어질 기세가 보이자 말없이 효륜디스랩 1탄에서 차례상 파트를 최대 음량으로 재생시켰다.
-꼭 족보 없는 상놈 집안이 근본 없는 차례상 규칙에 집착한다던데 우리 집도 혹시?
덕분에 차례상을 다 차리기 전까지 방에 격리 조치되었다. 진작 이럴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