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2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24화(22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24화
격리된 나와 함께 방으로 들어온 류재희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저 맞게 대답한 거 맞겠죠? 너무 갑작스레 물어보셔서 순간 머리가 굳었어요.”
“나한테 묻지 마. 내가 뭘 알아야지 네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지.”
그래도 할아버지의 표정이 만족스러웠던 걸 보아하니 류재희가 오답을 내뱉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제게 테스트를 하신 건지……?”
“설마, 그거 때문에 그런가? 우리 추석 때 레브타임 추석 특집 보셨다고 했단 말이야. 그때 네가 차례상 캐리했잖아.”
와, 초반만 보다가 끄신 줄 알았는데 거기까지 보셨다니.
추석 특집이 은근 할아버지의 취향을 저격했던 게 틀림없었다.
저 영감님이 내 얼굴 하나 보려고 재미없는 걸 계속 보고 있을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흠, 그럼 <레브 Time>이 전 연령대의 취향을 아울렀다는 소린가. 설마 올드했다는 뜻은 아니겠지?”
심각해진 내 중얼거림에 휴대폰을 가로로 쥔 윤정아가 방으로 들어오며 대꾸했다.
“아니, 올드하지는 않았어. 그냥 내가 리모컨을 필사적으로 사수하고 있어서 못 돌리신 거거든.”
“아, 어쩐지.”
그래, 할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지. 거의 휴대폰 안으로 들어갈 것처럼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는 윤정아에게 물었다.
“방금 준이 목소리 들린 것 같았는데, 뭐 보냐?”
“응? 방금 올라온 레브 설날 인사.”
“오, 벌써 업로드됐어? 빠르네.”
“오빠 덕분에 이걸 미리 찍어 놨다는 걸 이렇게 자각하게 되니까 기분 진짜 이상해.”
나 한 번, 동영상 한 번 돌아보며 윤정아가 김샌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왕세자 곤룡포가 서예현과 너무 찰떡이라며 듣고 있기 힘든 주접을 내뱉기 시작했다.
잘 찍혔나 궁금해진 우리도 슬쩍 윤정아의 옆으로 가서 동영상을 구경했다.
인사말과 큰절이 끝나고 이어지는 쿠키 영상에 이제야 전위를 알아채고 이마를 짚었다.
“와, 어쩐지 특이한 한복들도 대여해 왔다 했다!”
“그래도 영상 편집 담당 바뀌었나 봐요. 이전에는 편집 대충 하고 그냥 올리더니, 이번에는 좀 마음에 걸리던 멘트들도 깔끔하게 편집해서 이어 붙여 주고.”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윤정아가 눈을 깜빡이자 류재희가 설명을 덧붙였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진짜 별말 아닌데 개인 팬분들끼리 서로 감정 상하셔서 불타오를 수 있는 말.”
“아하, 알지 알지. 요즘 좆n, 아니 LnL 일 좀 하는 것 같더라. 스케줄러 디자인부터 달라졌던데?”
가장 썩은 물이었던 낙하산이 떠난 LnL은 나름 개편되어 가고 있었다.
대표님이 자신의 감에 대한 믿음을 아주 조금 내려놓은 것도 한몫했다.
이것도 시스템이 알아서 서치 퀘스트로 쳐주겠지 싶어서 어깨너머로 팬들 반응이 띄워진 윤정아의 폰을 구경했다.
카페 앱 같은데 실시간으로 댓글 형식으로 글이 달리고 있었다.
-예현이 여자한복도 단아하니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아쉽ㅜㅜ
-이든이 철릭 진짜 찰떡이다
-하준이는 뭘 입어도 다 잘 어울렸을 것 같음(개량한복 빼고)
-유제ㅋㅋㅋㅋㅋ 울 학교 한자쌤이랑 복장이랑 멘트 너무 존똑이얔ㅋㅋㅋ
-레브 한복컨셉으로 컴백 함 해 줘
-도빈이 무용하면서 나오는 장면 움짤 구해요
“너 어째 내 이름만 언급되면 스크롤 내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윤정아가 볼을 긁적이며 변명했다.
“뭔가 오빠 찬양은 내가 다 오글거려서 읽기가 힘들달까…… 그런데 오빠, 이거 봤어?”
윤정아가 후다닥 화제를 돌리려 시도했다. 윤정아가 보여 준 것은 서예현이 어제 올린 프롬 게시글이었다.
[From. 예현](카이사르_사진.jpg)
(카이사르_예현_투샷.jpg)
데이드림, 설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오랜만에 만난 우리 카이사르랑 함께 즐거운 설 연휴 보내고 있어요~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제 옆에서 떨어지지를 않네요ㅎㅎ 우리 데이드림도 맛있는 명절 음식 많이 드시고 행복하고 편안한 설 연휴 보내세요♥
댓글 8975
-예현아 새해복 많이 받아! 올 한 해도 잘 부탁해!
-이든이는 강쥐자랑했는데 예현이는 고영자랑하네ㅋㅋ
-고양이+미남 조합은 사랑입니다
-카이사르 개냥이였구나 그런데 내가 카이사르여도 절대 안 떨어지고 싶을듯
-헐 카이사르 묘하게 이든이 닮았어
└오 진짜ㅋㅋㅋ
└와 뭔가 기시감 느껴진다 했더니 이거였구나
└진짜 이든이 보인다ㅋㅋ 예혀니 최애멤 이든이 각인가?
이제까지 고양이 사진은 안 올리더니 내가 올린 포도 사진을 보고서는 저도 자랑 겸 올린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유감이고.
“이 이중잣대 보소. 우리에게는 명절 음식 조심하라더니.”
“팬이랑 멤버들은 다르죠, 형. 팬분들은 카메라 앞에 멀끔한 모습으로 설 의무가 없으시잖아요.”
류재희와 시시껄렁한 게시글 감상 대화를 나누고 있자 내게 카이사르 사진을 내밀며 윤정아가 주장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빠랑 닮았어, 진짜.”
윤정아의 반응과 프롬에 달린 댓글까지 미루어 봤을 때, 안 닮았다고 난리 치고 있을 서예현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혹시 예현 오빠가 카이사르가 그리울 때마다 오빠 얼굴 보면서 그리움을 달래고 그래?”
“겠냐?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거냐. 그 인간은 내가 자기 고양이랑 닮았다고 하면 거의 발작을 하는 인간이라고.”
상상만 해도 끔찍해 질색하며 대꾸하자 윤정아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진짜 닮았는데…….”
“네가 좋아하는 느이 예현 오빠는 그 말을 거의 신경 쇠약급으로 싫어한다니까?”
“그래? 그럼 안 닮음.”
그놈의 팬심이 뭐라고, 태세 전환이 참으로 빨랐다. 그래도 윤정아가 늘어놓는 차연호 찬양을 들어 주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냥 안면 없던 선후배 사이였던 회귀 전에도 고역이었는데, 볼 장 다 보고 악연까지 제대로 쌓인 지금은 도저히 못 들어 줄 것 같았으므로.
“그런데 너, 대학은 붙었냐?”
회귀 전 과거에서도 붙긴 했지만, 미래가 회귀 전과 똑같이 굴러가는 건 아니란 걸 잘 알기에 슬쩍 질문했다.
게다가 윤정아 이 녀석은 회귀 전에 알테어 팬이었지 레브의 팬이 아니었지 않은가.
물론 이 녀석이 대학에 떨어졌어도 그건 우리 레브의 잘못이 아니었다. 막말로 알테어가 무슨 대학 합격 부적이냐고.
“아악! 믿었던 오빠마저 나한테 그 질문을……!”
“그 질문 네가 지금 얼마나 들었다고.”
“어제 우리 외갓집 가서 지겹도록!”
“어차피 세배할 때나 식사 시간 때 할아버지가 백퍼 질문할 게 뻔하잖아. 한 소리 들을 것 같으면 이 한 몸 희생해서 어그로나 끌어 주려는 이 오빠의 넓은 뜻도 모르고, 짜식이.”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윤정아가 냉큼 대답했다.
“붙었어.”
이 미래는 변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결 안도했다.
만약 윤정아가 재수를 했는데 막내 작은어머니께서 얘가 레브 팬질을 한 것 때문에 그 결과가 나온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음.
그럼 나는 이 집안에서 ‘사촌 동생 대학도 못 가게 한 놈’ 타이틀 하나 더 붙는 거지, 뭐. 윤정아가 쭈뼛거리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붙었는데, 할아버지 성에는 안 찰 만한……?”
대학 이름을 들어 보니 회귀 전에 붙은 곳과 똑같았다. 수도권 중상위권 대학.
“그래도 잘했네. 대학 안 간 놈이 옆에 떡하니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반사적으로 류재희를 힐긋거리는 윤정아를 향해 타박했다.
“야, 얘는 대학 정시로 넣었어.”
“헐, 진짜? 어디 어디? 1순위 어디야? 실음과? 연영과? 아니면 그냥 보통 과야?”
쏟아지는 질문에도 류재희는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지금 H대 실음과 실기고사 치고 합격자 발표만 기다리는 중이야. 그리고 혹시 몰라서 두 군데 정시 원서 넣었고.”
“엉? 실기고사 언제 쳤냐?”
“지난주요.”
“왜 말 안 했어?”
“그야 형 상태가 좀 그렇기도 했고, 굳이 제 입시로 형들 신경 쓰게 만들기도 그래서요. 다들 바빴잖아요.”
생각해 보니 지난주는 내가 거한 페널티로 5일간의 기억을 날려 먹었었던 때였다.
아마 알았다고 해도 별 도움은 못 줬을 것이라는 걸 깨닫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네 실력이면 당연히 붙지. 레브 메보인데.”
류재희의 등을 두드리며 씩 웃었다.
“정시로 넣은 거면, 수능 점수가 잘 나온 거야?”
“음, 생각보단?”
“우와, 너 공부 잘하나 보다. 이번에 국어 난도 진짜 미쳤지 않았어? 우리 시험장에 국어 보고 집 간 사람도 있었다? 수학도 어려웠지 않아?”
“난 국어는 괜찮았는데 수학이…… 정아 너, 사탐은 뭐 봤어?”
“나 생윤이랑 한국지리. 너는?”
“나는 생윤이랑 법정. 너 생윤 등급 잘 나왔어?”
수능 이야기로 이야기를 불피우는 두 전직 수험생 녀석들의 대화를 들으며 견하준에게 답장을 보냈다.
나도 호응 없는 무대는 영 지루해서 하기 싫었다. 부디 내가 준비한 효륜디스랩 2탄을 입 밖으로 내뱉을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연례행사나 다름없는, 조부모님께 세배를 드릴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오랫동안 이 연례행사에서 빠져 있었기에 영 어색하긴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넙죽 절을 올리고 덕담과 함께 건네지는 봉투를 하나둘씩 받아 갔다.
“너는 정신 좀 차리고 살아라.”
할아버지의 따스한 덕담에 나 역시 따스하게 맞받아쳤다.
“충분히 정신 차리고 살고 있는데요. 차례상 앞에서 효륜디스랩 2탄 안 내뱉은 것만 봐도 보이잖아요.”
남들보다 홀쭉한 봉투는 오늘도 나의 세뱃돈이 30만 원임을 알게 해 주었다.
류재희의 봉투는 미리 준비하지 못했기에 할아버지가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5만 원권이 여섯 장임을 매의 눈으로 확인하고 소리 질렀다.
“잠깐, 스톱!”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세뱃돈을 받기 위해 막 한 걸음을 떼었던 류재희가 나를 돌아보며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는 이 사태를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지금 우리 예비 대학생한테 겨우 30만 원이라뇨? 지금 할아버지 스스로의 신념을 꺾으려 드시는 겁니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