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2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25화(22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25화
내가 10대였던 시절, 세뱃돈을 30만 원씩 받던 미성년자들과 달리 50만 원씩 받는 20대 사촌 형, 누나들을 보며 빨리 나이를 먹어서 성인이 되길 바랐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고대하던 스무 살 새해, 50만 원을 받은 윤현호와 달리 나는 또 30만 원을 받으며 진실을 알게 되었다.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대학 진학의 유무였다.
스무 살 됐으니 50만 원 달라고 드러누웠던 내게 할아버지는 20만 원 더 받고 싶으면 대학에 가라고 일갈했고.
할아버지가 뭔데 20만 원으로 내 신념을 좌지우지하려 하냐고 지랄하다가, 그럼 너는 왜 내 신념을 꺾으려 하냐고 역으로 반격받고 할 말이 없다는 사실에 분해서 30만 원이 든 봉투 쥐고 뛰쳐나갔다.
그 뒤로는 데뷔하고 연예계 활동 때문에 쭉 설날 세배는 패스하다가 지난번에 영통 세배로 세 명 몫인 30만 원씩 한 번 뜯은 게 다였다.
그때 류재희는 미성년자였고, 어쨌든 서예현은 대학을 진학하긴 했어도 중퇴라 할아버지의 50만 원 기준에 미치지 못할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류재희는 일단 대학 원서를 넣었고! 어쨌건 수능도 잘 봤다고 했으니 합격할 거다! 본인의 의지가 뚜렷하니 대학 중퇴도 안 할 거고!
류재희야말로 내가 겨우 대학 하나 때문에 받지 못했던 50만 원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적임자였다.
“대학을 간다고?”
왜인지 약간 충격받은 듯한 할아버지의 얼굴에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얘 수능도 잘 봤어요.”
“누구는 그놈의 딴따라 활동한답시고 고등학교도 때려치우려 했는데 그걸 하면서 공부도 병행했다고?”
할아버지의 시선에 손으로 얼굴을 가린 류재희가 간절히 내 팔을 붙들어 왔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딴따라라고 하지 마시라니까요. 그거 직업 비하 발언이라고요.”
“학창 시절에 딴따라 활동도 안 했던 너는 뭐 했냐, 너는!”
“씁, 효륜디스랩 2탄 go?”
할아버지가 뒷목을 잡자 할머니가 다급히 할아버지의 등을 두드리며 내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친할머니는 나를 무려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에 내보내려 한 장본인이라 할머니한테도 딱히 좋은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할아버지가 거기 나가면 집안 망신이라고 막아 줬지.
남들이 아역 배우, 키즈모델이었던 과거 발굴될 때 나는 하마터면 과거에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했던 남돌 될 뻔.
“요새 몇 년간 명절에 친가 오면 심심했던 이유가 다 있었구나.”
사촌 형 하나가 뒤에서 깨달음을 얻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이 집안 콘텐츠지, 아주.
지갑에서 5만 원권 네 장을 더 꺼낸 할아버지가 류재희에게 손짓했다.
“저 진짜로 괜찮은데…… 이 집 손주도 아닌데 끼어서 세뱃돈 받는 것도 죄송한데 이렇게 많이 안 주셔도 돼요.”
“어른이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다.”
가볍게 타박하며 류재희의 손에 턱, 돈다발을 얹어 주신 할아버지가 한마디 덧붙였다.
“저 녀석에게 물들지 말고.”
아무래도 류재희가 나를 따라 하는 걸 보면 할아버지가 기절하실지도 모르겠다.
류재희의 깍듯한 90도 폴더 인사에 할아버지의 눈가가 누그러졌다.
수많은 지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머니에 넣으려 하는 류재희에게 손짓했다.
“이리 줘. 형이 봉투에 넣었다가 이따 집 가서 줄게.”
류재희의 돈까지 합쳐져 빵빵해진 돈 봉투를 져지 주머니에 대충 구겨 넣었다. 그렇게 세배까지 마치고 드디어 식사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할아버지가 수저를 들어야지만 식사가 시작되는 구시대의 틀딱 예절을 속으로 규탄했다. 요즘 저거 지키는 집이 얼마나 된다고.
“윤정아, 입시 결과 말해 봐라.”
할아버지의 말에 윤정아가 드디어 올 게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어들어 가는 윤정아의 목소리에 할아버지 미간의 주름이 짙어졌다.
“대체 공부를 어떻게 했기에 그 정도밖에 못 가?”
할아버지가 호통치자 윤정아가 고개를 푹 숙이며 몸을 움찔했다.
류재희가 가시방석이 다름없다는 얼굴로 숟가락질을 슬그머니 멈췄다.
내게로 힐끔 향하는 윤정아의 간절한 시선에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정아야. 나처럼 대학 가지 말아 버려. 대학 진학했는데도 저러시는데 저런 말 듣고 사느니 그냥 확 시원하게 때려치우는 게 낫지 않겠냐?”
그럼 이제 내 사례로 인해 ‘그래도 대학 가는 게 어디냐’쯤으로 분위기 흐름이 바뀐다.
“맞아요, 아버지. 정아가 더 위 라인 대학도 붙었는데 고민하다가 학과 보고 선택한 거예요. 요즘 대학 이름보다는 학과를 더 중요시하는 추세라니까요. 옛날 입시 생각하시면 안 돼요.”
막내 작은아버지가 이 흐름을 타 할아버지의 노기를 누그러뜨릴 만한 말을 잽싸게 꺼냈다.
한창 식사를 하던 중, 고모가 내게 말했다.
“이든이 너도 아이돌 그거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기술을 배우든, 공시를 치든 해서 어떻게 다른 길 좀 알아봐야지.”
“네? 갑자기요?”
지금 팬 3천만 명을 보유하는 월드 아이돌 그룹이 되어야 이놈의 무한회귀를 멈출 수 있는데 무슨 망발이신지? 신종 저주인가?
떨떠름한 내 표정과 딱딱하게 굳은 아버지의 표정을 힐긋 본 고모가 웃으며 덧붙였다.
“아니, 현호가 말하길 주변에서 이든이네 그룹 이야기하는 사람을 한 번도 못 봤다고 해서.”
그렇겠죠. 윤현호 주변에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아이돌은 인기가 생명 아니니? 지금 데뷔한 지 몇 년이 됐는데도 이러면 가망이 없는 거지. 둘째 오빠도 너무 애 하고 싶은 것만 하라고 오냐오냐하지 말고 슬슬 현실을 직시해야지. 이든이도 이제 스물셋이잖아. 우리 현호는 벌써 제대했는데 이든이는 아이돌 한다고 군대도 안 다녀오고.”
음방 1위도 몇 번씩 했고 지금 당장 티비만 틀어도 서예현이 찍은 광고가 나오는데 무슨 헛소리이시지.
하지만 고모가 나랑 여기 와 있는 류재희를 제외하고는 우리 그룹 멤버들의 얼굴을 알 리가 없었으므로 그냥 아들과 나란히 트렌드에 못 따라가는 사람이구나, 정도로 넘겼다.
“다 큰 성인인데 제가 알아서 하겠지. 잘하고 있는 애한테 무슨 악담이야, 너는.”
얼굴을 찌푸린 아버지가 고모한테 한 소리 했다. 이건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하고 다시 밥숟가락을 들었지만 아무래도 윤정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현호 오빠, 주변에 친한 여사친 없지?”
불쑥 내뱉은 윤정아의 물음에 윤현호가 우물쭈물대며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그걸 긍정으로 판단한 윤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빠는 딱 봐도 그럴 것 같았어. 그러니까 레브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
뼈를 때리는 윤정아의 말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공격받은 윤현호가 원망스레 고모를 돌아보았다. 큰아버지가 흥미를 보이며 끼어들었다.
“이든이네 그룹이 그렇게 인기가 많아? 출근길 라디오에서는 노래 몇 번 들리더만.”
“학교에서 목요일마다 신청받은 뮤비를 틀어 주는데 이든 오빠네 그룹은 꼭 나와요. 알테어, 레브, 신드롬, KICKS, 네이비, 이렇게가 요즘 인기 있는 남돌들이에요. 레볼루션은 지금 한물갔고.”
윤정아의 입에서 한때 리더와 막내로 나뉘어 스페셜 스테이지를 함께했던 그룹들의 이름이 들리자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류재희와 슬쩍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이번에 레브는 무려 단콘도 연다고요! 단독 콘서트!”
혹시나 어른들이 알아듣지 못할까 봐 윤정아는 친절하게 풀어서 용어 설명도 해 주었다. 레브 홍보대사가 따로 없었다.
“정아 너 예전에는 알티어? 걔네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이든이 응원하려고 좋아하는 그룹 바꾼 거야?”
사촌누나의 순진한 질문에 윤정아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그냥 최대한 흐린 눈 하는 중인데 그렇게 오해하면 곤란해.”
밥상머리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그냥 관조하고만 있던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윤씨 집안에서 유명 딴따, 가수 나온 게 뭐가 그리 자랑이라고, 쯧.”
나도 윤현호처럼 엄마 성 썼으면 저놈의 윤씨 집안 소리 안 들어도 됐을 텐데. 하긴, 이이든은 좀 이상한가?
그나저나 내 효륜디스랩 협박이 할아버지한테 잘 들어 먹힌 모양이었다. 드디어 저 딴따라라는 소리를 멈추신 걸 보아하니.
내 효륜디스랩 협박이 할아버지한테는 초심도나 다름없다, 이 말이군. 할아버지 갱생을 위해 더 열심히 협박해야겠다.
“콘서트를 한다고?”
할아버지의 물음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티켓 한 장 줘 봐라.”
그 말에 식탁에 앉은 모두의 시선이 할아버지에게 쏠렸다.
“왜요……?”
예상에서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말에 떨떠름하게 묻자, 눈살을 찌푸린 할아버지가 대꾸했다.
“네 녀석이 대학까지 포기해 가면서 선택한 길이 뭔지 한 번 내 눈으로 봐야겠다.”
충격으로 입을 떡 벌렸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할아버지가 콘서트에 오신다고? 그래서 티켓 내놓으라고?
“예? 뭐라고요? 지금 그렇게 딴따라라고 사람을 막 비하해 놓고, 무시해 놓고 이제 공짜로 와서 제 무대를 평가하시겠다고요? 저희 팬분들도 오고 싶다고 해서 모두 올 수 없는 콘서트를 지금 제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난도 간절함도 없이 편히 와서! 제대로 평가할 수나 있겠습니까!”
가슴을 두드리며 열변을 토하자 할아버지가 벙찐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촌 형들은 이미 입을 틀어막고 끅끅거리고 있었다.
“정 그렇게 오시고 싶으시다면 할아버지가 직접 티켓팅해서 티켓 잡아서 오세요. 초대석은 제 지인들에게 진작 다 뿌렸으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참, 울 부모님 초대석 티켓 뺏을 생각은 마시고요. 적어도 울 엄마랑 아버지는 제가 아이돌하는 걸 반대 안 하셨거든요.”
“나도 자식 콘서트 보러 가는 부모 티켓까지 뺏을 생각은 없다. 그 티켓팅이라는 건 어떻게 하냐.”
“아버님, 그러실 필요 없어요. 여기 초대석 하나 있어요. 정아야, 이든이에게 티켓 받았지. 얼른 할아버지께 한 장 드려.”
막내 작은어머니의 말에 초대석 티켓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윤정아의 눈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