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2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27화(227/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27화
“이야, 너 소화 능력 좋다, 막내야. 그 집에서 식사를 하고도 안 체하다니.”
차에 시동을 걸며 내뱉은 내 감탄에 류재희가 해쓱해진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체하진 않았지만 체할 뻔하긴 했죠.”
“내가 그 밥상머리에서 밥 먹다가 하도 체해서 그냥 하고 싶은 말 다 하기 시작했잖아.”
특히 대학에 안 가겠다고 선언했던 고등학교 3학년 때가 피크였다. 그때를 기점으로 내 프리스타일 디스 실력이 확연히 늘었다.
“그런데 그냥 초대석 티켓 한 장 드리지, 왜 그러셨어요?”
류재희의 물음에 말없이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저 이제 좀 떠서 콘서트도 하는데요. 오실래요? 드리려고 초대석 티켓도 챙겨 왔는데.’
‘됐다, 시간 낭비지, 쯧. 딴따라 짓하겠답시고 대학도 안 가고 그 소중한 젊은 세월을 흘려보낸 놈이 뭘 얼마나 보여 줄 게 있다고.’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까 딱히 보여드릴 게 없네요, 하하…….’
회귀 전, 거부당했던 레브 첫 콘서트 초대석 티켓을 회상하며 픽 웃었다.
“뭐, 그냥 심술이야.”
아이돌 한답시고 이룬 거 없이 20대 초반을 허송세월로 보내던 고졸 손주가 못마땅했던 건 이해하겠다만, 오시라고 할 때는 안 오더니 막상 초대할 생각도 없는 지금 온다고 하니까 영 속이 뒤틀려서 말이지.
망돌이었던 시기에는 당연하고, 으로 뜬 후에도 다들 나보고 서예현이랑 같은 그룹이었냐고 물어보며 놀라기만 했지, 나 개인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그 안에 내 노력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작곡과 프로듀싱으로 대성공을 거뒀을 때는 이미 친가에 걸음을 끊은 상태였다.
친척 어른들이나 윤현호의 걱정을 빙자한 비꼼에 부모님의 표정이 씁쓸해지는 게 보기 싫어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산다는데 왜 참견이냐고 지랄하며 맞받아치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할아버지에게 호통만 듣기 일쑤였으니까.
할아버지는 모두에게 엄하긴 했지만 정해진 길을 벗어났던 나한테는 특히 더 엄격하고 매정했다.
내 실패가 그리 당신 인생의 눈엣가시였냐고 지금의 할아버지를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의 나는 할아버지의 눈에는 거슬리긴 하더라도 실패하지 않은 손주일 테니까.
그러니 어쩌겠는가. 사라진 그 세월을, 그 빌어먹게 쓰디쓴 기억을 할아버지가 알 길이 없으니 이렇게 양껏 심술이나 부려야지.
돌이켜 보면 나는 할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할아버지에게, 당신이 그어 준 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이 옳았음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도.
이제 나는 그 인정이 필요 없는데. 왜 하필 이제 와서.
내 분위기가 한층 가라앉은 게 느껴졌는지 류재희가 조심스럽게 말을 얹었다.
“가족이란 게 그래요. 밉고 원망스러워도 쉽게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
“너는 좀 놔도 돼.”
류재희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이며 대꾸했다.
“우리 집 꼰-은 돈이라도 주지.”
“그러니까요. 칼같이 잘라 낼 수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류재희가 쓰게 웃었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 그놈의 선산이, 장손이 대체 뭐라고. 진짜 이름 있는 문중들은 종친회에서 돈도 다 나온다는데, 우리 집은 그냥 아버지 자존심 세우기용 같아요.”
이것 역시 회귀 전후를 통틀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요리는 더럽게 못 하면서 전 부치기 스킬만 그렇게 능숙했던 이유가…….
“장손이라 제사가 많았던 거야? 막 한복 입고 단체로 모여서 하고 그래?”
“그건 진짜 이름 있는 양반집이 그러고요, 저희 집은 그 정도급은 아니에요. 그냥 형 디스랩 대로 근본 없는 제사상이지.”
이래서 내 효륜디스랩 1탄이 그렇게 떴던 건가? 공감하는 집들이 많아서?
“그런데 웃긴 게 제사는 또 더럽게 많아요. 현조부, 현조모 제사까지 챙겨 보셨어요? 친조부모님 돌아가시면서 고조부랑 고조모까지로 줄어든 거지, 예전에는 거기까지 챙겼어요. 명절도 당연히 챙기고.”
그럼 1년에 제사 8번이 과장이 아니었단 말이야? 경악하는 내 표정이 보이지 않는 건지 류재희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사 음식이 너무 지긋지긋했어요. 너무 자주 먹으니까. 어머니 혼자 고생하니까 옆에서 도와드리긴 했는데, 왜 어머니는 자기 집안도 아닌데 왜 순순히 혼자 다 떠맡고 있는 걸까 이해도 안 갔고요.”
일단 저 녀석 첫째 동생 놈은 싹수가 노란 게 보여서 안 도와줬을 게 뻔하고, 둘째 동생 녀석은 어렸을 테니 류재희만 제 어머니랑 같이 고생했겠군.
그런 아들한테 돈을 뜯는단 말이야? 나였으면 거한 깽판을 선사해 드렸을 텐데.
“그런데 형, 지금 저희 어디 가요?”
류재희의 물음에 핸들을 꺾으며 짧게 말했다.
“내 외갓집.”
“네……?”
“네가 가기 그러면 그냥 집으로 바로 갈까?”
“아니요. 기왕 이든이 형 친가도 들린 거, 외가까지 들리죠, 뭐.”
“우리 양가 다 들렸으니 이참에 그 집 나와서 내 동생이나 할래?”
“저 형 동생 맞잖아요.”
류재희가 씩 웃으며 대꾸했다. 짜식, 안 예뻐할 수가 없다니까.
어느새 차가 외갓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상에, 우리 손주. 키가 더 컸네. 왜 이렇게 말랐어? 회사에서 밥을 굶기든?”
오랜만에 뵙는 외할머니를 와락 껴안자, 나를 마주 안은 외할머니가 곧바로 걱정을 쏟아 내셨다. 같은 그룹에 칼로리 집착남이 있긴 해요.
부모님은 어디에 버려두고 왔냐는 외할아버지의 물음에 볼을 긁적이며 답했다.
“어차피 엄마랑 아빠는 명절 당일에 성북동 가잖아요. 그래서 할아버지랑 할머니 심심할까 봐 왔어요.”
“바깥사돈은 여전하시니?”
내가 또 도중에 뛰쳐나온 걸 눈치채셨는지 외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고3 때보단 나아졌죠.”
“내 새끼가 얼마나 알아서 잘하는데 바깥사돈은 무어가 그리 걱정되셔서…….”
“아마 제 걱정이 아닐걸요? 참, 할머니, 할아버지. 저 이번에 콘서트 하는데, 오실래요? 초대권도 가져왔어요.”
“응? 이 할미가 가도 괜찮니? 그런 건 젊은 애들만 가는 거 아니야?”
“에이, 뭐 어때요. 오셔서 손주 재롱도 보시고 그러는 거죠.”
얌전히 앉아 사과를 받아먹으며 외할머니의 물음에 살갑게 대답하는 나를 무슨 귀신 들린 사람 보듯 하며 류재희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한 사람 안에 천하의 패륜아와 천상 효자 기질이 공존할 수가 있는 거지?”
딴따라 타령이나 해 대는 친할아버지랑 내가 무슨 길을 가든 믿고 응원해 준 외할머니랑 같은 대우를 해 줄 이유가?
류재희도 친가에서보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질문에 대답해 드리고 있었다.
물론 두 분의 물음은 주로 나와 관련된 물음이었고, 류재희가 말하는 나는 정말 극도로 미화된 누군가였다.
듣고 있는 저 이야기의 장본인조차 자기 자신이 맞는지 긴가민가할 정도로.
외갓집에서 한 상 가득 차려 주신 저녁까지 편하고 배부르게 먹고 용돈도 두둑이 드린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오, 이제 포도가 저 안 반기네요.”
“이제 너도 아는 사람이다, 이거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쏜살같이 달려왔다가 우리인 걸 보자마자 심드렁하게 몸을 돌리는 포도를 덥석 안아 들며 대꾸했다.
포도가 그리울 때마다 볼 포도의 동영상을 찍고 있자,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오셨다.
슬쩍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거실의 골프 백을 커튼 뒤로 밀어 넣었지만, 의외로 아버지는 내게 무어라 하지 않았다. 다만 표정이 조금 착잡해 보이긴 했다.
‘대체 내가 튀고 무슨 일이 있었길래. 윤정아에게 물어봐?’
윤정아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자 엄마가 내게 물었다.
“이든아, 내일 외갓집 따라갈래?”
“아니, 나 내일 친구들 만나기로 해서 못 가.”
“그래? 네 외할머니 속상해하시겠다. 그렇게 외손자 얼굴 보고 싶어 하셨는데.”
“그러실까 봐 오늘 미리 다녀왔어.”
잘했다며 엄마가 내 등을 두드렸다.
“너는 그렇게 친가에 깽판을 쳐 놓고선.”
아버지의 못마땅한 목소리에 어깨를 으쓱했다.
“욕도 안 썼고 사실에만 기반한 가사인데, 뭐.”
“그렇다고 할아버지에게 사회 병폐를 집안에 고스란히 답습했다고 하면 어떡하냐!”
“학력에 따른 임금 차별이랑 학력에 따른 용돈 차별! 그게 병폐지 뭡니까!”
두리번거리며 골프채를 찾는 아버지의 모습에 류재희를 데리고 잽싸게 방으로 튀었다. 누가 부자지간 아니랄까 봐 할아버지랑 똑같아, 아주.
[윤정아- 오빠 그렇게 튀고 무슨 일 있었냐고?] 오후 10:21 [윤정아- 할아버지가 글씨 안 보인다고 현호 오빠에게 낭독시킴] 오후 10:22 [윤정아- 현호오빠가 자체적으로 검열 많이 했더라] 오후 10:23 [윤정아- 물론 그걸로도 할아버지는 충분히 빡치셨지만……] 오후 10:24 [너는 어른에게 빡치셨다가 뭐냐, 빡치셨다가] 오후 10:24 [윤정아- 스스로를 돌아봐 오빠] 오후 10:25* * *
휴가 마지막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 집을 나온 류재희와 나는 각자의 친구들을 짧게나마 만나고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류재, 어땠어? 이든이 형네 집, 재미있었어?”
묘하게 볼살이 오른 것 같은 김도빈이 숙소 소파에 드러누운 채로 우리를 반겼다.
김도빈의 질문에 마른세수하며 얼굴을 쓸어내린 류재희가 한탄했다.
“재미있었다고 말하면 내 인성이 돌이킬 수 없어질 것 같아.”
“엥, 왜?”
“솔직히! 솔직히 지루할 겨를이 없긴 했어! 그런데 그걸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자체가 왠지 죄를 짓는 것 같았다고!”
막 도착하여 류재희의 외침을 들으며 현관에 서 있던 서예현이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죄…… 내가 카이사르에게 큰 죄를 지었어…….”
“왜 저래?”
“왜 사진을 올려서 우리 애기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듣게 했는지……! 우리 카이사르가 한글을 읽을 줄 알았다면 분명히 우울증에 걸렸을 거야!”
“형 때문에 나도 우울증 올 것 같아.”
나를 닮았다는 게 그렇게 심한 말이냐? 비틀거리며 현관에 신발을 벗어 두고 숙소 안으로 들어온 서예현은 나와 류재희의 얼굴과 몸을 훑고는 안도한 표정으로 김도빈을 돌아보았다.
안도는 곧 충격으로 변했다.
“도빈아! 내가 명절 음식 조심하라고 했지!”
김도빈에게 달려가 아주 살짝 살이 오른 김도빈의 볼을 부여잡은 서예현이 비명 지르듯 외쳤다.
“할머니가 너무 말랐다고 계속 먹이시는데 어떡해요. 저는 차마 할머니의 음식을 거부하는 패륜 손자가 될 수 없었어요.”
부엌에서 물을 들이켜던 류재희가 패륜 손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캑캑거리는 기침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