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2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28화(228/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28화
그런 류재희의 반응에 김도빈의 볼을 잡고 있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서예현의 관심이 무사히 김도빈에게서 류재희로 옮겨진 것이다.
하마터면 명절 음식의 칼로리를 하나하나 읊을 뻔한 김도빈이 대놓고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아, 맞다. 막내 너 윤이든네 집으로 갔었지? 대체 뭘 봤길래 반응이 그래? 팔순잔치 디스랩이랑 영통 세배보다 더한 패륜이 존재할 수가 있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묻는 서예현을 향해 류재희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꾸했다.
“예현이 형, 바닥 밑에는 지하가 있고, 지하 밑에는 심연이 있는 법이에요.”
“궁금한데 안 궁금해…… 저걸 듣는 순간 나의 상식과 윤리가 무너질 것 같아.”
“좋은 선택이에요, 형.”
“아니, 재희야. 너까지 그러면 안 되지. 내가 그 집구석에서 뭘 했다고.”
무려 할아버지 앞에 얼굴을 비추는 거한 효도를 하고 왔더니만. 심지어는 용돈까지 드렸고.
류재희의 표정이 굉장히 떨떠름해지자, 서예현이 슬그머니 류재희를 쿡쿡 찔렀다. 김도빈 역시 슬쩍 합류했다.
“막내야, 혹시 제일 약한 것만 말해 줄 수 있어?”
“제일 강한 것도. 나 너무 궁금해.”
“제일 강한 건 내가 들을 준비가 안 됐으니까 도빈이에게만 살짝 말해 줘.”
“제일 약한 거라…… 이든이 형이 조부님 앞에서 효륜디스랩을 튼 거?”
류재희의 대답에 서예현의 눈동자가 마구 떨렸다. 입을 떡 벌린 서예현이 믿기지 않는다는 어조로 되물었다.
“그게 약한 거라고? 그게?”
“앞에서 직접 부른 것보단 덜한 것 같아서요. 형도 기억하시다시피 저희는 그 현장에서 직관…… 이걸 직관이라고 해도 되나. 아무튼, 봤잖아요.”
“아니, 내 기준에서는 그걸 굳이 다운까지 받아서 당사자 앞에서 다시 트는 게 더 도라이 같아. 내가 본 것보다 더한 패륜이 존재할 수가 있었구나.”
갑자기 설날 있었던 이야기가 화두로 끌려 나오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참, 잊을 뻔했네. 이 형이 꿀꺽하고 입 싹 씻으려 한 건 절대 아니다.”
주머니를 뒤적여 류재희 몫을 잠시 맡아 놓았던, 세뱃돈이 든 돈 봉투를 건넸다.
봉투를 열어 돈을 꺼낸 류재희가 딱 봐도 10장보다 많아 보이는 지폐에 곧바로 돈을 셌다.
“엥, 뭐야? 류재 너도 이든이 형네 집에서 용돈 받았어? 진짜 이만큼이나 주셨어? 헐, 이든이 형! 다음에는 저도 데려가세요! 저 절하면서 앞구르기도 할 수 있어요!”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나를 짤짤 잡아 흔드는 김도빈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것이 바로 사이 개선도 100의 맛인가. 사이가 너무 격식이 없어져서 내 권위가 안 사는 것 같은데.
“너는 나랑 똑같이 30만 원이야, 인마. 서커스 한다고 돈 더 안 줘.”
김도빈의 정수리를 가볍게 꾹꾹 누르며 진실을 말해 주었다.
지폐 열여섯 장을 열 장과 여섯 장으로 나눈 류재희가 양손에 지폐 다발을 쥔 채 나를 돌아보았다.
“이거 80만 원인데요? 형 꺼 30만 원 안 가져가신 듯요?”
“그건 선물 세트 몫. 나랑 같이 준비했다며. 그럼 돈이랑 수고비는 받아 가야지.”
우리 집에 간 선물 세트인데 동생 돈 뜯으면 쓰나. 류재희가 당황한 얼굴로 급하게 5만 원권 열 장을 내밀며 나를 만류했다.
“괜찮아요, 형. 저 진짜 그 돈 안 받아도 돼요. 그리고 반반해도 30만 원 안 나와요!”
“그냥 받아, 짜식아. 형이 가오 빠지게 동생이랑 더치하게 만들래? 그리고 은근슬쩍 50만 원 들이미는데, 네가 그러면 나는 동생까지 팔아 가며 공갈쳐서 할아버지 신념 꺾고 50만 원 뜯은 사기꾼 된다.”
지폐 다발을 든 손을 차마 내게 내밀지도, 거두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류재희에게서 지폐를 쓱 수거해 다시 봉투에 고이 넣고 손에 꼭 쥐여 주었다.
“그래, 재희야. 이든이 면은 살려 줘야지.”
어느새 도착한 견하준도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내 말을 거들었다.
견하준까지 가세한 협공에 결국 류재희가 봉투를 받아 들었다.
“고도로 발달한 가오 챙기기는 가부장과 구별할 수 없다.”
합장하며 엄숙한 목소리로 헛소리를 지껄이는 김도빈의 정수리에 시원한 두피 마사지를 선사해 주었다.
고루한 집구석을 타파하는, 이렇게 개혁적이고 혁신적인 나한테 뭐? 가부장?
* * *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뮤직비디오 촬영에 들어갔다.
“보니 앤 클라이드 컨셉이라더니, 완전 제대론데? 진짜 미국에서 찍을 줄이야.”
“기왕 미국까지 온 거, 하와이 여행권 쓰고 가면 안 되나요?”
“도빈아, 너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뮤비 촬영 일정도 빡빡해서 강행군 예정인데?”
콘서트 무대 연습도 어느 정도 진행됐고, 음원 녹음도 마쳤기에 그나마 해외 촬영 일정을 낼 수 있었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커플이었고, 우리는 남자 다섯이었기에 영화와 비슷한 콘셉트라고는 ‘아슬아슬한 문제아들’ 정도였다.
물론 실제 범죄자 커플들에게 문제아들이라는 워딩은 너무 약하지만.
“머릿결이 백금발로 염색했을 때보다 더 푸석해진 것 같아. 탈색을 두 번이나 해서 그런가?”
은발로 탈색된 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서예현이 목소리에 불안감을 담고 중얼거렸다.
이전 스타일리스트가 서예현의 흑발을 고집한 게 무색하게도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걸 증명하듯 서예현은 은발 역시 잘 소화해 내고 있었다.
“형이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내 머릿결은 뭐가 되냐?”
이번에도 어김없이 탈색형을 받은 내 머리를 툭툭 치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너는 곱슬이라 머리카락이 굵잖아. 나는 아니란 말이야.”
“아오, 사람 머리카락이 다 거기에서 거기지.”
“너 혹시 탈색 두 번 하고 머리 얼마나 빠졌어? 잠깐만. 지금 보니까 윤이든 너, 데뷔 초 때보다 머리숱이 좀 줄어든 것 같은데……?”
충격 먹은 얼굴로 입을 틀어막는 서예현을 향해 왁왁거렸다.
“뭐라는 거야! 누구를 탈모인으로 만들고 있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내 손으로 검색하기도 싫었던 <내 우주로 와> 뮤비를 검색해 내 단독샷을 화면에 띄워 놓고 서예현의 눈앞에 현재의 내 정수리와 염색 한 번 안 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들이밀었다.
“봐봐! 똑같잖아! 야, 준아! 이리 와 봐! 저 인간이 나 보고 탈모란다! 진짜 이때보다 더 휑해 보이냐?”
빈말은 절대 하지 않을 견하준까지 불러서 확인해 보자 내가 예상하던 흔쾌한 답변 대신 잠깐의 머뭇거림이 돌아왔다.
“음, 조금?”
반사적으로 정수리에 손을 덥석 올리고 더듬었다. 마약 검사 때문에 머리카락이 100가닥인가 뽑혔다던 지원이 형의 휑한 정수리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나, 나도 그 꼴이 되고 있다고?
“탈모는 아니야. 아직 풍성해. 저 때 머리숱이 넘사여서 그렇지.”
견하준이 위로를 건넸지만 전혀 안도가 되진 않았다. 이제 탈색하자고 하면 바닥에 드러누워야지.
“이번 컨셉 비주얼 Worst.”
연갈색 머리를 한 김도빈이 서예현을 가리키며 장난스레 말했다. 눈을 휘둥그레 뜬 서예현이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내가?”
“설마 형이 이 중에서 제일 못생겼다는 소리로 받아들인 건 아니죠? 그건 제 시력에 문제 있다는 소리랑 똑같은데여.”
김도빈이 제 눈은 아직 멀쩡하다며 눈을 비비는 시늉을 하다가 코디 누나에게 눈화장 번진다고 한 소리 들었다.
“형이 제일 튀는 머리색이긴 한데 솔직히 문제아처럼은 안 보여요. 그냥…… 은발로 태어난 사람 같아요.”
“엘프의 강림!”
막내라인의 호들갑에 서예현이 너무 많이 들어 지겹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지만, 귀 끝은 빨개져 있었다.
어쩌다가 얼굴이랑 성격이 저렇게 정반대로 태어나서. 저 얼굴로 성격 그렇게 쓸 거면 그냥 저 얼굴 견하준이나 주지, 쯧쯧.
혀를 차며 컨셉 비주얼 베스트로 뽑힐 만한 멤버를 스캔했다.
각각 애쉬 카키색과 애쉬 바이올렛으로 염색한 류재희와 견하준도 딱히 문제아 같은 비주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김도빈? 하지만 김도빈은 문제아라기보단 그냥 문제 있는 놈 같았다.
“그리고 이번 컨셉 비주얼 Best.”
손가락으로 서예현을 가리킨 것과 대조되게 두 손으로 공손히 나를 가리키며 김도빈이 말했다.
“뭐, 인마? 내가 제일 문제아처럼 보인다고?”
“빨머 하니까 형 인상이 200% 살아났어요. 지금 사실 눈 마주치는 것도 좀 쫄리는 중.”
미간을 확 구기며 묻자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깔며 김도빈이 대꾸했다. 그러면서도 말은 꿋꿋이 계속했다.
“마치 17대 1로 맞짱을 떠서 상대방의 피로 머리를 물들인 것만 같은 비주얼이에요.”
“아니, 대체 상대방의 피로 머리가 이렇게 빨갛게 물들 정도면 얼마나 피를 떡칠한 건데. 그건 이제 문제아의 범주를 벗어났잖아.”
사이 개선도가 위대하긴 하구나. 이전이었으면 눈 깔면서 즉시 입도 다물었을 텐데.
슬슬 설치가 마무리되어 가는 촬영 장비를 보다가 김도빈이 번쩍 손을 들어 관심을 끌었다.
“레브 제512회 회의 신청합니다! 심심한데 우리끼리 NG로 벌칙이나 정할까요?”
“오, 괜찮네.”
다들 NG가 적으면 적을수록 빨리 끝난다는 걸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터라 흔쾌히 동의했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아니, 잠깐만! 얘들아? 혹시 맏형 말이 안 들리니? 얘들아?”
“NG 첫 번째로 낸 사람은 길거리 버스킹하기! 그리고 NG 제일 많이 낸 사람은 댄스 버스킹 즉흥 투입하기!”
“오, 도빈이 형 아이디어 괜찮은데?”
“이미 벌칙을 다 머릿속으로 짜 놨구나.”
“얘들아, 나 찬성 안 했어!”
“그런데 예현 형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
마지막 내 말에 항의를 뚝 멈춘 서예현이 나를 돌아보며 맞받아쳤다.
“그게 네가 될 수도 있지?”
“아니, 걱정을 해 줘도 그래.”
김도빈이 후다닥 나와 서예현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니, 두 분 다 싸우지 말고 들어 보세요. 예현이 형 얼굴이 찍힌 동영상이 해외에서 이슈를 타면 해외 기반이 생기는 지름길이 되지 않겠어요?”
“야! 애초부터 나를 저격하는 벌칙이었잖아!”
울컥한 서예현의 외침에 히죽거리며 사실에 기반한 말을 던졌다.
“그게 싫으면 최대한 NG를 안 내면 될 일이죠?”
“하하, 재미있겠네.”
강 건너 불구경하듯 견하준이 웃으며 한마디 얹었다. 절대 자신이 걸릴 일이 없다는 미친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하준이 너마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 절망한 서예현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우리를 돌아보며 선포했다.
“그래, 해! 하자고! 누가 걸리는지 어디 한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