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2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29화(229/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29화
아무리 서예현의 비주얼로 득 보기를 노린다고 해도 차마 실력으로 개망신을 당하게 둘 수는 없었기에, 서예현의 실력으로도 무난하게 부를 수 있을 만한 팝송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훑었다.
춤이야 뭐, 김도빈이 빡세게 연습시키든지 하겠지. 뻣뻣하게 서 있지만 않으면 오케이 아니겠어?
“가 제일 무난할 듯? 고음 없고, 음정 자체가 낮기도 하고.”
내 말에 서예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음정 낮고 고음 없으면 네가 부르기에 참 괜찮겠네.”
“와우, 기 싸움 죽이네요.”
처음 벌칙 제안을 해서 이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나 다름없는 김도빈은 마치 제 일 아니라는 듯 짝짝 박수나 치고 있었다.
의외로 이런 촬영에서 견하준 다음으로 NG를 안 내는 게 김도빈이었다. 자신만만하게 내기를 제안했던 이유가 다 있었다.
NG를 잡아내기 위해 서로를 향해 눈에 불을 켠 채로 촬영을 시작했다.
단체 안무부터 단체 씬까지 찍는 촬영 30분째.
‘뭐야, 서예현이 지금까지 NG를 안 냈다고?’
위기감을 느끼고 막내 라인과 시선을 교환했다. 연기에 재능 있는 견하준이야 불안할 일이 없다고 해도, 우리는 아니었다.
얼마나 속으로 칼을 갈아 댄 건지 촬영 전 며칠 만에 급하게 익힌 안무조차 실수하지 않는 서예현을 보니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진짜 우리 셋 중 하나가 걸리는 거 아니야?”
개인 컷 촬영을 NG 없이 무사히 끝내고, 함께 샷을 찍어야 하는 류재희에게 카메라에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한껏 낮춰 묻자, 무거운 긍정이 돌아왔다.
“그러니까요. 지금쯤이면 첫 번째 NG는 예현이 형이 당첨될 줄 알았는데.”
류재희 역시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지 다음 촬영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서예현을 초조하게 힐끔거렸다.
우리가 찍어야 하는 샷은 묶여 있는 프렌치 불도그의 목줄을 끊어 재킷으로 감싸 안고 도망가는 장면이었다.
“젠장, 내가 개도둑이라니.”
내 한탄에 류재희가 내 귀에 세뇌시키듯 속삭였다.
“묶여 있는 저 개가 포도라고 생각해요. 형은 개도둑이 아니라 포도를 구출하는 거예요.”
“털 색깔부터 다르잖아, 인마.”
가볍게 투덜거리며 펜치로 목줄과 연결된, 잔뜩 닳아 있는 쇠사슬을 끊어 냈다.
이제 재킷으로 감싸 안고 튀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류재희가 손을 뻗자, 강아지가 한쪽 뒷다리를 들어 올렸다.
저 자세는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익숙한 자세였다.
“야야, 잠깐!”
본능적으로 류재희의 팔을 덥석 잡았다. 동시에 강아지가 시원하게 바닥에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물론 이건 콘티에 없는 장면이었다. 뮤비에 나갈 수 있는 장면도 아니고.
이건 뭐, 재킷으로 감싸 안고 달리기 전에 실례를 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냐.
우리가 볼일을 마치고 뒷발을 마구 바닥에 긁어 차대는 강아지를 멍하니 보고 있자, 카메라 뒤에서 참지 못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예현과 김도빈의 웃음소리가 제일 컸다.
“NG!”
그렇게 우리는 참으로 허망하게 첫 번째 NG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우리 실수도 아닌 강아지의 실수로 인해서.
“와, 강아지가 예현이 형 살렸다!”
우리 덕분에 첫 NG 벌칙을 피한 김도빈이 배를 잡고 웃어댔다.
“멍멍아, 혹시 예현 형한테 사주받은 건 아니지?”
내가 내민 손에 얹힌 앞발을 가볍게 쥐고 살살 흔들며 묻자, 헥헥거리던 강아지는 내 뒤에서 슬쩍 얼굴을 내민 서예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내 손을 뿌리치고 서예현에게로 달려갔다.
저 인간은 고양이파란 말이다. 저놈은 너를 나만큼 예뻐해 주지 않는다고!
강아지를 만져 보더니 왜 이렇게 단단하냐고 놀라는 서예현을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바라보았다.
진짜 저 얼굴로 강아지한테 촬영 때 오줌 갈겨서 NG 내라고 사주한 거 아니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서예현이 스트릿 댄스 판에 던져지는 모습이라도 봐야겠다고 다음 개인 컷 촬영인 서예현을 류재희와 나란히 앉아 매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옥상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서예현의 은발을 바람이 한차례 흩트리고 지나갔다.
“바람에 머리가 흐트러지는 장면은 콘티에 없으니까 NG 아니냐?”
“그렇게 치면 저희가 뛰다가 머리 흐트러진 것도 NG예요, 형.”
옥상 난간을 걸을 때 한 번 삐끗한 것과 벽에 낙서하다가 분필을 한 번 부러뜨린 것,
모형 총을 만지작거리다가 탄창이 분리된 게 서예현이 낸 NG의 전부였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우리를 돌아보는 서예현을 빤히 보다가 진지하게 물었다.
“누구세요? 누구신데 예현이 형 몸을 차지하고 계신 거죠? 연기 좀 한다 생각했는데 예현이 형 연기까지 잘하시네요.”
“윤이든 너도 도빈이에게 물들었어?”
“이거 말고는 설명이 안 되잖아!”
왜 내가 페널티를 받을 때마다 멤버들이 빙의를 외친 건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직관하니까 존나 귀신 들린 것 같았다.
“너희들의 사악한 계략이 내 잠재력을 일깨어 주기라도 했나 보지.”
서예현이 한껏 얄미운 얼굴로 헹,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견하준이야 NG를 낼 일이 없을 테고, 김도빈만 NG를 두 번 이하로 내면 우리는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었다.
“도빈아, NG 한 번으로 끝내라!”
“도빈이 형, 파이팅! 형 평소에도 잘 하잖아!”
“도빈아, 편하게 NG 3번 정도는 내도 돼!”
“음, 도빈이는 딱 봐도 3번은 넘을 것 같은데.”
“준아, 그런 부정 타는 소리를 하면 안 되지. 우리 도빈이는 할 수 있을 거야.”
“도빈이가 방금 윤이든 네가 한 말을 들었으면 공포에 떠느라 벌써 NG 10번은 냈을 텐데, 아쉽다.”
“벌써 공포에 떨고는 있는 것 같은데요.”
견하준의 손가락이 김도빈을 가리켰다.
내기를 제안했던 당사자인 김도빈은…….
“철판 너무 낡은 거 아니에요? 지금 막 녹 떨어지는데? 긁혔다가 파상풍 걸리는 거 아니야? 이거 제대로 고정된 건 맞죠? 너무 흔들리는데? 막막 삐꺽거리는데?”
높은 고정물 철판 위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공사판에서 보는 크레인처럼 까마득한 높이는 아니었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높이가 있었다.
우리가 있는 밑까지 뚜렷하게 전달되는 성량이 아주 장난 아니었다. 대체 왜 녹음할 때는 저런 소리를 못 낼까.
물론 안전상의 이유로 김도빈의 몸에는 와이어 가 달려 있었고, 밑에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두꺼운 소방용 매트리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춤추기는커녕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 채 얼어 있는 김도빈의 모습을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콘티 받았을 때는 저기에서 탭댄스도 출 수 있다더니, 왜 저래?”
“도빈이 형이 도빈이 형 한 거죠, 뭐. 저럴 줄 알았어요. 머릿속으로는 높고 아슬아슬한 곳에서 멋있게 춤추는 자신의 개쩌는 모습을 상상했겠지만 막상 올라가니까 현실을 마주한 거죠.”
류재희가 심드렁한 얼굴로 김도빈의 뼈를 때리는 팩폭을 날렸다.
그렇게 NG를 가장 많이 낸 사람은 김도빈이 되었다.
“쟤는 저럴 거면서 대체 왜 내기를 제안했던 걸까? 자기가 저 위에서 낸 NG보다 예현 형이 낼 NG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저는 도빈이 형이 ‘자기가 NG를 아예 안 낼 거라 생각했을 거다.’에 한 표요.”
괜히 내기를 제안해서 버스킹의 늪에 빠뜨린 게 어지간히 얄미운 건지, 오늘의 류재희는 거의 김도빈 담당 카운터였다.
“말도 안 돼!”
겨우 촬영을 마치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고정물에서 내려온 김도빈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콘티 받을 때는 너는 백퍼센트 못할 것 같으니까 바꿔 준다고 해도 괜찮다며.”
“저는 제가 겁이 없는 줄 알았어요.”
“도빈아, 무슨 예현 형이 한밤중에 치킨이랑 피자 폭식하는 소리야.”
뮤비 메이킹 필름을 찍는 카메라를 의식하여 무슨 개소리냐는 말을 최대한 순화하여 말하자 김도빈이 눈초리를 축 늘어뜨렸다.
“귀신은 무서워해도 저런 높은 곳은 괜찮을 줄 알았어요. 소풍 때 갔던 흔들다리도 아무렇지 않았단 말이에요.”
자기 객관화가 부족했던 이의 말로였다.
나랑 류재희는 운이 더럽게 없어서라고 하지만, 김도빈은 그저 스스로가 불러온 재앙이었다.
그렇게 내기의 최종 결과는 첫 번째로 NG를 낸 나와 류재희가 길거리 버스킹을, 가장 NG를 많이 낸 김도빈이 스트릿 댄스 버스킹에 투입되게 되었다.
5명 중 3명이 걸리다니. 무슨 이런 일이.
“수고해, 얘들아. 며칠 만에 버스킹 준비하려면 고생하겠네.”
벌칙에 당첨되지 않은 두 명 중 한 명인 견하준이 언제나와 같은 여상한 표정으로 격려의 말을 건넸다.
서예현이 있는 한 절대로 걸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던 우리 셋이 죽상을 하고 있자 서예현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래서 내기는 함부로 거는 게 아니라는 거다, 애시키들아.”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며 내 어깨를 탁탁 두드린 서예현이 한껏 가소롭다는 표정을 하고선 말을 덧붙였다.
“세상에 100%는 없거든.”
그렇지만 빅데이터상에 따르면 두 벌칙 모두 다 서예현이 걸릴 확률이 99%였단 말이다. 그 1%의 기적이 서예현한테 일어나다니.
젠장, 우리가 버스킹하면 김도빈이 계획했던 것처럼 이슈 몰이가 되긴 돼? 서예현은 얼굴 버프라도 있지, 우리가 이슈 몰이를 하려면 존나 명창이거나 한 25년 차 비보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어쩔 수 없다. 류재희를 고생시키자.’
한 4단 고음 정도를 시키면 이슈가 조금이나마 되지 않을까.
곧 컴백에 콘서트도 있으니 목에 무리가 가면 안 되니까 5단 고음까지는 안 시켜야지.
막내야, 이게 다 그룹을 위해서라는 건 알지? 나는 내 목소리 활용해서 화음이나 열심히 깔아 줄게.
그렇게 다짐하며 옆을 돌아보자 류재희가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 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역시 힙합은 힙합의 본고장에서 해야죠. 제가 피처링은 잘 해 드릴게요, 형. 피처링 있어도 너무 부담 가지지 마시고 편하게 하고 싶은 곡 고르세요.”
“무슨 소리냐, 막내야. 네가 4단 고음쯤은 해야지 버스킹 관객들을 끌어오지. 내가 본토 래퍼 형님들에게 디스랩 배틀을 걸지 않는 한 내가 길거리에서 랩 해 봤자 이슈도 안 돼.”
“그거 좋네요. 현지에서 디스랩 배틀 한 번 가시죠.”
“나 보고 총 맞으라고?”
최대한 서로에게 미루고 있는데, 아예 남의 버스킹에 난입해야 하는 김도빈이 옆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미치겠다! 브레이킹 안 한 지 꽤 됐는데……! 차라리 팝핀을 춰? 내가 왜 이런 벌칙을 하자고 했지?”
그러거나 말거나 서예현은 홀로 꽃밭이었다.
“얘들아, 세상이 너무 밝다! 그렇지?”
그룹 활동을 하면서 회귀 전후를 통틀어 생전 처음 보는 해맑은 표정으로 팔을 활짝 벌리고 웃는 서예현을 허탈한 눈으로 보다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해가 다 졌는데, 밝기는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