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3화(23/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3화
“그러니까 그 행성에서 과거의 사건 현장을 딱 보는 거지! 그리고 다시 지구로 돌아와서 범인을 딱 검거해!”
다른 건 다 모르겠고 대표님이 최근 셜록 홈스랑 인터스텔라를 감명 깊게 봤다는 건 알겠다.
두 개로 나누어진 영혼 합치려 다중우주를 넘나드는 회귀 전 콘셉트보단 아주 조오오금 낫긴 한데, 저놈의 다중우주는 포기가 안 되나?
아예 뮤비 내용까지 기획하는 대표님 옆에서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박수를 치고 있는 기획실장을 보자 인맥 회사의 폐해를 느꼈다.
거지 같은 곡을 주는 그 작곡가도 알고 보면 대표의 인맥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어떠냐? 이번에는 괜찮지?”
자신만만한 얼굴로 우리를 돌아보며 묻는 대표님께 찬물을 끼얹을 시간이었다.
“이러실 줄 알고 저희도 컨셉 짜 왔습니다.”
“아니, 이거만큼 기가 막힌 컨셉이 어디에 있다고 그래? 새로운 시각의 해석, 어?”
“원곡자는 전데요.”
내 수신호에 벌떡 일어난 류재희가 회의장 앞쪽으로 당당히 걸어갔다.
눈에 띄고 시선 팍팍 끄는, 아주 끝내주는 PPT가 완성되었다며 호언장담해 대던 막내 라인의 말을 떠올리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피식 웃었다.
어디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구경이나 한번 해 볼까?
회의장 스크린에 드디어 김도빈이 밤새 만들었던 PPT가 공개되었다.
‘……실화냐?’
PPT 꼬라지를 보자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견하준과 서예현은 물론이요, 직원들의 표정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화면을 가득 메운 시퍼런 보노보노.
하이틴 하
우스 파티
콘셉트를 해
야 하는 이
유
그리고 굴림체 46pt 무지개색 글자로 써진 참으로 정직한 제목.
‘이 자식들, 필사적으로 안 보여 주던 이유가 이거였냐?’
혼돈의 도가니 속, 홀로 아니. 김도빈이랑 쌍으로 여유를 갖춘 류재희가 안경을 쓱 추켜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주제는 보시다시피 저희 레브의 미니 2집 콘셉트로 하이틴 하우스 파티를 채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스페이스 바를 누르자 큼지막한 제목이 지진 난 듯 흔들거리는 모션을 취해 주고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푸르딩딩한 보노보노와 빼곡히 적힌 가독성 제로 돋움체 회색 글자가 보였다.
“자, 먼저 하이틴에 나오는 하우스 파티란 무엇인가.”
또 흔들림 애니메이션을 취하는 제목에 더는 참지 못하고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적당히 좆같으면 빡치기라도 하지 너무 좆같아서 빡침은커녕 웃음밖에 안 나온다.
“데뷔 초에 청량 콘셉트는 이미 남돌판에서 공식으로 자리 잡혔습니다. 하이틴, 그리고 하우스 파티 조합은 청량하고 풋풋한 이미지를 보여 주면서 동시에 댄스 장르의 노래에 맞는 파티 콘셉트까지 잡을 수 있는…….”
그 밖에도 빼곡한 글자 위에 확 펼쳐지고, 한 바퀴 구르고, 공처럼 통통 튕겨 오는 등.
환장의 애니메이션 모션을 보여 주는 사진들.
“어라. 안 틀어지네? 그냥 검색해서 틀어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그냥 검은색 네모 하나 삽입해 놓고 동영상 안 나온다고 구라치는 행태.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나오는 좆같은 보노보노.
‘하하, 조졌다.’
넋 놓고 허탈한 웃음만을 흘리고 있자, 언제 발표가 마무리된 건지 류재희의 끝인사가 들렸다.
“이상입니다.”
물론 박수갈채는 없었다.
시공간을 달리는 탐정 콘셉트를 겸허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렸다.
‘와, 착하다. 저딴 발표에도 박수를 다 쳐 주고.’
고운 마음씨에 감동하며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깊은 감명을 받은 듯한 표정의 대표님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망할, 착하다는 말 취소.
눈치만 보다 한두 명씩 가세하더니 곧 박수갈채가 완성되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대표님이 칭찬했다.
“이야, PPT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감각 있어.”
콘셉트가 아닌 PPT를.
역시 남들과는 다른 안목을 가진 자다웠다.
“콘셉트는 내가 생각했던 탐정 컨셉보다 독창성과 창의력이 조금 떨어지긴 하는데, 우리 애들이 이렇게 PPT까지 만들어 왔는데, 이번에는 내가 한발 물러나 줘야지. 안 그래, 이 실장?”
“어휴, 그럼요. 역시 마음씨도 넓으십니다, 대표님.”
그리고 고개 돌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기획실장이랑 눈이 마주쳤다.
안도할 정도면 말리라고. 간신배처럼 옆에서 동조하지 말고.
“그러면 컴백 날짜는 내년 1월 중순쯤으로 생각하고 작업하자. 다들 괜찮지?”
“아니요.”
회의실 안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동요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저희 무조건 올해 컴백해야 합니다.”
“12월은 연말 시상식에 축제까지 사실상 활동 거의 못 하는 거 알잖냐, 이든아. 음방 결방되면 많아 봤자 2주 활동이다. 그리고 지금 9월인데 11월 컴백은 빠듯하지 않겠냐.”
“그럼 11월 말에라도 컴백해야 합니다. 무조건.”
“왜? 무슨 이유라도 있어?”
아예 기억에서 2집 활동을 지우고 있다가 회귀 전의 차트를 보니 똑똑히 기억났다.
회귀 전, 레브는 대표님이 말한 것과 똑같은 이유로 1월에 컴백했다.
그리고 비극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월은 컴백 전쟁 수준이 아니라 가히 컴백 지옥이라는 명칭을 붙여도 될 수준이었다.
대형기획사에서 내놓은 신인 걸그룹과 파격적인 콘셉트로 컴백한 1군 남돌.
음원 강자인 솔로 발라드 가수.
차례로 군대 갔다가 막내까지 모두 전역하고 첫 컴백하는 2군 남돌.
1군 여돌 메인보컬의 솔로 활동.
대형기획사 1군 남돌의 유닛 활동.
그 사이에서 블랙소울 노래 들고, 깃털 달린 고스룩 입고 컴백한 망돌 레브는 도약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처참히 망했다.
이상한 콘셉트로 관심받을 만도 했는데 그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아주 처참히.
‘그리고 2월은 너무 늦어.’
6개월은 기껏 유입된 팬들이 공백기를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것도 띄운 노래라곤 뮤비도 없는 하나인 시점에서라면 더더욱.
아무리 예능에 나오고 자컨을 뽑아도 음원 활동 한 번보다는 못 했다.
현재처럼 애매하게 뜬 경우라면 메이저 예능에서 불러 줄 리도 없고 말이다.
여기서 내 감이라고 우긴다면 씨알도 안 먹힐 게 뻔하다.
우리가 망하는 걸 직접 겪고 시간을 거슬러 왔다고 사실대로 말한다면 미친놈 취급당할 건 당연지사.
그렇다면 한국에서 미래를 다룰 때 제일 잘 먹히는 게 무엇이냐. 무속 아니겠는가, 무속.
“저희 할머니께서 며칠 전에 제 사주를 보고 오셨는데, 제 월운이 내년 1월에 대흉이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1월에 큰일 하지 말랍니다.”
“큰일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니고?”
“당연히 컴백 활동이 제일 큰일이죠. 제 월운 때문에 이번 활동 망하면 제가 멤버들 얼굴을 무슨 수로 보겠습니까. 아이고, 망하면 내가 책임지고 나가야지, 아이고.”
멤버들이 나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지만, 꿋꿋이 수동 공격을 계속했다.
노래랑 콘셉트도 잘 뽑아 놨는데 여기서 컴백 날짜 하나 잘못 정해서 망할 수는 없었다.
홀로 과거를 알고 있는 건 참으로 외로운 일이군. 어째서 나만이 이 무거운 숙명을 짊어지게 된 건지.
자조하고 있자 시스템이 대답 대신 내 눈앞에 시스템창을 띄웠다.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초심 되찾기 프로젝트!] [필수 조건- 3만 명의 팬들을 실망시킨 당신, 3천만 명의 팬들을 기쁘게 만들어라!(11,002/30,000,000)]어, 그래.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다시 상기시켜 줘서 고오맙다.
그나저나 이제 겨우 1만 1천 명이라니. 3천만 명 언제 채우냐. 나 죽기 전에는 채울 수 있겠지?
멍하니 상태창을 보고 있자 내가 넋이라도 놨다고 생각했는지 헛기침해서 내 정신을 다시 현실로 일깨운 대표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니, 할머님께서 본 사주가 안 맞을 수도 있고 사주에만 의지해서 컴백 날짜 정하기는…….”
“예? 저희 할머니께서 사기꾼에게 돈 가져다 바치고 계신다는 소립니까? 아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눈 크게 뜨고 입을 틀어막자 대표님이 조용히 입을 다무셨다.
역시 사람 설득하는 데는 조모+무속 조합이 최고였다.
사주팔자 보는 데 돈을 쓰느니 그 돈으로 소고기나 사 먹겠다고 하시던 할머니의 못마땅한 쯧쯧거림을 떠올리자 갑자기 죄책감이 몰려왔다.
할머니, 이런 불효손이라 죄송합니다.
올해 컴백 성공해서 내년 설에 홍삼이랑 한우 세트 들고 찾아뵐게요.
* * *
컴백 날짜는 무사히 11월 말로 정해졌다.
활동 콘셉트 역시 변동 없이 하이틴 하우스파티 콘셉트.
지금이 9월 초인 걸 감안했을 때, 컴백까지 남은 디데이는 석 달이 채 안 되는 날짜였다.
지금 USB 안, 수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앨범에 투입할 수 있는 완성곡은 타이틀곡인 를 포함하여 세 개.
상열이 형한테 곡 하나 받아 오고 대충 원찬스까지 넣으면 다섯 곡은 채우겠군.
나중에 이후의 앨범 작업에 하나씩 넣으려 비축해 놨던 곡들이었지만, 당장 발등에 불똥 떨어진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다.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머릿속으로 정리하다가, 아까부터 따끔거리며 나를 찔러 오는 시선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옆을 돌아보았다.
“뭐냐. 할 말 있으면 해라.”
“아니, 딱히 할 말은 없고요.”
내 옆얼굴을 빤히 보고 있던 시선의 주인, 류재희가 볼을 긁적이며 멋쩍게 시선을 피했다.
“그럼 뭔데? 오늘 했던 발표 칭찬해 주기라도 하리?”
“그냥, 신기해서요. 형이 사주 믿는다는 게. 그리고 칭찬은 당연히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 완벽한 발표가 대표님의 마음을 움직였는데?”
대표님의 마음을 움직인 건 네 발표가 아니라 대표님의 이상 취향에 딱 들어맞은 좆같은 보노보노 PPT다.
크디큰 오해를 하고 있는 막내 녀석을 향해 혀를 쯧쯧 차 주다가 툭 한 마디 내뱉었다.
“안 믿어.”
“네?”
“사주 안 믿는다고.”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눈을 깜빡거리기만 하던 류재희가 입을 떡 벌렸다.
“헐, 그럼 회의 때 한 말은 뭐예요? 진짜 형 월운 때문에 활동 날짜 당긴 거 아니에요?”
대답해 줄 수 없는 물음에 어깨만 으쓱하며 별일 아닌 것처럼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달 운이 안 좋긴 해.”
“형, 왜 이렇게 괴담처럼 말해요?”
“나 하나 물어봐도 되냐?”
대답 대신 던져진 질문에도 류재희는 인상을 찡그리기보단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회의에서 올해 컴백 고집할 때 무슨 생각 들던?”
회의 때부터 계속 찝찝했던 의문점을 꺼냈다.
상황은 어떻게 보자면 비슷했지만, 내가 후속곡 활동을 주장하며 밀고 나갔을 때와 달리 초심도는 깎이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초심도가 깎이는 ‘멤버들과의 불화 조장’의 기준을 밝혀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