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3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30화(23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30화
호텔로 돌아온 나와 류재희는 모레 해야 할 버스킹을 위해 부를 만한 곡을 찾기 시작했다.
힙합 본토에서 부르는 real hiphop은 꽤 매력적인 선택지이긴 했지만 내가 레브의 리더인 이상, 레브의 미래를 위해서는 눈물을 머금고 그 선택지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주목을 받아야 할 거 아니야, 주목을. 내가 길거리에서 랩하고 있어 봤자 관심이나 주겠냐고.
이스트코스트 힙합 광-추종자에게 어딜 동부 힙합의 성지에서 웨스트코스트 힙합을 쳐 하고 있냐고 죽빵이라도 맞으면 이슈는 되겠군.
“이거 어떠냐? 재희 너의 고음을 뽐낼 수 있으면서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명곡인데. 이거 잘 하면 너튜브 천만 뷰도 가능할 듯?”
“뭔데요?”
너튜브 천만 뷰라는 소리에 구미가 당긴 듯 류재희가 관심을 보였다.
재생 버튼을 터치하자 밤의 여왕 아리아의 고음이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류재희의 눈에서 곧바로 흥미의 빛이 꺼졌다.
“형 말대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곡이긴 하네요.”
“그렇지, 클래식은 영원하고 호불호도 안 갈리지 어때, 괜찮지?”
“거기까지 고음 안 올라가요. 제가 그 노래를 소화할 수 있었으면 성악을 했겠죠. 그리고 제가 그거 부를 동안 형은 뭐 하실 건데요.”
“옆에서 박수 치기?”
“형이 제일 좋아하는 힙합곡을 부르시는 건요?”
“오,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주역인 브루클린에서 웨스트코스트 힙합이라니. 총 맞기 딱 좋겠는걸?”
눈을 깜빡거린 류재희가 슬쩍 물었다.
“진짜예요?”
“당연히 조크지. 지금은 딱히 지역성 없어. 90년대나 웨스트-이스트로 한창 나뉘어서 대립했지.”
어깨를 으쓱하자 눈을 가늘게 뜬 류재희가 정곡을 찔렀다.
“그럼 형답지 않게 왜 힙합의 본고장에서 리얼 힙합을 할 수 있다는 데도 계속 몸을 빼시는 거죠?”
“만약 우리가 버스킹하고 있는 앞을 이스트코스트 힙합을 매애애우 사랑하는 래퍼가 지나가다가 웨스트코스트 힙합곡을 부르는 나한테 싸이퍼라도 신청하면 어떡해. 한국말이면 몰라, 나는 아직 영어로 디스랩을, 그것도 프리스타일로 바로 맞받아칠 수준이 아니란 말이야.”
“싸이퍼가 뭔데요?”
“있어, 프리스타일 랩 배틀.”
류재희가 짜게 식은 눈으로 박수를 짝짝 쳤다.
“다음 활동 뮤직비디오 시나리오는 형이 쓰셔도 되겠어요.”
아무튼, 류재희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도 아닌 뉴욕 길거리 한복판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선보일 생각이 없었고, 나는 이스트코스트 힙합 본고장인 브루클린에서 웨스트코스트 힙합인 내 최애곡을 부를 생각이 없었다.
“이건 어때요? 피처링도 적당히 음역대 높고, 랩 파트가 길어서 마음에 드는데.”
“기각.”
F워드가 왜 이렇게 많아? 저거 한 번 부르면 초심도 0점 달성해서 다시 데뷔 초 시절로 회귀하게 생겼다.
이건 자체 묵음 처리하면 랩이 뚝뚝 끊겨 듣기 싫은 수준까지 될 터였다.
그렇게 한참을 류재희와 토의하다가 그냥 팬들에게 추천받자고 합의하고 OA라이브를 켰다. 위클리 퀘스트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기왕이면 보컬 기교가 돋보이는 곡으로 골라 주시면 제가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레브 메보의 저력을 해외에도 보여 줘야죠.”
“랩에 보컬 피처링은 첨가 수준인 곡도 괜찮아요. 힙합 하면 미국 아니겠어요?”
읽기도 어려운 속도로 쏟아지는 추천곡을 읽어 내려 노력하고 있던 중, 채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옆을 돌아보니 정말로 류재희의 머리를 감싼 수건이 위태롭게 흘러내리기 일보 직전의 꼴이 되어 있었다.
컴백 전까지 머리색 스포 방지를 위해 바로 휴대폰을 높이 치켜들며 류재희의 머리를 꾹 눌렀다.
“오, 감사합니다. 염색을 지금 단체로 해서…… 힌트? 컨셉 워스트가 예현 형이고요, 베스트가 접니다. 핑크색? 아닌데. 제가 핑크색 머리가 제일 잘 어울렸다고요? 이건 좀 충격인데?”
“헐, 진짜요? 핑크이든형 완전 바비 월드에 잘못 들어와 갇혀 버린 빌런 같던데.”
차마 팬분들 앞에서 두피 마사지나 목 마사지를 선보일 수 없어서 복수의 일환으로 보컬 100%인 추천곡만 열심히 골라냈다.
* * *
드디어 찾아온 버스킹 당일.
연속 두 곡을 불렀음에도 버스킹 관객은 우리 멤버들과 매니저들, 그리고 비둘기뿐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얼마 없었을뿐더러, 드문드문 보이는 행인들도 우리를 힐끔거리고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두 번째 노래가 끝나자 들고 있던 기타 줄을 팅, 튕기며 기타 위에 축 늘어져 류재희를 돌아보았다.
“거봐, 막내야. 내가 밤의 여왕 아리아 하자 했잖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형이 현지인이랑 랩배틀을 하는 게 더 이슈를 끌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지나가는 흑인 형님 한 분을 붙들고 무작정 랩배틀 하자고 할 수는 없잖아.”
“제가 한 분 모셔 올게요. 걱정하지 말고 가사 생각해 놓으세요.”
진짜 행인 한 명 잡아 올 것처럼 금방이라도 몸을 일으키려 하는 류재희를 기타까지 내려놓으면서 겨우 붙들어 만류했다.
“예현이 형! 헬프!”
결국 류재희는 서예현에게 SOS를 쳤다.
“마이크 들고 앉아만 있어 주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다 할게요. 그 정도는 괜찮죠?”
“그 정도야 뭐…….”
자기에게 노래를 시키는 게 아니라는 것에 안도한 것인지, 서예현은 흔쾌히 수락했다.
버스킹 시작 전, 벌칙 수행 힘내라고 얄밉게 웃으며 박수를 치던 서예현이 봐도 관객 하나 없이 쓸쓸하게 노래 부르고 있던 우리 모습이 영 초라해 보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깍두기 한 명을 끼우고 다시 공연을 시작했다.
이건 우연인가, 아니면 정말로 서예현 얼굴 버프가 먹힌 것인가. 많다고 할 수 있는 수는 아니었지만 우리 앞에 관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나가던 행인의 수가 서예현의 합류를 기점으로 늘어났던 거지만.
랩 파트를 하며 곁눈질로 류재희를 힐끔거리자 류재희 역시 떨떠름한 기색이 살짝 묻어나왔다.
막내가 자신의 노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다고 생각해 상처받으면 어떡할지 잠시간 걱정이 됐다.
재주는 곰이 부리는데 돈은 왕 서방이 받는다고, 노래는 우리가 다 부르는데 관중들 70%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서예현은 그냥 앉아만 있기 머쓱했던지 마이크를 슬며시 들어 올려 곡에 화음을 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랩 파트에서 화음을 넣는 건 좀 그렇지 않냐?
그렇게 준비한 노래를 모두 끝맺고 사람보다 비둘기가 더 많았던 버스킹을 마쳤다.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뚱한 표정을 한 류재희의 어깨에 팔을 걸친 김도빈이 장난스럽게 인터뷰했다.
“동영상 몇만 뷰 예상하십니까?”
“동영상이 찍히긴 했어? 업로드 여부부터 걱정해야 할 것 같은데?”
“매니저 형이 찍고 있긴 했어. 다른 사람들은…… 음, 모르겠다.”
“그럼 해외 이슈는 안 되겠네. 도빈이 형, 이제 레브 해외 진출은 형한테 달렸어. 파이팅.”
이제 제 차례라는 걸 이제야 자각했는지 김도빈의 표정이 곧바로 죽상이 되었다.
김도빈이 수행해야 하는 벌칙은 댄스 버스킹에 투입되기. 보통 뉴욕 비보잉 버스킹 같은 경우는 관객 참여도 꽤 유도하는 편이라 그냥 떠밀면 된단다.
다만 이곳에는 김도빈이 끼어들 댄스 버스킹 공연이 없었기에 마무리 정리를 마친 우리는 버스킹을 하는 곳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버스킹 핫플이라더니 어째 공연팀이 하나도 없냐. 김도빈, 제대로 알아본 거 맞아?”
“넹, 분명 여기랬어요. 이 근방이랬는데.”
“이 근방과 여기는 분명히 다른 표현이거든? 너한테 맡긴 내 잘못이다, 내 잘못.”
“예현이 형! 진짜 여기였죠!”
“어, 블로그 사진에도 저 건물 보였어.”
“그럼 우리가 올 때만 핫플이 사라진 거야?”
투덜거리면서 골목 세 개를 지나자마자 우리 귀에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공연을 구경하는 관중들의 모습에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여기가 버스킹 핫스팟이었군.”
시장 옆 골목에서 좌판 깔고 물건 팔고 있으면서 왜 손님이 안 오느냐고 한탄한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김도빈과 그에 동조했던 서예현이 슬그머니 내 시선을 피했다.
“막내랑 이든이, 여기에서 한 번 더 하고 갈래?”
견하준의 제안에 류재희가 목을 문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목 컨디션이 지금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쉬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아니면 하준이 형이 이든이 형이랑 버스킹 하시는 건 어떠세요?”
“이거 벌칙 아니었어?”
“벌칙이라뇨, 엄연한 해외 진출을 위한 기반 다지기 프로젝트……!”
김도빈의 정수리를 꾹 누르며 김도빈의 헛소리를 끊었다.
“그래, 해외 이슈의 꿈은 도빈이가 이루어 줄 거야. 걱정하지 말고 쉬어라, 막내야.”
버스킹 공연 준비를 하는 듯, 스피커를 바닥에 놓고 기타를 조율하던 남자 셋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자기들끼리 무어라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자리를 옮기려 하는 우리에게 다급히 다가온 남자가 우리가 방금까지 버스킹을 했던 곳의 방향을 가리키며 내게 말을 걸었다.
「방금 저기에서 너희들이 버스킹하는 모습을 봤어.」
자신들을 버스킹 영상을 찍어 올리는 밴드라고 소개한 3인조는 내게 제안을 건넸다.
말의 요지는 자신들의 영상에 프리스타일 랩으로 출연할 용의가 있느냐는 거였다.
「랩 가사가 따로 있어?」
「놉, 30초간 리얼 프리스타일이야. 자신 있어?」
도발하듯 씩 웃으며 물어 오는 말에 잠시간 고민하다가, 삐뚜름한 미소를 입가에 걸치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우리의 대화를 영어 듣기 하듯 진중하게 듣고 있던 류재희가 내가 승낙하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형, 영어로 프리스타일 랩은 자신 없다면서요.”
물론 내가 어느 정도 회화는 된다고 해도 영어로 30초 동안 프리스타일 랩을 하는 건 어려웠다.
한국어로 해도 라임이니, 펀치라인이니 신경 쓰며 머리를 존나게 굴려야 하는데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어떻게 하겠냐고.
하지만 30초 분량의 랩 가사는 내 기억 속에 있었다. 회귀 전, 실패한 이른 미국 진출에서 그곳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작업한 곡들.
시간이 꽤 지나 기억 속에서도 흐릿해지긴 했지만 눈 감고도 가사를 뱉을 수 있는 곡 하나가 있었다. 뭐, 여러 사정으로 인해 정식 발매되지는 못했지만.
‘회귀 전의 개고생이 도움이 되는 날이 오는군.’
가사도 사랑 노래든 이별 노래든 어느 노래에 가져다 붙여도 대충 어우러지는 내용이라 문제 될 것도 없었다.
“30초면 충분해.”
씩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어느새 공연 준비를 마친 밴드 보컬의 옆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 보컬이 관중들 들으라는 듯 마이크에 대고 내게 말했다.
「오케이, 좋아. 내가 마이크를 넘겨주면, 한번 보여 줘 봐. 마음껏.」
일렉기타 반주 소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