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3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31화(23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31화
「차를 타고 시동을 걸어
오늘은 또 어느 곳을 가고 싶어, girl?」
경쾌한 멜로디와 경쾌한 음정. 노래 가사는 도심 속에서 추구하는 자유를 외치는 그냥 뻔한 팝송 가사였다. 운이 좋게도, 내 랩 가사와도 아주 잘 어울렸다.
남자의 보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거나 다른 버스킹 공연을 보다가 이쪽으로 합류했다.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모자챙을 올렸다.
1절을 모두 부른 남자가 내 앞에 마이크를 대어 주었다. 키가 엇비슷했기에 남자가 허리를 숙이거나 내가 까치발을 들어야 하는 참사는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아하, 가볍게 추임새를 넣고 가사를 떠올리며 랩을 시작했다.
「반복되는 멜로디가 지겨울 때쯤 변화구 한 번 던져 줘야지. 정체 모를 ‘그녀’ 타령은 이 파트에서만은 내려놓을게.」
비트라고는 일렉 기타와 베이스의 뚱땅거림밖에 없었지만, 박자를 맞추긴 어렵지 않았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 제법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 감탄과 흥미가 비쳤다.
평생 내 작사 노트 안에서, 그리고 회귀한 지금은 내 머릿속에서 썩게 될 줄 알았던 이 가사가 이런 식으로 세상 빛을 보게 된 것도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랩의 본고장에서 프리스타일 랩을 해 보는 것도 꽤 좋은 경험이고 말이지.’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씩 웃으며 마지막 가사 소절을 내뱉었다.
「바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조금 천천히 가자, 어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초가 끝났다.
다시 마이크를 거둬가 노래를 이어 부르며 밴드맨 보컬이 엄지를 치켜들고 내 등을 두드렸다.
괜히 머쓱해 모자의 챙을 꾹 누르며 다시 우리 멤버들 사이로 후다닥 돌아왔다.
“야야, 빨리 가자.”
저들의 노래가 끝나기 전에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멤버들의 등을 떠밀며 재촉했다.
“언제는 천천히 가자며.”
서예현이 키득거리며 내가 했던 랩 가사를 인용해 나를 놀려먹었다.
리더의 권위가 정말로 땅에 떨어졌구나.
“헐, 예현이 형. 그걸 다 들었어요? 아니, 저도 들리긴 들렸는데, 해석까지 가능해요?”
“끝 문장이라 가능했어. 전체 해석은 나도 못해.”
김도빈의 물음에 착실하게 대답해 주는 서예현을 툭, 쳤다.
“빨리 김도빈이 버스킹 벌칙을 수행할 만한 곳이나 찾아.”
“어, 저기 댄스 버스킹한다!”
류재희가 한창 비보잉 공연이 진행 중인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들은 제법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기도 전에 공연이 끝났다. 다른 공연을 찾아 봐야 하나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다시 그들이 공연 준비를 시작했다.
“또 하는가 본데요?”
덕분에 우리는 제법 앞쪽에 자리를 잡고 구경할 수 있었다. 김도빈을 춤판으로 떠밀기에 아주 최적의 위치였다.
한참 공연이 이루어지던 도중, 우리 앞으로 다가온 비보이 한 명이 서예현을 잡아끌어 춤판으로 데려갔다. 김도빈을 떠밀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따라 하라는 듯 춤 시범을 보여 주는 그의 옆에서 서예현이 얼어붙어 있자, 김도빈의 등을 떠밀며 경쾌하게 외쳤다.
「이봐, 여기 대타 보낼게! 그 친구가 워낙 부끄러움이 많아서!」
서예현이 살았다는 얼굴로 후다닥 우리에게 달려와 나와 견하준의 등 뒤로 숨었다.
“아니, 왜 나야? 내가 그렇게 춤 잘 출 것 같은 인상이야?”
“그냥 형 얼굴이 눈에 띄는 얼굴이라 그래요.”
단단히 착각하는 서예현의 말에 류재희가 진실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김도빈은 그렇게 홀로 걱정하고 있던 게 무색하게 물 만난 물고기처럼 비보이의 시범을 완벽하게 따라 하는 것도 모자라 윈드밀까지 선보이며 관객들의 호응과 박수를 이끌어 냈다.
“이야, 김도빈 아직 안 죽었다!”
우쭐거리며 돌아온 김도빈이 내가 촬영하는 비디오에 V자를 그리며 웃었다.
“이렇게 셋 다 성공적으로 벌칙을 수행했네요. 예현이 형 잡으려고 던진 그물에 우리가 낚이다니.”
“잠깐, 나는 사실상 버스킹 투입까지 했는데? 왜 나만 벌칙을 두 개나 수행한 거지?”
“에이, 그건 형이 수락한 거였잖아요.”
“나는 걸리지도 않았는데 벌칙 수행할 뻔했어…….”
그렇게 셋 다 나란히 벌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형, 오늘 버스킹 어땠어요?”
호텔 침대에 드러누운 류재희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너뷰브에서 봤던 ‘지나가던 사람 붙들고 한 번 시켜 봄’ 버스킹은 다 구라라는 걸 깨달았어. 사전 섭외의 결과였다니. 역시 너튜브를 너무 믿으면 안 돼.”
만약 내가 버스킹에서 랩하는 걸 보지 않았다면 그 밴드가 굳이 나를 붙들고 참여를 부탁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아니, 그거 말고 우리가 했던 버스킹이요.”
아, 그거 말하는 거였냐. 관객보다 비둘기가 더 많았던 그 버스킹도 꽤 인상적인 경험이긴 했다. 여러모로 우리의 망돌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어 주었달까.
“김도빈에게 꿀밤 한 대 먹이고 싶었지. 핫플 두고 리얼 길바닥 버스킹을 하게 만들어?”
“도빈이 형이 잘못 찾아도 예현이 형이 어떻게든 수습해서 제대로 된 곳을 찾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판단 미스였어요. 예현이 형에게 길치 기질이 있었을 줄이야.”
류재희가 한탄을 거들었다. 잠시간 내려앉은 침묵을 깨고 류재희가 다시 물었다.
“형은 기분 안 상했어요?”
뜬금없고 의중 모를 물음에 멀뚱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되물었다.
“왜, 내 랩 파트가 네 보컬보다 더 많아서? 내가 그런 걸로 기분 상할 사람으로 보이냐?”
“보통 반대 아니에요……? 형 랩 파트가 제 보컬보다 더 적어서 기분이 상하는 게 보통이잖아요.”
“그래, 생각하는 게 보통이 아니라서 미안하다.”
투덜거리다가 갑자기 든 생각에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설마 너…… 보컬 분량이 내 랩 분량보다 적어서 기분 상했냐?”
“그럴 리가요.”
단호한 부정이 즉답으로 류재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형의 진짜 솔직한 감상. 그거 말하는 거예요.”
“재미있었어. 너랑 나랑 단둘이서 듀엣으로 노래 부르는 건 처음이었잖아.”
내 대답을 듣고 묘한 표정이 된 류재희가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 시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재미있었어요.”
과장스럽게 하품을 하고선 피곤하다며 이불을 뒤집어쓰는 류재희의 모습을 보다가 나 역시 모로 뉜 몸을 곧게 폈다.
류재희가 말하고 싶어 했던 건 다른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몰려오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스르륵 눈을 감았다.
* * *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왜 안 올라오지? 이쯤 되면 영상 올라오고 내가 케이팝 아이돌이라는 사실이 댓글에 언급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김도빈은 거의 3시간에 한 번씩 너튜브에 뉴욕 댄스 버스킹을 검색해 대고 있었다.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한 번 했던 그 버스킹으로 조회 수 대박을 쳐서 미국에 진출하는 건 서예현이 DTB 시즌 4에 나가서 우승할 확률이라니까?
“솔직히 말하면 형이 압도한 건 아니었어. 그냥 맹해 보이는 놈이 갑자기 현란한 기술을 선보이는 게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거지.”
“나도 내가 압도했다고 생각 안 해. 아마 그 형님들은 밥 먹고 춤만 췄을걸. 나는 브레이킹 놓은 지 오래라고. 지금 내가 부상의 위험도 감수하고 기술을 선보였건만.”
“와, 도빈이 형. 그 말 형들에게는 절대 하지 마. 콘서트 앞두고 부상 위험 있는 기술을 겨우 길거리 버스킹에서 선보인 얼빠진 놈이 되고 싶지 않으면.”
다 듣고 있었다. 그리고 김도빈이 얼빠진 놈이라는 건 딱히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다.
“그리고 차라리 ‘버스킹 중 지나가는 행인 붙들고 마이크를 넘겨줬더니’로 올라올 이든이 형 동영상이 더 화제가 될걸?”
“그건 너무 뻔하잖아.”
“형도 뻔해.”
대체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모를 대화를 듣고 있다가 몸을 돌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와 <다시 시작해>의 콘서트 무대 안무를 열심히 연습하는 것과 나머지 세트리스트 무대 연습의 마무리였다.
“준아, 차라리 그랜드피아노 있는 피아노 학원을 수배해서 연습하는 게 낫지 않겠냐? 신디사이저로 연습하는 거랑 느낌이 다르잖아.”
내 작업실에서 솔로 무대에 선보일 곡을 신디사이저로 연주하는 견하준을 옆 의자에 걸터앉아 구경하다가 충고를 던졌다.
“연주 감만 익혀 놓고 리허설 때 그랜드피아노로 쳐 보면 돼.”
잠시 연주를 멈춘 견하준이 신디사이저 건반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기듯 누르며 대꾸했다.
“다시 연주하면서 노래 좀 해 봐. 내가 편곡을 너무 급하게 해서 그런지 미묘하게 안 맞는 곳이 있는 것 같아서.”
견하준이 솔로 무대에서 선보일 곡은 바로 미니 3집 [이면]의 수록곡이었던 <달의 이면>.
견하준이 온전히 홀로 부를 수 있도록 내 랩파트를 싹 갈고 가사와 멜로디를 수정하여 편곡했다.
“난 괜찮던데.”
“기왕 첫콘에서 선보이는 거, 완벽한 게 낫지 않겠어?”
내 물음에 그렇긴 하다며 김샌 웃음을 흘린 견하준의 손이 다시 부드럽게 건반 위를 유영했다.
어릴 적, 피아노 콩쿠르에도 몇 번 나가 입상한 경험도 있었다는 견하준의 피아노 연주 실력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작곡 노트를 펼쳐 견하준의 목소리와 피아노 연주에 집중했다. 2절에서 신경에 거슬리던 곳을 드디어 찾아내 동그라미를 작게 쳤다.
의자를 끌어 견하준의 옆에 나란히 놓고 건반을 원본 멜로디대로 가볍게 두드렸다.
“이게 방금 네가 불렀던 거고.”
멜로디를 바꾸어 건반을 몇 번 두드려 보다가 제일 자연스럽게 들어맞는 멜로디를 견하준의 귀에 익을 수 있게끔 세 번 반복해 주었다.
“이게 수정된 거.”
펜을 집어 노트의 음표도 수정해 견하준에게 다시 내밀었다. 그 부분만 연주한 견하준이 힘들이지 않고 곧바로 고음을 올렸다.
미묘하게 거슬리던 부분이 확실히 잡힌 걸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오케이, 됐다.”
“확실히까지는 모르겠는데 이전보다 더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하네.”
고개를 끄덕인 견하준이 건반 위에서 손을 내리고 내게 물었다.
“너는 솔로 무대 준비 잘되어 가?”
“나야 뭐, 준비할 게 따로 있나. 김도빈이랑 하트춤이나 마지막으로 맞추면 되지.”
나는 유일하게 솔로곡이 있는 멤버였기에 <빌런(villain)>으로 솔로 무대를 꾸밀 예정이었다.
서예현은 아직 온전히 솔로 무대를 꾸밀 자신이 없다며 류재희와의 듀엣 무대를 준비했고, 김도빈은 춤이나 추겠지.
잠시 연습을 멈춘 견하준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 작업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죽상을 한 류재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견하준이 있는 걸 몰랐던 건지 견하준을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뜬 류재희가 다시 나가기라도 하려는 듯 몸을 돌렸다.
“왜, 재희야. 이든이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야? 내가 나가 있을까?”
견하준의 질문에 다급히 고개를 저은 류재희가답지 않게 쭈뼛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든이 형, 저…….”
한참을 입술을 깨물고 짓씹기를 반복하던 류재희가 무겁게 물었다.
“혹시 예현이 형이랑 솔로 무대, 같이해 주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