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3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32화(23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32화
“왜, 예현 형이랑 싸웠어?”
내 물음에 입을 꾹 다문 류재희가 고개를 저었다.
“인마, 말을 해야지 형이 네 뜬금없는 부탁을 들어줄까 고민하든지 말든지 하지.”
타박을 던지자 견하준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마 말 좀 부드럽게 하라는 신호임이 분명했다.
“그래, 막내야.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형한테 그런 생뚱맞은 부탁을 하게 된 거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부드럽게 순화하여 다시 물었다.
한참의 침묵이 이어지고, 슬슬 내 인내심이 떨어져 갈 즈음에야 무거운 한숨을 내쉰 류재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예현이 형이랑 이번 무대를 같이하면 앞으로 그룹 활동을 하면서 계속 제 실력을 의심하게 될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아듣고 굳어지는 표정을 애써 다잡았다.
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나 역시 겪었던 감정이었으니까.
다만 솔직하게 말해 오는 지금의 류재희와는 달리 나는 자존심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썩히다가 내 자존심에 난 스크래치를 모조리 서예현 탓으로 돌렸다.
회귀 전의 나와 서예현이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된 것은 바로 그때가 기점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
“그때, 저희 뉴욕에서 버스킹했을 때 있잖아요. 우리끼리 노래 부를 때는 관객이 거의 없다가 예현이 형이 우리 옆에 앉으니까 갑자기 관객이 생긴 거, 형도 기억하시죠?”
어쩐지 그날 밤에 호텔에서 나한테 버스킹 어땠느냐고 물어보더라니. 그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예현 형한테 SOS 친 거는 너 아니었냐?”
내 물음에 견하준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툭 쳤다.
“그랬죠…… 반쯤은 장난이었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물론 예현이 형을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류재희가 씁쓸하게 웃으며 제 속내를 털어놓았다.
“우연히 그때부터 행인이 늘어서 관객이 생겼을 수도 있잖아? 꼭 예현 형이 그 원인이라곤 할 수 없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확신이 안 들어요. 그게 우연인지, 아니면 정말로 예현이 형 덕분인지.”
잠시 말을 멈추고 착잡한 표정으로 마른세수한 류재희가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후자라면…… 제 실력이 사람들을 멈춰 세우기엔 부족하다는 소리잖아요.”
내가 무어라 하기 전에 견하준이 입을 여는 것이 한 발 더 빨랐다.
“그래서 나는 네가 사람 많은 곳에서 버스킹을 한 번 더 해 보기를 바랐던 건데. 그러면 네 실력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 테니까.”
견하준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견하준은 이미 류재희의 상태를 눈치채고 있었다는 건가?
나만 눈치 없게 ‘너랑 듀엣해서 재미있었음, 하하!’ 이 지랄을 한 거야?
속내를 읽힌 게 부끄러웠는지 견하준의 눈을 피한 류재희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형은 진짜로 아무렇지 않았어요? 저만 이렇게 별것도 아닌 걸로 불안해하고, 투정 부리고 있는 거예요?”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 달라는 듯한 간절한 눈빛을 마주하자 입안이 썼다.
“나도 그랬어.”
물론 버스킹이 아니라 회귀 전의 과거를 말하는 거였지만, 류재희는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기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가 이곳으로 와서 제일 처음으로 꺼낸 부탁의 내용을 상기했는지 창백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제가 형한테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게…… 아무래도 다른 형들에게 부탁을…… 도빈이 형은 퍼포먼스니까 안 될 것 같고, 하준이 형?”
횡설수설하는 류재희를 진정시켰다.
“어어, 괜찮아. 데이드림은 한 번 봤던 김도빈과의 하트 춤보다 서예현, 아니 예현 형이랑 함께하는 하트춤을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
“형은 진짜 예현이 형이랑 무대를 같이해도 괜찮아요?”
“너도 나랑 예현 형이 유닛을 하는 게 차선의 선택지라고 판단해서 준이를 두고 굳이 나한테 부탁한 거 아니야?”
정곡을 찌른 내 말에 류재희가 움찔했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그런 류재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바꿔 줄 테니까 네가 환호받기 충분한 자격과 능력이 있다는 걸, 온전히 혼자 선 무대에서 잘 느끼고 와 봐.”
나 역시 한 번 겪어 본 감정이었기에 해결책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 자격지심이 애꿎은 상대를 향한 원망으로 바뀌기 전에, 이 환호는 내 실력으로 온전히 내가 이룬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로 인해 서예현과의 관계를 망치고, 시간을 거슬러 오고 나서야 이걸 깨달았지만, 막내만큼은 내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했다.
“대신, 예현 형에게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고 바꿔. 형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이라고. 괜히 오해 생길라.”
이유를 말해 주지 않고 바꾸면 서예현은 분명 자기 실력 때문에 류재희가 그런 선택을 했다고 여겨서 땅을 파고 들어가려 할 거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 실력 때문에 팬분들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여 드리기 부끄럽다고 솔로 무대를 포기한 인간이니까.
굳이 서예현이 걱정된다기보다는 그로 인해 파생될 류재희와 서예현의 어색한 기류가 걱정되는 거지. 류재희의 선택에 서예현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것도 확실히 해야 하고.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류재희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작업실을 나섰다.
“의외네. 나는 네가 그런 적 없다고 할 줄 알았는데. 재희 배려해 준 거야?”
견하준이 내가 수정해 준 부분의 멜로디 연주를 반복하며 내게 물었다.
드디어 철든 탕아를 보듯 은은한 감격이 묻어 나오는 견하준의 눈빛에 머리를 긁적였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든이 너는 네 실력에 자부심이랑 자신감이 넘쳐흐르니까. 그걸 내가 모르겠어?”
견하준이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이제는 진짜로 리더 다 됐다며 등을 두드리는 손길은 덤이었다.
회귀 전의 내가 내 실력을 향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깎아 내릴 때마다 함께 부채감에 허덕였을 친구를 돌아보며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뭐, 아주 일부 정도는 사실이거든.”
* * *
“내가 진짜 이해가 안 가서 그러거든? 자기 실력을 확신할 수 있게 하는 거랑 나를 불구덩이로 떠미는 게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거야?”
나랑 처음 솔로 무대 안무를 맞춰 보자마자, 진이 확 빠진 얼굴로 털썩 연습실 바닥에 주저앉은 서예현이 한탄하듯 내게 물었다.
“이해 안 가도 용케 바꿔 줬네. 그리고 나랑 하는 유닛 무대가 왜 불구덩인데. 누가 보면 내가 형을 들들 볶은 줄 알겠어.”
억울함에 투덜거리자 서예현이 미간을 문지르며 대꾸했다.
“그 말을 하는 막내 얼굴이 너무 필사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왜 불구덩이인지는 너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방금도 손하트 각도 안 맞았다고 사람을 들들 볶아 댔으면서.”
그건 댁이 내 손이랑 같이 하트를 만들라니까 자꾸 S자를 만들어서 그러고. 누가 칼각 맞추랬냐고. 나도 댁이랑 사이좋게 손하트 하고 싶지 않아. 김도빈이랑 하는 것도 고역이었는데.
“에휴, 내 죄다, 내 죄.”
서예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을 굴러다니는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설마 그 얼굴을 타고난 죄라고 하진 않겠지?”
“아니, 도빈이를 도와서 버스킹 핫플을 제대로 찾지 못한 죄. 내가 너야? 나는 그런 낯부끄러운 말은 못 하거든?”
질색하며 나를 돌아본 서예현은 생수 뚜껑을 까며 건조하게 중얼거렸다.
“딱히 내 얼굴 덕분이었다곤 생각 안 해. 그냥 우연히 행인들이 그 타이밍에 지나갔을 뿐이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서예현이 내게 생수병을 휙 던지며 말을 이었다.
“그 멀리서 내 얼굴이 보였겠냐고. 재희 노래에 이끌려서 온 거지.”
“왜 내 기타 연주와 랩은 쏙 빼고 말하는 거지?”
“물론 노래에 이끌려서 왔다가 내 얼굴 감상은 했을 수도 있지.”
“저기요? 왜 잘 나가다가 갑자기 자뻑으로 드리프트를 하시는지?”
“하지만 내 얼굴 하나 보겠다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 서 있을 리가 없잖아. 그 사람들은 엄연히 노래를 감상하기 위해 남아 있었던 거지. 그리고 내 얼굴이 한국에서 먹힌다 해도 해외까지 먹히리란 보장도 없고.”
먹히더라.
해외에서도 잘 먹히는 걸 본 터라 자기 객관화가 제법이라고 박수를 쳐 줄 수도 없었다.
“윤이든 너는 어땠는데?”
“뭐가?”
“그때, 재희 같은 생각 안 들었어?”
조심스러운 질문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이 윤이든 님은 솔로곡 1위를 찍어서 댁 얼굴 버프 없이도 실력이 쩐다는 걸 증명해 보인 적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내 실력을 믿었지.”
나는 진작 극복해 냈다는 말씀.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이자, 잠시간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던 서예현이 연습이나 하자고 몸을 일으켰다.
후렴구 훅을 부르는 서예현과 손을 맞대어 하트를 만들다가 갑자기 몰려오는 현타에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놈의 하트 춤을 안 선보일 수도 없고.
나도 실력에 확신이 없어졌다고 확 우겨 버려?
* * *
“뭐? 우리도 티켓팅하자고?”
레브 첫 콘서트 티켓팅 당일, 류재희의 제안에 떨떠름하게 되물었다.
“우리가 왜 해? 우리가 성공하면 팬분들 자리 뺏는 거 아니야?”
“그래서 추첨으로 팬분들께 콘서트 티켓 보내 주기 이벤트, 이런 거 하면 재밌잖아요.”
듣고 보니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다. 모두의 찬성을 받고 레브 멤버 다섯이 티켓팅 대란에 참전했다.
“그럼 얼른 PC방으로 가죠.”
“PC방을 왜 가? 노트북 있잖아.”
“티켓팅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니에요?”
“야, 잡힐 티켓은 스마트폰으로 해도 잡혀.”
“아니면 어떤 기기가 제일 잘 잡히는지 하나씩 실험해 보져? PC방 컴퓨터 한 명, 노트북 한 명, 아이패드 한 명, 스마트폰 한 명,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또 뭐 있지?”
“매니저 형한테 연락해서 PC방에 두 명이 가자. 그래서 영상 찍어서 vlog로 올리면 되잖아.”
그렇게 레브 제527회 회의에서 결정된 사다리 타기로 티켓팅할 기기가 정해졌다.
나는 다행히 노트북 당첨이었다.
“그럼 저랑 예현이 형이 PC방, 이든이 형이 노트북, 하준이 형이 아이패드, 도빈이 형이 스마트폰이네요.”
간이로 설치해 놓은 카메라 앞에서 류재희가 결과를 말했다.
“이런 건 간절함이 있어야지 재미있는데. 티켓 잡은 사람에게 100만 원, 어떠냐?”
“옛날에는 분명 10만 원이었는데 10배가 뛰었네여. 형의 통장 사정이 그만큼 풍족해졌다는 걸 방증하는 것 같아서 매우 기뻐요.”
“굉장히 자연스럽게 내가 다 부담하는 게 되네?”
“아님 20만 원씩 걷으면 100만 원…….”
“됐다, 됐어, 인마. 벼룩의 간을 뜯어먹으라고 해라.”
“역시 레브의 가장! 자, 가부장 박수 한 번!”
가부장 박수는 또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