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3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36화(23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36화
무대 의상을 갈아입고 나온 멤버들이 계속해서 공연을 이어 나갔다.
음방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수록곡들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게 콘서트의 최대 장점이었다.
방금 유제와 서예현이 차례로 상큼한 손키스와 소심한 손가락 하트를 날리고 갔는데, 이번에는 윤이든이 쭈뼛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와 슬며시 손을 흔들었다.
빨간색으로 머리를 염색해 한층 더 인상이 돋보이는 최애의 팬서비스에 김모 양이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를 지르자, 옆자리의 할아버지가 흠칫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멤버들의 팬서비스를 유난히 자주 받는 것만 같은 것은 기분 탓일까.
“이번 무대는 정규 1집 수록곡인 <오프 더 레코드>인데요, 이 곡이 사실 와 마지막까지 타이틀 경쟁을 한 곡입니다.”
“네, 아주 치열했죠.”
“한 번쯤은 무대 위에서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소원을 이루네여.”
<오프 더 레코드>는 브라스 섹션 후렴구가 들어간 뮤지컬 콘셉트의 댄스 장르곡으로, 레브 수록곡 중 명곡을 꼽으라고 하면 꼭 순위에 드는 곡이었다.
어두워진 조명에서 팟, 한 군데에만 불이 들어오자 무대 정중앙에 홀로 서 있던 윤이든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편곡을 했는지 가볍게 멜로디만 얹힌 비트와 함께 윤이든이 랩을 시작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명이 윤이든을 쫓았다. 윤이든이 제 랩 파트를 마치고 유제의 앞에서 슬레이트를 딱, 쳤다.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며 복고풍 무대를 배경으로 스탠딩 마이크를 쥔 유제가 노래를 시작했다.
레브 멤버들은 휙휙 바뀌는 스크린 배경과 소품을 활용하며 댄서들과 함께 넓은 무대에서 한 편의 뮤지컬을 만들어 냈다.
특히 눈 오는 배경 앞의 전화부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눈을 살며시 감은 서예현의 모습은 서예현이 최애가 아닌 김모 양에게도 절로 감탄을 이끌어 냈다.
제 파트를 앞두고 댄서에게 장미꽃을 전해 받은 윤이든이 멈칫거리고 있자 멤버들이 우르르 다가와 그를 A구역으로 떠밀었다.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점점 제 쪽으로 다가오는 윤이든의 모습에 김모 양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설마……?’
윤이든이 랩을 하며 무대에서 내려와 펜스 너머로 장미꽃을 건넸다. 내밀어진 장미꽃은 그녀에게서 살짝 비껴가 있었다.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담백한 고백 멘트와 함께 얼떨결에 장미꽃을 받아 든 할아버지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제가 장미꽃을 받지 못한 게 아쉽긴 했지만 최애의 노인공경이 제법 감동이었다.
김모 양이 가까이 다가온 윤이든의 얼굴을 감상할 새도 없이 그가 후다닥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후렴구와 함께 각을 딱딱 맞춘 단체 안무가 이어지고, 커튼콜의 한 장면처럼 무대가 마무리되었다.
“다음 무대는 우리 래퍼 라인 형들이 준비해 주셨어요. 이든이 형이랑 예현이 형을 묶어서 톰과 제리라고 부르시던가요? 유닛 이름을 정할 때 톰과 제리는 어떠냐고 했더니 누가 톰이고 누가 제리인지로 한참을 투덕거리더라고요.”
유제가 마이크에 대고 경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자 씩 웃은 유제가 덧붙였다.
“그런데 서로 톰도 제리도 맡기 싫어해서 결국 유닛 이름은 EnY가 됐습니다. 네, 맞아요. 이든 and 예현. 자기들 이름의 영어 앞 글자 따서.”
“형들 저거 정하는 데 1분도 안 걸렸어요.”
김도빈이 일러바치듯 불쑥 끼어들어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이앤와이라고 읽지 말고 차라리 에니로 발음하라니까 둘 다 그건 싫다고 하더라고요. 예현이 형이랑 이든이랑, 둘이 은근 그런 취향이 비슷해요.”
견하준의 말에 다시 한번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럼 EnY의 유닛 무대, 지금 바로 만나 보시죠!”
눈을 찡긋하며 손가락으로 큐 사인을 보낸 셋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자, 솔로 무대에서의 유일한 유닛인 만큼 특별하게 준비한 VCR이 재생되었다.
회의실에서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윤이든과 서예현의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눈에 잔뜩 힘을 준 예현의 모습에 객석 사방에서 귀엽다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든: 설마 그걸 험악한 표정이라고 지은 거야?] [예현: 안 험악해 보여?] [이든: 어, 완전. 아니면 가사를 바꿀까? 문제 되는 것도 내가 하면 뭐든 다 오케이로?] [예현: 내가 너보다 더 빌런 같이 보이게 할 수 있다니까?]한껏 자신만만한 예현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윤이든이 카메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든: 네. 그렇다네요, 데이드림. 과연 예현이 형이 얼마나 빌런 같은 모습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지 궁금하시다면 저희 E 앤-] [예현: Y 무대 기대해 주세요!]마찬가지로 타이밍에 맞추어 고개를 돌린 서예현 역시 카메라를 보며 두 손을 흔들었다.
vcr이 거의 끝나갈 즈음, 할아버지가 휴대폰을 꺼내어 케이스 덮개를 열었다.
메시지의 글자 크기가 워낙 커다래서 굳이 볼 마음이 없었음에도 문자 내용이 잘 보였다.
[막내 손녀- 할아버지 기왕 거기 가신 거, 거기서 폰으로 예현 오빠 사진 좀 찍어 주세요]도라이 아니야? 자기 최애 찍사 하라고 할아버지를 스탠딩으로 보내?
거듭 갱신되는 패륜에 김모 양이 경악했다. 눈살을 찌푸린 할아버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예현이 누구야?”
“지금 이든이랑 같이 무대 하는 멤버요.”
“아, 영통으로 세배했던 녀석 이름이 예현이었구먼?”
김모 양은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그냥 그 말을 흘려들었다.
어두운 느낌의 비트가 울리며 무대 위에 블랙 셔츠에 붉은색 넥타이를 느슨히 맨 윤이든과 흰색 셔츠에 검은색 넥타이를 맨 서예현이 등장했다.
가벼운 메이크업 상태인 윤이든과 대조적으로, 서예현의 눈두덩이에는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이 되어있었다.
DTB 시즌 3 콘서트에서 공개한 이래로 처음 공개하는 솔로곡 라이브였다.
비록 <빌런(villain)>을 온전한 솔로곡으로 듣지 못하고 유닛 형식이 되어 버린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저 조합도 나쁘지 않았다.
서예현의 파트 역시 벌스 몇 부분과 후렴구를 적절히 섞어 실력 차가 제법 나긴 해도 거슬리지 않았다.
큐티한 하트 춤을 잔뜩 기대한 게 무색하게도 1절 훅의 안무는 섹시 버전이었다.
윤이든의 넥타이를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서예현과, 서예현의 넥타이를 풀어 예현의 눈을 가리는 윤이든의 안무에 객석은 하트춤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제 넥타이를 완전히 풀어 객석으로 휙, 던진 윤이든이 제 파트의 리듬을 가지고 놀며 성큼성큼 A구역으로 다가왔다.
‘우와, 또 와?’
자리 너무 잘 잡았다고 김모 양이 속으로 자축했다.
서예현을 찍기 위해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능청스럽게 가져가 제 셀카를 찍고 다시 건넨 윤이든이 그 옆에 있던 김모 양의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즉시 가져가기 쉽도록 손에 힘을 빼자, 특유의 시원시원한 미소를 지은 윤이든이 김모 양의 폰으로 셀카를 찍고 다시 돌려주었다.
‘미쳤다, 미쳤어!’
완벽 그 자체인 셀카를 보며 김모 양이 입을 틀어막았다. 오늘 완전히 계 탄 날이었다.
1절에 하트춤이 없어서 아쉬워한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1절에서 섹시한 빌런 모먼트를 한껏 보여 준 둘은 2절 훅에서 빌런 본연의 안무를 선보였다.
2절 훅에 접어들자마자 나란히 붙은 윤이든과 서예현이 손을 맞대어 만든 손하트를 객석을 향해 상큼하게 날려 댔다. 레브 내 인기 투톱을 달리는 조합인 만큼 반응 역시 엄청났다.
“저저, 저거 하려고 대학도 안 가고 딴따라를 해……?”
열렬한 함성에 할아버지의 중얼거림은 묻혔지만, 오르는 혈압으로 인해 가빠진 숨소리는 김모 양의 귀에 용케 들렸다.
딱 봐도 슬슬 한계인 것 같은 할아버지의 안색에 김모 양이 당장 앞의 시큐를 불렀다.
“지나가겠습니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듯 A구역 팬들이 착착 갈라져 할아버지가 지나갈 수 있게 통로를 만들어 주었다.
시큐의 부축을 받으며 나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김모 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 건강도 좋지 못한 할아버지를 스탠딩으로 보낸, 얼굴도 모르는 손주를 향해 혀를 찼다.
“누가 내 욕하나?”
서예현이 나올 때마다 초대석 좌석에서 익룡 소리를 내지르던 윤정아가 귀를 후비며 투덜거렸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시에 무대 위의 윤이든이 제 인이어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 * *
“여보, 아버지가 의무실로 나오셨다네? 아버지 집까지 모셔다드리고 올게. 콘서트 끝나면 전화해.”
옆에서 들리는 윤이든 아버지의 목소리에 윤정아가 상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헐, 그러게 내가 절대로 끝까지 못 버티실 거라고 그렇게 경고를 드렸는데. 할아버지 괜찮으시겠지?”
“이제 콘서트 A구역 후기에 너 찾는 글 올라온다. 할아버지를 스탠딩으로 보낸 무개념 손녀 누구냐고.”
“아, 설마. 이건 솔직히 나한테 따지면 안 돼. 할아버지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집에서 이든 오빠밖에 없다고. 네, 완전 멋있었어요! 빌런 그 자체!”
친구의 키득거림에 투덜거리던 윤정아는 마이크를 잡고 토크를 진행하는 서예현의 질문에 즉각 응원봉을 흔들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아이고, 죽겠네.”
의무실에서 잠시 안정을 취하고 콘서트장에서 나오자마자 윤이든의 조부가 앓는 소리를 냈다.
“등산을 그렇게 해도 젊은 애들 체력은 못 따라가겠다. 거기서 어떻게 몇 시간씩을 버티고 있어?”
인파가 움직일 때마다 콱콱 막히던 가슴을 두드리던 그가 콘서트는 어떠셨냐는 아들의 물음에 버럭 역정을 냈다.
“때려치우라 해라! 음악은 무슨! 사내놈이랑 남사스럽게 하트나 만들고 있더만.”
“지금까지 부른 노래 대부분이 이든이가 작곡한 거래요.”
“그놈의 스탠딩인지 뭔지 거기에서 하도 밀어 대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서 노래도 제대로 못 들었다.”
불퉁한 대답에 픽 웃은 이든의 부친이 물었다.
“그래서 모레는 초대석으로 안 가실 거예요? 안 가실 거면 저 주세요. 아버지 고집 덕분에 아들 첫 콘서트도 다 못 보고 중간에 나왔으니까.”
“누가 안 간대냐.”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한 조부가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여전히 손에는 이든이 건넨 장미꽃이 쥐어져 있었다.
솔직하지 못한 부친을 보며 이든의 부친이 작게 웃었다.
* * *
“오케이, 드디어 가셨다!”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불끈 주먹을 쥐며 자축하자 메이크업을 수정받던 류재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이걸 좋아해도 되는 거예요?”
“아니, 무대에서 할아버지가 보일 때마다 뭔가 팬서비스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이 들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