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3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37화(237/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37화 (서예현 삽화)
의무실로 부축받아 가셨다는 스텝의 말을 전해 듣고 김도빈의 솔로 무대가 이어지는 동안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할아버지는 괜찮으셔?”
아주 정정하시다는 아버지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한시름 놓았다.
회귀 전에 콘서트 스탠딩에서 쓰러진 관객이 시큐에게 업혀 가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할아버지도 혹여 쓰러질까 신경이 계속 그쪽으로 쏠려 지금까지 무대에 온전히 집중하기에 힘들었던 터였다.
시큐한테 모셔가 달라고 부탁해 봤자 할아버지 고집에 당신이 가시고 싶을 때가 아니라면 순순히 가실 리도 없었고.
쓰러지는 할아버지를 보고 착잡한 상태로 콘서트를 이어 나가느니, 차라리 내 콘서트를 다 못 보더라도 할아버지가 빨리 퇴장하시는 편이 낫지.
“다행이네. 막콘 초대석 티켓 보내드릴 테니까 모레 만약에 할아버지가 콘서트 오신다고 하면 아버지가 모시고 같이 오쇼.”
물론 오늘 그렇게 스탠딩에서 생고생을 하신 터라 막콘에도 오실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엥, 나보고 가수 생활 때려치우라 했다고? 왜? 하트춤? 넥타이가 아니고?”
내 기준으로는 넥타이가 더 할아버지가 보기에는 빡셌는데?
도통 기준을 모르겠는 할아버지의 역정까지 전해 듣고선 통화를 끊으며 한숨을 돌렸다.
“조부님은 괜찮으시대?”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을 지우고 다시 수정 메이크업을 받는 서예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예현은 저래 봐도 류재희 다음으로 A구역을 향해 팬서비스를 많이 한 인간이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참으로 착실했다.
세 번째 칸까지 열린 셔츠 단추를 잠그다가, <빌런(villain)>의 하트춤을 훅 1, 2에 맞추어 두 번 하는 건 너무 진부하고 지루하다는 김도빈의 강력한 주장 아래.
바꾼 1절 안무를 더는 서예현과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해방감이 뒤늦게 몰려왔다.
안무에서 퍼스널 스페이스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 바람에 연습할 때 참 힘들었지.
“다음 무대 이동하실게요!”
쓰리피스 정장을 단정히 차려입고 그랜드피아노가 설치된 리프트 무대 스탠바이 장소로 향하는 견하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격려를 보내 주고 무대 위로 오를 준비를 끝냈다.
김도빈의 무대가 끝났는지 함성이 들려왔다. 지금 나가라는 수신호에 서예현과 함께 무대로 나가 땀범벅이 된 김도빈의 옆에 섰다.
“도빈이가 여려분들께 제일 멋있는 무대를 선보이고 싶다고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맞아요, 자꾸 저보고 귀엽다고만 하시니까 제가 이렇게 무대에서라도 반전 매력을 선보일 수밖에 없잖아요.”
서예현이 건넨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김도빈이 눈을 찡긋했다.
저를 향한 따가운 눈빛을 눈치챘는지 나를 돌아본 김도빈이 일러바치듯 마이크에 대고 냉큼 말했다.
“이든이 형은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네여.”
“귀엽진 않아, 솔직히. 귀여운 건 10대까지지.”
“취향 차이니까 존중해 드릴게요. 그리고 형은 제가 10대였을 때도 제게 귀엽다고 한 적이…….”
김도빈과 티격태격하고 있자, 우리 둘을 떼어 놓은 서예현이 토크를 진행했다.
“이제 보컬 라인 둘만 남았죠? 다음 무대는 과연 누구의 무대일까요?”
“힌트 하나 드리자면, 이든이 형은 이번 무대의 노래 감상을 위해서 무대 구석에 서 있을 예정이에요.”
“얌마, 뭐라는 거야.”
김도빈의 농담에 다음 무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눈치챘는지 모두가 한목소리로 견하준을 외쳤다.
토크로 어느 정도 시간을 끈 후, 리프트 무대가 올라오기 전에 후다닥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다음 무대 순서를 기다리며 의상 환복을 마친 류재희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마이크를 꽉 쥐었다. 그런 류재희의 등을 긴장 풀라는 의미로 툭툭 쳤다.
부디 류재희가 이 무대로 제 실력을 스스로에게 입증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무대가 시작됐는지 견하준의 노래가, 견하준에게 최적의 음역대로 편곡한 <달의 이면>의 피아노 연주가 들려와 무대 밖으로 집중하여 귀를 기울이자, 혀를 찬 서예현이 한마디 했다.
“그러지 말고 그냥 도빈이 말대로 나가서 들어.”
* * *
평소 모습과 180˚ 다른 김도빈의 격렬한 솔로 퍼포먼스 무대와 음색 깡패 견하준의 완벽한 편곡 무대가 차례로 이어지고, 다음으로는 막내 유제의 솔로 무대였다.
중앙무대의 바닥이 열리며 유제가 서 있는 높고 좁은 리프트 무대가 천천히 올라왔다.
일렉 기타 소리와 함께 힘찬 드럼 소리가 서막을 열었다.
아래는 찢어진 청바지, 위에는 라이더 자켓 안에 흰 반팔 티를 받쳐 입은 채로 스탠딩 마이크 위에 가볍게 손을 얹은 유제가 첫 소절을 불렀다.
객석의 팬들은 한 소절만으로도 곧바로 곡을 알아챘다.
전설적인 밴드의 락 음악으로, 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노래였다.
어느 곳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게 시작한 발 구르는 소리와 손뼉 소리가 점차 객석 전체에 퍼져 나갔다.
메인보컬답게 유제의 완급 조절이 확실한 노래 실력과 속이 뻥 뚫리는 듯한 고음과 성량은 사람들의 귀를 확실히 잡아끌었다.
노래가 점점 하이라이트로 치달을수록 무대가 바닥을 향해 내려왔다.
아직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온 것도 아닌데 마이크를 스탠딩 봉에서 빼고, 훌쩍 뛰어내린 유제가 시원하게 고음을 내질렀다.
[Shout it out loudGo for broke]
통로를 지나 돌출 무대까지 걸어오며 유제가 마이크를 쥐지 않은 한쪽 팔을 넓게 벌렸다.
푸르게 빛나는 조명 아래, 응원봉 불빛이 가득 찬 관객석을 바라보는 유제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통로 무대에서도 팬들을 향한 팬서비스를 잊지 않으면서 돌출 무대에 도착한 유제가 댄서들과 합을 맞추며 하이라이트 구간을 불렀다.
[Don’t be frightendedJust do it
It’s not a problem]
무대에 드러누워 마이크 끝을 무대 위로 향하게 치켜든 유제가 마지막 소절을 내뱉었다.
마이크를 내리고 숨을 헐떡이면서도 한 손을 올려 흔드는 유제의 모습에 앞선 세 무대보다도 더욱 커다란 박수 소리와 함성이 콘서트장을 울렸다.
유닛-솔로 무대 순서를 어떻게 정했는지 보여 주는 비하인드 vcr 영상이 끝나고, 무대 의상을 갈아입은 레브 멤버들이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여러분, 유닛이랑 솔로 무대 잘 보셨나요?”
네!!
우렁찬 대답에 유제의 어깨에 팔을 얹은 윤이든이 짓궂게 웃으며 물었다.
“누가 제일 잘한 거 같아요?”
여기저기에서 멤버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중 제일 크게, 많이 들리는 이름은 역시 유제였다.
‘넥타이 안무와 하트춤으로도 부족했단 말인가.’
하지만 김모 양의 눈에도 유제의 무대가 제일 시선과 귀를 잡아끌긴 했기에 별 이견은 없었다.
“EnY요! 서예현!”
“윤이든!”
윤정아와 그녀의 친구는 열심히 <빌런(villain)> 무대를 부르짖고 있었다.
“막내 이름이 제일 많이 들리네요. 재희야, 네 무대가 제일 좋았단다.”
“오오, 베스트 무대로 꼽힌 소감 한 번!”
윤이든이 유제를 제 쪽으로 휙 끌어당기며 킬킬거리자, 김도빈이 옆에서 마이크를 불쑥 유제의 입가에 대며 소감을 유도했다.
“……진짜요?”
담담한 척했지만 끝이 살짝 떨린 유제의 물음에 우렁찬 긍정이 돌아왔다. 그제야 환하게 웃은 유제가 팬들을 향해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것 보란 듯 씩 웃으며 유제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다시 마이크를 잡은 윤이든이 입을 열었다.
“이번 무대는 저희가 이 콘서트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입니다.”
긴 공백기 끝에 나온 신곡이라 다들 기대가 만발한 얼굴로 무대를 응시했다.
“, Let’s go!”
처음 세상에 공개되는 신곡의 멜로디가 공연장 가득 울려 펴졌다.
* * *
“데이드림, 이제 마지막 곡으로 인사드릴 시간이 다가왔네요.”
앵콜 무대까지 준비해 놨으면서도 시침을 뚝 떼고 멘트를 하자 객석에서 아쉬움이 가득 담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에이, 울 일몽이들. 또 만날 건데 왜 이렇게 아쉬워해요.”
류재희가 장난스럽게 키득거리자 환호가 쏟아졌다.
<사계절의 너> 전주가 흘러나오며 무대 위 조명이 어두워졌다.
우리 위로 쏟아져야 할 스포트라이트 조명 대신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더니 계획에는 없었던 영상이 시작되었다.
당황하는 멤버들과 달리 바로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나는 느긋하게 뒤를 돌았다.
그렇지, 이벤트 없으면 섭섭하지.
땀 때문에 눌어붙은 앞머리를 이마에서 떼어 내며 영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차마 넣지 않을 수는 없었는지 아주 짧게 지나가는 <내 우주로 와> 활동 영상을 보고 픽 웃음을 터트리다가 그다음으로 바로 이어지는 축제 무대 영상을 보니 그때 했던 고생들이 기억을 스쳐 가며 웃을 수가 없어졌다.
지난 4년간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겨 있었다.
회귀 전의 첫 콘서트에서보다 훨씬 풍부해진 영상을 보고 있자니 많은 것이 바뀌긴 했다는 게 느껴졌다.
그때는 망돌 시절은 초스피드로 지나가고 활동기만 대부분이었는데.
일몽이들 사랑해요!를 외치는 서예현의 시상식 수상소감이 내 4분 수상소감 대신 들어가 있는 게 아주 살짝 섭섭했다. 나름 열심히 외워 갔는데.
최근 활동 영상까지 나오자, 화면이 검게 물들며 쓱쓱 흰색 글자가 나타났다.
[1267일, 레브와 데이드림이 함께 달려온 시간]자막이 지워지더니 손글씨로 쓴 게 분명한 문장들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레브 영원하자!!!] [사랑해!] [우리 레브가 제일 자랑스러워♥] [우리에게 와 줘서 고마워]짧막한 문구도, 긴 편지도 있었다.
김도빈은 이미 마이크를 내린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중이었으며, 서예현은 그런 김도빈을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며 나머지 한 손으로는 눈물을 연신 훔치고 있었다.
눈가가 그렁그렁한 류재희는 마이크를 입가 가까이 가져다 대다가 다시 내리기를 반복하며 영상의 손편지를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견하준마저도 눈시울이 붉어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몇 소절을 부르다가 물기 어린 숨을 내뱉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처음으로 마주한 팬 이벤트에 눈물 바람이 난 멤버들을 대신해서 마이크를 잡고 <사계절의 너>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도 다 예상해서 내 보컬 실력이 뽀록 나지 않게 작곡할 때부터 내가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음역대를 조정해 놨지. 이래 봐도 내가 콘서트 경력자 아니냐.
“크리스마스에는 너만을 위한 캐롤 노래를 불러 줄게.”
오, 나 오늘 보컬 좀 되는 듯?
오랜만에 랩 대신 부르는 보컬에 심취해서 열창하고 있는데, 눈앞에 응원봉의 불빛과 함께 민트색의 물결이 퍼져 나갔다.
민트 그린색의 슬로건에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오자 마이크를 치켜올리던 손을 멈칫했다.
[너희는 우리의 가장 찬란한 꿈]지독한 우연인 건지, 아니면 운명인 건지.
슬로건의 문구는 회귀 전의 첫 콘서트 이벤트 때와 똑같았다.
그걸 자각하자 나도 순간 울컥해져 눈을 부릅뜨고 콘서트장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때와 지금의 레브는 이렇게나 달라졌는데도, 변함없이 레브라는 이 그룹을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고 내게 말하는 것만 같아서.
아오, 나까지 이러면 지금 노래 부를 사람이 없는데.
어찌어찌 노래를 이어 나가다가 목이 메어 잠시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목소리가 사방에서 하나로 모여 콘서트장을 가득 울렸다.
-너와 함께할 앞으로의 사계절이
나는 너무나도 기다려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