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4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41화(24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41화
신디사이저 건반에서 손을 떼고 져지 주머니에 거칠게 쑤셔 넣은 채로 모니터만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의 다음 곡이자 첫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던 를 작업할 당시에도 예상치 못한 의 대박에 의한 불안감에 슬럼프가 찾아왔긴 했지만, 이렇게 머릿속에 악상 하나 떠오르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작곡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던 그 시절로 머릿속이 회귀한 듯한 느낌이었다.
“심란해서 그래, 심란해서.”
혼잣말처럼 변명을 중얼거리며 컴퓨터를 끄고 몸을 일으켰다.
최현민의 빈정거림과 권윤성의 좆같은 동정을 받아서 더러워진 기분이 컨디션에도 영향을 끼친 거다. 하룻밤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씨발, 괜찮아지긴 개뿔.’
밤을 새워 퀭한 눈으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노려보다가 신경질적으로 귀에 꽂은 이어폰을 뺐다.
내 작업물들을 미완성곡까지 싹 들어 봐도 이거다, 하는 악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와중에 김도빈이 내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난 건 좀 장했다.
내가 여전히 자고 있다고 생각한 건지 살금살금 까치발로 다가온 김도빈과 내 시선이 허공에서 딱 마주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김도빈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 왜. 내가 일어나서 아침 운동 안 간 게 그렇게 놀랄 일이냐?”
“아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김도빈이 PTSD 올 뻔했다고 중얼거리며 신속한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악귀 어쩌고 하는 혼잣말을 보니 어제 새벽까지 보던 게 포착 엑소시스트였던 모양이다.
겁도 더럽게 많은 놈이 밤에 그런 건 왜 봐?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가려는 김도빈의 목덜미를 턱 붙잡아 방 밖으로 내보내고, 독방이 된 방에서 다시 고요를 만끽했다.
아침 루틴대로 가사라도 끄적여 보려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지만,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머리가 멍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젠장, 이게 다 아침 운동을 빼먹어서 그래.’
밥 먹으라는 부름에 뻑뻑한 눈가를 문지르며 방 밖으로 나왔다.
이미 다 차려져 있는 식탁 의자에 털썩 앉자 견하준이 내 안색을 보고 물었다.
“밤샜어?”
“그냥, 다음 앨범 준비하느라.”
자존심에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적당히 이유를 붙이며 수저를 들었다.
“노래 좋으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말라니까요, 형. 예술은 취향의 영역이지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잖아요. 베토벤이랑 모차르트 음악도 취향이 갈리는데 케이팝 취향도 당연히 갈릴 수 있죠.”
“그래, 모든 노래가 다 히트하면 그건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 작두 탄 거지.”
류재희의 위로에 이어 서예현이 위로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한 말을 덧붙였다. 확실히 서예현은 위로에는 재능이 없었다.
밥에서는 모래알을 씹는 느낌이 났다.
금방 극복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 게 무색하게도 잠들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 시간을 죽이는 게 아까워 새벽에 작업실로 향해도 봤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건 숙소에서나 작업실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새벽에 숙소를 뛰쳐나와 작업실에서 DAW가 켜진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든 생각에 입술을 짓씹었다.
내게서 음악을 빼면 무엇이 남지?
마지막 순간까지 유일하게 내게 등을 돌리지 않았던 게 음악이었는데, 그 음악마저도 나를 외면하면 나는 대체 이제 무엇에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야 하는 거지?
랩? 작곡도, 작사도 못 하는 래퍼가 무슨 의미가 있는데.
내가 이렇게 자존감이 낮았던가. 실패를 툭툭 털고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멘탈이 약했던가.
끊었던 담배가 당겨 왔다. 힘들어서 담배 없이는 버티지 못했던 시절, 입에 대었던 담배가 왜 지금 다시 생각나는지.
홀린 듯이 겉옷을 입고 편의점으로 내려가 담배 한 갑 달라고 아르바이트생에게 말하려다가 민증을 챙겨 오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멈칫했다.
계산대 앞에서 우두커니 멈춰 선 나를 보는 알바생의 얼굴에 의문이 깃들자. 내가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깨닫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민증이 브레이크가 되어 줘서 다행이었다.
담배 대신 집어 온 막대 사탕을 입에 욱여넣으며 담배 연기 대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Ride or Die ─ Reve] [평점 ★★★☆☆] [분기점인가 잠깐의 일탈인가.K─POP스러운 일렉트로닉 팝과 힙합 뮤직을 주도하는 그룹에서 퓨처 하우스라는 장르로 이미지 탈피를 시도한 것치곤 도약의 발판으로 삼기에는 곡의 임펙트가 부족했다. 음악성을 잡으려는 노력은 보였으나 현 트렌드에서 살짝 빗겨나 대중성 부분에서는 아쉬웠던 곡.
─대중음악 평론가 주기정]
잠도 안 오고, 작업도 진전이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실패 이유나 분석하는 것뿐이었다.
구구절절 적었지만 결국 트렌드를 주도하지 못했단 소리군.
씨발, 이유를 알게 되면 뭐 해. 그 실패를 극복할 다음 곡이 머리를 쥐어 짜내도 안 나오는데.
충동적으로 모니터를 향해 키보드를 들어 올렸다가 갑작스러운 두통에 멈칫했다. 지독한 기시감이 들었다.
언젠가 한 번 키보드를 모니터에 던진 듯한 기시감이. 그럴 리가 없는데도.
* * *
연차도 비슷하고 멤버 수도 비슷하다 보니 이제 KICKS와 같은 대기실을 쓰는 건 익숙했다.
그냥 저 자식들 얼굴 볼 때마다 기분이 구려질 뿐이지.
다만 놈들도 견하준을 마주할 때마다 불편해하는 기색이 가감 없이 보이기에 쌤쌤인 셈 치기로 했다.
권윤성이 확실히 최현민을 잡아 놓긴 한 건지, 마주친 첫날을 제외하곤 최현민은 우리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다른 그룹과 함께 대기실에 있었으면 대화도 나누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었겠지만, 데뷔 초 때부터 오직 저놈들의 과실 100%로 인해 사이가 빠그라진 두 그룹을 밀어 넣은 대기실은 같은 멤버 사이에서의 대화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기실 중앙에 놓인 소파에 앉아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해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는 기척이 느껴졌다.
당연히 우리 멤버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나 물 좀 주라.”
툭, 손에 닿는 생수병에 눈을 뜨자 제일 먼저 금발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멤버들 중 금발로 염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아직 메이크업을 받지 않은 눈을 거칠게 비볐다.
흐릿한 시야에 초점이 돌아오며 내게 생수를 건넨 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고맙다.”
어색하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생수 뚜껑을 따 벌컥벌컥 들이켰다.
왜 여기 앉고 지랄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 소파는 대기실 이용자들 공용이었기에 내 소유권을 주장할 수가 없어 그냥 입을 다물기를 택했다.
나란히 앉아 있는데도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에 우리가 더 이상 친구가 아님을 다시 상기했다.
우리가 친했던 예전이었으면 이런 어색한 침묵은 상상도 못 했을 텐데.
“이번 노래 좋더라.”
권윤성이 먼저 침묵을 깼다. 다만, 대화 주제는 퍽 반갑지 않은 것이었다.
음원 순위가 반등하긴 했지만, 여전히 KICKS의 신곡인 는 넘지 못했다.
“동정하냐?”
필요 이상으로 날카롭게 나간 내 말에 권윤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왜 꼬아 듣고 난리야. 존나게 내 취향이라고, 새끼야.”
그러고 보니 권윤성은 딥하우스 장르를 좋아했지. 취향 타는 장르인데 용케 음악 취향 맞는 놈을 찾았다며 주먹을 가볍게 맞대던 추억이 깊게 잠겨 있던 기억을 비집고 올라왔다.
─귀에 익으니까 세상 명곡이네
─이게 망곡이라는 사람들은 낯선 거랑 구린 걸 구분 못 하나???
─첫 귀에나 살짝 어색하지 계속 듣다 보니까 중독성 있고 좋은데?
─례술병 염불 외우면서 이걸 난해하다고 하시면……ㅋㅋㅋ 진짜 난해하고 무거운 노래 안 들어 보셨나?
─마플 때문에 엄청 내려치기 당한 노래ㅠㅠ 그 정도까지 절대 아닌데ㅠ
─프듀멤 패면서 마플 달리는 거 다 데이드림 맞아? 분탕 아니고? 지금 분탕 끼기 딱 좋은 상황 아닌가?
류재희가 싹싹 모아서 보내 준 긍정적/객관적인 팬반응 덕분에 노래가 취향 타는 것과 취향에 잘 들어맞은 사람에게는 극호곡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나랑 절교한 권윤성이라는 게 기분이 참 묘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본 권윤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날밤 며칠은 깐 것 같은 기색으로 돌아다니지 좀 마라. 겨우 성적 좀 안 나온다고 그렇게 죽상하고 날카롭게 구는 거 너답지 않─”
우리 사이에 갑작스레 불쑥 끼어든 발이 권윤성의 말을 잘랐다.
“나 여기 앉게 자리 좀 비켜 줄래?”
견하준이 비키라는 듯 권윤성의 발을 툭툭 쳤다. 어이가 없는지 멍하니 견하준을 올려다보던 권윤성은 의외로 순순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굳이 우리 사이에 끼어 앉은 견하준이 내게 곧바로 말을 붙였다.
“메이크업 받고, 녹화 전까지 눈 좀 붙여. 오늘도 아침에 작업실에서 돌아왔잖아.”
“괜찮아, 작업실에서 잠깐 눈 붙였어.”
“전혀 잠을 잔 얼굴이 아닌데?”
코디 누나의 부름에 견하준이 내 등을 떠밀었다. 권윤성과 나란히 앉아 있는 견하준이 괜히 신경 쓰였다.
서로를 소 닭 보 듯하는 사이니까 설마 싸우진 않겠지……?
레브가 녹화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오자 마지막 순서인 KICKS가 나갔다.
그제야 견하준에게 결코 권윤성을 편드는 것 같이 보이지 않게끔 주의하며 물어보았다.
“걔 말은 왜 끊었어?”
“권윤성이 하는 말은 네게 부담만 더 얹으니까. 걔는 너를 너무 자기가 동경할 만한 이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하잖아.”
둘 다 뉴본에서 비슷한 정도로 친한 친구긴 했지만, 내가 권윤성보다 견하준을 가깝다 여겼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권윤성은 내 고민에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내가 고민 따위는 하지 않는 모습을 제 앞에서 보여 주길 바라는 녀석이었고, 견하준은 내 고민의 핵심을 짚으며 같이 고민해 주는 녀석이었으니.
그렇지만, 지금만은 견하준의 그런 면이 달갑지 않았다.
겨우 실패 하나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나약해 보이는 것만 같아서.
견하준에게 순순히 털어놓고 위로받던 평소의 슬럼프와 지금의 슬럼프, 그리고 불면의 이유는 근본부터 달랐기에.
“그 정도 말이 무슨 부담이야. 솔직히 맞는 말이지. 나답진 않잖냐.”
피식거리며 견하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자 나랑 빤히 시선을 마주친 견하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힘들면 말해.”
“당연하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수면제에 손을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