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4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43화(24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43화
나는 활동기 단축까지 하게 만든 컨디션 난조의 원인을, 지금까지 멤버들한테 과로로 일축해 왔다.
맨날 새벽마다 작업실로 가서 틀어박혀 있는데 거기에서 내가 곡 작업을 하는지 모니터와 눈싸움을 하는지 멤버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혹시 잠을 못 자지 않느냐며 견하준이 돌려 물을 때조차 자존심 때문에 단칼에 부정했다.
물론 진실을 말하더라도 멤버들이 나를 비웃지 않으리란 건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서예현조차 처음 겪은 실패에 슬럼프가 온 나를 동정하면 동정했지 그걸로 나를 조롱할 인간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동정은 1회차의 삶에서 받은 걸로도 충분히 지긋지긋했다.
그리고 내가 내 곡으로 이제까지 끌고 왔고, 앞으로도 끌고 가야 할 그룹 앞에서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그건 내 자존심이었다.
“악귀이든의 재림은 또 뭔데? 또 나한테 사탄 들렸다고 해 봐라? 어? 또 구마 사제 부르라고 하지?”
수면제 통을 꽉 쥔 채 눈을 부라리며 지랄하자, 김도빈이 헤쓱하게 질린 얼굴로 견하준을 필사적으로 붙들며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진짜로 그분이 다시 오신 것 같은데요…….”
“도빈이 너, 꽤 친하게 지내지 않았어? 반가워해야 하지 않나?”
가리키는 대상이 생략되어 있었지만 그게 내 5일을 스틸하고 내 몸에 타투와 타르를 박아 놓고 나를 예술병 초기 환자로 의심받게 만들었던 서른 살 윤이든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견하준의 그 물음에 김도빈이 볼을 긁적였다.
“물론 좀 정들긴 했는데 제가 그 당시에 흘렸던 눈물도 들었던 정과 비등비등해서요.”
나를 빤히 보던 견하준이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다.
“담배 끊었어?”
“준아, 나 진짜로 담배 피운 적 없다니까?”
기겁하며 즉각적으로 부정했다.
오늘 지원이 형의 작업실에서 물고 있던 담배가 생각나긴 했지만, 불은 붙이지 않았으므로 피운 건 아니었다.
“우리 쪽 이든이 맞네.”
견하준이 깔끔하게 내가 나라는 걸 인정했다. 그 또라이랑 나를 구별하는 방법이 흡연 여부냐고.
“그런데 왜 갑자기 수면제예요? 형 그거 못 먹잖아요.”
여전히 의심을 놓지 않은 류재희의 물음에 90%의 구라와 10%의 진실을 섞어 투덜거렸다.
“너무 과로로 무리했는지 자고 싶어도 잠이 안 오는데 어떡하냐. 그리고 먹을 수 있거든?”
당당하게 수면제 한 알을 물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겼다.
“우욱!”
그리고 단 10초 만에 입을 틀어막고 그대로 토해 냈다.
“……아니네. 나 못 먹네.”
“수면제를 먹지 말고 그냥 과로를 안 하면 되잖아요.”
뻘쭘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류재희가 걸레를 가지고 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류재희는 내 상황을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만, 내게 그 말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급의 개소리였다.
상태창이 나타나지도 않았기에 방금의 수면제 거부 반응이 시스템의 농간인지 아닌지도 긴가민가했다.
‘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어쩌면 수면제 알러지라던가…….’
네가 의사야? 어?
시스템은 익숙하게 내 말을 먹금했다.
“이든아, 힘들면 말해. 너무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말고.”
견하준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피했다. 어차피 털어놔 봤자 멤버들이 답을 내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건 내가 스스로 이겨 내야 하는 문제였다.
다음 날, 나는 지원이 형의 작업실을 다시 찾았다.
“어제 못 물어본 게 있어서요.”
불쑥 찾아온 나를 지원 형은 박대하지 않고 무심하게 맞아 주었다.
“형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뭐예요?”
내가 나 자신이 세운 기준에서 도저히 벗어나지를 못하니 다른 사람의 기준이라도 알아야만 했다.
“따지자면 성공은 내가 만족한 곡이고, 실패는 나조차도 만족스럽지 못한 곡이지. 왜, 그런 곡 하나씩 있잖아. 아무리 뜯어고치고 뭔 지랄을 해도 원하는 느낌이 안 나는 곡.”
무슨 느낌을 말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는 같은 창작자였기에.
“너는 너만의 기준을 찾아.”
내게 짧게 충고해 준 지원 형이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네가 지금까지 세웠던 기준은 말도 안 되니까 당장 갈아치우고. 취향 판인 이 바닥에 100%가 어디 있어?”
내가 확신을 가진 유일한 것을, 그 전제부터 잘못되었다고 지원 형은 내게 지금 말하고 있었다.
“몰랐어요.”
내가 내 손으로 내친 수많은 인간관계를 외면하고 오직 음악만 부여잡으며 그걸 내 유일한 의지처로 삼은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오직 하나의 지지대만 존재한다면 무너지는 순간 돌이킬 수 없어진다는 걸 이제는 직면해야 했다.
의지할 만한 것이 지금의 나한테는 음악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역시.
“아무도 저한테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나를 고립시켜 가며 나이만 헛먹어 갔지.
차라리 한 번쯤 실패를 겪고 무너져도 봤으면 그 우물 안에서 나올 수 있었겠지만, 하필 실패 없이 승승장구했던 것이 독이 되었다.
내가 옳다는 확신과 나는 실패하지 않으리란 자만심만 더욱 키워 준 셈이었으니.
“네가 올해 스물셋이냐?”
고개를 끄덕이자 지원 형이 혀를 찼다.
“어리다, 어려.”
어리다는 말이 기분 나쁘진 않았다. 스물일곱 살을 한번 찍긴 했어도 지원 형의 나이보다는 어렸고, 다시 스무 살로 돌아와 지금의 스물 셋까지 살아온 나이를 스물 일곱에 더하긴 좀 우스웠다.
스무 살의 경험과 서른 살의 경험은 확연히 달랐기에.
“그렇게 하나씩 배워 가는 거야, 인마.”
투박한 손길이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시절의 내가 저만큼 나이를 먹었어도 지원 형처럼 남에게 충고를 던져 줄 만한 어른이 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 * *
그래도 여전히 성패의 기준을 머리로는 이해하겠지만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야, 이든아. 너 아파서 활동 단축이라며? 우리가 단체 병문안이나 함 갈까?
“엥, 입원 안 했는데 무슨 병문안.”
-아, 뭐야? 입원 안 했어? 우리가 음료수 세트도 사 놨는데.
뉴스라도 본 건지 뜬금없이 병문안을 온다는 용철이 형한테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내 작업실로 와. 음료수 세트 아깝잖아.”
그렇게 오랜만에 크루 OVER LEVEL이 내 작업실에 모였다.
“이렇게 다들 모인 게 얼마 만이냐.”
“에이, 나 빼고는 다들 자주 보면서.”
“야야, 아니야. 요즘 용철이, 우리도 얼굴 자주 못 볼 정도로 바빠. 원백 레이블 들어가서 행사랑 피처링 존나 뛰잖아.”
내게 아침햇살 선물 세트를 턱 안겨 주며 주성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하필 아침햇살?”
“마, 그게 몇 대…… 몇 대였지. 암튼 호불호 갈리는 몇 대 음료 중 하나라며. 그래서 니 호불호 궁금해서 사와 봤다.”
막내 골려 먹기에 진심인, 여전한 형들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그래, 솔의 눈이 아닌 게 어디야.
잠시간 서로의 근황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형들에게 슬며시 질문했다.
“형들은 성공한 곡의 기준이 뭐라고 생각해요?”
잠시 고민한 세민 형이 툭 던졌다.
“우리가 만족한 곡이지.”
지원 형이 말했던 것과 똑같은 답이었다.
오오, 멋있다고,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다른 형들의 모습에 나만 빼고 다들 답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답답해졌다.
“원하던 만큼의 성적이랑 반응이 안 나와도?”
내 물음에 태훈 형이 내 머리를 마구 거칠게 헤집었다.
“아이고, 윤이드이. 언더 물 다 빠져삤다?”
“언더에서 있었던 것보다 아이돌로 활동한 세월이 훨씬 더 긴데 어쩌겠수.”
투덜거리자 주성이 형이 스크래치를 낸 눈썹깨를 문지르며 한 소리 했다.
“뮤클에 올리고 우리끼리 찢었다고 난리 치던 곡들 기억 안 나냐? 그때 우리한테 성적이란 게 의미가 있었어?”
“공유 수랑 하트 잘 찍히고 댓글 많이 달리면 좋긴 좋았지. 그런데 기억 안 나냐, 이든아?”
주성이 형의 말을 형범 형이 받았다. 형범 형이 내게 곡 하나를 보여 줬다.
“우리 크루가 제일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던 곡은 뮤클에 하트 여섯 개 찍힌 곡이었던 거. 그것도 다 우리들이 찍은 하트 여섯 개.”
.
회귀 전에 크루 형들과 인연이 끊긴 후 충동적으로 지우고 몇 날 밤을 후회했던 곡.
몇 번을 바꾼 내 폰에도, 내 클라우드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곡.
그 곡을 다시 마주하자 비트를 찍고 랩 가사를 끄적이고 랩을 하던 그 시절의 과거가 떠올랐다.
그 시절의 나는 댓글에, 하트에, 공유 수에 집착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던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저 내가 변한 거였다. 아이러니하게 real music을 외치면서도.
“야, 웃기지 마! 나는 하트 안 찍었어!”
“니가 안 찍어서 여섯 개 된 거잖아, 새꺄! 니가 찍었으면 일곱 개였네!”
“어떤 새끼가 안 찍었나 했더니 이 새끼가 범인이었어!”
평소처럼 별 쓸데없는 걸로 싸우기 시작하는 형들의 모습에 따스해졌던 마음 역시 달아오른 만큼이나 빠르게 식었다.
싸우는 형들을 턱을 괸 채로 구경하고 있자 어느새 내 옆으로 온 용철 형이 나를 툭툭 쳤다.
“<낙서> 기억나냐?”
혹시 아이큐 검사를 하는 건가 싶은 용철이 형의 질문에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당연하지, 형. DTB 끝난 지 1년도 안 지났는데 그걸 어떻게 까먹겠냐고. 그런데 그게 갑자기 왜 나와?”
“네가 피처링한 게 아니었으면 다른 래퍼 피처링으로 1위를 했어도 나는 평생 그 곡이랑 그 무대에 만족할 수 없었을걸.”
내가 한 번 들었던 말이었다. 다만 용철 형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멍하니 있자 내 반응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거라고 오해한 건지 용철 형이 덧붙였다.
“그냥, 그 곡이 상업적으로는 성공했겠지만, 나는 그 곡을 성공한 곡이라 말하지 못했을 거라고.”
회귀 전에도 당당히 1위를 했던 그 곡과 회귀 전의 상열이 형이 내게 전해 줬던 말이 겹쳤다. 평생의 미련…… 이 될 거라고 했던가.
“……알아들었어.”
다들 했던 말이 바로 이 말이었구나.
이제야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헐, 윤이든 너 설마 이번에 곡 성적 안 나온 거 때문에 이렇게 골골거린 거냐? 어우, 다크서클 봐라. 아주 턱까지 내려 오겠다. 잠도 못 잘 정도로 분하디?”
“얌마, 성적이 잘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지! 그렇게 멘탈이 약해서 디스랩 상대는 하겠어?”
“하, 새끼. 손 마이 간다, 마이 가.”
“너, 너네 그룹에서 리더 어떻게 하냐. 잘하고 있는 거 맞냐?”
형들이 타박을 던지며 내 등을 사방에서 마구잡이로 두드렸다. 힘 조절이라고는 좆도 안 하는 손길에 등짝이 다 얼얼했다.
형들이 돌아가고 난 후, 다시 를 들어 보았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멜로디는 걸리는 부분 하나 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므로 는,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