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4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45화(24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45화
“아니?”
일단 반사적으로 부정하고 봤다.
[멤버들과의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이거 뭐야? 단 두 글자로 불화 조장? 내가 설마 과거로 돌아왔나?
하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내 눈앞에 보이는 류재희의 얼굴은 불화 조장으로 인한 초심도 감점이 밥 먹듯이 뜨던 데뷔 초라기에는 예전의 동글동글한 모습들이 다 빠져 있어서 좀 그랬다.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류재희가 부엌의 조명을 켰다. 밝은 빛 아래에서 굳어 있는 표정이 한결 더 잘 보였다.
“하준이 형은 형이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하시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요.”
다시 식탁 의자를 끌어 앉은 류재희가 팔짱을 단단히 꼈다.
“제가 봤을 때는 형이나 하준이 형이나 서로가 의지처라고 하면서도 막상 제일 중요한 건 서로에게 잘 안 털어놓잖아요.”
류재희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굳이 반박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정말로 서로의 가장 약한 부분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았으면 나는 견하준이 내게 가지고 있던 부채감과 죄책감을 진작 알았겠지.
견하준은 또다시 저한테 손절당하지 않을까 하는 내 두려움의 원인을 알았을 거고.
그래서 우리의 사이 개선도가 100%는 될 수 없나 보다, 준아. 너는 평생 그 원인을 모를 테니까.
취조하는 형사처럼 분위기 잔뜩 잡은 게 무색하게 류재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물음의 어투는 취조보다는 투정에 더 가까웠다.
“왜 숨기려고 하는 거예요? 저희가 그렇게 못 미더워요?”
그러게, 지원이 형 앞에서 털어놓을 때는 그렇게 쉽게도 열리던 입이 왜 막상 지금은 열리지 않을까.
나조차도 지금 내 마음을 모르겠다.
자존심 때문에 내 무능한 모습을 멤버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건지, 아니면 멤버들한테 내 몫의 부담을 나누고 싶지 않은 건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니까 신경 쓰지 마.”
수면제 통을 가볍게 흔들며 대꾸했다.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고요한 부엌에 울려 퍼졌다.
“형, 저희가 장난으로 가부장 가부장 해도, 리더는 가장이 아니에요.”
뭐, 인마? 그럼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건 뭔데? 몸 부서져라 곡 만들고, 절교한 놈이랑 껴안아 가면서 한우 세트도 가져다주고, 어?
다만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면 생색내는 것 같아, 가오 안 살아서 속으로 삼켰다.
“IMF 시대 가장도 아니고, 형이 홀로 짊어지면서 저희를 힘겹게 먹여 살릴 필요는 없다고요. 저희도 다 저희 밥벌이는 하거든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류재희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타박했다.
“형이 우리를 한 팀으로 생각하면 팀원에게 부담을 나눈다고 생각하고, 우리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한 식구끼리 의지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막내 녀석에게 위로받는 게 탐탁지만은 않아서 괜히 시비조의 말을 던졌다.
“이거 웃기는 놈일세. 너는 너희 동생들한테 의지하냐?”
“형들이 알려 줬잖아요. 가족한테 의지하는 법.”
시원시원하게 웃은 류재희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내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말로 맞받아쳤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 패배였다.
그래도, 졌음에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알았으니까, 일단 자고 내일 이야기하자.”
수면제 뚜껑을 열며 말하자 류재희가 통 뚜껑을 덥석 내리누르며 나를 다급히 제지했다.
“삼키고 또 토할 게 뻔한데 왜 먹느냐니까요.”
“아니, 씹어 먹으면 될 것 같다니까?”
“이 형이 미친 소리를 하고 계시네! 그걸 왜 씹어 먹어요? 알약이 언제부터 씹어 먹으라고 나온 건데요! 그리고 그렇게 먹으면 몸에 안 좋다고요!”
수면제 통을 뺏으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 사이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루어졌다. 물론 승자는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나 잠 좀 자자, 잠 좀!”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수면제 통을 류재희의 손에서 완전히 구출함과 동시에 내 방의 문이 활짝 열렸다.
“거봐, 류재. 내가 실패할 거라고 했잖아. 최종보스는 그 정도 풍둔 주둥아리술로는 교화하기 턱도 없다고.”
비척비척 걸어 나온 김도빈이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자식은 왜 지금까지 안 자고 난리야?”
“도빈이 형은 항상 그랬잖아요.”
“그건 그렇지.”
벌컥, 견하준의 독방 문도 열리더니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한 견하준이 반쯤 눈을 감은 채로 밖으로 나왔다.
“그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말 잘했네. 잠 좀 자자.”
그렇지. 그렇게 잠귀가 밝은 녀석이 이 소란으로 안 깰 리가 없지.
방금 잠에서 깼다는 걸 여과 없이 드러내는 예민한 표정이 내 손에 들린 수면제 통을 보자마자 심각하게 변했다.
“아니, 취소. 이야기 좀 하자.”
내 표정에 주저가 묻어 나왔는지 미간을 문지른 견하준이 손을 내저었다.
“네가 지금 이야기하기 싫으면 시간을 좀 두고-”
“으아아! 언제까지 미룰 건데요! 이러다가 이든이 형 쓰러지겠다고요! 그냥 오늘 날 잡아요! 다들 일어났으니 잘됐네! 새벽 감성의 힘을 빌려서라도 대화 좀 하자고요!”
어지간히 답답했는지 류재희가 견하준의 말을 끊고 소리를 내질렀다.
“아니지, 막내야. 이든이 형은 쓰러지기 전에 병원에 셀프로 입원하지.”
김도빈은 이 와중에 류재희의 말을 정정해 주고 있었다. 틀린 소리가 아니라서 헤드록을 선사해 주지는 못했다.
나를 향한 세 쌍의 눈동자에 열려 있던 수면제 뚜껑을 닫고 식탁에 올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야기 좀 하자.”
여기에서 더 뻗대어 봤자 내 눈치 보느라 팀 분위기만 안 좋아질 뿐이다. 저 녀석들이 내 슬럼프 극복에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일단은 말해 봐야지.
겨우 여기까지 온 우리가 회귀 전의 분위기가 되는 건 나도 바라지 않으니까.
한밤중의 소란에도 서예현은 계속 곤히 자고 있었다. 서예현만 빼놓고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도 좀 그래서 김도빈에게 깨워 오라고 시켰더니, 그 결과는…….
“와, 예현이 형 진짜 업어 와도 안 일어난다. 대박.”
“이게 사람이냐……?”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안 일어난다고 나를 끌고 온 김도빈에 의해 서예현은 내 등에 업혀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일어날 기미 없이 곯아떨어져 있는 서예현을 소파에 내팽개치고 그 앞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세운 한쪽 무릎에 팔을 턱 얹고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슬럼프가 왔어.”
이 여섯 글자가 뭐라고 그렇게 말하기 힘들었던 건지. 속이 시원하다든가 가벼워지진 않았지만, 생각만큼 쪽팔리지도 않았다.
“원인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딱히 해결책이 아니더라고.”
하지만 계속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을 내 입으로 내뱉는 건 꽤 힘들었다.
입술을 몇 번을 짓씹으며 천장 한 번 보고 숨을 몇 번이고 들이마셨다가 겨우 꺼내 놓았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앞으로 내가 작곡을 못하게 될지도 몰라.”
견하준과 류재희는 그 말에도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하지만 견하준과 류재희는 표정 관리를 잘하는 편이니, 정말 솔직한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카메라 앞이 아니면 표정 관리를 제일 못하는 김도빈이 제격이었다.
김도빈을 휙 돌아보자마자 놀랍도록 평온한 표정과 마주했다.
저런 김도빈의 얼굴을 마주하자 지금까지 내가 했던 고민이 정말로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김도빈은 내게 그 지독하게 평온한 얼굴로 “그럴 수도 있죠.”라는 말을 던지기까지 했다.
결코 김도빈의 연기 실력과 담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야, 놀랍지 않아? 충격적이지 않아? 막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안 느껴져?”
김도빈의 어깨를 움켜쥐고 짤짤 흔들며 묻자, 뒷머리를 긁적인 김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겪어 봐서 그런지 충격이 덜 하달까…….”
이 자식, 꿈꿨나? 김도빈이 헛소리를 해 대긴 했지만, 멤버들의 반응이 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작곡을 못하는 게 마른하늘에 벼락이 내리치는 재해급이 아니라고?”
그러면 나는 지금까지 왜 그렇게 혼자 속으로 썩혀 가면서 개고생한 거지? 그래도 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동정 어린 눈길이 돌아오지 않는 건 마음에 들었다.
“작곡 못 한다고 형 랩 실력까지 후퇴하는 건 아니잖아요. 형이 못하겠으면 곡 사 오면 되죠. 물론 절대 대표님에게 맡기지는 말고요.”
“맞아요, 형은 프로듀싱 아니어도 리더라는 직함이랑 메인래퍼라는 포지션이 떡하니 있는데. 곡이야 형 프로듀싱 말고도 다른 루트가 존재하고.”
막내 라인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프로듀싱을 제외한 레브에서의 내 역할을 열거했다.
“네가 슬럼프를 극복하는 게 제일 최고고 최선이지만, 극복 못 해도 우리 그룹에는 큰 문제 없다는 소리야.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천천히 다시 해 봐.”
견하준의 섬세한 토닥거림이 내 등에 닿았다. 북 치듯 사정없이 두드려 대는 크루 형들과는 확연히 다른 손길이었다.
이번 생에는 음악 말고도 내 지지대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서서히 새벽의 푸른 공기가 베란다 창가에 비쳐오기 시작했다. 서예현과 류재희의 방에서 휴대폰 알람이 시끄럽게 울렸다.
동시에 서예현이 눈을 번쩍 떴다. 제가 눈을 뜬 곳이 거실 소파인 게 어지간히 당황스러운 듯했다.
“다들 여기에서 뭐 해?”
눈을 비비며 일어난 서예현이 거실에 모여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새벽의 소동을 간단히 설명해 주자 서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잠결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라.”
“그래도 안 일어났어? 대단하다, 대단해.”
짝짝 박수를 치며 진심 어린 감탄을 내뱉었다. 턱을 괴고 무심한 표정으로 내 슬럼프 상황을 들은 서예현이 입을 열었다.
“녹음실에서의 네 갈굼이 그립긴 하겠지만 네가 힘들다면 어쩌겠어.”
서예현의 무덤덤한 위로에서 유독 한 단어가 내 귀에 꽂혔다.
“그리워?”
“아니, 잠깐만! 아니, 그리운 게 아니라! 아오! 이게 아닌데!”
“그랬구나. 그리웠구나.”
서예현이 입을 틀어막으며 실언했다는 얼굴을 했지만 듣고 싶은 말만 듣는 내게는 알 바 아니었다.
“형이 그립다면 내가 또 어쩔 수 없이 극복을 해야겠네.”
씩 웃으며 몸을 일으켜 방에서 겉옷을 챙겨 들고 나왔다.
“어디 가?”
“작업실. 예현 형이 내 갈굼이 그립다잖아.”
현관에서 신발을 구겨 신다가 멈칫하고 멤버들을 향해 물었다.
“같이 갈래?”
혼자 틀어박혀 있느니 시끌벅적한 게 낫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