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4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46화(24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46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한쪽 손을 슬그머니 든 김도빈이 물었다.
“혹시 작업실 소파에서 자도 괜찮나여.”
“하암, 다 같이 숙소에서 숙면 좀 취하고 가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류재희도 밤을 새운 게 어지간히 힘들었는지 하품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퍽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눈가를 꾹꾹 누르는 견하준의 의견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 이른 아침의 숙소에서 쌩쌩한 사람은 오직 잠을 푹 잤던 서예현밖에 없었다.
피로로 흐릿한 눈빛을 하고 눈을 꿈뻑이고 있는 녀석들 사이에서 혼자만 또렷한 눈동자로 아침 운동 갈지 말지 정해야 하니까 빨리 결정하라고 닦달하는 서예현을 보자 저 인간의 그리움을 꼭 해소해 주고 싶어졌다.
오늘의 닦달은 꼭 몇 배의 갈굼으로 갚아 주마.
“특히 형은 꼭 자야죠. 잠 좀 자자면서요.”
그 대안을 거절하지도 못하도록 내가 수면제 통을 사수하며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류재희를 향해 투덜거렸다.
“나도 자고 싶다니까? 불면증이 왜 불면증이겠냐. 잠을 못 자니까 불면증 아니야.”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았을 눈 밑을 문지르며 식탁에 곱게 놓여 있는 수면제 통을 가리켰다.
“그래서 수면제 한 알 먹고 잔다니까 무슨 못 먹을 거 먹는 사람 취급이나 하고 말이야.”
“못 먹는 건 맞잖아. 먹는 족족 토하면서.”
서예현이 혀를 차며 내 말을 정정했다.
“그래서 씹어 먹는다니까?”
“그럼 그러던지.”
심드렁한 얼굴로 내게 직접 수면제 통을 건네주기까지 하는 서예현의 팔을 류재희가 덥석 잡아 만류했다.
“형! 말려야지 뭐 하는 거예요?”
“알약의 쓴맛을 한번 보여 주고 포기시키는 게 더 빨라, 막내야. 괜히 알약이 물과 함께 삼켜서 넘기는 형태겠어? 내가 봤을 때 윤이든은 절대로 저거 못 씹어먹어.”
내가 지금 숙면에 얼마나 간절한지 알고 하는 소리냐?
그래도 서예현 덕분에 말리는 사람 없이 무사히 수면제 한 알을 꺼내어 물 없이 입에 던져넣었다.
코팅된 알약의 면이 혀에 닿으며 퍼지는 쓴맛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지만 씹는 순간…….
“씨이발, 더럽게 쓰네!”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절로 욕이 나오는 맛이라 비속어로 인한 감점은 불가항력이었다.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봐, 내가 말했지.”
“그러게요. 그냥 냅둘걸. 괜히 이든이 형이랑 아닌 한밤중의 힘겨루기나 했네요.”
“오오, 예현이 형, 되게 그거 같아요. 맹수 조련사.”
거실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참 기가 막혔다. 맹수 조련사 같은 소리 하네. 내가 서커스단 사자냐?
씹어 봤자 수면제를 토해 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삼키지도 못했다. 이 방법도 실패다.
조각 하나까지 에퉤퉤 뱉어내고 입을 헹구어 봐도 여전히 입에 잔해처럼 남은 수면제의 쓴맛에 다급히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 불쾌한 쓴맛이 왜인지 낯설지 않았다. 닷새의 기억을 날린 채로 일어난 그 날, 입 안에 남아 있던 쓴맛. 그 감각이 갑자기 왜 떠오르는지.
‘내가, 아니, 서른 살 윤이든이 수면제를 씹어 먹었다고?’
그럼 내 머릿속에서 잘린 과거의 기억이 내가 수면제를 못 삼키는 이유와 연관되어 있는 건가.
수면제를 삼키려 하면 시스템이 경고를 띄우고, 이전에 수면제를 삼켰다가 에러로 인해 본 환영에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기억을 본 것을 우연이라 치고 넘기기에는 찝찝했다.
하필 다른 회귀자가 차연호라 조작된 기억을 복구하는 방법을 물어보지도 못했다. 차연호는 말해 주긴커녕 그걸 미끼 삼아 나를 휘둘러대고도 남을 테니까.
게다가 차연호가 만약 내게 위험도를 전가한 놈이라면 더 위험하다. 지금도 망하라고 고사 지내고 있는데 누구 좋으라고 내게 방법을 알려 주겠는가.
작업실로 가는 건 좋은데 가기 전에 눈이라도 좀 붙이고 가자는 류재희의 제안에 다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 방 대체 언제 바꾸냐?”
숙소 방과 룸메이트를 분기별로 한 번씩 바꾸는 게 원래 우리의 규칙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방을 바꾸지 않기 시작했다.
“방 옮기기 귀찮잖아요.”
“그건 그렇지.”
현재 각자의 룸메가 딱히 불만이 없는 것도 한몫했지만 짐을 다 빼서 옮기기 귀찮은 게 제일 크긴 했다.
“나름 형 덕분에 미라클 모닝도 되는 것 같아서 딱히 불만도 없고요.”
김도빈의 목소리가 점점 가물가물해졌다. 해가 중천에 뜰 때 일어나서 소파에서 다시 퍼질러 자면서 미라클 모닝 같은 소리 하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덕분에 눈을 조금이나마 붙일 수 있었지만 여전히 수면의 질은 개쉣이었다.
겨우 새소리에 바로 깬 걸 보니 말이다. 결국 잠들기는 포기하고 휴대폰을 켜 음원 차트를 확인했다.
순위가 50위 밖으로 밀려났다가 다시 차트 역주행을 시작한 의 순위를 뿌듯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다짐했다.
다음 주까지 이러면 매니저 형한테 말해서 병원 가야지.
* * *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아예 통으로 사 놓은 츄파츕스를 발견한 서예현이 눈에 불을 켜며 나를 돌아보았다.
“츄파츕스 칼로리가 얼마인지…….”
내 눈 밑의 다크서클을 마주한 서예현의 말끝이 점점 흐지부지되었다.
“칼로리가 뭐. 형이 물어볼 줄 알고 외워 놨어. 45kcal.”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양치 잘하라고.”
곧바로 츄파츕스 통을 향해 달려가려 하는 김도빈의 뒷덜미를 붙잡아 막으며 서예현이 한발 물러났다.
평소처럼 모니터를 켜고 그 앞에 앉아 화면만 보고 있자 서예현과 김도빈이 팔을 걷어붙이며 나섰다. 내가 이빨 빠진 호랑이 꼴이 되자 작업실이 더는 공포의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서 저 인간의 그리움을 해소시켜 줘야 할 텐데.
“막 아무거나 눌러보면 악상이 떠오르지 않겠어?”
“이 빌보드 차트인 작곡가께서 형한테 영감을 선사해 드리죠!”
신디사이저 건반으로 음악인지 사람의 신경을 가장 거슬리게 만드는 음정 실험인지 모를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는 서예현과 DAW를 열어 지적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 음악을 신나게 작곡하는 김도빈을 보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괜히 데려왔나……?
그래도 고요함에 잠겨 악상의 부재를 더욱 크게 느끼는 것보다는 부재를 느낄 틈도 없는 소란이 한결 나은 것도 같았다.
“야, 방금 괜찮지 않았어? 괜찮았지? 괜찮지 않아?”
“형, 어때요? 얼른 들어봐요, 형!”
아니, 차라리 고요가 더 나은 것 같기도.
그렇게 한참을 시끌벅적한 작업실에서 김도빈과 류재희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서예현이 그 둘을 깨워 숙소로 데리고 돌아갔다.
“준아, 너는 안 가냐?”
“옆에 있어 준다고 약속했거든.”
“누구한테?”
내 질문에 견하준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여 나도 더 캐묻지 않고 소파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미안.”
부러 옆을 돌아보지 않고 툭 내뱉은 내 사과를 들은 견하준이 물었다.
“뭐가?”
“패배하는 건 데뷔 초에 그놈의 내우주로 충분했는데. 준이 너, KICKS에게 지는 거 싫었잖아.”
아마 데뷔 초였던가, 연말 시상식 스페셜 스테이지인 KICKS와의 곡 체인지 무대를 준비하면서 그 자식들에게 결코 질 수 없다고 서예현에게 눈을 번뜩이던 견하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터라 이번 활동의 결과가 견하준한테 유독 미안했다.
“괜찮아, 우리가 이겼어.”
피식 웃은 견하준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 준아. 빌보드는 hot100 아니면 의미 없다니까.
“그리고 사과하지 마. 네 잘못 아니잖아.”
방금의 나처럼 옆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견하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난 이제 네게 부채감이 없어. 너는 이제 멤버들이랑도 잘 지내니, 내가 중재할 필요도 없고.”
회귀 전, 일방적인 손절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두 가지를 견하준이 짚었다. 왜, 왜 꼭 회귀 전 일을 아는 것처럼…….
내가 견하준을 휙 돌아보자 마찬가지로 고개 돌려 나를 마주한 견하준이 언제나처럼 곧은 눈빛으로 선언했다.
“그러니까 내가 내 쪽에서 먼저 너를 손절할 일은 네가 범죄라도 저지르지 않는 이상은 없단 소리야.”
미래는 달라진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게 얼마인데 나는 왜 지금까지 견하준과의 미래는 우리 사이에 있었던 문제들이 이렇게 달라졌는데도 회귀 전과 똑같이 흘러가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준아.
“보통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가 아니야?”
내 떨떠름한 물음에 견하준 역시 떨떠름한 얼굴로 말끝을 흐리며 대꾸했다.
“범죄자는 친구로 좀…….”
“하긴…….”
하늘이 무너져도 그럴 일은 없다고 했으면 그냥 입에 발린 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저렇게 명확한 기준까지 끼워서 말해 주니 참으로 신뢰가 갔다.
“이든아, 계속 작업실에 있을 거야?”
“어, 혹시 악상이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숙소까지 데려다 줄까?”
“그럼 나도 조금 더 있지, 뭐. 혼자는 외롭잖아.”
나랑 견하준은 나란히 앉아 말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사람 한 명이 옆에 있다고 작업실에 내려앉은 고요가 전보다 외롭지는 않았다.
[퀘스트 완수까지 수치 1%가 남았습니다.] [▶멤버들과의 사이 개선도-서예현(99%)
-견하준(100%)
-김도빈(100%)
-류재희(100%)]
96%로 제일 낮았던 류재희의 사이 개선도가 100%까지 찬 건 의외였다.
좋아, 이제 서예현의 1%만 채우면 된다.
서예현과 함께 하는 즐거운 작곡 놀이 정도면 되려나? 그러기 위해서라면 어서 슬럼프를 마저 극복해야 하는데!
* * *
“안색은 한결 괜찮아진 것 같은데 슬럼프는 어떠냐? 좀 극복됐냐?”
“이제 머릿속이 백지 상태에서는 벗어났거든요? 그런데 마음에 드는 곡이 도저히 안 나와요.”
지원 형의 물음에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안고 있던 쿠션에 머리를 박았다.
“죄다 실패. 대체 왜일까요.”
“그거지.”
혀를 쯧쯧 찬 지원 형이 곧바로 내 상태의 원인을 짚어 주었다.
“부담도 부담인데 네가 대중성이랑 음악성을 너무 의식해서 그래. 네가 그냥 음악성만 쫓다가 대중성을 놓친 거면 문제가 좀 덜할 텐데 하필 해외에서는 먹혀 버려서 중심을 못 잡게 되어 버린 거지.”
그럼 이건 또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거지? 아주 산 너머 산이었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또 나타나기를 반복하니 말이다.
“야, 이든아. 형이 그런 고민 싸그리 날리는 방법 알려 줄까?”
고민하고 있는 내 어깨에 팔을 턱 걸치며 씩 웃은 지원이 형이 내 눈앞에 제 휴대폰을 내밀었다.
DTB 시즌 4를 예고하는 공지문이 지원이 형의 휴대폰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