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4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47화(247/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47화
“갑자기 여기서 DTB가 왜 나와요?”
지원자 모집 공고를 눈으로 훑으며 떨떠름하게 물었다.
가장 크게 박힌 공고 날짜를 보니 신청 종료까지 딱 일주일 남았다.
대체 슬럼프와 DTB의 상관관계가 뭐지. DTB에 나간다고 해서 슬럼프가 바로 극복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지원 형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원래 이럴 때일수록 머리 비우고 하고 싶었던 음악 마음껏 하는 게 최고거든.”
내 어깨에 얹은 팔로 헤드록을 걸듯 나를 끌어당긴 지원이 형이 내 머리를 거친 손길로 헤집었다.
“대중성이고 음악성이고 다 집어치우고 프로듀서 도움을 받든 네가 혼자 비트를 찍든, 책임 없는 자유를 누리고 오라는 소리야, 인마.”
책임 없는 자유라.
“딱히 책임감으로 곡 작업이랑 프로듀싱을 하진…….”
말하다가 멈칫했다. 내 곡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과 [Attention] 활동 때 멤버들에게 느끼던 미안함이 나조차도 몰랐던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러면 한 번쯤은 책임감을 내려놓은 자유를 만끽하고 싶긴 했다.
“너희 그룹의 음악이라면 온전히 네가 원하는 방향대로만 할 수는 없겠지만, 너 홀로 서는 힙합 서바이벌에서는 키를 잡은 사람이 오직 너 하나니까.”
물론 힙합 서바이벌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마음껏 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힙합’이기 전에 ‘서바이벌’이고 결국에는 방송이니까.
내가 카메라 앞에 어떻게 비칠 것인지 계산해야 한다.
특히 아이돌 래퍼로 주목을 받게 될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떻게 왜곡되고 편집될지는 모르는 거지.
하지만 지원 형의 말대로, 잠시 레브의 리더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그냥 한 명의 래퍼로 하고 싶은 무대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차피 본선부터는 프로듀서가 붙으니까 네가 슬럼프라 작곡 못 한다 해도 아-무 상관없다. 랩만 할 수 있으면 오케이라고.”
어깨를 감싼 손으로 내 팔뚝을 두어 번 격려하듯 두드린 지원 형이 팔을 풀었다.
“형, 혹시 이번 시즌에도 프로듀서로 DTB 나와요?”
내가 용철이 형이 시즌 4에서 프로듀서 겸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건 기억하고 있는데 지원이 형은 영 기억이 안 나서 말이지.
하지만 지레 찔린 건지 뭔지 내 순수한 궁금증을 곡해한 듯한 지원이 형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변명처럼 덧붙였다.
“네가 꼭 시청률 보증 수표라서 나오라 하는 말은 아니고. 어차피 시즌 3이 대박 터져서 적어도 시즌 5까지는 흥행 보증될걸?”
회귀 전에도 시즌 4에서 포텐 터트리고 시즌 5에서 그 인기가 이어지기는 했다. 어차피 내가 나오지 않아도 이슈 몰이를 할 시즌이라는 소리다.
굳이 지원이 형이 나를 시청률의 미끼로 쓸 필요는 없지. 그럴 사람도 아니고.
“야, 그리고 나 말고 또 프로듀서로 누구 있는 줄 아냐?”
지원 형이 일급기밀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한껏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디아이 있어, 디아이. BQ9이랑. 둘이 각자 레이블이 달라서 다른 팀이긴 한데.”
회귀 전에도 시즌 4에서 프로듀서로 나온 용철이 형을 알았기에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준우승자였을 때도 나왔는데 우승자인 지금은 당연히 나오겠지.
“헐, 진짜요?”
하지만 예의상 놀라는 척은 해 줬다.
“어때, 한번 해 보고 싶지 않아?”
“제가 홀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거든요. 일단 멤버들한테 물어보고 소속사에 허락을 맡아야 해서.”
어차피 내 의견이 제일 중요하긴 했지만 그래도 절차상 허락 정도는 맡아야 했다.
“그런데 형, 제가 만약 나가고 싶다고 하면 신청 절차 필요 없이 바로 1차 예선으로 프리패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예전에 찾아본 바에 따르면 랩하는 동영상을 찍어서 홈페이지에 업로드를 해야지 신청이 되던데 그 귀찮은 절차를 건너뛸 수 있는 건가.
“아니? 정정당당하게 from the bottom 하자. 그런 특혜에만 의지하면 머리 벗겨진다.”
래퍼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어 문구 top 10선 안에 들 구절을 말하며 지원 형이 킬킬거렸다.
마약 검사로 인해 머리카락 100가닥을 뽑은 후로 점점 휑해지는 것 같은 지원이 형의 머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마약 사건에는 지나가다가 얽히지도 말아야지.
지원 형과의 면담을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서 멤버들을 모아 레브 제552회 회의를 개최했다.
내 컨디션 난조로 인해 회의가 한동안 열리지 않았기에 참으로 오랜만의 회의였다.
“그래서 DTB에 한 번 참가해 보라던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냐.”
DTB 시즌 3 애청자였던 김도빈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찬성을 외쳤지만, 그런 김도빈과 함께 DTB를 애청했던 류재희는 심각하고 진지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류재희 반응이 저러는 건 좀 찝찝한데.
“네가 나가고 싶으면 한번 나가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슬럼프 극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어차피 다음 활동까지 많이 남았고.”
서예현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내 갈굼이 그립긴 그리웠는지 빨리 슬럼프를 극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잘 드러났다.
“시즌 3 볼 때도 동경하긴 했잖아. 하고 싶었던 무대 하고 와. 네가 DTB에 나가서 우승한다고 해도 네가 레브의 리더가 아니게 되진 않잖아.”
견하준 역시 나를 지지해 주었다.
그렇게 세 명이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혼자 진지한 얼굴로 있던 류재희가 무거운 분위기를 잡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솔직히 덥넷 입장에서는 형이 악편 소스로 최고거든요. 이미지 깎이고 욕먹을 것도 각오를 해야 해요.”
“아, 맞아. 덥넷이었지.”
서예현이 한탄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DTB가 편성된 Wnet의 악마의 편집은 그만큼 유명했다.
당장 용철이 형이 나왔던 지난 시즌에서도 내가 전해들었던 악편이 몇이던가.
“백 퍼센트 악편으로 시청률 뽑아먹으려 할 거고, 좋은 편으로든 나쁜 편으로든 제일 이슈가 될 형이 그 타깃이 될 것도 뻔해서. 전 그 점이 조금 걱정되네요.”
그 점은 내가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내가 악편 피하는 방법은 또 기가 막히게 잘 알지. 걱정하지 마라, 막내야. 이 DTB로 내 이미지가 비호감이 될 일은 없으니까.”
히죽 웃으며 말하자 류재희의 안색이 더욱 안 좋아졌다.
“형이 그렇게 확신하니까 더 불안해지잖아요.”
“그래서, 나가지 마?”
턱을 괴고 묻자 류재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이 나간다면 어쩌겠어요. 일단 최대한 응원하고 형이 악편의 희생자가 되었을 때 구구절절 해명하지 않고 악편인 걸 증명하는 방법을 제가 찾는 수밖에 없죠.”
역시 레브의 해결사 류재희. 참으로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소속사는 내가 DTB에 나가는 게 실보다 득이 훨씬 크다고 판단했는지 쌍수 들고 환영했다.
“전문적으로 찍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휴대폰으로 막 찍어도 돼요?”
“from the bottom 좀 해 보려고 그런다, 왜. 시작 시점을 남들이랑 똑같이 해야지 디스랩 받아칠 때 나도 니들이랑 똑같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잖냐.”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한 프리스타일 랩 영상을 Wnet DTB 홈페이지의 신청란에 업로드했다.
DTB 참가자 모집일이 종료되고 며칠 후,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Web발신] Drop The Beat 시즌 4 1차 예선 장소 및 시간 안내] 오전 10:11“오, 붙은 거예요?”
“신청이야 신청서 던져 놓고 안 올 놈들까지 예상해서 다 받아 주겠지. 대신 1차 예선에서 우르르 떨어뜨리겠지.”
소파에 드러누운 내 머리맡에 앉아서 함께 예선 통과 문자를 보고 있던 김도빈에게 심드렁하게 대꾸해 주었다.
“형, 기왕 아이돌이라고 주목받을 거, 아예 1차 예선 때 무대의상을 입고 가는 거예요!”
“너 전에 내가 피처링 무대 설 때도 똑같이 말하지 않았냐?”
“힘숨찐 메타로, 샤방한 아이돌이 무시하던 주변 래퍼들을 압살하는……!”
“너는 인마, 내 얼굴을 보고도 샤방한 아이돌이라는 말이 나오냐?”
미간을 구기며 묻자 볼을 긁적인 김도빈이 되물었다.
“샵에서 메이크업 빡세게 받고, 의상은 베레모랑 멜빵바지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여?”
“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대체 대기 시간 동안 주변에 우글거릴 래퍼 놈들에게 어떤 눈빛을 받으라는 거냐, 도빈아.
* * *
그리고 1차 예선 당일.
“푸하하하학!”
“아, 그만 웃으라고!”
“오, 완전 아이돌이에요, 형.”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서예현을 향해 윽박지르자 이번에는 김도빈이 엄지를 척 치켜들며 내 속을 긁어댔다.
폼이 널널한 청재킷과 민소매, 베레모, 초커.
DTB와는 어울리지 않는, 상큼하기 그지없는 의상이었다. 평소의 힙한 피어싱 대신 하트 모양의 피어싱이 귓불에 박혀 있었다.
동네 마실 패션으로 맨발에 삼선슬리퍼 질질 끌고 가서 프리스타일 랩으로 압살해 버리려 했던 내 계획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추리닝을 입고 방송에 나가는 건 좀 아니지, 이든아.”
스타일리스트가 나를 타박하며 삐뚤어진 베레모를 다시 고쳐 주었다. 전날 입을 옷을 미리 골라 놓았던 게 내 과실이었다.
세 줄이 트레이드마크인 트레이닝복을 위아래로 맞추어 입고 가려고 침대에 던져 놨는데 그걸 류재희가 스타일리스트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낸 거다. 왜 사진을 찍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덕분에 헤어랑 메이크업만 간단히 받고 1차 예선에 가려던 나는 우리 담당 스타일리스트에게 소환되었고, 강제로 이 의상으로 갈아입게 되었다.
이 상황이 악몽 그 자체였다.
“누나, 꼭 아이돌이라면 상큼 청량 컨셉이라는 편견을 제가 이런 꼴로 방송에 나가서 강화해야 할까요? 차라리 정장을 입게 해 줘요! 우리 정장 입고 활동 꽤 했잖아요!”
피를 토하는 내 외침에도 익숙하게 먹금한 스타일리스트 누님은 다음 일정도 꼭 미리 알려 달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절대 말 안 한다. 내가 혼자 자차를 운전해서 가는 한이 있더라도 소속사에 말 안 하고 혼자 갈 거라고.
김도빈이 말한 그놈의 힘숨찐 메타는 오늘의 1차 예선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와, 이거 진짜 방영하면 꼭 본방 사수 해야지.”
너무 웃어서 눈물이 맺힌 눈을 손등으로 쓱 훔치며 서예현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샤방한 아이돌이 되어 1차 예선 촬영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도착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매니저 형을 붙들었다.
“형,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형이 얼른 내 트레이닝복이랑 클렌징 티슈 좀 챙겨서-”
“지원자들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쩌렁쩌렁한 스텝의 외침이 매니저 형한테 다급히 부탁하던 내 말을 끊었다.
하필 시간을 딱 맞춰서 도착한 통에 나는 결국 옷 갈아입기와 메이크업 지우기를 포기하고 터덜터덜 스텝에게로 걸어갔다.
1차 예선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다가 2차 예선부터 주목받은 놈이 되어도 좋으니까 제에발 통편집 좀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