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4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48화(248/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48화
순식간에 체육관 앞에 길게 줄이 늘어졌다. 얼떨결에 휘말려 줄을 서자 내 앞에는 사람들이 엄청났다. 놀이공원 대기 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내 뒤로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쭉 늘어진 줄을 보며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끝에 선 사람들은 언제 심사받으려나.
[용철이형- 야 미쳤다] 오전 7:30 [용철이형- 오늘 DTB 시즌 4 1차 예선일인데 지원자 7천 명 넘는대] [용철이형- 언제 다 심사하냐? 나 작년에 시즌 3 할 때는 3천 명도 대기 존나 길었는데] 오전 7:31 [용철이형- 이러다가 내일 아침까지 심사 보는 거 아니야?] 오전 7:3230분을 대기했는데도 여전히 긴 줄과 용철이 형의 문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 줄이 7천여 명이 선 줄이란 말이지……? DTB 시즌 3이 확실히 히트를 치긴 한 모양이었다.
[그러게 형] [줄이 안 준다] 오전 7:33 [심사위원 특혜 슈퍼패스 이런 거 없어?] 오전 7:34아직 번호표도 받지 않았는데 벌써 지쳐버린 내 답장에 용철이 형은 원하는 만큼의 리액션을 문자로도 충분히 보여 주었다.
[용철이형- 뭐야 너 지원했어????] [용철이형- 나랑 G1은 100% 네 구역에서 심사 못 보겠다] 오전 7:35 [용철이형- 그리고 나 지금 프로듀서 중에서 제일 쩌리야] [용철이형- 그런 내가 슈퍼패스 그런 걸 어떻게 해 주냐] 오전 7:375월의 햇볕 아래에서 기약 없는 대기를 하고 있자니 이게 맞나 하는 회의감이 몰려들었다. 슬럼프를 빡침으로 극복하라는 소린가?
성공한 프로듀서가 되어서 체육관 밖이 아닌 안에 심사위원으로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저 멀리서 파자마를 입고 온 사람 인터뷰를 하던 카메라가 내게 다가왔다. 군복에 이어 파자마까지 보니 내 의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시즌 3 때 피처링으로 나오시고 시즌 4에 이렇게 지원자로 참가하셨는데, 무슨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일탈이죠. 잠깐의 일탈.”
눈앞의 마이크에 대고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앞으로의 도전 각오가 담긴 한마디를 해 달라는 말에 내려간 베레모를 슬쩍 올리며 말했다.
“낙서나 하나 남기고 가려고요.”
피처링 가사 우려먹기 개꿀.
인터뷰어를 맡은 제작진이 만족한 얼굴로 총총 멀어졌다. 아직도 까마득하게 남은 앞줄을 보며 이를 갈았다.
누구든 디스전에서 나한테 방송 특혜받았다고 조롱하기만 해봐라. 울면서 집에 가게 해줄 테니까.
“F조입니다. 번호 대가 호명될 때까지 체육관 주변에서 대기해 주세요.”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배부받은 번호표를 힐긋 내려다보았다.
‘1501번.’
아마 3백 명씩 한 조로 끊는 모양이었다. 오늘 안으로 심사 보기는 가능하나?
다시 시작된 길고 지루한 대기 시간 끝에 드디어 1천 번대가 체육관 대기석에 입장했다.
C조인 8백 번대 참가자들이 심사받고 있는 걸 보니 용철이 형의 걱정대로 내일 아침까지 심사를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성싶었다.
1차 예선 방식은 간단했다. 심사를 맡은 프로듀서 앞에서 준비해 온 무반주 랩을 선보이면 됐다.
숨을 돌리며 의자에 기대어 심사가 한창 이루어지는 현장을 구경했다. 여러 줄로 서 있으면 프로듀서들이 담당 구역을 돌아다니며 랩을 듣고 합격과 탈락을 결정짓는다.
물론 프로듀서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참가자 수가 하도 많아서인지 보통은 한 명당 평균 10초 내외로 끊는 편이었다.
한 조에 300명이 모여 있었지만 그중 합격 목걸이를 받는 이는 극소수였다.
“씨이발! 비트도 안 주면서 겨우 5초 듣고 염병이네! 아, 다시 해 보겠다고!”
인터뷰 파자마도 그렇고, 저렇게 훌륭한 어그로라니. 내 통편집은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방송에는 저런 사람을 담아서 내보내야지. 암암, 그렇고말고.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자마자 제 심사를 맡았던 몰틱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불같이 화를 내는 참가자의 모습을 보며 한결 마음을 놓았다.
PD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물론 그 참가자는 몰틱이 손을 뿌리친 직후,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에게 출구까지 질질 끌려갔다.
언더 시절 아는 사람들이 꽤 나온다는 말을 건너 건너 전해 들었기에 아는 얼굴이나 찾아보자는 심정으로 좌석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물론 1천 명이나 되는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지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한 사람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깍듯이 인사하는 이는 내 기억에도 어렴풋이 있는 얼굴이었다. 레브보다 1년 후배 아이돌 그룹의 메인래퍼였나?
그리고 저 후배님은 내게 ‘아, 랩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랩 그거 아닌데.’ 소리를 들은 전적이 있었다. 물론 면대면은 아니고 음방 대기실의 모니터 너머로 말이다.
어쨌든 나랑 같은 아이돌 래퍼라는 소리다. 상의에 붙이고 있는 번호표를 힐긋 보니 1375번이었다. 그럼 나보다 바로 직전 조인 E조군.
같은 아이돌 래퍼지만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완벽한 힙합 룩의 정석이었다. 목에 걸린 두툼한 체인과 삐딱하게 뒤로 돌려쓴 스냅백은 넘쳐나는 힙합 스피릿에 가산점을 더해 주었다.
만약 나의 의상을 보고 비웃음의 기미를 조금이라도 보이면 정색할 준비를 완료했지만, 바짝 긴장한 얼굴에는 비웃음이라곤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편하게 있으라고 손짓하자 어색하게 옆에 앉더니 내가 손가락으로 돌리고 있던 베레모를 힐긋거린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선배님. 머리가 지금 살짝 눌리신 거 같아서, 아무래도 베레모를 쓰시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아, 진짜요?”
쳇, 베레모라도 벗고 가려고 했건만. 혀를 차며 벗었던 베레모를 다시 머리 위에 얹었다.
“선배님도 나오셨구나. 이번에 아이돌 래퍼들도 제법 참가한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혹시 선배님도 나오실까 했는데 이렇게 여기에서 뵙게 되다니.”
약간 긴장이 풀린 듯 옆에서 끊임없이 종알거리는 후배의 옆에서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간간이 대꾸해 주었다.
“선배님은 이번에 1차 예선 가사 잘 준비하셨어요? 저는 저희 그룹 멤버들이 다 같이 달라붙어서 어찌어찌 15초짜리로 완성했네요.”
“저는 그냥 프리스타일로 하려고 따로 준비는 안 해 왔습니다.”
지나치게 반짝이는 눈빛이 좀 부담스러웠다. 어느새 1200번대까지 심사가 마무리되고, 후배가 속한 조를 부르는 외침에 그가 벌떡 일어났다.
“그럼 저는 합격하고 오겠습니다! 선배님께서도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예에, 잘하고 와요.”
마지막까지 깍듯한 인사에 손을 흔들어 응원 겸 작별 인사를 보내 주었다.
자신만만하게 나갔던 것이 무색하게도 가사를 절어 3초 만에 탈락하고 합격 목걸이를 받지 못한 채 터덜터덜 걸어 나가는 후배를 향해 속으로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드디어 내가 속한 조인 F조의 차례가 다가왔다.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좌석에서 벗어나 체육관에 줄 서서 입장하자 수많은 카메라가 앞에 보였다.
F조에서의 참가자 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나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다들 힙하게, 혹은 평범하게 차려입고 왔는데 나만 누가 봐도 ‘나 아이돌이요!’를 외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바로 직전 조에 힙합스럽게 차려입고 온 아이돌 후배님까지 있던 터라 내가 봐도 내 분량의 통편집은 물 건너간 것 같았다.
“왼쪽 팔뚝 문신 노출 안 되게 청재킷 잘 여며 주세요. 아니면 커버 스티커 드릴까요?”
마이크를 내게 건네며 내 왼쪽 어깨에 박힌 진달래 타투에 시선을 둔 스태프가 당부했다. 머쓱하게 고개를 저으며 어깨까지 흘러내린 옷을 다시 단정하게 끌어올렸다.
배부된 마이크를 착용하고 잠시 대기 타임을 가지고 있는데 내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슬랜더대전 때 내 팬이 됐다며 수줍게 사진 촬영 요청을 건넸다.
그를 기점으로 디스곡 겸 솔로곡인 <빌런(villain)>이나 슬랜더대전 때의 일, 를 언급하며 줄줄이 이어지는 사진 촬영 요청에, 함께 셀카를 찍어 주며 짧은 대기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보냈다.
아이돌 래퍼라고 개무시당하거나 견제당하는 것보단 이게 낫지. 물론 수가 100명 내외로 줄어드는 2차 예선부터는 이런 선망과 호의를 기대하기 어려울 터였다.
내가 있는 구역의 심사를 맡게 된 BQ9은 존나게 칼같았다.
랩 3초 듣고 끊더니 “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 참가자를 냉정하게 스쳐 지나가는 모습은 대기하고 있던 참가자들에게 더한 공포를 안겨 주었다.
저 멀리서 다른 이를 심사하고 있는 용철이 형의 모습이 보였다. 용철이 형, 내가 지인 찬스네, 특혜네 이런 말은 나오지도 않을 수준으로 잘해 볼 테니까 형이 나 좀 심사하면 안 될까?
내가 마음속으로 간절히 용철이 형을 불러댔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BQ9은 평균 3.5초 심사를 마쳐 가며 점점 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 바로 왼쪽에 서 있는 사람에게 수고하셨다는 짧은 탈락 멘트를 내뱉은 BQ9이 드디어 내 앞에 섰다. 누가 봐도 힙합은 아닌 내 복장을 훑은 BQ9이 내게 물었다.
“본인이 아이돌이라는 게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입고 온 건가요?”
비꼬는 건지 순수하게 궁금증으로 묻는 건지 그냥 들어서는 알 수 없는 BQ9의 담담한 물음에 너무 날카롭게 들리지 않도록 여유롭게 맞받아쳤다.
“메리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디메리트도 아니죠.”
비록 반강제이긴 했지만 내가 아이돌스럽게 입고 오든 힙합 감성 쩔게 입고 오든 내 랩 실력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데 옷차림이 무슨 상관인지?
막말로 DTB에 아이돌 가산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쪽도 싸우자고 꺼낸 말은 아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랩 한번 볼게요.”
떨어진 시작 신호에 거침없이 제스쳐와 함께 프리스타일 랩을 시작했다. 어느새 몰려든 사람들도, 관중석에서 나를 향한 시선들도 내게 부담이 될 순 없었다.
프리스타일로 벌스를 뱉은 지 10초가 지났을까, 자기가 끊기 전에 적당히 랩을 마무리한 나를 속내를 읽어 내기 힘든 얼굴로 빤히 보던 BQ9이 내게 합격 목걸이를 건네는 대신 입을 열었다.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가 저 입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아 긴장으로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앞으로 언더 출신 래퍼 ED로 임하실 건지, 아니면 아이돌 래퍼 윤이든으로 임하실 건지 궁금하네요.”
대답을 요구하듯 빤히 나를 보는 눈길에 당황하여 마른침을 삼켰다.
뭐야, 이거. 설마 대답 여하에 따라 내 손에 쥐어질 합격 목걸이의 유무가 갈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