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5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50화(25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50화
레브 제555회 회의가 개최되었다.
주제는 ‘2차 예선을 어떤 콘셉트로 가야 하는가.’
분명 내 개인서바였건만 멤버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마치 레브가 다 함께 단체 서바에 나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제일 먼저 적극적으로 손을 번쩍 들어 올린 김도빈이 강력하게 제 의견을 피력했다.
“1차를 청량으로 갔으니 이번에는 섹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각, 기각!”
나도 목에 핏대 세워 기각을 외쳤다.
관중들이 있는 본선이라면 몰라, 나는 심사하는 용철이 형의 앞에서 나의 섹시한 모습을 딱히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물론 용철이 형도 내 섹시 컨셉을 딱히 보고 싶어 하지 않으리란 건 자명했다.
“이의 있습니다.”
류재희가 쓸데없이 진지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섹시는 아직 보여 주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섹시는 비장의 한 수로 두고 이번에는 큐티로 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요?”
“지금부터 토론해 봐야죠. 어떤 큐티룩이 이든이 형한테 어울리는가.”
류재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예현이 곧바로 손을 들어 올렸다.
“반바지 마린룩은?”
내게 합격 목걸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팩폭을 듣고 잔뜩 약이 올랐는지, 서예현의 제안은 어떻게든 내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추천하리라는 의지가 돋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적정선은 있어야죠. 패션 때문에 너무 보기 싫다고 프로듀서들이 FAIL 눌러서 이든이 형이 탈락하면 어떡해요.”
류재희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기분이 더러워야 하는지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성질낼 타이밍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맞아여, 솔직히 반바지 마린룩을 이든이 형이 입는 건 눈갱…….”
하하, 도빈아. 내가 요즘 너한테 너무 다정하게 잘 대해 줬지?
드디어 타이밍을 잡고 가볍게 팔로 김도빈의 목을 끌어안아 목 마시지를 선사해 주자 김도빈이 다급하게 바닥을 두드려 탭을 쳤다.
팔을 풀어 주자마자 목을 문지르며 김도빈이 대안을 제시했다.
“동물 잠옷을 입고 가는 건요? 팬분들이 부르는 형의 가장 이해 안 가는 별명 top1을 차지하는 깜장고양이 잠옷을 입고 가는 거예요.”
“그건 이제 아이돌을 벗어난 돌아이고. 누가 서바에 잠옷 입고…….”
1차 예선에서 봤던 파자마남을 떠올리고 말끝을 흐렸다. 있긴 있구나. 그래도 그 사람은 동물 잠옷은 아니었어.
“너무 과해지면 관심받고 싶어 발악하는 것 같이 보여서 가오 상하니까 적당한 선에서 하자. DTB 보는 팬분들께 팬서비스 될 수준까지만.”
소파 등받이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며 요구사항을 던졌다. 너무 과해도 비호감 이미지가 될라.
“꼭 의상으로만 아이돌다움을 표현할 필요는 없지 않아?”
온갖 의견이 쏟아져 나올 동안 조용히 듣고만 있던 견하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일단 김도빈이나 서예현이 내는 의견보다는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다.
견하준은 항상 답을 찾아 줬으니 이번에도 옳은 길로 나를 인도해 줄 것이다.
“예를 들면 머리를 연분홍색으로 염색한다던가.”
“아, 때처럼?”
“응, 그때보다 살짝 더 연하게. 그러면 큐티 컨셉하고도 얼추 맞지 않겠어?”
듣고 보니 맞는 소리였다. 꼭 의상이 아니더라도 현란한 머리색으로도 내가 아이돌임을 증명하면 되는 거 아닌가.
김도빈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핑크이든 형은 큐티라기보다는…… 핑크 염색약 잘못 뒤집어쓴 빌런…….”
그래, 누구누구 말마따나 바비월드에 잘못 떨어진 빌런보다는 낫다.
* * *
2차 예선은 3초 듣고도 탈락과 합격을 갈랐던 1차 예선과 달리 60초간 랩을 듣고 심사를 해야 하는 만큼 이틀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나는 둘째 날에 당첨되었다. SNS 등의 경로를 통해 결과 스포일러를 할 경우 불합격 처리는 물론이요, 법적 조치까지 취하겠다는 경고문과 함께 시간과 날짜가 담긴 문자가 도착했다.
“내일이면 물 여기서 더 빠지겠지? 그러겠지?”
아직은 연분홍색이라 하기에는 살짝 짙은 색으로 물든 머리를 슬쩍 당기며 중얼거리자 서예현이 미약한 걱정을 담고 내게 질문했다.
“아무리 2차 예선이라지만 그렇게 랩은 준비 안 하고 옷만 신경 써도 돼?”
“형, 키질 알지? 왜, 있잖아. 겨랑 낱알 분리하려고 키에 올려놓고 탈탈 터는 거. 1차랑 2차 예선이 딱 그거야.”
휴대폰 메모장에 대충 끄적여 놓은 가사 펀치라인을 다듬으며 알기 쉬운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2차 예선까지는 랩 실력도 실력이지만 방송 각이 나올 만한 쓸만한 놈들 고르는 거라고. 내가 가사를 절지 않는 이상은 절대 안 떨어질걸?”
뭐, 가사를 잠깐 절어도 올려는 줄 거다. 대신 2차 예선에서 좀 잘했지만 떨어진 놈을 줄기차게 언급해 대면서 아이돌에 방송국 픽이라 내가 붙고 아무 빽없는 그놈이 떨어졌다며 욕을 존나게 처먹겠지.
나도 그놈과 똑같이 빽 따위는 없음에도…….
지원이 형이나 용철이 형이 지인 찬스라고 내게만 유하게 심사를 해 줄 인간상도 아니고 말이다. 더 엄격하게 심사를 한다면 몰라.
머리를 한 번 더 감자 만족스러운 머리색이 나온 2차 예선 당일.
내가 선택한 이번 2차 예선의 콘셉트는 바로 반전매력이었다.
용철이 형의 앞에서 눈깔에 힘 풀고 나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 어려워도 순하게 웃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나를 보며 경악하거나 질색할 용철이 형의 얼굴을 상상하니 즐겁기까지 했다.
니트 조끼는 5월에 입기는 덥긴 했지만 얌전한 룩의 완성을 위해서는 필수였다. 니트 덕에 합격 목걸이의 절그럭거림도 덜했다.
폼이 큰 와이셔츠 소매를 두어 번 접어 고정시키고 이번 2차 예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챙겼다.
“오케이, 준비 끝.”
메이크업을 받은 후 안경알이 없는 둥근 은테 안경을 얼굴에 척 걸쳤다.
[나 좀 모범생 같지 않냐?] 오전 8:10 [서예현- 너는 대체 모범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오전 8:11 [김도빈- 범생이 안경 빼앗아 쓴 양아치 같아요] 오전 8:12 [류재희- 렌즈를 좀 두꺼운 걸로 써서 눈이 흐릿하게 보여야지 인상이 좀 죽지 않을까요] 오전 8:13 [견하준- 전혀] 오전 8:14단체 채팅방에 안경을 쓰고 찍은 셀카를 보내자마자 줄줄이 도착한 답장을 훑으며 혀를 찼다. 준아, 너무 냉정한 거 아니냐.
방송국 차가 출연자들을 나누어서 촬영이 이루어지는 스튜디오까지 싣고 갔다.
이름이 써진 스티커를 받아 상의에 붙이고 무대 뒤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대기실 앞에는 모니터가 있어 무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혹여 아는 사람이 있나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바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내 인사에 잠시 눈을 깜빡이며 지그시 나를 보던 남자는 한 박자 늦게 내 정체를 알아차렸는지 소리 없는 탄성을 내뱉더니 인사를 받아 주었다.
“아, 안녕하세요.”
레볼루션의 메인래퍼, BT였다. 본명이 아마 이태범이었나. 아이돌 래퍼들을 1차에서 다 떨어뜨리지 않으리란 건 예상했던 바이기에 오늘의 만남이 딱히 놀랍진 않았다.
“준혁 선배님은 잘 계세요?”
나와 ‘On Top’으로 활동을 함께 했던 레볼루션 리더의 안부를 묻자 그가 비니를 고쳐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혁이 형이야 잘 있죠. 그러고 보니 전에 준혁이 형이랑 연말 스페셜 무대 같이하셨죠? 안부 전해 드릴게요.”
합격 목걸이와 함께 목에 걸린 몇 겹의 금사슬 목걸이가 절그럭거렸다. 옷차림만 보면 이 중 제일 래퍼다웠다.
나랑 콘셉트가 겹치지 않는 것에 안도하며 다시 아는 사람을 찾아 주변을 훑다가 내 머리 위에 드리운 그림자에 시선을 위로 옮겼다.
“이야, 이게 누구야?”
기다렸다는 듯이 비꼼 섞인 인사가 쏟아졌다.
“오랜만이다?”
대체 누군데 나한테 아는 척을 하나 싶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누구세요?”
이를 깍 깨문 놈이 어지간히 분해 보여 슬쩍 놈의 이름표로 시선을 내렸다.
‘G-TE’
진짜 누군데.
“이 과거형 새끼가…… 너 일부러 나 엿 먹으라고 그러지?”
멀뚱멀뚱한 시선으로 눈을 깜빡이자 옷에 부착된 마이크를 손으로 가리고 놈이 스산하게 읊조렸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언더 시절 인연들은 많았지만, 그중 나를 과거형이라고 부르는 놈은 딱 한 명뿐이었다.
동갑내기.
그리고 랩 더럽게 못 하던 놈.
랩 왜 하냐는 내 순수한 궁금증으로부터 파생된 질문 한 번 들은 이래로 나만 보면 이를 갈아대며 시비를 털어대던 놈.
“엥, 형진이냐? 랩네임 개명했네? 내가 기억하기론 이전에는 언시크였던가?”
“언샤크거든!”
“그거나 그거나. 아무튼 랩네임 달라져서 못 알아볼 뻔했다.”
세월을 너무 그대로 받아 못 알아볼 뻔했다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러는 너는 못 본 새에 아이돌 다 됐네.”
내 꼴을 위아래로 훑으며 최형진이 빈정거렸다. 여전한 모습이 참으로 반가웠다. 이 녀석을 이용하면 방송 각이 잘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원래 사이 나쁜 놈들의 갈등 서사는 유구하게 먹히는 소재 아닌가. 라이벌 구도라고 하기에는 우리 형진이 실력이 영…….
“왜, 네가 추천해 줬잖아. 아이돌 하라고.”
물론 저놈 입장에서는 추천이 아니라 빈정거림이었겠지만.
“고맙다, 네가 진로 추천해 준 덕분에 장래희망 고민 없이 자알 정해서 꿈도 이뤘거든.”
그리고 너도 나한테 고마워해라. 원래라면 쨉도 안 되는 놈 방송 각을 이렇게 친히 만들어 주잖냐.
내가 긁히지 않고 오히려 저를 긁은 것이 어지간히 분했는지 다시 일그러진 놈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켜 내 어깨보다 낮게 있는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런데 형진아, 지테보다는 언샤크가 낫다.”
그 마지막 말에 제대로 긁혔는지 놈이 내 어깨를 힘껏 치고 나와 제일 멀리 떨어진 의자에 앉았다. 물론 비틀거린 쪽도 저쪽이었다.
앞선 대여섯 명의 무대를 보며 적당히 리액션을 하고 있자 곧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BT와 최형진의 무대도 보고 싶었기에 조금 아쉬웠지만, 빨리 끝내고 다시 숙소로 가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덜레덜레 들고 박수를 받으며 백스테이지에서 무대로 나갔다.
높은 무대 아래에는 프로듀서들이 앉아 있었다. 각자 앉아 있는 테이블 앞에는 FAIL과 PASS가 뜨는 화면이 있었다.
내 꼴을 본 용철이 형이 입을 떡 벌렸다. 그런 용철이 형을 향해 상큼하게 윙크를 날려 주었다. 하긴, 용철이 형도 이렇게 얌전한 내 모범생 복장을 본 일이 없었겠구나.
60초를 세는 타이머가 뜨는 스크린을 등지고 서자 프로듀서 중 하나인 몰틱이 마이크를 잡고 내게 말했다.
“준비됐어요?”
“아, 잠시만요. 마음의 준비 좀 하고요.”
뒤돌아서 챙겨온 토끼 모자를 머리 위에 뒤집어썼다.
오케이, 마음의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