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5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52화(25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52화
“야, 이게 바로 진정한 독기룩 아니냐?”
“형, 이쯤 되면 이제 즐기고 계시는 거 아니에요?”
“야, 막내야. 내가 이걸 정말로 즐거워서 입겠냐? 다 팬 서비스의 개념으로, 내가 입기 싫어도 억지로, 어?”
“입기 싫었다기에는 의견을 참 적극적으로 내시던데.”
“팬 서비스라니까. 짜식이 사람 말을 안 믿네.”
가늘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는 류재희의 머리를 거칠게 헤집으며 투덜거렸다.
뭐, 오늘은 또 어떤 패션으로 용철이 형 및 나머지 프로듀서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해 줄지 고민하는 게 재미있긴 했다.
내가 2차 예선에 올라간 후로는 잡음을 만들면 안 된다고 용철이 형이 잠시 연락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서프라이즈를 해 주는 수밖에.
가슴골이 슬쩍 비칠 정도로 목 부분이 좀 많이 느슨한 오픈카라 셔츠에 슬랙스가 오늘의 패션이었다.
반 깐 머리와 블링블링 볼드한 귀걸이가 오늘의 포인트고.
“재희야, 어떠냐? 시선 좀 끄냐? 내가 오늘을 위해서 헬스장에서 상체만 엄청 조졌잖아.”
“거봐요. 즐기고 계신 거 맞네.”
셔츠를 펄럭이며 묻자 류재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형은 긴장도 안 돼요? 3차 예선부터는 다른 래퍼들이랑 맞붙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쟁 시작이잖아요.”
“나는 내 실력을 믿지 않아.”
내 대꾸에 류재희가 의외라는 표정도 아니고 신박한 개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저 녀석 머릿속의 나는 어떤 이미지인 걸까.
류재희가 나를 어떤 인간상으로 생각하는 건지는 대충 알겠는 터라 녀석의 오해를 정정해 줄 겸 덧붙였다.
“내 노력의 크기를 믿지.”
내 랩 실력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뼈를 깎는 노력과 오기로 이룬 실력이었으니까.
아이돌 래퍼 중에서나 잘하지 언·오버 래퍼들 중에선 그저 그런 놈이었던 내가, 웬만한 오버그라운드 톱 래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실력이라 평가받기까지 얼마나 악에 받쳐 살았던가.
물론 그 오기에는 이간질에 홀랑 넘어가 형들을 손절했던 내 과실도 한 50% 정도는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나는 내가 질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씩 웃으며 말을 마무리하자 류재희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형이 노력파였다니…… 형은 천재인 줄 알았는데. 아무튼, 잘하고 와요. 다음 의상도 고민할 수 있게.”
“야, 별걱정을 다 한다. 아무튼 다녀온다.”
샵까지 따라온 류재희에게 인사를 건네고 3차 예선 촬영이 이루어지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3차 예선전까지 올라온 합격자는 총 54명.
스크린의 한 페이지에 모두 담긴 이름을 보자 7천 명에서 1, 2차 예선을 거치며 확 줄어 버린 출연자 수가 실감 났다.
“지금 보시는 순위는 여러분들의 2차 예선 평가 순위입니다.”
MC의 말에 사방에서 원성과 탄성이 쏟아졌다.
1위부터 54위까지 랩네임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가장 위, 1위에 적혀 있는 내 이름을 보며 손깍지를 끼고 턱을 까딱였다.
세상에, 형진이도 붙었군. 22위에 올라와 있는 ‘G─TE’라는 랩네임을 발견하고 자그맣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존나 잔인하네. 고등학교 성적 순위도 이렇게 받아 본 적 없는데.”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래퍼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꿍얼거렸다. 상의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슬쩍 보고 다시 스크린을 보자 47위에 랭크되어 있는 그의 랩네임이 보였다.
1차 예선에서 만난 아이돌 후배 말로는 우리 말고도 아이돌 래퍼가 제법 있다더니 3차 예선까지 올라온 아이돌 래퍼는 나랑 레볼루션의 BT, 이렇게 단둘뿐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하위권 래퍼들부터 지목 우선권 및 차례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지목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상위권 래퍼들은 물론이요, 지목 우선권을 손에 쥔 하위권 래퍼들의 표정도 딱히 좋진 않았다.
그냥 지켜보는 사람들만 즐거운 룰이었다.
“54위, 유피. 1대1 대결 상대를 지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일 먼저 지목 우선권을 받고 마이크를 건네받은 유피가 순위표를 훑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의자에 앉아 있는 모두의 시선이 유피한테로 쏠렸다.
“1위, 윤이든 지목하겠습니다.”
유피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에,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내심 유피가 가장 주목받았던 예선에서 그와 붙어 보고 싶었던 마음 반, 나를 지목하기를 피했으면 하는 마음이 반이었던 터라 막상 지목받자 시원섭섭했다.
“좋습니다. 두 분, 바로 스테이지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머지 래퍼들의 흥미 섞인 시선을 등지고 1대1 매치가 이루어지는 스테이지로 향했다.
“오, 뭐야? 1등이랑 54등? 매치가 왜 이래?”
“이걸 도박이라고 할 수가 있나?”
“의외로 괜찮은 전략일 수도 있어, 여기서 잘하면 한순간에 역전되는 거니까.”
“주목받기는 일단 충분하겠네요. 유피가 머리를 잘 썼네.”
먼저 전달받았는지 소파에 팀별로 두 명씩 앉아 있던 프로듀서들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든 씨.”
무대 위에 유피와 함께 나란히 서자마자 용철이 형이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시작하기 전에 옷 좀 여밀 생각 없어요? 보는 우리가 좀 부담스럽다.”
“어쩐지 좀 시선을 피하게 되는 패션이네요.”
지원 형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도 우리 프로듀서 분들이 부담스러우시다면 그러고 싶은데 이 옷이 단추가 이게 끝이라…….”
머쓱하게 웃으며 카라 부분을 잡고 펄럭였다.
“오늘은 섹시 컨셉인가?”
원백의 물음에 하하 웃으며 정정해 주었다.
“섹시라기보다는 독기죠.”
제가 형님들에게 섹시한 제 모습을 어필해야 하는 이유가 없잖습니까.
“유피, 왜 이든을 고른 거예요? 이든 무대 혹시 안 봤어요?”
프로듀서 중 하나인 공출의 물음에 유피가 고개를 짧게 저었다.
“봤습니다. 제가 2차 예선 때 같은 날, 뒤 순서였거든요.”
잠시 말을 멈춘 그가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려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어서 골랐습니다.”
대놓고 거는 도발에 나 역시 피식 웃으며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갔다.
“어쩌죠. 저도 질 자신이 없는데.”
잠시간 나와 유피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오우, 벌써부터 살벌해.”
그런 우리를 보며 원백이 팔을 문지르는 시늉을 했다.
“그럼 유피한테 차례 선택권이 있네요. 유피, 선공인가요, 후공인가요.”
“저는 후공을 택하도록 하겠습니다.”
후공은 아무래도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선공에서 압도하면 임팩트가 사라지는 단점도 존재했다.
다만 유피의 원래 실력을 알다 보니 유피가 어떤 이유로 후공을 선택했는지 대략 감은 잡혔다.
그렇다면 이쪽은 반전의 임팩트가 죽을 수 있게 압도적으로 상대를 해 드려야지.
몰틱이 던진 시작 신호와 함께 비트가 울렸다. 낯선 비트였지만 비트를 압도하는 건 내 특기였다.
내 순서가 끝나고 그루브를 타던 유피가 마이크를 들었다. 벌스 여덟 마디에 다다르자 프로듀서들의 얼굴에 충격과 흥미가 스쳐 갔다.
나한테는 이 실력이 익숙했다만 2차 예선을 심사한 저들은 유피의 본 실력을 처음 보는 것일 테니까.
비트가 멈추자마자 프로듀서들이 감탄사를 쏟아 냈다.
“뭐야? 유피 뭐야? 2차 예선 때랑 완전 다른데?”
“아,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대박이네.”
역시 내 예상대로 유피의 반전 실력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회귀 전의 3차 예선과는 달리 프로듀서들의 관심이 오직 유피한테로만 집중되지는 않았다.
선공으로 임팩트를 강하게 박아 놓은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걸 어떻게 하나만 정해. 미치겠다, 진짜.”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PD가 감동의 박수를 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뒷짐을 지고 서서 숨을 후 내뱉었다. 아무리 나라도 이런 구도로 가면 결과가 좀 긴장되긴 했다.
“동점입니다.”
여기에서 동점이 나온다고?
동점이 나올 거라곤 예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떡 벌어지려는 입을 겨우 다물었다. 그럼 2차 매치는 아예 생 프리스타일로 가야 한다는 소린데.
유피 역시 이런 결과가 나올지는 몰랐던 듯 입술을 꾹 깨문 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뭐야, 동점이면 재심사 가야 해?”
“그런데 진짜로 너무 선택하기 힘들어. DTB에는 슈퍼패스 없어요?”
“난 오히려 좋아. 무대 또 볼 수 있어서.”
“그럼 이번에는 순서만 바꾸죠.”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유피의 선공, 내 후공이었다. 바로 재개하는 건 아니고 잠시 숨 돌릴 휴식 시간을 짧게 가진 후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슬레이트를 짝, 치자마자 마이크를 잡은 몰틱이 외쳤다.
“DJ, drop the beat! Keep it real!”
익숙한 비트가 울렸다.
내가 지원이 형의 비트 찍기를 도우며 그냥 형이 마무리해서 형 이름으로 올리라고 했던, 내가 찍은 그 비트가.
유피의 선공이 끝나자마자 박자를 쪼개어 들어가며 여유롭게 웃었다.
본인이 찍은 비트에 박자 못 맞추는 놈이 어디 있어?
결과 다 나왔네.
* * *
2차 매치까지 마치고, 다시 팀 파트너와 함께 결과를 의논하는 프로듀서들의 선택을 겸허한 자세로 기다렸다.
“이번 1대 1 매치, 윤이든 대 유피의 결과는……!”
긴장한 것처럼 보이도록 입을 꾹 다문 채 앞을 바라보았다.
“축하드립니다, 유피. 합격입니다.”
AJA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눈을 깜빡였다.
엥? 내가 졌다고?
내가?
제일 기대를 받지 않은 최하위권이었던 유피가 가장 슈퍼 루키였던 최상위권인 나를 지목하고 반전 실력을 보여 주며 시즌 4의 회귀 전 우승자답게 훌륭한 무대를 보여 줬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압도한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평가에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내가 질 매치가 아니었단 소리다.
당장이라도 이의 제기를 하고 싶었지만 덥넷이라면 그런 나를 심사 결과도 못 받아들이는 놈으로 충분히 편집할 수 있었기에 꾹 참았다.
“사실 두 분 다 굉장히 두 번째 매치에서도 잘해 주셨기에 정말 고르기가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좀 더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 줬던 게 유피 씨가 아니었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고요.”
시바, 나도 강렬하게 크롭티라도 입고 왔어야 했나.
“둘 다 평가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잘해 줘서, 어떤 결과든 아쉬움이 참 많이 남네요.”
마이크를 든 BQ9이 덤덤하게 말했다.
“아, 여기서 떨어질 래퍼가 아닌데. 아, 매치가 이게…… 참…….”
몰틱은 어지간히 아쉬운지 나를 보며 연신 말끝을 흐려댔다.
그래도 좋은 경쟁이었다는 의미로 유피와 끌어안고 가볍게 어깨를 부딪혔다.
하지만 속은 말이 아니었다. 이게 설마 그 강제력인가, 그거냐?
스테이지를 내려오자 제작진의 탈락자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본인의 탈락 사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음, 악편 되기 딱 좋은 질문이군. 볼을 긁적이며 대꾸했다.
“가슴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