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5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53화(25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53화
“네?”
당황한 듯한 되물음에 얼굴에 미소도 띠지 않고 진지하게 자세히 풀어 말했다.
“제 가슴골이 프로듀서 분들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린 게 아마 패배의 원인이 아닐까 싶네요.”
원하거나 예상했던 답변은 아니었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제작진을 보며 생각했다.
왜, 뭐. 내가 그렇다고 ‘저도 모르겠는데요?’ 이렇게 대답해서 댁들에게 악편 소스를 제공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딱 보니까 ‘언더독의 반란!’ 이 지랄로 프레임을 뽑아 유피를 올리고 패자부활전으로 나를 떠밀어서 방송 각 좀 뽑고 싶으신 모양인데, 이 짜여진 판에 대고 내 실력이 모자라서 패배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방송을 탔을 때 오늘의 1대1 매치는 99.9% 논란이 될 테고, 내가 이곳에서 겸손 떤답시고 내 실력의 부족함을 언급하면 ‘윤이든 본인도 자기 실력이 모자라서 졌다는 걸 인정했는데 왜 제삼자들이 난리냐!’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었으므로.
이건 류재희의 언급이 없이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사안이었다.
“현재 심정은 어떠신지?”
“결과는 결과니까 받아들여야죠.”
다음 질문 역시 실력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고 무사히 답변을 마쳤다.
“패자부활전 일정은 따로 안내가 갈 거예요.”
인터뷰를 끝맺고 덧붙인 말에 속으로 허허 웃었다.
거봐, 이럴 줄 알았다니까. 유피한테 패자부활전으로 올라오라고 했는데, 막상 내가 패자부활전으로 기어 올라와야 할 처지가 될 줄이야.
숙소로 돌아오니 다들 레슨이나 개인 스케줄을 갔는지 텅 비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처량한 결과를 받아온 오늘, 텅 빈 숙소에 홀로 외롭게 있기도 싫어서 저녁 시간 전까지 작업실에서 시간이나 때우기 위해 몸을 돌렸다.
평소였으면 비트나 랩 가사 정도나 떠올랐을 터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DAW를 켜자 악상이 좀 떠올랐다.
오랜만에 무기력에서 벗어나, 납득 불가능한 결과에 대한 분노가 창작의 원동력이 된 모양이었다.
퀄리티가 좋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음악 재활 치료 겸으로 내 모든 분노를 쏟아부어 그럭저럭 완성된 2분 4초짜리 곡을 들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좋아, 부제는 <니들이 뭔데 나를 평가해> 정도로 붙여 볼까.
오랜만에 떠오른 악상 덕분에 마이너스였던 기분이 0이 되었다.
[류재희- 숙소 도착!] 오후 5:32 [류재희- 왜 아무도 없음요?] 오후 5:33 [견하준- 곧 가] 오후 5:36숙소에 도착했다는 막내의 메시지에 곡을 저장해 놓고 몸을 일으켰다.
항상 그랬듯이 내가 수저를 들고 나서야 시작된 식사 시간.
“왜 아무도 오늘 3차 예선 결과를 안 물어봐?”
아무도 결과를 궁금해하지 않아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연히 합격 아니야?”
견하준이 궁금증 한 점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탈락.”
내가 대답을 끝마치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김도빈이 눈을 크게 뜨며 잡고 있던 젓가락을 허공에 휘휘 돌렸다.
“미친 거 아니에요? 형을 겨우 3차 예선에서 떨어뜨려요? 결승까지는 당연히 가야죠! 심사위원들 다들 눈, 아니, 귀 삔 거 아니에요?”
옳지, 더해라, 더해! 잘한다, 도빈아! 이 형이 가오가 상해서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들을 대신 술술 해 주는구나!
“와, 7천 명이나 몰렸다는 뉴스 보고 예상하긴 했는데 역시 빡세긴 하다. 윤이든이 겨우 3차 예선에서 떨어졌다니.”
“내가 떨어질 매치가 아니었다고.”
내가 수저를 세차게 놓고 씩씩거리자, 견하준이 담담한 목소리로 나를 진정시켰다.
“그럼 뻔하지. 시청률 때문에 무리수 둔 거네. 패자부활전 있지? 그리고 도빈아, 밥 먹던 젓가락 그렇게 휘두르는 거 아니다.”
견하준에게 한 소리를 들은 김도빈은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외치며 열성적으로 휘두르던 젓가락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패자부활전이야 있지.”
“그러면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어요. 일단 형이 PD픽이라는 소리는 안 나올 거 아니에요.”
내 대답에 류재희가 한결 안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글쎄다, 막내야. 이 형은 이미 패배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터라 잘된 일인지는 모르겠구나.
“그리고 형이 잘했으면 무조건 본방 때 논쟁 나요. 그러면 방송이 주도하는 억까와 내려치기 프레임으로 형은 확실한 코어를 얻는 거고요. 형도 알다시피 본선 무대부터는 파이트 머니잖아요. 코어가 탄탄하게 있는 것만큼 든든한 게 없죠.”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열 받는 건 열 받는 거였다. 어쩐지 1차 매치 끝나고 휴식 시간에 제작진이 프로듀서들한테 가더라.
식사를 마친 후, 굳이 소파를 두고 거실 바닥에 앉아 TV를 보는 서예현을 툭툭 쳤다.
“덥넷한테 엿도 먹이면서 패자부활전에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막내한테 물어봐.”
“형 머리 좋잖아.”
내 머리로는 ‘1차 예선부터 대본 있었음’이라는 플래카드 들고 나갔다가 통편집당하는 생각밖에 못 쥐어 짜내겠다.
“그리고 재희한테 물어봤자 울 막내는 200%의 확률로 내게 문제 일으키지 말라고 할 거라니까.”
류재희도 은근 보수적이야, 아직 어린놈이.
몸을 돌려 내가 들고 있던 리모컨을 덥석 쥐며 서예현이 무심하게 말했다.
“덥넷 엿 먹이려면 패자부활전에 나가지 마. 그게 제일 큰 엿 아니야?”
“그건 좀. 겨우 3차 예선에서 탈락한 놈이 되긴 싫거든.”
나 역시 리모컨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꾹 주며 대꾸했다. 약이 오른 거,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우승을 꼭 차지해야겠다.
잠시간 리모컨 쟁탈을 둘러싼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물론 승자는 당연히 나였다.
내 오른팔의 타투를 힐긋 본 서예현이 벌겋게 리모컨 자국이 남은 손바닥을 쥐었다가 펴며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방송 타고 나서 심의 신고당하라고 민소매 위에 겉옷 입었다가 벗어던지기. 방송 타기 전에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고 해도 일거리 하나 추가해 주는 거잖아?”
“오, 괜찮은데?”
내가 생각했던 업그레이드 독기룩만으로는 너무 뻔하고 심심했는데 잘됐다 싶었다.
그리고 타투도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었기에 슬슬 팬분들께 까야 했는데 이참에 까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수많은 타투의 향연 덕분에 내 타투들은 귀여운 정도이지 않을까?
“좋아, 덥넷에 엿 먹이기는 그걸로 됐고, 두 번째는?”
맡겨 놨느냐고 가볍게 투덜거린 서예현이 이건 어떠냐고 심드렁하게 아이디어 하나를 내뱉었다.
존나게 끝내주는 아이디어였다.
“와, 미쳤다! 이걸 어떻게 생각한 거야, 대체?”
서예현의 어깨를 덥석 부여잡고 묻자 서예현이 멋쩍게 뒷머리를 헤집으며 말끝을 흐렸다.
“내가 녹음실에서 너한테 꼽먹을 때마다 했던 상상…….”
어쩐지 사이다 감성이 팍팍 묻어나오더니만.
감동으로 입을 틀어막자 내가 비웃음을 참고 있다고 곡해라도 한 건지 서예현이 얼굴을 붉히며 묻지도 않은 변명을 해 댔다.
“그땐 음정 외우기도 벅찼다고!”
“그래, 알았어. 누가 지금 뭐라고 했어? 난 지금 감동을 표현하는 중이거든.”
“아, 발전한 내 모습이 감동이야?”
서예현이 대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감동 받은 포인트는 그쪽이 아니었다.
“아니, 과거의 나 자신이 이렇게 현재의 나한테 도움을 주는 게 감동이야.”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갈궈야지. 그 갈굼이 오늘처럼 미래에 도움이 될지 누가 알아. 서예현 본인도 내 갈굼이 그립다고 했고.
“감동받는 포인트 진짜 이상하네.”
서예현이 질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입에 담기도 싫은 패자부활전의 날이 당도했다.
패자부활전 매치를 기다리던 중, 대기실에서 레볼루션의 BT를 발견하고 입안이 바싹 말랐다.
설마 이 방송국 놈들이 아무리 극악무도하다고 해도 나를 설마 같은 아이돌 래퍼인 BT랑 패자부활전 매치를 붙이는 미친 짓을 하겠어?
“패자부활전 대진표를 발표하겠습니다.”
[윤이든 Vs 디셈브]다행히도 내 상대는 BT가 아닌 다른 래퍼였다. 2차 예선에서 5위를 차지한 래퍼.
BT 역시 내가 제 상대가 아니라는 것에 긴장이 풀렸는지 가볍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은 옷이 평범하시네요.”
“글쎄요, 하하.”
겉보기에는 그렇겠지. 목 끝까지 잠근 세 줄 스포츠 저지의 목 부분을 잡고 살짝 펄럭이며 멋쩍게 웃었다.
지목하는 단계가 없어서 그런가 패자부활전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게다가 스테이지 옆에서 앞선 매치의 무대와 결과를 볼 수가 있었다.
BT는 아쉽게도 패자부활전 매치에서도 지면서 탈락했다.
“아, 이쪽 둘도 선택하는 게 장난 아니었지.”
“또 이렇게 붙여 놓으면 어떡해!”
디셈브와 나란히 무대 위에 서자 프로듀서들의 한탄이 쏟아졌다.
“바로 들어갈게요. Let’s get it!”
낯선 비트가 울렸다.
디셈브의 선공이었다. 왜 프로듀서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고민한 상대라고 했는지 알 것 같은 실력이었다.
선공하는 상대방의 랩 박자에 맞추어 고개를 까딱거리며 그루브를 타다가 드디어 상대가 랩을 마무리하고 내 차례가 왔다.
시원하게 스포츠 져지 자크를 열어 벗어던지자 딱 붙는 블랙 터틀넥 민소매 크롭티가 드러났다. 물론 타투를 가리는 스티커는 붙이지 않은 상태였다.
이 블랙 터틀넥 민소매 크롭티로 말할 것 같으면 활동 당시 견하준의 무대의상이 될 뻔했으나 앞판 노출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견하준에 의해 무산되었다.
그걸 결국 여기에서 내가 이렇게 입게 되는군.
가슴골이 부담스러우셨다면 가슴은 조신하게 가리고 복근이나 보여드려야지, 뭐.
져지 밑에 숨어 있던 화끈한 독기룩 의상에 프로듀서들이 입을 틀어막거나 소파 위로 무너지며 웃어댔다.
가벼운 추임새로 첫 소절을 들어갈 타이밍을 노리며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A4용지를 꺼내어 펼쳤다.
그 상태로 랩을 시작하자 서서히 프로듀서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걷혔다. 종이를 보고 줄줄 랩을 읊으며 슬쩍 프로듀서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 대놓고 가사를 커닝하는 놈은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못 봤겠지.
이마를 짚는 이부터 아예 팔짱을 끼고 나를 보는 이들까지, 참으로 각양각색이었다.
슬슬 내 랩을 끊으려 하는 듯한 반응에, 들어 올리려는 몰틱의 손보다 한 박자 빠르게 반응했다.
[앞면으로만 비치는 flash 그걸로만 섣불리 판단하면 재미없지아닌 척해도 기대했잖아 최고의 반전 UP]
그 가사를 내뱉음과 동시에 픽 웃으며 내가 보고 읽던 A4 종이를 뒤집어 프로듀서들에게 보여 주었다.
실망과 정색으로 나를 보고 있던 프로듀서들의 얼굴이 가지각색으로 변했다.
종이는 양면 다 백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