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5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55화(25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55화
다행히 박자에 바로 들어가서 15초를 채울 수 있었다. 물론 비트 조까고 첫 소절부터 내뱉은 것도 있긴 하지만.
자칫했으면 1초 차이로 탈락할 뻔했군. 아무리 시간 계산을 하고 있었다지만 내 계획은 사실상 도박이나 다름없긴 했다.
하지만 굳이 시간제한을 걸어 놓은 덥넷의 의도대로 되지 못한 이 상황이 매애애우 마음에 들었다.
쌈박질도 안 나고 모두가 사이좋게 랩 하기에 성공했잖아?
싸이퍼 미션에서 탈락자는 총 네 명이었다. 사이퍼 도중 가사를 절은 래퍼 둘과 중간 순서를 차지했지만 15초 이상을 넘기지 못한 래퍼 둘.
그래서 총 스물여섯 명이 살아남았다.
“감사합니다.”
제작진이 슬레이트를 치자마자 고마웠다고 내 어깨를 툭툭 치고 간 떡상의 원인 1에 이어 내가 마이크를 양보한 상대가 내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사람 노려볼 때는 언제고, 마이크 양보해 줬다고 감사 인사까지 하는 걸 보아하니, 그래도 정신머리는 제대로 박힌 것은 같은데. 어쩌다가 10초대에 남의 마이크를 뺏어서 떡상의 원인 2가 되어 버리신 건지.
물론 마지막으로 내게 건네주지 않으면 힘으로 마이크를 뺏을 각오까지 하고 준거라 저 래퍼의 정신머리는 내게 딱히 고려 대상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이크 건네받자마자 바로 랩 해 주신 덕분에 딱 시간이 15초 남았더라고요.”
“계속 준비는 하고 있었거든요…….”
내가 씩 웃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젓자 뒷머리를 긁적이며 떡상의 원인 2가 웅얼거렸다.
그랬겠지. 가사가 준비됐으니까 마이크를 뺏으려고 했겠지.
나를 따갑게 노려보는 눈길에 휙 옆을 돌아보며 살갑게 칭찬을 건넸다.
“이야, 형진아. 랩 실력 많이 늘었다?”
오늘 최고의 반전은 바로 최형진의 랩 실력이었다.
최형진이 3차 예선까지 패자부활전도 거치지 않고 쭉 올라온 이유가 다 있었다. 내 기억 속과 사뭇 다른 최형진의 실력에 살짝 놀랐기도 했다.
“야, 너 때문에 마무리 못 할 뻔했잖아.”
하지만 성질머리는 그대로였기에 지금의 최형진이 낯설지는 않았다. 눈을 부릅뜨며 내게 따지는 최형진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물었다.
“왜, 그래서 적당한 때에 딱 잘라 줬는데, 불만이야? 아니면 설마 31초 남았는데 거기서 랩 더하려고 한 거야? 우와, 형진아. 양심 있어?”
마지막 물음에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비꼼에 최형진의 미간의 주름이 한결 더 깊어졌다.
“씨발, 이 새끼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네.”
“그래, 나는 변한 게 없는데 우리 형진이는 랩네임도 바뀌고, 실력도 변하고. 사람이 변하면 갈 때가 된 거라던데…….”
“멀쩡한 사람 골로 보내지 마, 이 새끼야.”
턱을 쓸며 짐짓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자 최형진이 씩씩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보며 곧 방송을 타고 중간에 마이크를 가로챈 얌채라고 욕을 뒈지게 먹을 형진이한테 속으로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회귀 전처럼 어부지리의 상황이었으면 최고의 수혜자로 박제되었을 텐데, 하필 훈훈한 페어플레이 현장에서 그래 버려서, 쯧쯧. 더럽게 운 없는 자식.
“혹시 마이크를 양보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어차피 그분이 마이크를 안 준다고 해도 제가 충분히 시간 내로 다시 가져올 자신이 있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인터뷰 질문에 답하다가 멋쩍게 웃으며 슬쩍 덧붙였다.
“사실 솔직히 조오금 쫄리긴 했죠. 보셨을지는 모르겠는데 마이크 넘겨받기 전에 머리부터 먼저 가서 랩하고 있었잖아요, 하하.”
오늘 촬영은 싸이퍼로만 끝나지 않았다. 다음 라운드를 위한 워밍업까지 촬영했다.
다음 라운드는 바로 DTB의 꽃, 디스전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파이트머니 쟁탈전.
바로 다음 미션인 조별 음원 미션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라운드이기도 했다.
참고로 파이트머니 쟁탈은 시즌 4에서 처음 도입되는 디스전 요소였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스물여섯 명의 래퍼들에게 인당 50만 원의 파이트머니가 지급된다.
이 파이트머니는 다음 미션인 조별 음원 미션의 무대를 꾸리는 데에 사용된다. 파이트머니의 액수에 따라 조장이 정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디스전은 무조건 그 파이트머니를 걸고 이루어진다. 디스전은 관객이 참가하는 최초의 라운드며, 승패는 관중의 투표로 갈린다.
그리고 디스전의 참가는 의무가 아니다.
50만 원을 지키고 싶으면 디스전에 참가하지 않으면 된다. 금액을 높이고 싶다면 파이트머니를 걸고 디스전에 참가하면 되고 말이다.
다만 파이트머니의 금액이 마이너스가 될 시, 즉시 탈락이다.
“자, 그럼 본인의 파이트머니를 걸 래퍼들은 앞으로 나와 주시길 바랍니다.”
스물여섯 명 중 총 열네 명의 래퍼가 앞으로 나섰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만약 지목받은 래퍼가 디스전을 거절하면 무산, 받아들이면 서로의 파이트머니를 걸고 디스전 성립.
1차전이 끝나고 2차전이 있는데, 이때는 한 번 맞붙은 상대와는 재대결이 불가능하다.
“저는 윤이든 지목하겠습니다.”
운좋게 제일 왼쪽에 선 덕분에 가장 먼저 지목권을 얻은 최형진이 망설임 없이 나를 지목했다.
“잠깐만요, 저도 윤이든 씨 지목할게요.”
다급히 마이크를 입가까지 들어 올린 래퍼가 최형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을 열었다.
그 후로도 두 명이 연이어 더 나를 지목한다고 나섰다. 내 인기가 너무 많군.
“총 네 명의 래퍼가 윤이든을 지목했습니다. 이든 씨, 매치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단, 다른 래퍼가 선택한 상대를 지목할 수 없다는 룰이 없다 보니 이렇게 다구리 당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물론 내가 한 명 빼고 나머지 래퍼들의 지목을 거절하여 1대 1 디스전 매치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4대 1 매치라…….
오우, 재미있겠는데?
“네, 받아들이겠습니다.”
쿨하게 오케이를 때렸다. 내가 살면서 언제 4대 1 디스전 맞짱을 떠 보겠냐고.
물론 여기에서 내가 지게 되면 마이너스 200만 원을 기록하며 바로 탈락하겠지만, 내가 패배할 각이 안 보이는데 어떡하냐.
200만 원은 미리 잘 받아 간다.
다음으로 다른 래퍼들도 줄줄이 상대를 지목했다. 2대 1 매치까지는 나왔지만, 내 4대 1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오늘 분의 촬영은 디스전 상대를 지목하는 것에서 끝났다.
카메라 앞에서는 호기롭게 나를 지목했으나 촬영이 끝나자, 귀신같이 나를 피하는 다른 래퍼들과 달리 당당하게 다가온 최형진이 내게 말했다.
“랩 평가에 얼굴은 아무 쓸모 없다는 거, 이번 디스전 매치에서 제대로 보여 줄게. 각오해.”
대놓고 기분 나쁘다는 듯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빈정거리는 최형진의 앞에서 최대한 멋있는 미소를 지으며 갸륵한 눈빛으로 대꾸해 주었다.
“하긴, 네가 봐도 내가 좀 잘생겼지?”
“으아아아! 존나 싫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세찬 발걸음으로 바닥을 딛는 최형진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뭐, 입덕 부정긴가, 그건가?
그런데 형진아, 아직 카메라가 켜져 있는데 그러면 어떡하냐. 지금 PD님이 함박웃음 지으시는 모습이 안 보이니?
저 방송알못 자식, 쯧쯧.
숙소로 돌아와 다음 디스전 소품을 준비하며 견하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확 발전할지는 몰랐다니까. 진짜 랩 못하던 놈이었는데.”
견하준은 말없이 내 한탄인지 놀람인지 모를 말을 들어 주었다.
“좀 의외였어. 그놈이 언더에서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는 게.”
“너도 도망간 거 아니잖아. 그냥 떠난 거지.”
견하준의 담담한 말에 피식 웃으며 턱을 까딱했다.
“언더 떠난 거엔 후회 없어. 어차피 계기가 없었으면 내 실력은 평생 제자리걸음이었을 테니까.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내 잘난 맛에 살았냐?”
“뭐…… 네가 계속 언더에 있었으면 나랑 만날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게 좀 아쉽긴 했겠네.”
“그치. 내 취향 음색을 찾아서 인생 낭비하고 살았겠지.”
키득거리며 가위질을 이어 나갔다. 내 가위질에 따라 천이 서걱서걱 잘렸다.
“됐다, 준비 끝!”
이번 디스전 1차전에는 의상 고민은 없었다. 그야 이번에는 반팔에 청바지만 입고 갈 거니까!
* * *
김 모 양은 DTB 공식 인별을 하루에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지난 시즌에 DTB에 미쳐 살았던 친구의 조언에 따르면 DTB 공식 인별에 방청 신청 링크가 올라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비록 추첨이지만 미약한 가능성에라도 희망을 걸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김 모 양은 우리 애가 DTB 본선도 전에 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어, 어, 어? 올라왔다!”
소규모 방청 공연이라 뽑힐 확률은 희박했지만 그녀는 당장 신청서를 넣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됐다! 당첨됐어어억!”
기쁨을 표현하는 우렁찬 외침이 김 모 양의 집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동행인 1인까지 가능하여 꼭 DTB를 보고 싶다고 제게 열심히 먹을거리를 사다 바친 혈육과 함께 그녀는 문자에 적힌 촬영 장소로 향했다.
비밀 유지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티켓인 팔찌를 받은 남매는 입장 예정 시간까지 대기하다가 드디어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공연장에는 마치 UFC의 경기장 같은 무대 주변을 철장이 둘러싸고 있었다.
곧 오랜만에 내 새끼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김 모 양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래퍼들의 디스전을 보며 열광하는 혈육 옆에서 멍하니 무대만 바라보고 있던 김 모 양은 드디어 호명된 윤이든의 이름에 눈에 안광을 띄우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곧, 다섯 명이 무대 위에 올랐다. 하지만 김 모 양은 그곳에서 바로 윤이든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윤이든의 선공이라는 MC의 말에 마이크를 올리는 래퍼를 보고 나서야 그녀는 윤이든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저, 저게 뭐야?’
김 모 양은 눈을 비볐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눈앞의 광경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도를 연상케 하는 눈구멍과 입 구멍만 뚫린 천을 뒤집어쓴 저 복면남이 바로 윤이든이라는 걸.
[잘난 외모는 힙합 판에서 마이너스?얼굴 가려 줬으니 어디 한번 랩으로만 평가해 봐]
이 와중에 저 꼬라지는 가사와 참 잘 맞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