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6화(26/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6화
“그래도 이번에는 뮤직비디오가 <내 우주로 와> 꼴은 안 나겠네요. 무대 의상도 하이틴 콘셉트면 적어도 스펀지 실험맨 흰색 점프슈트나, 이든이 형이 말한 그 끔찍한 고딕과 고스의 혼종룩은 아닐 테고.”
안도 어린 류재희의 말에 김도빈이 씩씩거렸다.
“야, 상대는 김노답이야. 나한테 안무 디렉팅 떠맡긴 김노답이라니까? 그 노래를 듣고도 다중우주 차원이동 도둑잡기를 생각해 낸 김노답이라고!”
팬들이 부르던 대표님의 오랜 별명이 김도빈의 입에서 나왔다.
선생님들한테 일단 별명부터 붙이고 보는 고등학생다웠다.
그나저나 저런 적의라니. 역시 저 녀석이 스폰 제의를 받았다는 내 의심의 불길에 기름만 부어 주는 꼴이었다.
내가 빤히 저를 보고 있자 눈에 띄게 흠칫한 김도빈이 튕기듯 몸을 일으키더니, 어서 안무 연습하자고 어색하게 웃으며 후다닥 AR을 틀었다.
저 새끼가…….
안무 연습 루틴은 평소와 같았다.
김도빈이 제일 먼저 안무를 익히고 부자연스러운 부분까지 수정한다.
그다음으로 안무를 익힌 류재희가 나랑 견하준 앞에서 우리가 버벅대는 부분 따라 추며 깝죽거리다가 빈 생수병을 맞고 제압된다.
그리고 견하준과 나까지 안무를 다 익히면 넷이 거울에 기대앉아, 몸부림과 율동 그사이에 있는 서예현의 몸짓을 그나마 안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될 때까지 여기저기 훈수를 두며 구경한다.
“여윽시 새로운 안무의 창시자. 저런 안무는 없었는데 언제 창조했대냐.”
짝짝짝 박수를 치며 팬들이 지어 준 별명과 감탄사를 내뱉었다.
입으로 욕할 기운도 없는지 눈으로 욕하던 서예현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쯧쯧 혀를 차며 생수병을 휙 던졌다.
생수병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서예현이 겨우 숨을 고르고는 투덜거렸다.
“비꼬지 말고 어디가 틀렸는지 좀 말해 달라고.”
“총체적 난국이라고 하면 또 삐칠 거임?”
“이미 총체적 난국이라고 말했잖아, 망할 놈아.”
서예현이 투덜거렸지만, 다행히 초심도는 깎이지 않았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초심도가 깎이지만 한 번 돌려 말해서 서예현이 해석하도록 유도하면 깎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왜 저 인간 기분의 척도까지 분석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빌어먹을 초심도. 그놈의 엿 같은 불화 조장.
* * *
ydc엔터 측에서 연락이 왔다.
널찍한 스튜디오의 작업실로 안내받아 들어가자 내 기준으로는 구형이지만, 이 시대에는 나름 최신형인 장비들이 쫙 깔린 풍경이 들어왔다.
용철이 형의 작업실이랑은 비교하기도 송구스러운 수준이었다.
물론 회귀 전의 내 작업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노란색 색안경을 쓴 남자가 기척에 의자를 빙글 돌렸다.
눈썹의 피어싱이 조명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다가오는 남자를 향해 곧바로 허리를 꾸벅 숙이며 예의 바른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심까, 레브 윤이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 그래. 네가 이든이냐? 준범이한테 얘기는 많이 들었다.”
내밀어지는 손을 마주 잡으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프로듀서 G1. 본명 이지원.
지금도 알아주는 프로듀서지만, 지금으로부터 7년 후에는 K-POP 판의 성공 공식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실력자.
기억 속 모습보다 젊은 얼굴을 보니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게 또 새삼 실감이 나서 기분이 묘했다.
이끄는 손길에 따라 의자에 앉자 내게 가사가 적힌 종이를 건네고는 마우스를 딸깍거린 이지원이 말을 붙였다.
“유출 위험 때문에 따로 음원은 전달 안 해 줬으니까, 아직 안 들어 봤지?”
“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낯익은 멜로디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역시 비싼 스피커는 음질부터 달랐다. 구리디구린 대여 녹음실 스피커는 쨉도 안 됐다.
음원은 총 두 번 재생되었다.
한 번은 피처링 랩 부분을 가이드로 처리한 버전, 한 번은 MR로 비워 놓은 버전.
“어때, 감 좀 오냐?”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녹음실 부스를 향해 손짓했다.
“그럼 바로 녹음 들어가자.”
“예? 지금 바로요? 아니, 뭐 따로 주의할 점이라던가…….”
“그냥 니 좆대로 불러. 어차피 처음부터 랩은 염두에 두고 쓴 곡 아니니까.”
확실히 랩 없이 MR로만 처리했던 버전이 더 낫긴 했지.
머리를 긁적이며 이 곡에 랩 피처링이 굳이 들어가야만 했던 이유를 상기해 냈다.
서라온이 자기 노래에 랩 피처링 한번 넣어 보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던가, 아마.
서라온 정도 되는 짬밥이면, 제아무리 프로듀서가 G1이래도 의견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보다시피 파트는 얼마 안 되니까 사흘 내에는 작업 끝내자.”
기대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심드렁한 눈깔을 보자 왜인지 모를 오기가 비죽 올라왔다.
녹음실 부스 문을 열고 들어가 헤드폰을 쓰고 팝 필터 앞에 섰다.
내게 주어진 파트는 25초의 짧은 몇 마디.
25초면 사람 귀를 잡아채기에 아주 충분한 시간이다.
MR이 흘러나오자 곧바로 비트를 쪼개며 가사를 내뱉었다.
가사에는 랩을 염두에 쓴 곡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라임이나 펀치 라인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멍청하게 습관적으로 가늠했지우리가 맞이하게 될 어떤 엔딩]
마지막 소절이 끝나자 MR 역시 뚝 끊겼다.
부스 유리 너머로 나를 빤히 보는 시선에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사흘 안에는 충분히 끝내겠다.”
녹음 부스를 나오자마자 이지원이 생수와 함께 내게 건넨 말이었다.
“기대를 하나도 안 했거든. 너네 그룹 음원이랑 네 언더 시절 작업물에 잘못 든 언더 물 존나게 잘 느껴져서. 그래도 네가 개중 제일 나아서 일단 픽했는데-”
그렇겠지. 그 두 개는 회귀 전의 작업물이니까. 저 인간이 최근 음방 영상을 찾아볼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안 했고.
나를 위아래로 훑은 이지원이 삐뚤어진 색안경을 쓱 고쳐 쓰며 물었다.
“지금은 그 물이 쫙 빠졌네? 어디서 먼저 지적받고 폐관수련이라도 했냐?”
“아하하, 지적받고 고치려 노력하긴 했죠.”
“하, 새끼. 싹수 있네.”
어디에서 지적받았긴. 댁한테 지적받았지.
회귀 전에 이지원이랑 한 번 같이 작업했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도 아마 피처링 작업이었을 거다.
[겉멋 좀 빼라. 그렇게 그루브 탄다고 니 플로우 안 독특해져. 듣기 좆같아지지.] [그렇게 별롭니까……?] [어, 존나. 딱 겉멋만 들어서 지 실력 좆같은 줄도 모르고 자화자찬하면서 언더에서 평생 썩을 스타일. 야, 너는 언더 때려치우고 아이돌 한 게 최고의 선택이다. 용 꼬리로 썩을 거 뱀 대가리는 됐잖아.]언더에 있을 때도 한 번도 랩 실력으로 까인 적이 없고, 불경이나 읊는 서예현급이 널린 아이돌 래퍼들 중에서는 거의 최정상급이나 다름없었던 내게, 그 폭언은 꽤 충격이었다.
한동안 랩을 하지 못하고 싱잉 랩이나 겨우 흥얼거릴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그 시절 힙합은 버스 탑승 멤버 처지였던 내게 유일하게 남은 자부심이었으니까.
그 뼈아픈 충고(인지 빈정거림인지 모를) 이후로 피나는 노력 끝에 좆같은 겉멋, 습관을 다 버렸다.
덕분에 오버그라운드 탑급 래퍼들에 비빌 수준으로 평가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저 인간은 평생 모를 것이다.
그때는 오해로 인한 언더 시절 인맥 손절까지 겹쳐서 독기와 악바리 근성이 최고치를 찍었을 때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름 은인의 범주에 드는 이지원은 이번의 나를 꽤 좋게 본 모양인지 그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미미한 웃음기를 띠며 물어 왔다.
“내일도 같은 시간에 올 수 있냐?”
“그건 잘 모르겠슴다. 저희도 지금 다음 활동 준비 중이라 당장 일정이 어떻게 될 줄 몰라서…….”
머리를 긁적이자 내 손에서 폰을 가져가 열한 자리 숫자를 입력하며 이지원이 킬킬거렸다.
“컴백 이거랑 겹치는 건 아니지?”
“아, 그러진 않을걸요. 저희는 11월 말이라서요.”
“겹치진 않겠네. 야, 근데 너희는 왜 이렇게 애매한 날짜에 컴백하냐? 12월이면 시상식 땜시 음방 다 짤릴 텐데?”
“좆소 일 처리가 다 그렇죠, 뭐.”
G1이라는 이름까지 친히 입력해 준 채 내게 휴대폰을 돌려준 이지원이 손을 흔들었다.
“만약 일정 생기면 연락해라. 내일 같은 시간에 올 수 있어도 미리 연락 좀 해 주고.”
“옙, 당연하죠. 그럼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우렁차게 인사하고 스튜디오를 나왔다.
남은 피처링 작업도 순탄할 거라는 예감이 들어 연습실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이번 일로 깨닫게 된 인생의 진리를, 겨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기회 걷어차려 했던 서예현과 김도빈 들으라고 조금 큰 목소리로 늘어놓았다.
“사람은 역시 독기 가득하게 살아야 해. 조금만 힘든 거 버티면 이렇게 몇 배로 돌려받잖아.”
“뭐를요? 업보를요?”
어쩌다가 초심도라는 형태로 업보도 돌려받긴 했지.
그런데 문맥을 못 읽니, 막내야. 힘든 거 버티면 업보를 돌려받겠냐, 복을 돌려받겠냐.
“업보겠냐.”
“그럼 뭐 좋은 일 있어요? 설마 뮤비요?”
“엉? 내가 말 안 했냐? 이 형님께서 서라온 선배님의 피처링으로 들어갔다.”
“헉, 서라온? 제가 아는 그 서라온? <새벽 기억> 부른 그 서라온이요?”
류재희가 벌떡 일어나 대체 언제 어떻게 왜 얼마나 피처링을 맡게 됐냐고 나를 탈탈 털어댔다.
팬심 앞에서 겁대가리는 사라진 모양이었다.
내가 <어떤 엔딩>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휴대폰 벨 소리부터 시작해서 기상 알람음까지 저 노래로 맞춰놨던 류재희의 공이 컸다.
높아진 콧대를 으쓱했다.
“다아 내가 열심히 살아온 덕분이지. 하, 그거 하나 위해서 비위 맞추느라 힘들었다.”
하여간 김준범 그 인간 뒤끝 한번 더럽게 길어서는. 먼저 연락 안 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을 해야 했는지.
그 말에 파드득 떨며 히끅거리더니, 이제는 숫제 딸꾹질을 해 대는 김도빈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건 왜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비 맞은 똥개 새끼처럼 발발 떨어?
* * *
작업은 이지원이 말했던 대로 사흘 만에 끝났다.
피처링 파트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관심 없어 보였던 이지원은 두 번째 작업에 이것저것 추가 요구사항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요구사항을 찰떡같이 받아먹고 원하는 결과물을 고스란히 내주는 나를 보자, 피처링 파트를 향한 이지원의 광기는 더욱 커져만 갔다.
한 번 작업한 기억이 있던 터라 저 인간이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캐치하는 건 수월했다.
오늘로써 만난 지 세 번째.
“오케이, 끝!”
피처링 파트 작업이 완벽하게 마무리되고, 녹음 부스를 나오자마자 이지원은 내게 불쑥 제 폰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폰을 받아 들고 얼굴을 쳐다보자 이지원이 킬킬거렸다.
“왜, 번호 따는 놈이 걸그룹 멤버 아니라서 실망했냐?”
“에이, 형님.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섭섭하게 하세요.”
넉살 좋게 받아치며 웃었다. 걸그룹 멤버에게 번호 주면 초심도 깎는다에 냉장고를 가득 채운 서예현의 닭가슴살을 모조리 건다.
번호 열한 자리를 가볍게 터치하고 윤이든 이름 석 자까지 입력하여 돌려주자 이지원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네 폰도 줘 봐.”
어리둥절하면서도 휴대폰을 순순히 넘기며 물었다.
“그런데 저번에 번호 주시지 않았어요?”
“그건 업무용 폰이고, 이건 내 개인 폰.”
살다 살다 G1 개인 폰 번호도 다 받아 보네.
피곤하니까 너무 자주 연락하진 말라고 장난식으로 덧붙이는 이지원한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새로운 거물 인맥이 추가됐다.
와우, 이제 G1이랑 연락하거나 작업하려면 김준범 비위 안 맞춰도 된다.
이게 바로 회귀의 순기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