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6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61화(26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61화
“다 합치면 총 550만 원이네요.”
나머지 셋이 합쳐서 50만 원이라 그런가 내가 500만 원이나 딴 것치고 파이트머니의 총합이 다른 조와 현저하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다른 조와 차별화된 무대 꾸미기나 호화로운 단합대회는 물 건너갔군. 오직 곡만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니.
완성곡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파이트머니 500만 원이라는 메리트가 부각되지 못하는 건 조금 분했다.
“그럼 일단…… 지금 당장 프리스타일 랩을 할 자신이 없으신 분?”
내 물음에 라이조와 니지어스가 동시에 손을 들었다.
“당장은 좀 힘들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프리스타일에는 약해서…….”
당당하게 말하는 니지어스와 달리 라이조는 멋쩍게 말끝을 흐렸다.
“그럼 두 분은 각자 작업물 있을까요? 후보정 안 들어간 거면 더 좋고요.”
두 사람이 다행히도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우리 팀의 비트를 틀고 투혁의 프리스타일 랩부터 먼저 들어 보았다. 그리고 차례로 라이조와 니지어스의 작업물까지 쭉 들었다.
그 과정을 마치고 나자, 내 머릿속에는 단 세 글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좆됐다.’
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DTB 참가 후,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왔다.
3차 예선에서의 탈락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송국 놈들이 방송 각을 뽑기 위해 결과를 조작한 게 확실했기에 위기로 치지 않기로 했다.
뭐가 위기냐면, 비트만 고려하고 팀원들의 랩 실력은 고려를 안 했다는 점.
회귀 전 이 비트의 당첨자였던 스코언은 언더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던 래퍼였기에 비트가 까다로워도 스코언을 믿고 그를 선택한 래퍼들 역시 꽤 쟁쟁했다.
팀원 넷 중 세 명이나 본선 2차까지 진출한 수준이면 말 다 했지. 스코언 본인도 운이 따라 줬다고 인터뷰를 했었고.
하지만 지금은?
일단 조장부터 아이돌 래퍼에,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 중 본선 2차까지 진출하는 이는 없었다.
게다가 투혁은 다른 곳이 다 인원이 찬 터라 갈 곳이 없어서 세 명이 있었던 이곳을 선택하지 않았나.
허둥지둥하다가 유피의 조에 여섯 명이 몰리자, 내 조로 오는 거 다 봤다.
그리고 어차피 1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한들 팀에서 딱 한 명씩만 탈락하는 거라 자기가 넷 중 꼴등을 면할 자신이 있는 곳을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셋 중에 투혁의 실력이 그나마 제일 낫거든. 그러므로 이건 꽤 신빙성 있는 추측이었다.
문제는 방금 들은 투혁의 톤도 이 비트에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예 톤을 낮추거나 랩스타일을 바꿔야 할 텐데, 이 요구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 7년과 회귀 후 3년, 도합 연예계 생활 10년. 경험이 이만큼 쌓이면 나도 모르게 미래를 내다보는 초능력이 생긴다.
-윤이든이 너무 배려가 없었다 저렇게 앞뒤 잘라먹고 대뜸 랩스타일 바꾸라고 말하면 솔직히 투혁이 기분 나쁠 만함
-이든아 역지사지 좀 해라 진짜 눈살 찌푸려지더라 당장 바꾸라고 해도 랩스타일이 하루아침에 바뀌냐?
-아 이건 윤이든이 선 넘었지;; 투혁한테는 탈락까지 걸린 일인데
악편으로 인해 나는 투혁에게 무리한 것만 요구하는 악당이 될 것이다.
-윤이든 조는 대체 곡 작업을 하는 거임 싸움질을 하는 거임?
-아오 ㅅㅂ 고구마…… 얘네 조만 나오면 내가 다 스트레스받아서 채널 돌리고 싶어지더라
-저래 놓고 곡 퀄리티 좆박으면 개웃기겠네
덥넷이 악마의 편집으로 예쁘게 극대화시켜 준 갈등 서사로 인해 우리 조는 부정적인 의미로 제일 이슈가 될 것이다.
-결과물이 겨우 이거? 이딴 퀄리티로 곡 뽑으려면 대체 왜 그렇게 서로 머리채 잡아댄 거?
-싸울 시간이랑 기력으로 곡 작업만 신경 썼어도 이런 쓰레기까지는 안 나왔겠다 ㅉㅉ
-겨우 이거 들려주려고 우리한테 그렇게 고구마를 처먹였냐,,,
그 고구마 과정을 거쳐 탄생한 곡은 도마 위에 올라 초 단위의 칼 같은 평가로 난도질당할 것이다.
-DTB 조별 음원 미션 들어가는 래퍼들 필수 시청 영상:(DTB 시즌 4 윤이든팀 링크)
-망한 조별과제의 대표적인 예시
-이렇게만 안 하면 됨! 참 쉽죠?
우리의 곡 메이킹 영상은 조별 과제 잔혹사로 낙인찍혀 다음 시즌의 반면교사로 길이길이 전해질 것이다.
그래도 시발, 남아 일언 중천금인데 한 번 내뱉은 말은 지켜야지. 내가 버스로 과속 운전을 해서라도 무조건 다섯 곡 중에 1위 찍게 만든다.
그리고 반드시 덥넷이 원하는 갈등 서사를 우리 조에서 뽑게 두지 않을 것이다.
“일단 훅은 조금 뒤로 미뤄 놓고, 본인 파트 가사부터 쓰죠. 사흘이면 충분하겠죠?”
내 물음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들 지금처럼만 불만 없이 따라 주면 참 고맙겠는데.
“그럼 금요일 오전 10시에 본인 파트 가사 지참해서 이곳에서 모이는 걸로 하죠.”
“잠깐만요, 요일 잘못 세신 거 같아요. 사흘이라면서요. 그럼 금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죠.”
설마 사흘을 4일로 알아들은 건 아니겠지? 부끄럼 한 점 없는 니지어스의 당당한 정정에 내가 다 부끄러워졌다.
그럼 나흘은 뭐냐, 어? ‘나’라는 숫자도 있냐?
남을 향해 윽박지르지 않는 게 참으로 어렵게 느껴집니다.
* * *
파트 가사 마감일인 금요일.
“그러고 보니까 오늘 DTB 2화 본방 방영하죠? 다들 1화 보셨어요?”
오늘은 DTB 2화가 방영되는 날이기도 했다.
“봤죠. 분량이 얼굴만 잠깐 비치는 정도라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요.”
“전 안 봤어요. 어차피 1화에서 나와 봤자 몇 초 안 나올 것 같아서.”
“이든이 형은 꽤 길게 나오셨던데. 저도 요즘 유행템 된 그 베레모 샀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안 어울려서 그냥 방치 중. 아, 참. 형은 왜 1차 예선 때 그렇게 입고 오신 거예요? 저번이나 지금 보면 옷 엄청 패셔너블하게 잘 입으시는 것 같은데. 소속사가 그렇게 입고 가라고 시켰어요?”
니지어스는 이 텐션 낮은 팀에서 용케 홀로 하이 텐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딱히 하이 텐션도 아닌 것 같긴 했지만, 다른 팀원들이 하도 로우 텐션이라 상대적 하이 텐션이었다.
이대로 가면 악편으로 인한 갈등 서사를 걱정해야 할 게 아니라 노잼으로 인한 통편집을 더 걱정해야 할 것 같은데?
악편 대 통편집. 어느 쪽이든 반갑지 않긴 하다.
부정적으로 비치거나 편집될 요소가 없는 어그로 한 번 빡 끌어 줘야 하는데.
제 랩네임이 제일 기니 그냥 저를 본명인 이규찬으로 불러 주라며 넉살 좋게 웃는 니지어스가 이 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다들 가사는 써 오셨죠?”
투혁은 턱을 까딱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고, 라이조와 니지어스는 육성으로 대답이라도 해 줬다.
젠장, 투혁에게 랩스타일이나 톤 바꾸라고 하면 진짜로 싸움 날 것 같은데.
내가 겪은바, 저런 성격은 자기 자존심이 세서 그걸 건드리면 꽤 귀찮아진다.
다행히 투혁과 라이조가 써 온 가사는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수위도 아니었으며, 사회적으로 문제 될 만한 내용도 없었다.
투혁은 펀치라인을 잘 활용해서 센스 있는 가사를 썼고, 라이조의 가사는 DTB 디스여서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니지어스의 휴대폰을 건네받아 메모장 앱에 적힌 가사를 훑었다.
‘규찬아, 미쳤니?’
목 끝까지 올라오려는 말을 겨우 삼켰다.
이거 그대로 녹음하면 100% 심의에 걸려서 19금 판정을 받는다. 한 문장당 비속어가 세 개씩 들어 있는 가사는 나도 처음 봤다.
그리고 어딜 가도 여자들이 달라붙어서 피곤하다는 가사는 내가 써도 욕 처먹을 거 같은데, 너는 대체 무슨 용기로 쓴 거냐? 미움받을 용기?
딱 봐도 여자들이 붙을 관상이 아닌데 네가 생각해도 너무 양심 없지 않냐?
시발, 카메라가 보고 있다.
만능 주문을 외우며 빡친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니지어스를 불렀다.
“규찬아.”
“예, 형!”
나를 스트레스의 늪에 빠뜨려 놓고 대답 하나는 참 빠릿빠릿했다.
“가사를 좀 순화시켜 보는 게 어떨까?”
굉장히 나긋하고 부드러운 어조의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마 김도빈이 봤으면 또 내가 빙의당했다고 쌩 난리를 칠 수준이었다.
니지어스는 이 조가 임시적이라는 것에 아주 감사해야 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미 두피 마사지와 목 마사지를 시작으로 쌍욕 없는 독설이 쏟아졌을 테니까.
“그러면 힙합 스피릿이 안 살아나는데요? 케이팝 서바이벌도 아니고 힙합 서바이벌인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딱 봐도 가사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니지어스가 말대꾸했다.
차라리 최형진이랑 한 조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형진이는 적어도 이런 끔찍한 가사를 내게 들이밀지는 않았겠지.
“규찬아, 꼭 비속어로 라임과 펀치라인을 맞춰야만 힙합이라는 편견을 버려.”
그래, 얘는 아직 겉멋만 잔뜩 든 고딩이다. 나를 망하게 만들기 위해 덥넷이 내 조에 심은 X맨이 아니고.
마음속으로 참을 인(忍)자를 새기며 나답지 않게 다정한 충고를 건네자 삐딱한 빈정거림이 돌아왔다.
“에엥, 그건 형이 아이돌이라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저는 아이돌이 아니고 래퍼인데요.”
내가 필사적으로 막았건만 기어이 먹음직스러운 악편 소스를 제공해 주는 니지어스(a.k.a. 이규찬)이었다. 어디에선가 DTB PD의 환호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벌써 어떻게 편집될지 편집각도 잘 나왔다.
‘대중을 의식하는 아이돌 래퍼 Vs 진짜 자유로운 힙합을 하고 싶은 언더 래퍼’ 구도로 몰아가겠지.
우리 막내보다도 어린놈이 이런 식으로 내게 엿을 선사해 주다니. 녹음할 때마다 서예현과 투톱으로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던 김도빈이 재평가되었다.
시바, 그래도 우리 도빈이는 내 말이라도 잘 들었어. 나한테 말대꾸를 해도 조금만 지그시 쳐다보면 알아서 수그러들었다고.
어느새 김도빈은 내 마음속에서 우리 도빈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정색을 하거나 평소 늘 하던 대로 서열 정리를 하면서 찍어 누르면 PD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 칠 게 뻔했으므로 방식을 바꾸기를 선택했다.
어차피 이 녀석은 악편의 늪으로 스스로를 던져 앞길을 말아먹었으므로 나라도 내 이미지를 챙겨야지 어쩌겠냐. 구원은 셀프다, 짜식아.
“우리 규찬이 몇 살?”
내 뜬금없는 물음에 뒷머리를 긁적이면서도 니지어스는 착실하게 대답했다.
“열여덟이요.”
“내가 언더에 있었던 열다섯 살 때도 그런 가사 안 썼다, 규찬아. 질풍노도 중2병보다 더하면 어떡하냐?”
대중 눈치를 보는 아이돌과 대립하는 ‘자유로운 힙합을 하고 싶은 래퍼’가 아니라 ‘아직도 중2병을 벗어나지 못한 어린놈’으로 저 녀석의 이미지를 바꾸는 건 내게 식은 죽 먹기였다.
나한테 개기고 싶다면 작사 실력이나 더 키워 와라,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