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6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65화(26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65화
물론 내 선에서 디렉팅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너무나도 뻔히 예상되는 갈등 서사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재로선 무조건 저 프로듀서 중간 점검권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중간 점검권 하나 얻자고 굳이 여기에서 내가 유리한 걸 알면서도 양보하지 않으며 내 이미지를 깎을 필요는 없었다.
어쨌건 세븐킥의 말도 솔직히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회귀 전에도 시청자에게서 이건 좀 불공평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압도적으로 몰표를 받다시피 하며 스코언이 프로듀서 중간 점검권을 따 갔다.
그래서 DTB를 인기투표로 만들지 말라며 욕을 어마어마하게 먹고 시즌 5부터는 게릴라 미션을 없앴다.
이게 문제가 없었다면 계속 유지했을 텐데 없앴다는 건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제작진 측에서도 판단했다는 거겠지.
내가 아무 페널티 없이 단독 공연을 해서 최다 표를 얻으면 분명 불공정하다는 소리가 나올 거고, 이를 기점으로 내게 반발을 가지게 되는 이들도 생길 것이다.
스코언 역시 그 게릴라 미션이 약간의 패착이었던 것 같다고 인터뷰에서 털어 놨지 않은가.
어차피 우승은 스코언이라는 빈정거림도 이때를 기점으로 터져 나왔고.
내가 이런 강수까지 둘 줄은 몰랐는지, 먼저 시비를 걸어왔던 세븐킥도 영 당황한 눈치였다.
적당히 나랑 스코언한테 디메리트를 주자고 주장하려던 모양인데 내가 이렇게 강수를 둘지는 몰랐겠지.
순식간에 정의로운 놈과 악역이 뒤바뀌었다.
내가 여기에서 무슨 소리냐고,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인기 많은 게 언제부터 죄였냐고 따지고, 게릴라 미션에서 몰표를 얻어 갔으면 세븐킥은 불의에 당당히 따질 줄 아는 놈이 되고.
나는 아이돌 대중성만 믿고 DTB에 기어 나와서 진짜 기회가 돌아가야 할 래퍼들 양학이나 해 대는 밉상 빌런으로 찍혔을 테지만.
내가 먼저 나한테 있는 최고의 메리트 중 하나인 음원차트 1위 곡을 포기했으니 어쨌건 페어플레이한다는 의사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테고, 이렇게 되면 선빵 친 놈이 욕먹는 법이지.
“이미 얻은 인지도와 인기를 제가 줄일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곡만이라도 인지도 없는 아예 새 곡으로 하겠다고요.”
먼저 판 깔아 줘서 고맙다! 자칫 내가 먼저 페널티의 필요성을 말했다면 기만하냐고 재수 없다 욕 처먹을 수도 있을 텐데.
“곡 호응이 무대 평가에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안 하실 거라 믿습니다.”
우리 조의 파이트머니가 됐을 우리 규찬이의 코 묻은 100만 원도 세븐킥 저 인간이 뜯어 갔다는 걸 상기하니 말이 곱게는 안 나갔다.
그런 나와 세븐킥의 대치를 지켜보고만 있던 스코언이 불쑥 끼어들었다.
“맞는 말이야. 관객 호응 중요하지. 이든이 통 크네. 음원차트 1위 찍은 곡도 쿨하게 날려 버리고.”
이건 언제까지나 내 선택이었기에 스코언까지 굳이 따를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나와 비교되는 감이 없지 않아 있겠지.
의도치 않게 스코언까지 코너로 몰아붙인 꼴이었다.
내 어깨에 팔을 턱, 얹으며 나를 끌어당긴 스코언이 나머지 셋을 돌아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인기도, 인지도도 없어서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으시다는데 어떡하겠어. 원하는 대로 맞춰드려야지, 가진 거 많-은 우리가.”
오, 빙쌍화법 쩐다. 스코언의 묵직한 팔에 눌리며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기억했다가 나중에 써먹어야지.
“우리 둘은 신곡으로 할 테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관객 호응 잘 나올 본인 히트곡으로 합시다. 마침 곡 정하기도 귀찮았는데 잘됐네.”
스코언도 이 셀프 페널티에 동참한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설마 쌩판 모르는 곡 호응이랑 평가 뛰어넘을 자신 없다고 징징거리지는 않겠지?”
역시 스코언이 언더에서 짬밥이 제법 있는 편이라서 그런가 스코언 앞에서는 다들 뭐라 항의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여전히 내 어깨에 걸친 팔을 풀어 주지 않은 채 카메라의 촬영 범위에서 벗어난 스코언이 내게 말했다.
“자신 있냐? 덥넷 측에서 부를 관객, 추첨으로 부를 인원보다 여기 지원했다가 떨어진 래퍼들이 더 많을 텐데.”
“대중성으로 가 봤자 잘 안 먹힐 거라고요? 어차피 대중성으로 갈 생각은 딱히 없어서요. 힙합 서바니까 힙합으로 가야죠.”
“짜식, 찰떡같이 알아먹네. 기대한다.”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스코언이 몸을 돌렸다.
사실 이곳에 나온 이유도 슬럼프 극복이 이유였고, 여전히 곡 작업은 진전이 없는 터라 자신 있다고 쉽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재활 치료 겸 한번 해 보자.
<부제:니들이 뭔데 나를 평가해>도 3차 예선에서 탈락하고 빡쳤을 때 재활 치료용으로 작곡한 곡이지 않은가.
사실 이번 미션에 필요한 신곡은 멜로디는 딱히 필요 없고 비트랑 가사, 그리고 훅 부분 멜로디 정도만 있으면 완성시킬 수 있는 터라 딱히 부담은 없지만.
오랜만에 작업실로 와서 모니터 앞에 앉아 손을 풀고 있자 음원미션 조 단체 채팅방에 톡이 도착했다.
[라이조- 저희 이번 주에 또 안 모이나요? 이번 주는 이대로 작업 끝?] 오후 4:31 [니지어스- 작업 끝난 거 아니에요?] 오후 6:01 [니지어스- 작업 개빨리 끝나서 개꿀이라고 자랑 다 했는데] 오후 6:02 [투혁- 1차녹음이라고 했잖아] 오후 6:51 [투혁- 그리고 입조심좀 해 니 설레발 때문에 방송 스포 퍼지면 어쩌려고] 오후 6:52 [조장 게릴라 미션 준비해야 해서 이번 주에 더는 모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후 6:55 [라이조- 오 조장들은 또 따로 미션도 주는가 보네요] 오후 7:00 [투혁- 미션 뭔데요?] 오후 7:01 [본인 곡으로 단독공연이요] 오후 7:02 [투혁- 그냥 하면 안 되나? 그걸 굳이 사흘씩이나 시간 빼서 준비해야 해요?] 오후 7:03 [제가 신곡으로 준비해야 되거든요] 오후 7:04 [프로듀서 중간점검권이 걸려 있어서 신경 좀 써야 할 것 같아서요] 오후 7:05 [투혁- 신곡 뽑아야 하는데 사흘밖에 시간을 안 준다고? 미쳤나] 오후 7:09나 말고 DTB를 욕하라고 굳이 내가 먼저 제안했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니지어스- 형님 꼭 세븐킥 바르고 중간 점검권 얻어 오십쇼! 응원하겠습니다!] 오후 7:12 [어 고맙다] 오후 7:16좋아, 이 핑계로 프로듀서 중간 점검권이 내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의 조별 미션곡을 완성하지 않을 시간은 벌었고.
내가 예전에 찍어 놨던 비트 중 제일 강렬하고 귀에 때려 박히는 하나를 골랐다. 이제 가사를 쓸 차례였다.
오직 나만이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곡.
낯설어도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곡.
한철 무대용 곡이 아니라 미래에도 길이길이 전설로 남을 곡.
좋아, 이거다.
가사를 써 내려가는 내 손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 * *
게릴라 미션, 단독 공연 당일.
추첨과 탈락한 래퍼들을 초대하여 100여 명의 관객들을 모아 놓고 단독 공연이 이루어진다.
피처링을 부르는 건 허가 X. 공연은 최소 2분 이상.
온전히 홀로 2분 이상의 무대를 채워야 하는 터라 개인의 역량이 제일 중요한 무대였다.
음원 차트의 성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곡으로 홀로 무대에 오르려니 기대감과 약간의 떨림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안대는 왜 써? 해적이야?”
“쯧쯧, 저렇게 상상력이 부족해서야. 자기가 가진 편견에서 한 발짝 벗어나 보는 게 어때?”
고지식한 인간 아니랄까 봐 고지식한 말만 하는 서예현을 향해 혀를 차자 더 고지식한 대답이 돌아왔다.
“눈병 환자?”
“……말을 말자.”
“오, 형. 해적 컨셉이에요? 해적 선장 모자도 얹고 가시면 완벽하겠는데요? 아예 갈고리를 손에 걸고 가는 거는요?”
누가 스승과 제자 아니랄까 봐 똑같은 소리를 해 대는 김도빈의 머리 위에 얹힌 비니를 쓱 벗겨 냈다.
“아니, 모자는 따로 안 쓰려고 했는데 이게 딱 좋겠다. 오늘 하루만 좀 빌린다.”
“엥, 진짜 해적 컨셉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안대를 다시 벗고 비니와 함께 챙겼다.
마지막까지 가사를 외우다가 덥넷 측에서 공지했던 촬영 시간이 다 돼서 무대로 분한 촬영장으로 향했다.
나는 딱 중간 순서였다. 애매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스코언 바로 뒤라서 비교는 좀 되겠지만?
호언장담한 대로 신곡을 들고 나온 스코언이 신곡임에도 불구하고 열렬한 호응과 함께 무대를 마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여전히 공연의 열기가 식지 않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 스코언이 씩 웃으며 내게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수고해라.”
스코언의 손과 가볍게 손바닥을 맞부딪치고, 왼쪽 눈에 안대를 단단히 찬 후 성큼성큼 무대로 나왔다.
힙합에서 빠지면 섭섭한 돈 자랑? 차 자랑? 자기 자랑? 그런 건 호응을 이끌어 내기에 부족하다.
진부한 사랑 노래? 처음 들어 보는 낯선 곡의 절절한 고백에 호응하는 미친놈들이 어디 있겠어?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어요.’를 스토리 텔링해 주는 자기 연대기? 그렇지 않아도 낯선 곡이라 죽어 있던 분위기를 재기 불능으로 짓밟으면서 망치기 딱 좋군.
이 상황에서 제일 잘 먹히는 것.
그것은 바로 앞담이다. 그렇지만 나보다 체급이 작거나 엇비슷한 놈을 까 봤자 의미 없고, 치려면 체급 차이가 존나게 나는 놈을 쳐야지 보는 사람도, 치는 사람도 재미있지.
할아버지 팔순 잔치에서의 집안 디스랩에 이어 DTB 미션에서의 DTB 디스곡, Let’s Go.
인기투표, 한철장사, 인별충들이 힙해 보이려고 몰린 힙합페스티벌, 인지도 높이고 싶은 래퍼들 6개월짜리 세미 연예인으로 만들어 주기 프로그램화가 예정되어 있는 DTB. 지금 관객으로 와 있는 너네들 떨어뜨린 DTB.
유피나 스코언도 아닌 무슨 놈의 형진이를 내 라이벌로 만들어 놓은 극악무도한 DTB, 오늘 시원하게 까고 간다.
점점 망가지는 DTB를 보며 언젠간 내 곡이 언뜻 생각날 때가 있을 거다.
내가 나온 이번 시즌이 DTB의 전성기일 테니 앞으로 쇠락하는 DTB 시즌을 보면서 오늘을 그리워하지 말고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겨 놓으라는 미래 저격 가사에 뜨거운 호응과 열광이 쏟아졌다.
거봐, 본인이 몸담은 곳 저격 디스만큼 호응 뽑아낼 곡이 없다니까.
그리고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회귀 전에도 최고 시청률을 찍었던 게 시즌 4였으니까.
참고로 오늘의 내 컨셉은 궁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