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6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66화(26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66화
홀로 무대 위에서 한 곡을 온전히 불러 보는 게 얼마 만이던가.
DTB 콘서트에 초대되어 <빌런(villain)>을 부른 이후로는 한 번도 혼자만의 무대를 가진 적이 없었지.
레브 단독 콘서트에서도 류재희에게 솔로 무대를 양보하고 서예현과 유닛으로 솔로곡 무대를 했으니.
작은 공연장,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단콘처럼 많지도 않은 관객 수, 관객과 가까운 무대, 곡이 고조될수록 후끈거리는 열기.
음악 방송의, 콘서트의 무대와는 또 다른 무대.
언제나처럼 다섯이 아닌 나 혼자서 무대 위에 서서 이 작은 무대를 휘저어 가던 중, 문득 기억이 스쳐 갔다.
열다섯의 나는 이 무대를 홀로 채우는 것을 동경했고, 그곳에서 등을 돌린 이후에도 아주 가끔 그리워했음을.
그래서 나는 DTB에 나오는 게 두려웠다. 충족시키지 못한 내 욕망을 이루면 더욱 많은 것을 갈구하게 될까 봐. 그래서 내 본업에 소홀해질까 봐.
그런데 막상 과거에 그렇게 동경했던 무대에 오르니…….
‘한풀이…… 인가.’
이루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련만 사라질 뿐, 혼자 하는 무대에 더 욕심이 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대신 욕심보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처음 듣는 낯선 곡을 향한 이 수많은 이들의 호응 덕분이었다.
아, 윤이든 아직 안 죽었다고.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면서 부담에서 벗어나 보라는 지원이 형의 충고가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DTB에서 떨어진 래퍼들을 관중으로 부른다던 스코언의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리듬에 맞추어 위아래로 손을 흔들어 대는 관객석에는 몇몇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은 내가 DTB를 디스할 때마다 더욱 열렬히 열광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가려운 곳 시원하게 긁어 줬으니까 나갈 때 투표나 한 표 보태 주고 가라.
마지막 소절을 마치고 숨을 몰아쉬며 마이크를 내리자 박수와 함께 함성이 쏟아졌다.
등을 돌려 백스테이지로 내려올 때까지 쭉 이어지는 그 환호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노란색 티셔츠가 뜨거운 공연장의 열기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무대를 홀로 휘젓고 다닌 탓인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비니를 벗자 머리카락에서 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내게 건네지는 수건을 받아 젖은 머리를 가볍게 털었다.
아직 금발을 유지하고 있는 머리카락이 부스스 흩어졌다.
대기실로 들어오자마자 스코언이 박장대소하며 내 등을 두드려 댔다.
“이야, 힙합을 하라니까 진짜 죽이는 힙합을 들고 왔네! 너는 진짜 나랑 결승까지 가자.”
“그럼 저야 영광이죠.”
가볍게 말을 받으며 그 뒤로 이어지는 세븐킥과 유피의 무대를 대기실에 놓인 화면으로 구경했다.
세븐킥과 유피도 무대를 마치고 땀범벅이 된 채로 대기실로 들어왔다.
조장 계급의 다섯 무대가 모두 끝나고, 관객들의 투표가 시작되었다.
공연장을 나가면서 공을 가장 인상 깊게 본 무대의 래퍼 이름이 적힌 상자에 집어넣는 것이 투표 방식이었다.
조작 논란이 일어나지 않게끔 투명한 아크릴 상자를 준비해 두었다.
투표가 진행될 동안 조장 다섯은 다들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대기실에서 수건을 목에 걸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결과를 듣고 프로듀서 중간 점검권을 얻은 사람이 프로듀서를 지목하는 부분까지 촬영하고 가야 했기에.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스코언이 나를 쿡쿡 찌르더니 물었다.
“그런데 무대에서 안대는 왜 한 거야? 지금 안대 안 쓴 눈 멀쩡한 거 보니까 눈병은 아닐 테고, 해적 컨셉이야? 아니면 뭐, 그거냐? 오른눈의 흑염룡? 그런데 왜 왼쪽 눈에 찼어?”
왜 다들 눈병 환자 아니면 해적이라고 보는 거지? 서예현과 김도빈만의 문제가 아니었군.
“아니요, 궁예요.”
“아, 그래서 옷이 노란색…… 야, 기왕 할 거 제대로 안대도 금색으로 하고 오지. 머리도 빡빡 밀고.”
그래도 명색이 아이돌인데 궁예 콘셉트를 한답시고 머리까지 미는 건 좀.
그래서 김도빈의 비니로 머리카락을 가리는 걸로 대머리를 대신했다. 비니 색깔이 남색이라 색은 좀 미스매치이긴 하지만.
“아니, 어떻게 DTB에서 DTB 미래를 디스할 생각을…….”
세븐킥이 여전히 넋 나간 얼굴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휙휙, 대기실의 우리를 찍고 있는 불 들어온 카메라를 의식하며 잔뜩 목소리를 낮춘 세븐킥이 속닥였다.
“혹시 너희 소속사가 덥넷 최대 주주야?”
“아니요? 저희 소속사는 빽이라고는 없는 좋소인데요.”
나는 분명히 ‘좋소’라고 했다, 시스템아. ‘좋은 소속사’ 줄여서 ‘좋소’니까 지레 오해해서 초심도 깎지 마라.
“그런데 그랬다고? 이건 깡이 미친 게 아니다. 얘가 미친 거지.”
세븐킥이 관자놀이에 대고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면전에서 미친놈 소리를 듣는 건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뭘 그 정도 수위 가지고 호들갑이야. 들어 보니까 딱히 선 넘는 가사도 없드만.”
하지만 이 말을 나를 향한 올려치기로 받아들인 건지 IJM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허어, 그래서 형님은 DTB에서 DTB 망할 거라고 악담을 퍼부을 수 있다고요?”
“…….”
세븐킥의 물음에 IJM이 왜인지 아득해진 얼굴로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악담이라니. IJM의 말마따나 선 딱딱 지킨 유쾌한 디스인데.
그런 세븐킥과 IJM의 만담을 들으며 웃음을 터트리던 스코언이 내 어깨를 확 끌어당기며 장난조로 말했다.
“이든이 1등 안 되면 이거 싹 통편집당하는 거 아니야? 무조건 얘가 1등 해야겠는데?”
그런……가? 설마 덥넷이 쪼잔하게 그럴 리가? 그러고도 남을 것 같긴 하지만, 설마 내가 지금까지 뽑아 줬던 방송각이 얼만데 그럴 리가?
“남의 분량 걱정하실 만큼 여유 넘치셔서 좋겠네요.”
유피의 비소 섞인 말에 분위기가 단번에 싸해졌다.
왜 회귀 전에 DTB 4가 끝나고 스코언과 유피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녔는지 알 것 같았다.
세간에서는 무명에서 저를 밟고 단번에 인기스타로 급부상한 유피를 스코언이 질투해서 그렇다고 했었지만, 내가 봤을 때 스코언 저 형님이 그럴 성격은 아니고.
그냥 유피가 싸가지 없고 분위기에 자꾸 찬물 끼얹어서 싫어했던 듯? 그런데 그게 DTB가 끼면서 1위를 향한 2위의 질투, 이런 식으로 몰아가진 거군.
역시 떠돌아다니는 입소문은 믿을 것이 못 된다니까.
투표가 끝났다는 제작진의 말에 우리는 얼어붙은 분위기가 된 대기실을 나섰다.
[IJM: 10] [스코언: 34] [윤이든: 41] [세븐킥: 7] [유피: 25]무대에 나란히 서자 결과가 발표되었다. 꼴등을 차지한 세븐킥의 표 수를 보고 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필 왜 표도 이름대로 일곱 표를 받아서…… 차라리 원헌드레드킥으로 짓지 그랬어.
내 표는 2등을 차지한 스코언과는 딱 일곱 표 차이였다. 완전히 압승했다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겨우 이겼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만한 표차였다.
의외라면 유피였다.
현재 방송은 오늘 3화를 앞두고 있기에 유피는 아직 대중에게 제대로 각인이 되지 않은 상태.
딱히 힙합 언·오버그라운드에 적을 두고 있는 편도 아닌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3등을 차지했다.
4등인 IJM과의 표차보다 2등인 스코언과의 표차가 더 적었다.
역시 회귀 전에 우승을 차지할 만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내가 있어서 좀 어렵겠지만.
아마 1대1 매치가 나오는 3차 예선 내용이 담긴 3화가 방영된 이후였다면 유피가 더 치고 나올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축하드립니다, 이든. 총 41표로 게릴라 미션 1위를 차지했습니다. 1위 상품으로 프로듀서 중간 점검권이 주어집니다.”
드디어 손에 넣었다……! 우리 조의 갈등 서사를 최소화해 줄 아주 중요한 열쇠……!
“자, 그러면 원하시는 프로듀서 한 분을 지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무대의 스크린에 총 여덟 명의 프로듀서들의 얼굴 사진이 떴다. 마이크를 건네받고 망설임 없이 한 명을 지목했다.
“저는 G1 프로듀서님 지목하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하하호호 함께하는 곡 작업이 아니라 전문가의 충고였으니 가요계에서도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리는 G1이 제일 적임자였다.
1차 녹음본까지 나오도록 팀원들을 재촉한 보람이 있었다.
내게 필요한 건 훅 부분의 점검도, 팀원들 파트의 가사 점검도 아닌 중간 완성본을 들은 전문가의 말 한마디였다.
물론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조장의 무게는 무겁구나. 이놈의 카메라만 없어도 참으로 가벼웠을 텐데. 카메라만 없으면 갈등이고 팀 분위기고 내 알 바겠냐.
어차피 우리 레브처럼 평생 갈 것도 아니고 딱 일회성인데 노래만 잘 뽑히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촬영이 끝나고 로드 매니저가 끌고 온 밴에 타서 시간을 확인했다.
딱 DTB 3화를 할 시간에 맞춰서 숙소에 들어가게 생겼다.
오늘은 가는 길에 치킨이나 한 마리 사 갈까? 서예현이 난리 칠 것 같으니까 튀긴 것 말고 구운 치킨으로다가.
* * *
[DROP THE BEAT SEASON 4 Ep.3] [2차 예선에서 올라온 총 54명의 래퍼] [이 중 절반은 떨어져야만 한다!]스크린에 순위대로 적힌 이름이 떠오르자 탄식과 원성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MC: 지금 보시는 순위는 여러분들의 2차 예선 평가 순위입니다.]몇몇 래퍼들이 얼굴을 찌푸리거나 발을 굴리는 장면 후, 래퍼들의 개인 인터뷰가 이어졌다.
[스코언: ALL PASS라 내가 당연히 1위일 줄 알았는데 위에 한 명이 더 있더라고요? 나 이제 긴장 좀 해야겠다, 하하.] [G-TE: 뭐지? 대체 기준이 뭐지? 내가 22위? 7PASS인데?] [투혁: 좀 어이가 없었죠. 2차 예선만으로 평가한다고 했으면 성장 가능성, 이딴 걸 보지 말고 2차 예선에서 보여 준 것으로만 평가를 해야지. 뭐 하자는 건데.]-대체 평가 기준이 뭐임? 그냥 제작진이랑 프로듀서들 마음대로 아님?
-일단 1위가 스코언도 아니고 윤이든인 것부터ㅋㅋㅋㅋ 어그로점수도 있었던 듯ㅋㅋㅋ
[MC: 이번 시즌에는 하위권 래퍼들부터 지목 우선권 및 차례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MC의 말에 굳는 지원자들의 표정]-덥넷 너무 무리수 둔 거 아니야? 하위권 애들이 방송각을 뽑아줄 거라고 믿음?
-하위권 애들도 선택 개부담될 듯 자기 손으로 무덤자리 고르는 거 아녀 이거
[룰이 변경됐다!?] [이제까지는 랜덤이었던 매칭 방식] [하지만 지금부터는 지목전이다!] [곧바로 서로를 스캔하는 참가자들의 날카로운 눈빛] [MC: 54위, 유피. 1대 1 대결 상대를 지목해 주시길 바랍니다.]제 이름이 지목되자 유피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유피가 대진표를 훑었다.
[유피: 저는…….] [과연 그의 선택은?]-53위 선택하기만 해 봐라
-얘 누구였지? 2차 불구덩이 때 임팩트 좆도 없어서 기대 1도 안 간다……
-화끈하게 1위 선택하고 명죽해라
유피에게로 주목되는 참가자들의 시선을 한 번 담은 카메라가 드디어 다시 입을 연 유피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유피: 1위, 윤이든 지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