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6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69화(269/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69화
예상대로, 유피와 나의 매치 결과를 두고서 치열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그건 내가 원하던 상황이기도 했다.
패배했다고 비웃음당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제대로 쌈판이 깔리는 게 낫지.
물론 유피를 올려 치기 위해 내 실력을 내려 치는 놈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건 흐린 눈하고 내가 이겼다는 댓글만 맑은 눈으로 보았기에 알 바 아니었다.
일단 이렇게 불타오르는 거 자체가 이 결과가 잘못되었다는 증명 아니겠어?
다들 납득할 만한 승패의 결과였으면 내가 넷상에서 억까와 덥넷 대본 조작질의 피해자가 되어 있지도 않았겠지.
DTB를 시청하던 내 친구들과 언더시절 인맥 형들도 이거 진짜로 짜고 친 대본 아니냐고, 제발 패자부활전 결과 스포 좀 해 주라고 우르르 메시지를 보내댔다.
[스포 시 4억 배상] [다음 주에 본방사수 ㄱㄱ]물론 답장은 이걸로 통일했다. 스포했다가 덥넷에서 나한테 고소 때리면 어떡해.
“이든아, 밥 먹자니까 왜 그렇게 사악하게 웃고 있어?”
접시에 담긴 고등어구이를 식탁에 놓으며 견하준이 내게 한 소리 했다. 콧노래를 멈추고 하도 활짝 웃어 당기기 시작하는 입꼬리를 문지르며 물었다.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고? 내가?”
“어, 네가.”
견하준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불길이 꺼질 기세가 보이지 않는 너튜브의 댓글창을 끄고 식탁에 앉았다.
이번에 여행 예능 프로그램의 정규 멤버로 들어간 김도빈과 명품 브랜드 패션쇼에 초청받아 파리로 떠난 서예현, 음악방송 MC를 맡은 류재희가 숙소를 비웠기에 오늘 자 개인 스케줄이 따로 없는 나랑 견하준만이 숙소에 남았다.
언제나 다섯 멤버로 북적이던 식탁은 단둘이 앉자 영 휑했다. 식사가 거의 끝마쳐 갈 때쯤에 견하준에게 질문을 던졌다.
“준아, 너는 갑자기 내가, 아니, 아니지. 설정을 최대한 맞춰야 하니까, 음…….”
견하준과 나는 상호 신뢰 관계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는 상태니 가정을 나로 하면 유의미한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사람이 너한테 대뜸 지금 멜로디랑 안 어울리는 것 같으니 가창 스타일을 일시적으로 바꿔 보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잠시간 고민한 견하준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기분 나쁘겠지.”
“만약 곡 완성도를 위해서 꼭 바꿔야 하는 상황이어도?”
“아무래도 기분과 상황은 별개니까. 그리고 이미 몸에 밴 방식이 쉬이 바뀌기도 쉽지 않고. 내가 계속 그 방식을 고집하는 건 내게 맞는 스타일이라고 이미 정립이 된 거잖아.”
내 기준으로 역지사지를 해 봤지만, 나는 곡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그런 수고쯤은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 역지사지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견하준의 의견이 필요했다. 견하준과 투혁은 닮은 점이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실력이 있고, 자존심이 세다는 점에서. 내가 작업하면서 지켜본 결과, 투혁의 자존심 수준은 견하준과 얼추 비슷했다.
다만 견하준은 내가 저한테 그렇듯 저 역시 내게 한 수 접어 주는 편이었지만, 투혁은 내게 그럴 의리도 이유도 없었으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견하준의 모습을 기준으로 하는 편이 정확했다.
“그럼 너는 어떻게 부탁을 받아야지 기분이 덜 상할 것 같냐?”
“이번 조별 음원 미션 때문이지?”
뭐, 딱히 숨길 생각도 애초에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꼭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만 충분하다면 기분은 상할지언정 티는 안 내겠지. 어차피 일회성 팀이니 상대방 기분은 크게 상관없잖아. 직접적인 갈등만 안 일어나면 되는 거 아니야?”
음, 정말로 상황 맞춤형 조언이었다.
일회성 팀은 맞긴 해도 무대 준비부터 이제 곧 제작진 측에서 요구해 올 단합 대회까지 쭉 함께해야 해서 문제지만.
“그리고 결과물이 괜찮으면, 그래서 그 사람의 요구가 결과적으로는 옳았다는 걸 확인하면 기분 정도는 금방 풀리니까.”
덧붙인 견하준이 이건 언제까지나 제 입장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견하준이 말한 ‘꼭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 그것은 이미 확보되었다.
바로, 조장 게릴라 미션으로 따낸 프로듀서 중간 점검권.
이걸 따기 위해서 내가 DTB 디스라는 무리수까지 감당했다고. 물론 미래의 DTB는 욕 좀 처먹어야 하긴 하지만.
“네가 괜찮다면, 한 수 접는 태도로 가는 편이 제일 낫긴 하지. 통보랑 부탁은 엄연히 다르잖아.”
“한 수 접는 태도라…….”
내 방식대로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거 뭐, 내 식대로 한 수 접어 주지.
* * *
프로듀서 중간 점검권 찬스 사용일로부터 D-1.
G1, 즉 지원이 형을 선택한 이유는 지원이 형이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대한 이유가 있었다.
덥넷이 설치한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단둘이 따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 꼼수였다면 꼼수였지만 중간 점검권을 따지 못하면 지원 형을 따로 부를 생각도 단념했을 것이기에 딱히 양심에 찔리진 않았다.
“여어, 화제의 중심!”
이제는 익숙해진 장소인 지원 형의 작업실로 들어가자마자 모니터 앞에 놓인 제 노란색 색안경을 집어 들어 쓴 지원이 형이 빙그르르, 의자를 돌려 나를 반겼다.
내가 입은 것처럼 가슴골까지 훤히 보이진 않지만 어느 정도 파인 오픈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최대한 가슴팍을 내려다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떨떠름하게 물었다.
“아니, 형. 많은 옷 두고 그런 걸 대체 왜 입으세요?”
“이거 웃기는 놈일세. 자기가 유행시켜 놓고 정작 본인은 질색하고 있어.”
“그건 방송용, 팬서비스용이었다고요. 누가 이런 끔찍한 게 유행 탈지 생각이나 했겠어요?”
윤이든병이 다시 역병 취급을 받으려 하고 있단 말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무작위 유행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얌마, 형이 입은 옷을 보고 끔찍한 거라니.”
지원 형이 내게 헤드록을 걸었다. 점점 팔이 조여올수록 내 얼굴과 가까워지는, 훤히 열린 가슴팍이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언제는 부담스럽다면서요! 시각 테러 복수예요?”
“아니? 방송으로 보니까 은근 괜찮아 보이더라고?”
“설마 그건가? 용철효과?”
“용철효과? D.I? 그건 또 뭔데?”
“주변 상황에 의해 상대적 올려 치기가 되는 거요.”
용철이 형이 DTB 3에 나갔다가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게 된 이후로 우리 크루 사이에서 명명된 학명이었다.
솔직히 용철이 형이 미남은 아니지. 내 눈이 서예현 때문에 높아졌다고 하기엔 예전부터 용철 형을 미남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딱히 없었다.
용철효과의 뜻은 본인에게 꼭 전달해 주겠다는 지원이 형의 다정한 말에 하도 단체 채팅방에서 우려 먹혀서 이미 본인도 알고 있다고 맞받아쳐 주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중간 점검은 내일이긴 한데, 지금 미리 들어 보시라고요.”
가져온 조별 음원 미션 1차 녹음본을 재생시켰다. 시작부터 넣은 훅은 내 파트였기에 턱을 까딱거리는 지원 형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훅 뒤로 이어지는 벌스를 듣자 표정이 미묘해지더니, 가장 끝에 내 벌스가 나올 때까지 찡그린 표정을 유지했다.
“너 일부러 이렇게 했지?”
1차 녹음본 재생이 끝나자마자 지원 형이 내게 불쑥 물음을 던졌다.
“예?”
모르는 척 되묻자 곧바로 타박이 날아들었다.
“인마, 모르는 척하지 말고.”
역시 이 형님 눈까지는 속일 수 없나.
“파트 순서부터 제일 첫 벌스로 제일 힘 빠지고 거슬리는 놈을 넣어 놓지 않나, 랩스타일 비슷한 놈들 두 놈을 연속으로 늘어놔서 질리는 것도 그대로 두고. 1차 녹음이라지만 네 재량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딱 들켰네요.”
비실거리며 웃으니 지원 형이 눈썹을 치켰다.
“지금 중간점검 하는 건 음원 공개 전에 나올 텐데, 아무리 1차 녹음본이라고 해도 이 퀄리티를 내보내도 돼? 다들 너한테 프로듀싱으로 기대하는 기대치가 있을 텐데?”
나도 다 생각이 있었다. 괜히 사다리 뽑기 따위로 순서를 정하고, 투혁의 랩스타일을 터치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둔 것이 아니었다.
“지금 한창 핫한 서사 있잖아요. 저 제대로 물 먹인 서사.”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들은 지원 형이 허, 실소를 터트렸다.
실력을 숨긴 유피. 기대치를 잔뜩 낮추고 빵 터트려서 80의 실력을 90까지 부풀린 언더독.
“그거 한번 해 보려고요, 저도. 팀플 어려운 건 다들 알잖아요? 그러니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고스란히 돌려줘 보겠어요.”
한쪽 입꼬리를 끌어당겨 씩 웃자 지원 형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아프지 않게 툭 쳤다.
“짜식, 은근 뒤끝 있어.”
삐뚤어진 색안경을 쓱 고쳐 쓴 지원 형이 의자 팔걸이에 팔꿈치를 얹은 채로 손깍지 끼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팀원들도 따돌리고 단둘이 만나서 부탁하고 싶은 게 뭔데?”
내가 프로듀서 G1에게 부탁할 건 딱 하나였다.
“중간 점검에서 평가하실 때, 투혁 파트, 이대로는 안 된다고 확실히 말 좀 해 주세요. 그거면 돼요.”
나머지는 다 내 재량으로 할 수 있으니 내 재량으로만 하기 힘든 투혁 마음 뒤흔들기만 도움을 받아야지, 어쩌겠나.
“오케이, 내가 또 이런 거 전문이잖아.”
“잘 알죠. 그러니까 제가 형한테 부탁드렸죠.”
곡 녹음 때마다 꼼꼼하게 잡아 대기로 악명 높은 G1 아니던가. 직접 겪어 보고, 눈앞에서 보기도 하고. 그래서 충분히 믿음직스러웠다.
“투혁이 첫 벌스 맞지?”
“오, 바로 아시네요.”
“첫 벌스가 누가 들어도 이대로는 안 되는 파트니까. 이 친구는 비트 듣고도 여기를 선택했대?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 얘는 여기서 붙어도 프로듀서 팀 선택 단계에서 떨어지게 생겼는데?”
지원 형이 투혁의 운명을 예감하며 혀를 찼다.
“참, 어때? 슬럼프 극복은 순탄하게 되어 가냐?”
조장 게릴라 미션 이후 완전히 되찾은 자신감으로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하는 악상을, <슬럼프 극복> 폴더에 하나둘씩 쌓이는 짤막한 완성곡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씩 되더라고요.”
“거봐, 내가 DTB 나오면 슬럼프 극복에 도움 좀 될 거라고 했잖아. 이러나저러나 슬럼프에는 좋아하는 거 마음껏 하면서 머리 비우는 게 최고라니까.”
지원 형이 가볍게 내 등을 두드렸다. 망할 놈의 악편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으면 터졌지 절대 비워지지는 않던데요.
내가 지금 류재희한테 외주를 줬던 판단력과 지능을 어쩔 수 없이 셀프로 굴리고 있는 판국인데, 머리 비우기는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