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7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70화(27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70화
프로듀서 중간 점검권 찬스 사용일 당일.
“안녕하십니까!”
카메라가 설치된 우리 조의 작업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지원이 형을 향해 잔뜩 각 잡힌 인사가 쏟아졌다.
무려 이제까지 우리에게 날 선 평가들을 내뱉어 왔던 심사위원이자 프로듀서의 앞이니 긴장할 만도 했다.
물론 나는 어제도 단둘이 만난 사이였기에 딱히 긴장하진 않았다.
팀원들과 한 명씩 악수를 나눈 지원 형이 내가 빼 준 의자에 털썩 앉으며 짐짓 모른 척 물었다.
“작업은 어디까지 됐어요?”
“지금 파트 순서랑 훅이랑 다 마무리하고 1차 녹음본까지 나왔습니다.”
“오, 작업 속도 빠르네. 프로듀싱 가능한 팀은 역시 달라.”
나를 한껏 치켜세워 준 지원 형이 손짓했다.
“그럼 1차 녹음본 한 번 들어 보죠.”
마우스가 몇 번 달칵거리고, 1차 녹음본이 재생되었다.
역시 다시 들어도 역시 엉망이었다. 레브 곡이었으면 이런 걸 1차 녹음본으로 나오게 두는 일 자체가 없었을 텐데.
그래도 음원이 공개되기 전까지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한껏 낮춰 주기에는 충분했다.
곡이 끝났지만 지원이 형은 무어라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작업실의 분위기 역시 점점 가라앉았다.
“하아…….”
숨소리 하나 없는 고요한 작업실에 울려 퍼지는 깊은 한숨에 팀원들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었다.
서늘한 눈빛이 우리를 쭉 훑었다.
“이게 여러분들 최선이에요?”
분명히 다들 반팔을 입고 있는 한여름인데도 그 한마디에 분위기가 칼바람이 불은 양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누른 지원 형이 웃음기 하나 없는 어조로 말했다.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총체적 난국이야, 지금.”
나란히 선 우리 넷은 서로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다들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1차 녹음본이 완성되고 이거 다 찢었다며 기뻐하던 이가 무려 넷 중 셋이었으니까.
그래, 나 빼고 세 명.
내가 중간 점검권을 목숨 걸고 따낸 이유가 다 있었다. 다들 이렇게 위기감이 없으니까 팩폭으로라도 얻어맞아야지 정신을 차릴 것 아닌가.
하지만 내가 하면 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지원이 형한테 외주를 준 거다.
원래 이런 건 다 외주 맡기는 거야. 나중에 음악으로 보답하면 되지.
“첫 번째 벌스 누구예요?”
지원 형의 물음에 주저하던 투혁이 말없이 슬쩍 손을 들었다.
“본인이 본인 파트 듣고 느끼는 거 없어요?”
바로 질문이 직설적으로 꽂히자, 투혁 본인 역시 본인 파트가 문제임을 느끼고 있었긴 한 건지 몸을 움찔했다.
투혁은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할 말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입을 앙다물었다.
“지금까지 예선 올라오면서 운 좋게 본인 스타일에 맞는 비트만 당첨된 모양인데, 비트에 본인 스타일을 맞춰야지. 왜 본인 스타일에 비트를 맞추려 들어.”
쏟아지는 독설에 투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게 자신 없었으면 이 조를 선택하면 안 됐지. 본인이 비트 듣고 선택한 거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날카로운 지원 형의 눈빛에 투혁이 고개를 떨구며 순순히 시인했다.
좋아, 이걸로 랩 스타일 바꾸자고 요구할 당위성은 충분히 얻었고.
내가 뒷짐 진 주먹을 불끈 쥐든 말든 지원 형의 예리한 독설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나 중간에 듣다가 끌 뻔했어. 너무 지루해서. 훅 없이 바로 벌스 연결하려면 변주라도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이든아, 너희 그룹 프로듀싱 안 해 봤어? 아니잖아. 이건 일회성 팀이라 대충해도 될 것 같아서 이런 거야?”
오우, 지원이 형. 방송각 팍팍 뽑아 주는데?
내게로 향하는 화살에 웃지 않기 위해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 웃으면 돌이킬 수 없어지는 거다.
“훅은 좋아, 그런데 그거뿐이야. 그리고 마지막 1분에서 이든이가 포텐 터트린 건 좋은데, 그거 들으려고 앞의 2분을 참아야 해? 이든아, 네가 조장이잖아. 이거 팀플이야. 같이 끌고 가야지, 팀원들 다 죽이고 너 혼자만 돋보이면 어떡하자는 건데.”
아, 이렇게 또 팀원들이 내게 죄책감 좀 가지라고 나를 집중적으로 조지기까지 해 주다니. 심지어 연기처럼 느껴지지 않고 꽤 진심 같았다.
일부러 착잡한 얼굴을 만들어 고개를 끄덕이며 지원이 형을 향해 무한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역시 저 형은 방송을 잘 안다니까. 역대 DTB 프로듀서 짬바 어디 안 가죠?
“이렇게 완성본 내면 이 팀 꼴등 예약이야. 딱 보여. 이건 그냥 여러분들이 재미로 한 번 녹음한 수준이어야 했어. 나한테 점검받는 1차 녹음본이 아니라.”
이제 작업실에는 한껏 죽인 숨소리와 지원이 형의 목소리밖에 울리지 않았다.
냉철한 평가에 드디어 현실을 자각한 팀원들이 초조한 얼굴이 되었다.
특히 초반에 팩폭으로 거하게 얻어맞았던 투혁의 얼굴은 거의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이거 음원 평가 미션인 거 알고 있죠? 나야 지금 여러분들 작업 중간 점검을 해 줘야 하니까 끝까지 들은 거지만 대중들은 지루함 참고 끝까지 들어 줄 이유가 없어. 그거 명심해야 해.”
끝까지 충고를 해 준 지원이 형이 중간점검을 마쳤다. 원하는 말은 모두 들었기에 매우 뿌듯했다.
물론 넷 중에서 나만.
* * *
“형님들, 그거 들었어요? 스코언 조는 제주도 간대요. 유피 조는 동해 바다 쪽으로 가고요.”
스코언 조야 다들 파이트머니를 50만 원 이상 보유한 쟁쟁한 래퍼들만 모였고, 유피 조는 다섯 명이라 파이트머니가 충분할 터였다.
“오, 제주도.”
“우와, 좋겠다.”
나와 라이조가 차례로 별 감흥 없는 어조로 대꾸했다. 투혁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도 슬슬 단합 대회를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야 할 텐데, 혹시 다들 의견 있으세요?”
단합 대회는 나름 중요한 이벤트였다.
훈훈한 팀 분위기를 연출해서 시청자들에게 호감 가산점을 받기도 하고, 이색 체험이나 호화 여행을 연출하여 방송에 길게 얼굴을 내보여 이름과 얼굴을 익히게도 하고.
하지만 제주도와 동해가 나온 이상 해병대 캠프급이 아니라면 우리는 웬만한 곳으로는 눈길을 잡아끌기엔 글렀다.
시즌 3에서 글램핑장을 갔던 팀은 바비큐 구워 먹는 모습 10초 비추고 통편집행을 당했기에 글램핑은 탈락. 놀이공원? 남자 넷이서? 바로 탈락.
라이조가 의견을 냈다.
“저희는 그냥 최대한 싸게 다녀오죠. 예를 들면 등산이라던가.”
설마 라이조가 조장 선택의 날에 등산복을 입었던 나를 택했던 이유가…… 내 리더십 룩을 보고 감명 깊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등산을 좋아해서였어?
이건 좀 충격인데?
“물이랑 주전부리 같은 것만 파이트머니로 사면 되니까 돈도 별로 안 들 것 같은데, 어때요?”
진지하게 예산 꾸리는 걸 보아하니 단합대회로 등산을 가자는 말이 정말로 진심인 모양이다. 라이조한테는 유감이지만 나는 등산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등산이요? 전 결사 반대요. 남자 넷이 말없이 산만 오르고 있으면 제가 PD여도 우리 팀 통편집시켜요.”
니지어스가 진심으로 질색하는 얼굴로 고개를 격렬하게 저었다.
“투혁 씨는 따로 의견 있어요?”
“아무데나요.”
투혁이 툭 내뱉었다. 지원이 형에게 본인 파트 독설을 들은 이후로 투혁은 영 팀에 협조를 안 해 줬다.
자기 나름으로도 충격이 컸단 걸 알겠지만 제발 내가 세탁할 수 있을 수준으로만 해 줬으면 했다.
“그럼 저희끼리 정해도 괜찮나요?”
“네.”
짧은 단답이 돌아왔다. 저걸 또 비호감이 되지 않도록 세탁해 줘야 한다니. 조장의 길은 참 멀고도 험하구나.
* * *
단합 대회 당일.
“노래방…….”
단합 대회 장소를 공개하자 투혁이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네, 노래방으로 결정됐습니다. 어차피 지금 팀 분위기로는 숙소를 잡고 놀아도 축 처지기만 할 것 같아서요.”
그래도 나름 통편집을 피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했다.
카메라맨과 함께 노래방에 들어가 방을 잡고 노래 선곡을 시작했다.
서로 눈치를 보는 건지 아니면 랩 서바이벌 노래방까지 와서 랩을 하기 싫은 건지 다들 발라드만 선곡했다.
내 비장의 한 수가 없었더라면 한 5초 정도 나오고 통편집되었을 게 분명했다.
우리보다 돈을 덜 쓴 조가 없다면 ‘최저 예산’ 타이틀 정도는 얻었을 테고, 우리보다 돈을 덜 쓴 조가 만약 있다면 그 정도 주목도 받지 못한 채로 묻혔겠지.
그렇게 한참을 어색하게 앉아서 본인이 선곡한 노래만 부르고 있는 와중, 절절한 고백 노래를 선곡한 니지어스가 제 차례가 다가오자 마이크를 잡고 내게 눈짓했다.
들고 온 스케치북을 챙겨 모니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라이조의 손길에 의해 끌려 나온 투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 앞에 섰다. 스케치북을 한 장 넘겼다.
[투혁 씨, 할 말이 있어요]스케치북에 적힌 제 이름을 본 투혁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은 이렇게 마음을 전하게 되네요] [혹여 이 마음이 투혁 씨에게 상처가 될까 봐 많이 고심해 봤지만 중간 점검 이후로 확실해졌어요]어제 숙소에서 마커로 정성스럽게 쓴 스케치북 편지였다.
한 장 한 장 투혁을 향한 내 마음이 적혀 있었다. 니지어스가 열창하는 고백 노래가 비지엠으로 깔렸다.
스케치북이 넘겨질수록 투혁이 넋 나간 헛웃음을 흘렸다.
다행히 이 스케치북 편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투혁이 요새 내내 두르고 있던 예민한 기세는 많이 누그러졌다.
[투혁 씨, 랩스타일과 톤을 비트에 맞게 이번 한 번만 바꿔보지 않겠어요?투혁 씨 홀로만 바꾸라고 하면 억울할 거 아니까 저도 함께 바꾸겠습니다.
우리 함께 잠깐의 노력으로 완벽한 곡을 만들어 봐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마지막 말은 혹여 모를 악편을 피해 스케치북 한 장에 빽빽하게 담겨 있었다.
“조명도 그렇고, 글자가 너무 작아서 안 보여.”
몸을 한껏 기울이고 눈을 가늘게 떠서 글자를 읽던 투혁의 말에 그를 잡고 이끌었다.
“자자, 이쪽으로.”
카메라 앞에 스케치북의 글자가 잘 보이도록 놓고 마이크를 잡고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낭독을 시작했다.
어디 한번 잘라서 악편 해 봐라. 스케치북도 한 장 한 장 다 찍어 놨으니까 내 인별에 올리면 그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