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8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84화(28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84화
“아, 괜히 따라온다고 했어. 대기 시간만 지금 몇 분이야?”
윤이헌이 인상을 찡그리며 저를 이곳까지 끌고 온 친구를 향해 타박을 던졌다. 하품을 한 번 한 친구가 귀를 후비며 맞받아쳤다.
“야, 그래도 우리는 투표권 있는 방청권이라 선입장하는 거지. 이게 다 이 형님의 운빨 덕분에 투표권까지 행사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
이 친구는 설날 잠깐 윤이헌의 단톡방에 등장했던 DTB의 오랜 애청자로, 현재 스코언을 열렬히 응원 중이었다.
마침 DTB 방청 신청에 응모했다가 동반 1인으로 딱 붙은 바람에 누구를 데려갈까 고민하다가, DTB 시즌4 화제 몰이의 80%를 담당하는 사촌 동생을 둔 윤이헌이 선택된 것이다.
윤이헌을 달래듯 그의 어깨에 팔을 턱 올린 친구가 무슨 중대한 거래를 하는 양 낮게 속닥였다.
“내가 의리로 특별히 윤이든 조는 네 사촌 동생한테 표 던져 줄게. 그 대신 너도 스코언 조에서 무조건 스코언 뽑아. 다른 조는 네 마음대로 하시고.”
“의리고 나발이고 그냥 제일 잘하는 놈한테 정정당당하게 던져. 나도 솔직히 내 사촌이라고 무조건 뽑을 생각 없으니까.”
“솔직히 느이 사촌 동생이 제일 잘하긴 해. 음원 안 들었냐?”
“듣긴 들었는데 파트가 구별이 안 가서 어디가 걔 파트인지를 모르겠더라.”
사실 파트가 나눠진 걸 의식할 만큼 집중해서 듣지는 않았다.
그저 훅이 꽤 중독성 있고 좋다는 것과 마지막 부분이 제일 귀에 잘 꽂힌다는 것만 느꼈을 뿐.
“그걸 구별 못하겠다고? 대체 얼마나 개쓰레기 음질로 들었으면 그게 구별이 안 가냐?”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길고 긴 대기 시간 끝에 윤이헌과 그 친구는 드디어 촬영이 이루어지는 스튜디오에 입장했다.
관객석과 무대의 거리는 꽤 가까웠다. 돌출 무대는 설치되어 있지 않아 공연장보다는 지하 클럽을 생각나게 했다.
“순서는 조장들의 뽑기로 정해집니다! 자, 그럼 윤이든 씨부터 무대 순서를 뽑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 이거라도 파이트머니 순대로 하게 해 줘라. 파이트머니 뒤지게 따면 뭐 하냐. 백날 천날 뽑기로만 돌리는데.”
MC의 말에 친구가 투덜거렸다.
윤이든이 무대 뒤의 스크린으로 크게 비쳤다. 설날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역시 화장발과 조명발이란 건 존재하는구나. 얼굴만 멀끔한 동네 백수건달이 아니라 제법 연예인처럼 보이는 윤이든을 보며 느낀 점이었다.
“5번이네요.”
5라고 적힌 공을 뽑은 윤이든이 공을 들어 올리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그 후로도 줄줄이 공을 뽑으며 순서가 정해졌다.
1번은 스코언, 2번은 유피, 3번은 세븐킥, 4번은 IJM, 5번은 윤이든.
“이거 미리 조작해 놓은 거 아니야? 어떻게 시작을 스코언 조로 하고 끝을 윤이든 조로 할 수가 있지?”
“왜?”
“둘 다 지금 제일 핫한 조라고 하면 되나? 아무튼 저 둘이 인기랑 관심이 제일 많아, 지금.”
조별 음원 미션 무대는 짧은 대기 후에 바로 시작되었다.
“오, 역시 스코언. 도입부부터 확 살리는 걸 선택했구먼?”
부스에서 받은 DTB 슬로건을 흔들며 친구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확실히 첫 번째 팀의 무대는 힙합에 관심이 없는 그가 봐도 잘한 무대였다.
두 번째 무대는 너무 길었다. 세 번째 래퍼의 파트까지는 열심히 호응도 해 줬지만, 그 이후부터는 듣고 있기엔 지치기 시작했다.
그나마 유피인가 뭔가라던 마지막 파트를 맡은 래퍼의 실력이 꽤 괜찮았기에 마지막 감상까지 망치지 않을 수 있었다.
[누구처럼 시선 끌기에만 급급하지 않지 백지 없이도 번번이 보여 주는 내 반전]“너무 대놓고 저격인데……?”
친구가 중얼거리며 힐긋 윤이헌을 돌아보았다.
“왜?”
“아, 너 DTB 4 안 봤댔지. 아까 저 가사 네 사촌 동생 저격이야.”
“음, 걔는 시선 끌기에 급급한 게 아니라 타고났는데. 명절에 집 초대 한 번 하면 오해 싹 사라질걸.”
세 번째 무대와 네 번째 무대는 무난했다. 얼마나 무난했냐면, 그냥 집에 가고 싶어질 정도였다.
기억에 남는 사람도 딱히 없어서 그냥 아무에게나 표를 던졌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무대. 제 사촌 동생이 조장으로 있는 팀의 무대였다.
네 명이 단체로 검은색 후드 집업의 후드와 캡 모자를 깊숙이 눌러써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개중 우뚝 튀어나와 있는 키로 인해 윤이든이 저 중 누구인지는 쉽게 가늠이 되었다.
[Kill the Beat 박살 난 눈치 실력 내 앞을 가로막는 까마득한 벽Killin’ the Beat Go for broke 총구를 겨눠 비트 위에]
윤이든의 훅으로 도입부를 시작하여 귀와 집중을 확 잡아끈 후, 바로 니지어스의 벌스가 시작되었다.
윤이든 조는 확실히 밸런스가 좋았다. 스타일도 확실히 구별되었고, 비슷한 랩스타일이 이어지지도 않아 지루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훅 역시 윤이든이 전담하며 곡의 느낌을 200%로 끌어올렸다,
두 번째 훅이 끝나고 곧바로 윤이든이 제 파트를 치고 나왔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랩에 감탄하던 와중, 윤이든과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물론 상대는 모자를 깊숙이 쓰고 있었기에 그게 착각인지 진짜인지는 윤이든만 알 터였다.
[눈에 힘주고 센 척하는 병아리들 이 판이 다 자기들 손안이라고 착각하는 머저리들U급 I급 나눌 시간에 판 엎을 생각이나 해 버리는 패 되기 전에]
제 파트를 마치자마자 바로 훅을 이어 나가는 모습에 힙합 문외한인 윤이헌조차 입을 떡 벌렸다. 쟤는 대체 폐활량이 얼마나 되길래.
“뭐지? 혹시 유피랑 가사 짰나? 둘 다 서로 저격을 넣어 놨네.”
친구가 옆에서 중얼거렸지만 네 명이 모두 합류한 마지막 훅 떼창에 합류하느라 그 의문은 금방 묻혔다.
다들 모자를 벗고 동시에 얼굴 공개를 한 탓에 함성도 더욱 커졌다.
윤이헌은 그 함성이 향한 곳이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제 사촌 동생이라는 것에 할아버지의 세뱃돈 차등 지급 신념을 걸 수 있었다.
게다가 무대 효과는 지금까지의 다섯 공연 중 가장 화려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어둠이 내려앉자 야광으로 빛나는 의상의 낙서는 둘째치고, 레이저쇼와 불꽃까지 동원한 무대는 시각적으로도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음원도 듣긴 했지만 확실히 라이브 무대로 보는 것과 느낌이 달랐다.
음원이 정제된 느낌이 강했다면 라이브는 날것의 느낌이 확 살았다.
친척이라는 것도 다 미뤄 두어도 제 귀와 눈에도 윤이든 조의 무대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았다.
윤이든에게 표를 던진 마지막 투표까지 끝나고, 스텝의 안내에 따라 윤이헌은 친구와 함께 스튜디오를 나섰다. 친구가 그를 툭 치며 물었다.
“어땠냐?”
“재미있네, 나름. 노래도 좋고.”
왜 그렇게 사촌 동생이 힙합에 미쳐 살았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 * *
대기실로 들어올 때까지 내가 눈을 비비고 있자 투혁이 눈에 뭐가 들어갔느냐며 내게 물었다.
“아니, 관중석에서 사촌 형을 본 것 같아서요. 내가 잘못 봤나?”
“온 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아요? 저도 방금 제 지인이 관중석에 있는 거 봤거든요.”
투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래퍼 지인이 DTB 방청 오는 거야 별 이상할 게 없겠지만……
“힙합에 관심이라곤 없는 인간이라…… 뭐지, 진짜?”
그렇다고 따로 연락을 해서 왜 왔냐고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내년 설에 세뱃돈 수금하러 갈 때 얼굴 보면 슬쩍 물어보지, 뭐.
땀에 젖은 후드집업과 모자를 벗어 던지며 다들 대기실 소파에 아무렇게나 늘어졌다.
어두운 조명 밑에서 야광색으로 빛나는 후드집업 위의 낙서는 알테어가 우리 곡이었던 를 커버할 때 입었던 무대의상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을 쌔벼 갔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않겠냐?
“그래도 실수 없이 다들 잘해 주셨네요.”
“사실 저 살짝 삐끗하긴 했어요. 다행히 바로 비트에 탑승해서 티가 덜 났긴 한데, 관중들에게는 어떻게 비쳤을지는 모르겠네요.”
라이조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투혁이 별문제 없을 거라고 그를 위로했다.
투혁이 팀 분위기를 망치는 주범이었던 걸 상기해 보면 아주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거 천만 찍는 레전드 무대 됐으면 좋겠다.”
니지어스가 제 소망을 중얼거렸다. 우리 그룹 짭막내는 1억 뷰가 소원이던데 천만 뷰는 너무 소박한 거 아니냐.
방청객들이 모두 나가고 현장 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윤이든 조- 윤이든(55), 라이조(10), 투혁(19), 니지어스(16)
스코언 조- 스코언(60), 파튼(15), Geek승(16), A01(19)
유피 조- 유피(40), G-TE(21), 프리히트스타일(9), 안경훈(14), 더블티(TT)(16)
세븐킥 조- 세븐킥(39), 최화(7), YISIK(34), 사포(20)
IJM 조- IJM(48), 하민서(17), 노네임(22), NP(13)
조장들이 압도적인 표를 받은 건 어찌 보면 당연했지만, 세븐킥 조는 조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보여 주지 못한 탓이 컸는지 다섯 조 중 유일하게 표가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그리고 확실히 스코언은 팬층이 두터웠다. 다들 쟁쟁한 래퍼들이라 적당히 표가 갈릴 거라 예상했는데 스코언이 압도적이었다.
나도 55표로 팀 내에서 압도적인 표이긴 했지만 스코언 조의 팀원들과 내 팀원들의 실력, 인지도를 비교해 봤을 때 내 55표가 온전한 팬층이라고는 단언하지 못한다.
내가 만약 스코언의 자리에 들어갔으면 과연 스코언처럼 60표를 받을 수 있었을까.
탈락 확정자는 라이조, 파튼, 프리히트스타일, 최화, NP.
이중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아 프로듀서 팀 선택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음원 성적이 다른 조를 제치고 가장 위로 올라갈 일이 요원한 세븐킥 조와 IJM 조의 탈락자들은 이미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스코언 조와 유피 조는 남은 기간 동안 순위 역전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라이조는 자기는 탈락하지 않으리란 굳은 믿음이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다섯 명 중 최후의 생존자는 누구일까요!”
MC의 비장한 멘트를 마지막으로 촬영이 끝났다.
다들 초상집이 되어 탈락자들을 위로하는 와중, 우리 조는 최저표를 받은 라이조를 포함하여 멀뚱하게 서 있었다.
“엄…… 우울해하는 척이라도 할까요……?”
“그러는 게 나을 듯요.”
우리 조를 잡는 카메라에 즉시 팔을 뻗어 라이조의 등을 두드렸다. 멀뚱히 있다가 이상하게 악편되는 것보다는 위로하는 척하는 게 낫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