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9화(29/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9화
아도라는 걸그룹이다.
그것도 꽤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우리보다 3년 선배인 2군 걸그룹. 엮이면 작살나는 건 우리다.
“그냥 팬심인데…… 싸인은 안 될까요……?”
“가까이 가지를 마. 아예 엮일 건수조차 주지 말라고.”
희번덕이는 내 눈빛에 김도빈은 미련 넘치는 눈길로 아도라를 힐긋거리며 몸을 수그렸다.
리허설 전, 동선 체크를 위해 무대에 오르는 아도라 선배님들을 보다가 김도빈이 두리번거렸다.
“어라, 유안 선배님 안 계시네? 개인 스케줄 때문에 늦으시나?”
“그런데 한 명이 자리 비우니까 동선이 살짝 꼬이긴 한다.”
자기가 유안의 파트를 다 외웠다며, 울리는 음악에 맞추어 안무를 따라 추는 김도빈을 보며 지끈거리는 미간을 문질렀다.
개그성으로 안 추고 진지하게 춰서 혹시나 찍히더라도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 거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리허설 전에 힘 빼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라.”
“에이, 제 체력이 얼만데 별걱정을.”
“알았다. 정신 사나우니까 가만히 좀 있어.”
“넵.”
그런 우리를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짬밥과 인기가 부족한 중소돌이라 행사 순서는 앞, 동선 체크 및 리허설 순서는 뒤였지만, 무대에 오르기까지 대기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무대에 오르자 AR이 울렸다.
지금 하는 건 간단한 동선 체크. 리허설은 동선 체크를 모두 마치고 행사 두어 시간 전에 한다.
1절이 끝나자 음악 역시 뚝 끊겼다.
간주는 포함 안 했으니 1분 10초 정도 걸렸으려나. 동선 체크 대기시간이 길지 않은 이유였다.
리허설은 풀곡으로 하니 아까보다는 대기시간이 늘어날 터였다.
친분이 있는 그룹들끼리 대기실용으로 만든 임시 천막에 모여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삐딱하게 앉아 턱을 괴고 지켜보다가 냉소를 내뱉었다.
우리도, 아니, 정확히는 나만 저렇게 대화 나누고 친분 과시하던 그룹이 있었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생각하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양반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든이 형, 오랜만이야! 하준이 형도 안녕!”
“와우, 니들은 무슨 면상에 고무 장판을 깔았냐. 두껍고 탄력성 있는 게 아주 고무가 따로 없네.”
감탄과 빈정거림 그사이의 말을 내뱉자,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KICKS 멤버 놈이 내게 꼽을 주기 시도했다.
“형, 선배한테 말본새가 그게 뭐야.”
“아, 예예, 6개월 대-선배님. 무슨 용건으로 미천하기 그지없는 언덕 위의 하얀 집 콘셉트 망돌한테 말을 붙이시옵니까?”
“아니, 이든이 형, 말을 그렇게 하지 말고 그저 우리 사이에 오해도 좀 풀 겸-”
“분명히 6개월 대선배님이신 KICKS 멤버께 이 두 귀로 직접 똑똑이 전해 들은 내용인데, 우리 사이에 무슨 풀 오해가 있는지 모르겠사옵니다.”
“아니, 대체 누구한테 들었는지 말 좀-”
“내부고발자를 위한 공익신고자 보호법 모르시옵니까. 그 내부고발자도 남의 욕이 얼마나 듣기 지긋지긋했으면 내부고발을 감행했겠사옵니까. 잘못은 양심 없는 너희들이 했는데, 왜 그나마 양심 있는 놈을 잡아 족치려 하시옵니까.”
“아, 형, 제발-”
“듣기로는 걸그룹 얼평도 세부 점수표 세워 가면서 징하게 했다던데, 내부고발자 색출할 시간에 남의 뒷담이나 얼평 아닌 건전한 이야깃거리 찾아서 느그 팀 단합이나 먼저 하소서.”
일부러 놈의 말을 끊으며 극존칭체로 빈정거렸다.
화룡점정으로 두 손 모아 꾸벅, 합장까지 해 주자 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세부 점수표를 세워서 걸그룹 얼평한 것까지 내 입에서 나왔으니, 이제 더는 자기들 그룹에 내부고발자가 있다는 걸 부정하지 못하겠지.
단합은 개뿔이. 내부 분열이나 해라.
뒤쪽에서 우리 막내 라인이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진짜 든든하다. 같은 팀이 들어도 빡치는데 저거 듣는 상대편은 뭔 생각 들까.”
“원래 우리 집 개새끼가 남 물어뜯을 때 제일 든든한 법이랬어.”
“형, 이거 이든이 형이 들었으면 개새끼라고 했다고 이든이 형한테 죽는 거 아니야?”
“나는 이든이 형이 비유법을 알고 있을 거라고 믿어.”
“많고 많은 비유 두고 하필 개새끼에 비유했다고 형 털리는 거 아니야?”
“몰라, 나 지금 좀 무서워서 아까 했던 말 무효화하고 싶어.”
저것들이 진짜…… 다 들린다, 이 자식들아. 뒷담이나 까는 놈들의 최후를 직관하면서도 아무 생각이 안 드냐?
KICKS 멤버 놈이 도움을 청하듯 뒤를 자꾸 힐긋거리자 KICKS 리더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여전히 삐딱하게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나를 팔짱 낀 채로 서서 지그시 내려다보던 KICKS 리더가 입을 열었다.
“우리 다음 달에 컴백해. 11월 중순. 디지털 싱글이긴 하지만.”
“그거 참 투머치 인포테이션이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왜, 너희도 활동 준비한다며. 보아하니 비슷하게 다음 달에나 나올 것 같은데 저번에는 끝물에 활동 겹쳐서 부딪힐 일 없었지만, 이번에는 다르지.”
아, 얘네 11월에 컴백했던가. 내년 1월 차트만 봤던 터라 그건 미처 몰랐네. 알았어도 별 상관은 없었겠지만.
심드렁한 내 눈과 악의를 그득그득 담은 눈이 마주했다.
연습생 시절에는 나름 친했는데 왜 이렇게 됐다나. 나도 사람 보는 눈이 참 없는 모양이다.
“너희 제대로 짓눌러서 너희가 운빨로 겨우 떴다는 거 네 입으로 인정하게 만들어 줄게.”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시다니, 이제껏 친한 척하면서 본색 눌러 참느라 고생 많-이 하셨사옵니다. 우리가 운빨인지 실력인지 결과는 다음 달에 직접 확인하시고 앞으로는 말 걸면 죽여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아소서.”
[금지어가 포함된 협박성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히죽거리며 끝까지 조롱식으로 극존칭체를 쓰다가 초심도가 깎이며 몰려오는 고통에 표정을 싹 지웠다.
“야, 10초 준다. 꺼져.”
목소리 잔뜩 내리깔고 으르렁거리자 KICKS 놈들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챙기는지 다급하게 보이지 않게끔 노력하며 몸을 돌렸다.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다시 한번 몰려오는 고통에 미간을 팍 찡그렸다.
망할, 저것들만 만나면 초심도가 한 번에 2점씩 훅훅 깎여. 적어도 서예현은 한 번 깎일 때 1점이기라도 하지.
저런 것들 상대하는데 비속어가 안 나오게 생겼냐고.
“왜 저렇게 가만히 있는 사람을 툭툭 건드리지? 사람 열 뻗치게?”
“쟤들 원래 그랬어. 사람 봐 가면서 하니까 예전의 네가 몰랐을 뿐이지.”
“망할 놈들이 이제 내가 만만해졌다는 소리지?”
미간의 골이 더욱 깊게 파이자 류재희가 울적하게 중얼거렸다.
“KICKS가 저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아까부터 계속 느껴지는 따끔한 시선에 턱을 고쳐 괴며 눈썹을 치켰다.
“뭐야, 왜 그렇게 봐? 또 성사될 뻔했던 전설의 인성갑 그룹 생각해?”
그 물음에 서예현이 고개를 짧게 저었다.
“새삼 나한테는 나름 유하게 말하는 거였구나 싶어서.”
“그렇지. 형한테 아까 그 자식들처럼 말하면 나랑 대화 단절하고 나 본 척도 안 하면서 살 게 뻔한데.”
“너는 누굴 쿠크다스 멘탈로 아냐.”
응, 경험담이야.
곧 공연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무대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을 다시 점검하고 인이어를 체크했다.
대기실에서 슬쩍 나와 무대 위에 대형을 맞추어 선 아도라를 구경했다. 여전히 유안의 자리는 비워진 상태였다.
아도라 매니저들이 무대 밑에서 자기들끼리 무어라 모여 쑥덕거리더니 그중 한 명이 매니저 형에게로 다가왔다.
“혹시 무대 동선 체크할 때 밑에서 유안이 파트 춤추시던 분, 리허설 때 무대에 잠깐 세워도 괜찮을까요?”
“예? 누가 춤을 췄…….”
매니저 형이 자리를 비웠을 때 일어났던 일이라, 뭔 일인가 설명 들으려고 우리를 돌아봤다.
초롱초롱하기 그지없는 김도빈과 눈을 마주친 매니저 형의 말문이 막혔다.
“저요!”
번쩍 손을 들고 말하는 김도빈을 발견한 아도라 매니저의 표정이 밝아졌다.
“예, 이분 맞습니다. 아니, 유안이가 개인 스케줄 때문에 좀 늦는데 나머지 멤버들이 자리 비워 놓고 리허설하면 동선이 잘 안 맞는다고 불평을 해서…… 아까 무대 밑에서 춤췄던 애라도 데려오라고…….”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는 아도라 매니저의 옆에서 김도빈은 빨리 승낙하라고 우리 매니저 형을 눈빛으로 쪼고 있었다.
매니저 형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냉큼 아도라 매니저의 뒤를 따라가려는 김도빈의 팔을 턱 붙잡았다.
“도빈아, 만약 번호 따는 시도 비슷한 거라도 하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알겠지?”
“넵!”
양손으로 어깨를 꾹 잡으며 스산하게 강조하자 김도빈이 식은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먹을 거 준다는 꼬임에 넘어간 똥개처럼 쫄래쫄래 아도라 매니저의 뒤를 따라간 김도빈은…….
“저거 얼굴 왜 저러냐.”
“곧 터지겠는데. 왜 저렇게 빨개졌어?”
“과연 도빈이 형한테 저 무대를 허락한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요. 지금 저 형 꼴을 보니까 안무도 기억 못 할 거 같은데.”
“그래도 스캔들 날 염려는 없겠네.”
무대 밑에서 아도라 매니저의 휴대폰으로 안무 영상을 한 번 보고, 지금은 무대 위에서 아도라 멤버들에게 동선 설명을 듣는 중이었다.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진 채로 몸을 한껏 뻣뻣하게 굳히고선.
“저거 다른 걸그룹 앞에서도 저러면 어떡하냐.”
“이든아, 같은 팀 동생한테 저거가 뭐야.”
“알겠어. 이제 쟤라고 할게.”
“전에 음방에서 보니까 다른 걸그룹 앞에선 멀쩡하던데요. 오직 아도라 선배님들 앞에서만 저러는 듯.”
저 꼴을 보니 갑자기 리허설 무대로 보낸 게 뒤늦게 후회되었다.
“하씨, 저거, 아니 쟤 갑자기 미쳐서 고백 내지르는 미친 짓거리를 하지는 않겠지.”
“에이, 제가 서라온 선배님을 보는 거랑 도빈이 형이 아도라 선배님들을 보는 거랑 똑같을걸요. 나름 룸메라 잘 알고 있거든요.”
“네가 서라온 선배님 어떻게 보는지 내가 어떻게 아냐.”
툭 던진 그 말에 류재희는 명쾌하고도 깔끔한 답변을 내어놓았다.
“우상을 이성으로 보진 않죠.”
동선을 모두 숙지했는지 김도빈이 대형에 서자, 통통 튀는 경쾌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언제 뻣뻣하게 긴장했다는 건지 상큼한 안무를 소화해 내며 해맑게 웃는 김도빈을, 내 옆에 서 있던 류재희가 배를 잡고 웃으며 휴대폰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크흡, 저 형 유안 선배 삼켰냐고. 표정까지 그대로 재현하네.”
원래 아도라 멤버였다는 양 자연스럽게 동선을 이동하며 안무 합을 맞추는 모습을 나 역시 휴대폰으로 찍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쟤 어째 우리 무대 할 때보다 더 신난 것 같다?”
1회차에는 이 행사에 참석했던 일이 없던 걸 회상하자 그냥 비죽 웃음이 나왔다.
나 참, 회귀의 수혜는 김도빈 저 녀석이 제일 많이 받고 있는 거 아니냐고.